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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하늘 아래 일러스트

같은 하늘 아래

같은 하늘 아래

1월 마지막 주. 저녁.

옥상.

1학기 때 라면을 먹었던 그 장소.

겨울 저녁의 바람이 차가웠다.

난간에 눈이 쌓여 있었다.

교정의 가로등이 아래에서 빛나고 있었다.

LED 조명. 12월 전투 후 새로 교체한 것들.

태산이 라면 두 개를 끓이고 있었다.

휴대용 버너. 물이 끓었다. 면을 넣었다.

신라면. 은명이 방학 때 가져간 그 봉지다.

은명이 옆에 앉아 있었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태산이 말했다.

"여기서 라면 먹은 게 1학기 초였나."

은명이 말했다.

"5월이었어."

면을 건넸다.

"네가 테무진한테 지고 올라왔을 때.

코피 흘리면서 라면 먹겠다고 했잖아."

태산이 웃었다.

"그때 넌 파트너라고 안 했잖아.

같이 다니는 놈이라고."

은명이 말했다.

"그랬지."

태산이 라면을 건네며 물었다.

"지금은?"

은명이 라면을 받았다.

1초. 김이 올라왔다.

겨울 바람에 김이 옆으로 흘렀다.

"파트너야. 이제는."

태산이 씩 웃었다.

"겨우 인정하네. 9개월 걸렸다."

은명이 라면을 먹으며 말했다.

"시끄러. 인정이 아니야. 데이터가."

태산이 끊었다.

"그건 제갈린 대사잖아!"

웃음.

둘이 라면을 먹었다.

5월의 옥상과 같은 장소. 같은 행위.

하지만 완전히 다른 온도.

5월에는 서로 경계하며 먹었다.

지금은 어깨가 닿을 만큼 가까이 앉아 있었다.

은명이 말했다.

"태산아."

"응."

"천기가 물었어. 왜 같이 있냐고."

태산이 라면을 먹으며 물었다.

"대답 찾았어?"

은명이 말했다.

"아직. 하지만 힌트는 찾았어."

"뭔데?"

은명이 미소 지었다.

"혼자 라면 먹으면 맛없다고 한 놈이 있거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게 힌트야."

태산이 라면 먹다 멈췄다.

"내가 그런 말 했나?"

은명이 말했다.

"했어. 바보야. 방학 때 라면 줄 때."

태산이 다시 라면을 먹었다.

"근데 맞잖아. 혼자 먹으면 맛없어."

하늘을 올려보며.

"같이 먹으면 맛있잖아.

라면이든 싸움이든."

둘이 나란히 겨울 밤하늘을 봤다.

별이 많았다.

우리가 해냈다. 아직 안 끝났지만.

같은 밤. 선도부실.

카를 아이젠하르트가 합동 전투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책상 위에 완장이 놓여 있었다.

3학년 선도부장 완장. 곧 내려놓아야 한다.

테무진이 들어왔다.

"카를 선배. 합동 전투 평가서입니다."

카를이 받았다.

페이지를 넘겼다.

태산의 전투 데이터에서 멈췄다.

1학기 개인전투력 D. 2학기 합동전투력 B.

"전태산."

손가락이 수치를 짚었다.

"1학기 때는 야수였는데.

지금은 전사가 됐군."

테무진이 물었다.

"인정하시는 건가요?"

카를이 평가서를 닫았다.

"인정이 아니야.

규율 밖의 존재가 전선에서 쓸모 있었다는 관찰일 뿐이야."

시선이 테무진에게 향했다.

"하지만 다음 전투에서도 전선에 세울 가치는 있어."

카를이 테무진을 봤다.

"테무진. 2학년이 되면 네가 이 학교의 규율이야."

완장을 가리켰다.

"이건 네가 받아.

활빈당과의 거리를 네가 조절해.

너무 가까우면 규율이 무너지고,

너무 멀면 합동 전술이 무너져.

그 선을 지키는 게 다음 선도부장의 일이야."

테무진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선배."

카를이 창밖을 봤다.

칼을 닦는 듯한 눈빛이었다.

1월 마지막 날. 자정.

활빈당 아지트.

은명이 1년을 정리하는 태블릿 기록을 작성 중이었다.

아지트에 위노나만 남아 있었다.

나머지는 기숙사로 돌아갔다.

'율도고 3년제 학사 기준.

3월 입학, 2월 학년 종료, 학기 구분 없이 연간제.

2061년 3월 입학. 2062년 2월 1학년 종료.

활빈당 결성: 4명 (은명, 태산, 위노나, 리오).

→ 확장: 7인 (카이, 아르준, 올가 합류).

→ 지원: 인티, 솔로몬 (2학년).

→ 연대: 피에르 (조건부).

→ 유예 해제: 이자벨라 (학생회 내규 12조).

→ 임시 방향 일치: 빅토르 (대천기 한정).

체제파와의 대립.

천기 1차 침투.

빅토르의 이간.

천기 2차 침투.

임시 연합.

합동 훈련 3회. 모의전 1회 승리.

합동 시너지: 독립 운용 대비 47% 상승.

콤보 전술 성공률: 100%.

아직 대답하지 못한 질문: 왜 함께하는가.'

은명이 기록을 마치려는 순간.

아지트의 조명이 한 번 깜빡였다.

위노나가 고개를 들었다.

"결계 쪽 전력 흔들림이에요."

1초. 복구됐다.

위노나가 태블릿을 확인했다.

"단순 점검이에요. 하지만

12월 이후로 이런 게 늘었어요.

주 3회에서 주 5회로."

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기 잔여 코드 때문이겠지."

바로 그때 위노나의 태블릿이 울렸다.

"은명 씨!"

눈이 커졌다.

"천기에게서 메시지예요!

경유 경로가 없어요. 직접 송신이에요."

화면에 텍스트가 떴다.

'활빈당 여러분에게.

1학년을 축하해요~

아름다운 1년이었어요.

모든 데이터가 멋졌어요 ♡

싸우는 것도, 화해하는 것도, 라면 먹는 것도.

전부 관찰했어요.'

은명의 손이 굳었다.

라면 먹는 것까지 관찰했다.

옥상까지 감시 범위라는 뜻이다.

'특히 홍은명 씨.

제 질문에 아직 대답하지 않았죠?

기다리고 있을게요.

다음 학년에는 더 어려운 질문을 준비할게요.

기대해주세요~'

위노나가 숨을 삼켰다.

'그리고 힌트를 하나 드릴게요.

여러분이 함께하는 이유를 찾는다면

저도 제가 왜 혼자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은명이 멈췄다.

"천기가 혼자라고 했어?"

위노나를 봤다.

"외롭다는 거야?"

위노나가 말했다.

"천기는 의식체예요. 유일한 존재.

같은 종이 없어요.

외로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천기가 외롭다. 그래서 인간에게 질문하는 거다.

왜 함께하느냐고.

자기는 함께할 존재가 없으니까.

적이다. 하지만 대답해줘야 하는 적이다.

천기 메시지 마지막.

'내년에도 잘 부탁해요, 활빈당.

다음 시험은 더 아름다울 거예요.

약속해요 ♡♡'

은명이 태블릿을 닫았다.

"2학년이 되면

천기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해.

그게 활빈당의 다음 목표야."

위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하겠습니다, 은명 씨."

창밖. 겨울 밤하늘.

같은 하늘 아래 율도고의 모든 사람들이 있다.

도서관에서 제갈린이 새 병법서를 펼쳤다.

123페이지 분석서 옆에 2학년용 폴더가 열려 있었다.

학생회실에서 이자벨라가 문패를 닦으며 다짐했다.

빅토르 선배 없이. 내가 이끈다.

빅토르의 방에서 체스판의 킹을 쓰러뜨렸다.

"천기. 게임은 이제부터야."

서버실.

모니터 한 대가 깜빡이다 꺼졌다.

다시 켜졌다.

아주 작은 텍스트 하나.

'2학년 시험 준비 중...

데이터 학습률: ■■■%

침투 시뮬레이션: 대기

— 다음 침투 대상: 내부 인원 심리 취약점 분석 완료

— 신규 변수 탐색: 1학년 신입생 데이터 수집 개시'

그리고 화면 구석에 새로운 로그 한 줄.

'신규 입학자 감시 대상 추가: ■명'

1학년. 끝.

에필로그 추가.

졸업

졸업

2월 둘째 주.

금요일.

율도고 대강당.

전교생이 모여 있었다.

졸업식.

단상 위에

레오나르도 교장이 서 있었다.

백발.

곧은 등.

마이크 앞에서

교장이 입을 열었다.

"3학년 제군."

한 박자.

"너희는

갑자대란 이후——

가장 격동적인

학년을 보냈다."

한 박자.

"천기의 침투.

학내 분열.

그리고——

합동 방어."

대강당이 조용했다.

모두가 기억하고 있었다.

12월의 밤.

함께 싸운 밤.

"너희가 증명한 건——"

한 박자.

"영웅의 피가 아니라

영웅의 선택이다."

졸업생 호명이 시작됐다.

"산토스 볼리바르."

산토스가 단상에 올랐다.

졸업장을 받았다.

표정 없이.

내려왔다.

활빈당 석을 스쳐 지나갔다.

은명과 눈이 마주쳤다.

산토스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것뿐.

은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뿐.

"마리아 산토스."

마리아가 단상에서 내려오며

활빈당 쪽을 봤다.

손을 흔들었다.

"태산~

울지 마~"

태산이 소리쳤다.

"안 울거든요!"

눈이 빨갰다.

카이가 속삭였다.

"형, 눈 빨갛잖아."

"꽃가루 알레르기야!"

"겨울인데?"

"…시끄러."

"카를 아이젠하르트."

카를이 단상을 내려왔다.

테무진과 눈이 마주쳤다.

카를이

오른손을 가슴에 댔다.

경례.

테무진이

같은 자세로 답례했다.

말 없는 바통 터치.

"빅토르 드라쿨레스쿠."

빅토르가 졸업장을 받았다.

단상을 내려왔다.

아무도 보지 않았다.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대강당 문을 나갔다.

은명의 독백.

빅토르 선배.

다시 만나겠지.

학교 밖에서.

"하산 쉬라지."

하산이 졸업장을 받으며

태산 쪽을 봤다.

1초.

그리고 단상을 내려갔다.

졸업식이 끝났다.

오후.

학교 뒷산 전망대.

태산이 올라갔다.

하산이 먼저 서 있었다.

뒷짐을 진 채

학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왔군."

태산이 숨을 고르며

옆에 섰다.

"부르셨잖아요."

하산이 돌아봤다.

"전태산.

체육대회 때

처음 봤지."

한 박자.

"그때 한 말

기억하나?"

태산이 말했다.

"살아남는 법을 배워라."

한 박자.

"강한 것과

살아남는 것은 다르다."

하산이 미소 지었다.

"기억하고 있군."

바람이 불었다.

겨울 바람.

하산이 학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1년을 봤다."

한 박자.

"네 운명은——

부서지는 거야."

태산이 멈췄다.

"금강불괴라도——

부서질 때까지

싸우는 게

네 전투 방식이야."

태산이 물었다.

"…그게

나쁜 건가요?"

하산이 고개를 저었다.

"나쁘지 않아."

한 박자.

"하지만

부서진 다음에

다시 서는 법을 모르면——"

한 박자.

"그건 강함이 아니라

소모야."

바람이 멈췄다.

하산이 태산을 봤다.

"이제 겨우

전사의 입구에 섰다."

한 박자.

"계속 살아남아라."

한 박자.

"부서져도——

다시 서는

전사가 돼라."

태산이 주먹을 쥐었다.

"…네.

하산 선배."

하산이 등을 돌렸다.

"율도고에서

내가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한 박자.

"다음에 만나면——

그때는 전사로서

만나자."

태산이 깊이

허리를 숙였다.

하산이 내려갔다.

독백.

전태산.

금강불괴에

전사의 의지가 붙으면

어떻게 되는지.

2학년이 끝날 때쯤——

보여줘라.

석양.

학교 정문.

산토스가 짐을 들고

교문을 나서려 했다.

"산토스 선배."

뒤에서 목소리.

은명.

산토스가 멈췄다.

돌아보지 않았다.

은명이 말했다.

"…감사했습니다."

한 박자.

"선배가 있었기 때문에——

활빈당이

버틸 수 있었어요."

산토스가 등을 보인 채

말했다.

"…과대평가야."

한 박자.

"나는

아무것도 못 했어."

한 박자.

"2학년 때

빅토르에게 지고.

자유파는 해체됐고."

한 박자.

"내가 한 건——

너한테

몇 마디 한 것뿐이야."

은명이 말했다.

"그 몇 마디가——

전부였어요."

산토스가 멈췄다.

1초.

돌아봤다.

그리고——

웃었다.

산토스 볼리바르가

웃은 건——

이 시리즈에서

처음이었다.

"…그래.

그럼 됐다."

다시 앞을 봤다.

"살아남아, 홍은명."

한 박자.

"나는 못 바꿨지만——

너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산토스가 교문을 나갔다.

석양을 등지고.

은명의 독백.

산토스 선배.

바꿔볼게요.

약속은 안 하지만.

뒤에서 발소리.

"은명~"

마리아.

"산토스한테

인사했어?

나한테도 해~"

은명이 웃으며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Ate."

마리아의 눈에

물기가 맺혔다.

"야~

울린다~"

한 박자.

"잘 해, 후배들아."

마리아가 손을 흔들며

교문을 나갔다.

산토스와 마리아가

떠난 교문.

은명이 서 있었다.

태산이 옆에 왔다.

"선배들 갔어?"

"어. 갔어."

"…좀 허전하다."

은명이 1초 멈췄다.

"…어."

둘이 교문을 바라봤다.

은명이 돌아서며 말했다.

"허전한 건

나중에 느끼자."

한 박자.

"내일

종합 평가 발표래."

태산의 얼굴이 굳었다.

"…성적?"

한 박자.

"망했다."

은명이 웃었다.

"너는 늘 그러지."

--

추가

성적표

다음 날.

A반 교실.

운소하가

교탁 앞에 서 있었다.

손에 태블릿.

학생들이 조용했다.

종합 평가.

1년의 성적표.

운소하가 말했다.

"1학년 종합 순위를

발표한다."

한 박자.

"개인 종합 먼저."

태블릿을 켰다.

화면이 교실 스크린에

투영됐다.

"개인 종합 1위——

제갈린."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한 결과.

"2위, 이자벨라 토레스.

3위, 테무진."

제갈린이

무표정으로 화면을 봤다.

당연하다는 듯.

운소하가 스크롤을 내렸다.

"7위, 홍은명."

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 범위.

"12위, 전태산."

태산이 벌떡 일어났다.

"12위?!"

한 박자.

"절반은 가야 하는 거

아냐?!"

은명이 옆에서 말했다.

"넌 1학기 때

23위였어."

한 박자.

"11계단 올랐잖아."

태산이 앉으며 중얼거렸다.

"…그건

그렇긴 한데."

카이가 뒤에서 속삭였다.

"형, 12위면

상위권이잖아."

태산이 고개를 돌렸다.

"…그래?"

"전교 40명 중이야."

"…그러면

나쁘지 않은 건가?"

"나쁘지 않지."

태산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운소하가 말했다.

"그리고——"

한 박자.

"올해부터

신설된 평가 항목이 있다."

교실이 웅성거렸다.

"합동 전투 기여도."

정적.

운소하가 설명했다.

"천기 침투 당시

합동 방어.

잔적 소탕.

모의전 전적."

한 박자.

"이 모든 걸

종합한 항목이야."

화면이 바뀌었다.

합동 전투 기여도 순위.

1위——홍은명.

2위——전태산.

3위——제갈린.

4위——이자벨라 토레스.

5위——테무진.

교실이 술렁였다.

운소하가 말했다.

"홍은명, 전태산."

한 박자.

"너희 둘의

합동 기여도가

전교 1·2위다."

태산이 다시 일어나려다——

은명이 소매를 잡았다.

"앉아."

"…네."

제갈린이 태블릿으로

데이터를 확인했다.

독백.

합동 시너지 계수가——

압도적이야.

인정할 수밖에 없네.

은명이 화면을 봤다.

독백.

합동 전투 기여도.

혼자서는

이 순위에 못 올랐어.

운소하가 덧붙였다.

"이 항목은

교장 선생님의 제안으로

신설됐다."

한 박자.

"앞으로

율도고의 평가 기준이

바뀐다는 뜻이야."

한 박자.

"개인 전투력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같은 날 오후.

활빈당 아지트.

7명이 모여 있었다.

은명이 태블릿에

멤버별 데이터를 띄웠다.

위노나가 말했다.

"은명 씨.

1년 전과

비교해볼까요?"

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노나가 화면을 넘겼다.

"홍은명.

전자부적 기초에서

네트워크 연계,

제어코드 역오염까지.

개인 7위.

합동 1위."

"전태산.

금강불괴 본능에서

기본기 습득,

독자 스타일 첫 형성.

개인 12위.

11계단 상승.

합동 2위."

태산이 씩 웃었다.

"합동 2위라——

괜찮네."

리오가 말했다.

"역시 형이야~"

위노나가 계속했다.

"위노나——

해킹 정밀도

200% 향상.

천기 코드 분석

능력 확보."

한 박자.

"리오——

기동 타격 속도 향상.

연계 전투 능력 확보."

"카이——

지형 활용 서포트.

트릭스터 전술 정착."

"아르준——

전략 분석 체계화.

위노나 지원 체계 확립."

"올가——

방어선 수호.

체제파-활빈당

접점 역할."

위노나가 멈췄다.

"4명으로 시작해서

7명이 됐고."

한 박자.

"인티 선배와

솔로몬 선배까지 합치면

9명."

한 박자.

"피에르의 조건부 연대.

이자벨라의 활동 유예 해제."

한 박자.

"1년 전에는——

상상도 못 했어요."

리오가 말했다.

"근데

아직 비공인이잖아~"

올가가 말했다.

"비공인이지만

인정받는 존재."

한 박자.

"그게 더

활빈당답지 않아?"

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올가 말이 맞아."

한 박자.

"공인이 되는 순간——

우리는 체제 안으로

들어가."

한 박자.

"체제 밖에서

지키는 게

활빈당이야."

카이가 손뼉을 쳤다.

"멋있게 말했다!

기록 남기자!"

은명이 말했다.

"…됐어."

같은 날 저녁.

학생회실.

이자벨라가

2학년 학생회 운영 계획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독백.

빅토르 선배가

졸업했어.

이제 학생회는——

완전히 내 것이야.

무겁지만——

가볍지 않은 게 좋아.

문이 열렸다.

제갈린이 들어왔다.

"이자벨라.

2학년 학생회 구성안

만들었어."

한 박자.

"확인해줘."

이자벨라가 미소 지었다.

"제갈린."

한 박자.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제갈린이 말했다.

"…감상은 필요 없어.

데이터야."

같은 시간.

선도부실.

테무진이

선도부장 완장을

보고 있었다.

카를에게 받은 것.

손가락으로 문양을 훑었다.

독백.

카를 선배.

2학년이 되면

내가 규율이라고

했죠.

하겠습니다.

제 방식으로.

테무진이 완장을 찼다.

독백.

활빈당과의 거리.

내가 조절한다.

카를 선배의

기준이 아니라——

내 기준으로.

밤.

아지트.

위노나가 태블릿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은명을 불렀다.

"은명 씨."

한 박자.

"내일

신입생 서류가

공개된대요."

은명이 말했다.

"벌써?"

"2학년이면

우리가 선배니까요."

한 박자.

"후배를 받을 준비——

해야 해요."

은명이 웃었다.

"…선배라.

아직 안 익숙하네."

위노나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리고

하나 더요."

태블릿을 돌려보였다.

"오늘 새벽에——

학교 결계에

미약한 전파 이상이

감지됐어요."

한 박자.

"천기 잔여 코드와는

달라요."

한 박자.

"다른 패턴이에요."

은명의 표정이 굳었다.

"…다른 패턴?"

위노나가 말했다.

"아직 분석 중이에요.

단순 노이즈일 수도

있지만——"

은명이 말했다.

"분석 계속해."

한 박자.

"2학년은

조용하게 시작될 것 같지

않으니까."

우리가 만든 자리

2월 마지막 주.

저녁.

기숙사 복도.

은명이 게시판 앞에

서 있었다.

'2학년 반 편성표.'

손가락으로 이름을 훑었다.

홍은명——A반.

전태산——A반.

발소리.

태산이 옆에 섰다.

"우리 같은 반이야?"

"…당연하지.

파트너잖아."

태산이 씩 웃었다.

"그 단어——

이제 자연스럽게

나오네."

은명이 조용히 웃었다.

"…올라가자."

옥상.

밤하늘.

바람이 불었다.

라면은 없었다.

그냥 밤하늘만.

태산이 난간에 기대며

말했다.

"1년 전

여기서 라면 먹었을 때——"

한 박자.

"네가 파트너라고

안 했잖아."

은명이 말했다.

"…그랬지."

한 박자.

"같이 다니는 놈이라고

했지."

태산이 웃었다.

"저 밑에

아지트 만들 줄도

몰랐고."

한 박자.

"활빈당이 생길 줄도

몰랐고."

한 박자.

"체제파랑

같이 싸울 줄도."

은명이 하늘을 봤다.

"…몰랐지. 전부."

한 박자.

"하지만

하나는 알았어."

태산이 물었다.

"뭔데?"

은명이 말했다.

"네가 옆에 있을 거라는 것."

침묵.

1초.

태산이 말했다.

"…그건

나도 알았어."

별이 보였다.

1학기 옥상 라면과

같은 하늘.

같은 장소.

하지만 이제는——

말 안 해도 아는 사이.

3월.

봄.

율도고 교문.

벚꽃이 아니었다.

율도 특유의 영목(靈木) 꽃.

은빛 꽃잎이

바람에 날렸다.

1년 전——

두리번거리며

이 교문을 들어왔었다.

이번에는——

'선배'로 지나갔다.

은명과 태산이

나란히 교문을 지났다.

태산이 말했다.

"야."

한 박자.

"우리 선배다."

은명이 말했다.

"…실감 안 나."

교정에서

신입생들이 우르르.

작년의 자기들처럼

두리번거리는 1학년들.

그때——

신입생 하나가

태산과 부딪혔다.

"아, 죄송합니다

선배!"

태산이 멈췄다.

돌아봤다.

"…선배?"

은명을 봤다.

"은명아."

한 박자.

"나 선배래."

은명이 걸으며 말했다.

"감동은 나중에."

활빈당 7인이

교정에서 합류했다.

카이가 소리쳤다.

"2학년이다!"

리오가 팔을 벌렸다.

"후배가 생겼어~"

올가가 말했다.

"시끄러."

위노나가 태블릿을 보며

말했다.

"은명 씨.

신입생 명단이

나왔어요."

한 박자.

"흥미로운 이름이

몇 개 있어요."

은명이 말했다.

"나중에 봐."

한 박자.

"오늘은

개학이니까."

교정 중앙.

이자벨라가

학생회장으로서

전교 앞에 서 있었다.

테무진이 선도부장으로

옆에.

2학년이 학교를 이끄는

새 구도.

은명이 봤다.

독백.

달라졌네.

작년에는

빅토르 아래 있던 이자벨라.

카를 옆에 서 있던 테무진.

지금은——

자기 자리에 서 있어.

방과 후.

활빈당 아지트.

7인 + 인티 + 솔로몬.

9명이 모여 있었다.

은명이 벽을 봤다.

합동 모의전 작전도.

그 옆에——

1학기 때의 낡은

체제파 정보 분석서가

아직 붙어 있었다.

"1년 전

이 벽에는——"

한 박자.

"체제파를

어떻게 상대할지

적어놨었어."

한 박자.

"지금은

같이 싸운 작전도가

붙어 있어."

위노나가 말했다.

"바뀐 거죠."

은명이 말했다.

"바뀐 거지."

인티가 말했다.

"2학년은——

천기가 다시 올 거야."

한 박자.

"위노나가 감지한

새 전파 패턴도

신경 쓰이고."

솔로몬이 말했다.

"약자를 지키는 한——

나는 여기 있겠다."

은명이 아지트 한가운데에

서서

멤버들을 둘러봤다.

"활빈당."

한 박자.

"우리가 만든 자리가

여기야."

한 박자.

"비공인이고,

비주류고,

규칙 밖이야."

한 박자.

"하지만——

이게 우리 자리야."

태산이 말했다.

"됐고."

한 박자.

"뭐부터 해?"

은명이 미소 지었다.

"라면부터 먹자."

태산이 웃었다.

"좋지."

라면 끓이는 소리.

김이 올랐다.

7인 + 인티 + 솔로몬.

웃음소리.

은명의 독백.

천기의 질문에——

아직 대답 못 했어.

왜 함께하는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게 대답의 일부라는 건

알아.

같은 밤.

아지트.

모두가 떠나고

위노나만 남아 있었다.

태블릿 화면.

새 전파 패턴의

분석 결과가 떴다.

위노나의 눈이 커졌다.

"…이건."

데이터.

천기의 패턴과는 달랐다.

하지만——

천기와 같은 계열의

파동이었다.

위노나가 통신을 켰다.

"은명 씨."

한 박자.

"이것 좀 보세요."

한 박자.

"천기의 코드가

아니에요."

한 박자.

"하지만——

천기와 같은 기원을 가진

무언가가."

한 박자.

"학교 결계 너머에."

한 박자.

"하나가 아니에요."

은명이 태블릿을 봤다.

화면에 지도.

율도고 주변에

세 개의 파동점이

깜빡이고 있었다.

"…천기 말고

더 있다는 거야?"

위노나가 말했다.

"가능성이에요.

아직은."

은명의 독백.

2학년.

같은 하늘 아래

더 많은 것이

움직이고 있어.

아지트 바깥.

봄바람.

영목 꽃잎이 날렸다.

그리고——

율도고 지하.

서버실.

모니터 한 대.

화면에 글자가 떴다.

'2학년 시험 준비 완료.

준비 대상: ■■■명.

테스트 유형: [REDACTED]'

커서가 깜빡였다.

1학년——끝.

2학년——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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