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곱
B반 교실. 개학 3일차.
리오가 한 놈을 데려왔다.
"태산아. 이 놈 소개할게."
갈색 피부. 리오보다 한 톤 더 진한.
곱슬머리를 올린 밝은 얼굴.
목에 뒤집어진 갈고리 모양 펜던트가 걸려 있었다.
"Kia ora!"
첫마디가 마오리어였다.
"나 카이. 카이나보아.
리오 친구.
너네 그 활빈당이라는 거,
재밌어 보이던데?"
태산이 리오를 봤다.
리오가 눈을 피했다.
"……재밌어서 하는 거 아닌데."
한 박자.
"아니, 좀 재밌긴 해."
카이가 손가락을 튕겼다.
"봤지? 재밌는 거잖아.
나 이런 거 체질이야."
태산이 카이를 봤다.
밝은 눈. 장난기가 넘쳤다.
리오랑 둘이 있으면 시끄럽겠다.
"넌 뭐 해?"
"뭐가?"
"능력. 뭐 하는 놈인데."
카이가 씩 웃었다.
"보여줄까?"
체육관 뒤 빈 훈련장.
카이가 바닥에 손을 댔다.
마나가 흘렀다.
바닥이 움직였다.
평평하던 콘크리트가 미세하게 울퉁불퉁해졌다.
태산이 위를 걷다가 발이 걸렸다.
반박자. 그 찰나가 실전이면 치명적이었다.
"……뭐야. 바닥이 움직여?"
카이가 웃었다.
"마나 시프트.
지형을 바꾸는 거야.
적의 발을 반 박자 늦추면
승패가 갈리거든."
태산이 눈을 크게 떴다.
"……비겁한데 쓸모있네."
카이가 양손을 벌렸다.
"비겁은 전략이지!
바닥이 곧 무기야, 형제!"
리오가 태산 옆에 서며 말했다.
"얘 카이. 지형 바꾸는 놈.
그리고 내 친구."
'내 친구.'
리오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진지했다.
태산이 카이를 다시 봤다.
"좋아. 일단 들어와.
다만 첫 주는 훈련 참관이야.
활빈당이 뭘 하는 곳인지
직접 보고 나서 정식으로."
카이가 환호했다.
"예스!
바닥에서 시작하는 놈들이
제일 강한 법이지!"
리오가 끼어들었다.
"그건 무슨 말이야?"
"마오리 속담이야."
"방금 만든 거 아냐?"
"아냐 진짜야! 대대로 내려오는 거야!"
……시끄럽긴 한데.
나쁘지 않다.
개학 5일차. 도서관.
은명이 혼자 앉아 천기 관련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었다.
7월 서버실 침투 데이터. 패턴 분석. 로그 추적.
맞은편에 누가 앉았다.
안경. 정돈된 머리카락.
셔츠 단추를 맨 위까지 잠근.
아르준 싱. A반. 인도 출신.
시선이 은명의 화면을 스쳤다.
은명이 알았다.
"……보고 있었어?"
아르준이 안경을 올렸다.
"눈에 들어왔을 뿐이야."
한 박자.
"근데, 그 패턴 분석.
표본이 적어.
7월 데이터만으로는 편향이 생겨."
은명의 눈이 가늘어졌다.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거야?"
"해도 될까?"
은명이 태블릿을 살짝 돌려놨다.
허락이었다.
두 사람이 데이터를 봤다.
은명은 직관이 날카로웠다.
패턴을 읽는 눈이 있었지만 체계가 부족했다.
아르준은 정반대였다.
체계는 완벽했지만 직관이 없었다.
아르준이 말했다.
"홍은명.
너의 직관은 인정해.
하지만 직관에 체계가 없으면
재현할 수 없어.
한 번 맞히고 열 번 틀리는 거야."
은명이 대답했다.
"체계만 따지면
적이 체계 밖으로 나갈 때 답이 없어.
천기처럼."
아르준이 멈췄다.
안경 너머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일리가 있어."
안경을 다시 올리며 팔짱을 꼈다.
"활빈당. 데이터를 봤어."
은명이 경계했다.
"누가 시켰어?"
"아무도. 내가 궁금했으니까."
한 박자.
"비효율적이고, 위험하고, 교칙 위반이야."
한 박자 더.
"하지만 유일하게 결과를 내고 있어.
비효율 속에 효율이 있다면,
연구할 가치가 있어."
은명이 물었다.
"연구하려고 들어오는 거야?"
아르준이 안경을 올렸다.
"참여해야 데이터가 정확하니까."
이상한 이유지만 싫지 않다.
팀에 전략가가 필요했으니까.
"좋아. 내일 저녁에 다용도실로 와.
단, 데이터는 외부 반출 금지야.
이건 접근 조건이야."
아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한 번.
개학 1주차 말. 훈련장.
전태산이 기본기를 치고 있었다.
둥. 둥.
타격봉이 흔들렸다.
옆 레인에서 누군가 수련하고 있었다.
올가 볼코바. B반. 러시아.
금발. 무표정. 움직임에 낭비가 없었다.
수호술.
에너지로 벽을 만들었다.
투명한 빛이 반원 형태로 펼쳐졌다.
태산이 다가가서 주먹을 날렸다.
벽이 안 깨졌다.
힘을 올려 다시 쳤다.
여전히 안 깨졌다.
주먹에 반동이 돌아와 손목이 저렸다.
"……강하네."
올가가 고개를 돌렸다. 무표정.
"당연해.
약하면 보호할 수 없으니까."
"뭘 보호해?"
"지킬 가치가 있는 것들."
한 박자.
"아직 정하는 중이야."
태산이 다시 타격봉을 쳤다.
둥.
올가가 말했다.
"전태산."
멈췄다.
"너네 활빈당. 약자를 보호한다고 했지?"
"대충 그런 거지."
올가의 눈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대충이면 곤란해.
보호는 대충 하는 게 아니야."
한 박자.
"한 가지 조건이 있어."
태산이 봤다.
"보호할 가치가 있다는 걸 보여줘.
약속이 아니라 행동으로."
태산이 씩 웃었다.
"보여주기는 귀찮은데."
한 박자.
"그냥 같이 다니면 알게 될걸."
올가의 눈이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좋아. 같이 다녀볼게."
태산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타격봉을 쳤다.
둥.
저녁. 활빈당 아지트.
기숙사 빈 다용도실.
'활빈당' 플래카드는 없었다.
비공식이니까.
7인이 처음으로 전원 모였다.
은명, 태산, 위노나, 리오, 카이, 아르준, 올가.
은명이 입을 열었다.
"소개는 됐고. 간단히 정리하자.
포지션."
태블릿을 켰다.
"나. 전술 설계, 도술 지원."
태산을 봤다.
"태산. 전방 타격, 돌파.
위노나. 정보 수집, 해킹.
리오. 기동 타격, 교란.
카이. 지형 서포트, 트릭.
아르준. 전략 분석, 데이터.
올가. 수호, 방어벽."
리오가 눈을 빛냈다.
"와 진짜 RPG 파티 같다."
카이가 손을 들었다.
"나 뭐야? 탱커? 딜러? 서포터?"
아르준이 안경을 올렸다.
"너는 디버퍼에 가까워.
환경 조작이니까."
카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디버퍼?! 멋있는 건가?"
올가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쓸모있는 건가가 더 중요해."
위노나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이 조합, 나쁘지 않은데."
태산이 말했다.
"됐고."
전원이 봤다.
"복잡한 건 은명이가 생각하고.
나머지는 각자 잘하는 거 하면 돼."
은명이 태산을 봤다.
"……간결하긴 하네."
은명의 시선이 7인을 천천히 훑었다.
숫자가 느는 건 책임도 느는 거다.
한 박자.
"하나 더."
전원이 봤다.
"인원이 늘었으니까 규칙도 생긴다.
활빈당 관련 연락은 보안 채널만 사용.
외부에서 이 이름 꺼내지 마.
작년 징계 기록이 아직 남아 있어."
아르준이 끄덕였다.
"합리적이야."
올가도 조용히 끄덕였다.
카이가 입을 열려다 리오한테 팔꿈치를 맞았다.
모임이 끝나고 6인이 하나둘 나갔다.
은명이 혼자 남아 있었다.
다용도실. 태블릿을 켰다.
화면에 알림이 떠 있었다.
'학예제 — 9월 셋째 주.
참가 기한 내일까지.'
바로 아래 하나 더.
'[학생회 공지]
학예제 참가팀 자격 심사 강화.
비공인 동아리의 참가는 별도 승인 필요.'
은명의 눈이 가늘어졌다.
……학생회가 움직이네.
입꼬리를 올렸다.
"일곱이면
할 수 있는 게 좀 늘었네."
태블릿을 닫았다.
다용도실의 불이 꺼졌다.
복도에 은명의 그림자만 길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