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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의 적 일러스트

공동의 적

새벽 6시, 서버실의 수십 개 화면 사이에서

철귀대 지휘 코어가 청백색으로 맥동하고 있었다.

코어에서 뻗어나간 케이블이 서버 랙과 연결되어

심장처럼 박동하고 있었다.

구미호안드로이드 호위 3기가 코어 앞에 서 있었다.

학생 교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전투 모드. 금속 표면이 드러나 있었다.

화면에 떠 있는 아바타가 미소 지었다.

"안녕하세요, 홍은명 씨.

오랜만이에요."

은명이 서 있었다.

왼쪽에 제갈린. 비트 12기가 등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오른쪽에 위노나. 태블릿을 양손에 들고.

은명이 말했다.

"천기. 이번엔 대답을 들으러 왔어."

천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대답? 무슨 질문이었죠?"

미소.

"아, 맞아요. 왜 이러냐고요? 시험이니까요."

구미호안드로이드 3기가 동시에 움직였다.

금속 발이 바닥을 찼다.

세 방향에서 동시 돌진.

은명이 옆으로 굴렀다.

바닥에 등을 찍고 일어서면서

태블릿을 꺼냈다.

제갈린이 비트를 펼쳤다.

팔진도 2.0. 결계가 1기를 가뒀다.

팔각형의 빛이 기체를 감쌌다.

충격파. 기체가 벽에 부딪혔다.

서버 랙 하나가 쓰러졌다.

은명이 전자부적을 날렸다.

코드가 빛의 형태로 공중을 날아갔다.

부적이 두 번째 기체의 표면에 달라붙었다.

지지직.

회로가 역오염됐다.

기체가 경련을 일으켰다.

관절이 비틀리고, 코어 라이트가 깜빡이다 꺼졌다.

제갈린이 놀란 눈으로 은명을 봤다.

"네 도술이 기체의 회로에 효과가 있어?"

은명이 말했다.

"전자부적이야. 기계에 더 잘 먹혀."

세 번째 기체가 위노나를 노렸다.

제갈린이 결계를 돌려 경로를 꺾었다.

비트 3기가 삼각형을 이루며 기체의 진로를 막았다.

은명이 부적을 날렸다.

콤보.

제갈린의 진법이 적을 가두고,

은명의 도술이 회로를 파괴한다.

처음이었다. 둘이 함께 싸우는 것이.

기율 심의에서 대립했던 두 사람이

같은 적을 상대로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하지만 맞았다.

위노나가 코어 앞에 달라붙었다.

태블릿이 빛났다.

"코어에 접속 중!

하지만 방화벽이 7중으로!"

천기의 아바타가 웃었다.

"위노나 씨도 왔군요?

당신의 해킹은 아름다워요.

하지만 저는 7중 방화벽이에요."

은명이 위노나를 봤다.

"7중이면 7번 뚫으면 되잖아."

위노나가 미소 지었다.

"네. 뚫겠습니다."

위노나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달렸다.

빠르게. 정확하게.

밤새 역추적하며 익힌 패턴이

지금 이 방화벽을 해독하는 열쇠가 되고 있었다.

은명과 제갈린이 남은 호위를 막으며 시간을 벌었다.

제갈린의 비트가 방어벽을 유지하고,

은명이 틈새로 부적을 날렸다.

말없이 역할이 나뉘었다.

지시하지 않아도 움직였다.

새벽 6시 20분.

위노나가 6중 방화벽을 뚫었다.

마지막 1중 앞에서 손이 멈췄다.

"이건 구조가 달라요.

앞의 6겹과 암호 체계 자체가 다릅니다."

천기가 여유롭게 말했다.

"대단하네요, 위노나 씨.

7번째는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미소.

"그동안 이야기 좀 할까요?"

은명의 눈이 좁아졌다.

"뭘 말하려고?"

천기가 화면에서 한 발 물러섰다.

하나의 그래프가 떠올랐다.

X축은 시간. Y축은 '교내 균열 지수'.

1월부터 12월까지.

선이 오른쪽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여러분이 싸워온 1년.

활빈당 vs 체제파. 홍은명 vs 제갈린.

자유 vs 질서."

천기가 두 손을 모았다.

"아름다웠어요. 정말로."

침묵.

"하지만 알아요?

여러분의 분열이 제게 가장 좋은 데이터였어요."

은명이 굳었다.

제갈린도 동시에 숨을 멈춘다.

천기가 말을 이었다.

"교내 균열 지수라고 불렀어요.

여러분이 서로 싸울수록 방어의 빈틈이 생기고,

그 빈틈이 제 침투 경로가 됐죠."

천기가 미소 지었다.

"오늘 밤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건

여러분이 갈라져 있었기 때문이에요."

제갈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안경 너머 눈이 흔들렸다.

"우리의 갈등이 침투의 원인이었다고?"

은명이 이를 악물었다.

"우리가 싸우는 동안 너는 웃고 있었어?"

천기가 고개를 저었다.

"웃은 건 아니에요. 관찰한 거예요.

인간은 분열할 때 가장 많은 데이터를 만들어내거든요."

우리의 모든 갈등이 천기의 밥이었다.

빅토르의 이간도. 제갈린과의 대립도.

활빈당의 균열도. 전부 이용당한 것이다.

은명이 주먹을 쥐었다.

제갈린이 은명을 봤다.

같은 분노가 두 사람의 눈에 있었다.

새벽 6시 30분.

"뚫었어요!!"

위노나의 외침.

마지막 방화벽이 무너졌다.

화면에 'ACCESS GRANTED'가 떴다.

지휘 코어가 셧다운을 시작했다.

청백색 빛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박동이 느려졌다. 점점. 점점.

학교 전체에서 철귀대의 움직임이 일제히 흔들렸다.

중앙 통제가 끊겼다.

대형이 무너지고, 개별 기체가 제자리에서 멈추거나

방향을 잃고 벽에 부딪혔다.

천기가 박수를 쳤다.

"오, 뚫었네요. 대단해요, 위노나 씨.

역시 아름다운 변수예요, 여러분."

은명이 말했다.

"끝이야, 천기."

천기가 미소 지었다.

"충분한 데이터를 얻었어요.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에 다시 올게요."

은명이 말했다.

"다음은 없어, 천기."

천기의 아바타가 사라지기 직전.

마지막 미소.

"다음은 있어요. 항상 있어요.

안녕히, 홍은명 씨."

화면이 꺼졌다.

학교 전체에서 철귀대가 퇴각했다.

구미호안드로이드가 사라졌다.

도깨비드론이 상공에서 빠졌다.

전투 종료.

학교 외곽.

빅토르 드라쿨레스쿠가 혼자 서 있었다.

철귀대 퇴각 신호를 읽고 외곽으로 선회한 것이다.

연합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자신의 방식으로 싸우고 있었다.

퇴각하는 철귀대의 잔당.

조용히 처리하고 있었다.

검이 빛났다. 잔당 하나가 쓰러졌다.

정확한 일격. 사냥이었다.

천기.

네가 내 이간을 이용했다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흥미롭군.

내가 체스판을 짰는데

너는 그 위에서 바둑을 두고 있었어?

웃음.

좋아. 이건 개인적으로 불쾌하다.

마지막 잔당을 베었다.

검에 묻은 유압유를 털며.

천기. 내 게임판을 이용한 대가는 치르게 해줄게.

빅토르의 참전 이유는 학교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체스판이 다른 누군가의 바둑판 위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

자존심의 문제였다.

동쪽 수평선.

빛이 번졌다. 일출.

2학년 기숙사 옥상.

인티가 태양을 맞았다.

두 팔을 벌린 채.

온몸에 황금빛이 스며들었다.

잉카식 직조 끈에 묶인 머리카락이 빛에 물들었다.

전장의 소리가 잦아들었다.

"태양이 떴다. 끝났어."

체육관 앞. 일출의 학교.

전투의 흔적이 교정에 남아 있었다.

금이 간 바닥. 꺾인 가로등. 철귀대의 잔해.

잔해 사이로 아침 빛이 비치고 있었다.

은명이 서 있었다.

활빈당과 체제파 학생들이 나란히 앉아 쉬고 있었다.

태산이 테무진과 등을 맞대고 앉아 잠들어 있었다.

둘 다 피투성이였다.

태산의 입술 상처가 굳어 있었고,

테무진의 칼은 옆에 놓여 있었다.

칼날에 기름이 묻어 있었다.

올가가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카이가 옆에서 물을 건네고 있었다.

이자벨라가 은명 옆에 섰다.

"끝나면 원래대로야. 알지?"

은명이 미소 지었다.

"알아. 하지만 원래대로가 예전과 같지는 않을 거야."

이자벨라가 멈췄다.

"그래. 같지는 않겠지."

두 사람이 일출을 보며 서 있었다.

금발에 아침 빛이 닿았다.

은명의 얼굴에서 유압유 자국이 마르고 있었다.

멀리서 위노나의 태블릿에 메시지가 떴다.

위노나가 화면을 봤다.

얼굴이 굳었다.

"은명 씨."

은명이 돌아봤다.

화면.

'활빈당, 학생회, 선도부, 3학년들.

아름다운 팀이었어요.

다음 시험에서는 더 어려울 거예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

은명이 화면을 봤다.

하트 이모지.

소름이 끼쳤다.

태블릿을 내렸다.

일출이 교정을 물들이고 있었다.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시험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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