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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 일러스트

개학

9월. 율도고등학교 정문.

공기가 달랐다.

여름의 끈적한 습기가 빠지고,

바람이——날이 서 있었다.

전태산이 교문 앞에 섰다.

……학교가 이렇게 컸나.

방학 동안 축소됐던 세계가

다시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정문에 눈이 갔다.

부적. 새 부적이 3장 추가되어 있었다.

1학기에는 없던 것.

결계 문양이 이중으로 깔려 있었다.

……결계가 강해졌네.

방학 동안 뭐가 있었길래

교문 너머, 경비 교관이

2명에서 4명으로 늘어 있었다.

시선이 예리했다.

학생 하나하나를 확인하듯 보고 있었다.

걸었다. 복도.

분위기가 달랐다.

1학기와——같은 학교인데

다른 학교 같았다.

마주치는 학생들의 시선.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 시선을 피하는 학생.

"……저 사람 활빈당 아냐?"

속삭임이 들렸다.

활빈당.

1학기 초에는 없던 이름이었다.

지금은——복도에서 속삭이는 이름이 됐다.

"태산아!"

뒤에서 등짝을 맞았다. 꽤 세게.

"ㅋㅋ 방학 동안 더 커졌냐?

먹기만 했어?"

리오였다. 갈색 피부. 뒤로 넘긴 긴 머리.

여전히 시끄럽다.

"……리오."

"뭐야 그 반응.

인사도 안 해?

나 방학 동안 매일

너네 단톡방에 썼거든?"

"읽었어."

"읽었으면 답을 해야지!"

태산이 씩 웃었다.

안 달라졌구나.

얼굴이 안 보여도

시끄러운 건 똑같아.

뒤에서 조용한 발소리가 다가왔다.

위노나였다.

"결계 시스템 바뀌었어."

첫마디가 인사가 아니라 정보다.

위노나다웠다.

"결계층은 이중화됐고,

상위에 암호화가 3단계.

물리벽이랑 인증 코드는

아예 별개 계층이야."

리오가 팔짱을 끼며 끼어들었다.

"첫마디가 그거야?

안녕도 없어?"

위노나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안녕."

리오가 양손을 번쩍 들었다.

"와. 위노나한테 인사 받기가

이렇게 어렵다."

태산이 걸으면서 생각했다.

학교가 달라지고, 결계가 달라졌지만——

이 놈들은 안 달라졌다.

나는 어느 쪽이지?

수업 시작이 가까워질 무렵,

복도의 인파가 교실 쪽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1교시 전. 복도.

전태산이 B반 교실로 가고 있었다.

모퉁이를 돌았다.

홍은명이 서 있었다.

A반 교실 앞. 태블릿을 보고 있었다.

걸음이 멈췄다.

은명이 고개를 올렸다.

시선이 마주쳤다.

2초.

태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왔네."

은명이 태블릿을 내리며 대답했다.

"……응."

침묵.

은명의 머리카락이 1센티 정도 길어져 있었다.

태산의 어깨가 조금 넓어져 있었다.

둘 다 그걸 말하지 않았다.

"뭐 별일 없었어?"

"없었어. 너는?"

"없었어."

담백하게, 그게 끝이었다.

이런 인사가 이 둘에겐

말 열 마디보다 낫다는 걸 둘 다 알고 있었다.

복도 끝에서 지켜보던 위노나가 한숨을 삼켰다.

……저 둘은 진짜 대화가 저게 전부야?

리오가 킥킥 웃었다.

"연락도 안 하고

만나자마자 저런다.

진짜 같이 다니는 놈들이야."

옆에 서 있던 학생 하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 둘 사이 뭐야?"

리오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몰라.

근데 건들면 안 돼, 둘 다."

오후. 실기 훈련장.

A반·B반 합동.

운소하가 서 있었다.

검은 정장. 지휘봉 대신 태블릿.

2학기 첫 수업.

"방학 잘 보냈어?"

목소리가 사무적이었다.

"쉬었어?"

학생들이 끄덕였다.

"좋아. 이제 확인하자.

뭐가 남았나."

실기 테스트.

1학기 말 기준 대비 변화 측정.

학생들이 차례로 들어갔다.

전태산. 금강불괴.

태산이 타격봉을 쳤다.

둥.

측정기의 수치가 떴다.

운소하가 태블릿을 확인했다.

"전태산."

잠깐 눈이 멈췄다.

"기본기 수치가 올랐네."

한 박자.

"뭐, 조금은 했구나.

조금."

태산이 물었다.

"……그게 칭찬이에요?"

운소하가 귀찮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사실이야.

칭찬은 더 올리면 줄게."

뒤에서 누군가 속삭였다.

"활빈당 쪽 애가 수치 올랐데."

"방학 동안 뭘 한 거야?"

홍은명. 전자부적 시연.

디지털 코드가 허공에 전개됐다.

1학기보다 패턴이 깔끔했다.

연결 속도가 빨라졌다.

운소하의 눈이 잠깐 멈췄다.

"홍은명. 도술 정밀도 올랐어."

한 박자.

"근데——

여전히 혼자 쓰는 도술이야.

연계를 연습해야 해."

은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발 물러났다.

……알고 있어.

혼자 하는 건 익숙하지만——

혼자 하는 게 한계라는 것도.

운소하가 태블릿을 두드리며

연계 과제를 꺼냈다.

"이번엔 좀 다르게 해보지."

태산과 은명을 번갈아 봤다.

"둘이 동시에."

태산의 금강불괴 위에

은명의 전자부적을 올리는 연계.

코드가 내공 위에 얹혔다.

찌지직——

전자부적이 태산의 기류에 밀려

한쪽으로 흘렀다. 불안정한 떨림.

은명의 손가락이 빠르게 코드를 수정했다.

주파수를 태산의 내공 파장에

맞추려는 시도.

운소하가 지켜봤다.

태블릿에 파형이 떴다.

일치율——38%.

"……아직 멀었네."

한마디였지만, 눈이 아까와는 달랐다.

흥미가 실려 있었다.

훈련장 한쪽에서 학생 둘이 수군거렸다.

"저 둘이 연계를? 반이 다른데?"

"운소하 교관이 지목한 거잖아."

운소하가 전체를 둘러봤다.

"2학기는 1학기와 달라."

목소리가 바뀌었다. 무게가 실렸다.

"개인 성장이 아니라——

팀의 성장을 본다."

한 박자.

"혼자 강한 놈은

1학기에 졸업했어."

훈련장이 조용해졌다.

운소하가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

"그리고——

올해는 손님이 많을 거야."

한 박자.

"결계를 이중화한 이유가 있어."

태산이 은명을 봤다.

은명이 태산을 봤다.

손님. 천기.

'이번에는 제가 직접 갈게요.'

서버실에서 봤던 그 텍스트가 머릿속을 스쳤다.

운소하가 수업을 끝냈다.

"오늘은 여기까지.

2학기에도 살아남아."

교관다운 인사였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빠져나간 뒤,

훈련장에 어둠이 내렸다.

저녁. 교관실.

운소하가 혼자 앉아 있었다.

태블릿을 보고 있었다.

화면에 보고서가 떠 있었다.

'2학기 위협 평가: 등급 상향.

대상: 천기(天機).

비고——

인간 협력자 활동 징후 3건 포착.

내역: 미승인 접근 로그 1건,

직원 인증 토큰 복제 시도 1건,

익명 내부 제보 1건.

교내 잠입 가능성: 上.'

운소하가 화면을 끄지 않았다.

한참을 봤다.

……손님이 많을 거라고 했는데.

진짜 올 줄은.

담배를 꺼내들었다가 다시 넣었다.

교관실에서는 못 피운다.

"……피곤하겠네. 2학기."

창밖으로 율도고의 결계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중으로.

강화된 빛이——

그래도 불안을 다 덮지는 못했다.

그때, 태블릿이 한 번 진동했다.

화면 상단에 알림 하나.

'[결계 시스템]

미등록 단말 접속 시도 감지.

위치: 정문 외곽 200m.

시각: 18:47:32.'

운소하의 손이 멈췄다.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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