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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 일러스트

사각지대

자정. 체육관 뒤편.

은명이 태블릿을 세웠다.

화면 위로 기숙사 동선 지도가 떠올랐다.

CCTV 위치. 순찰 시간대. 사각지대 좌표.

3일 동안 위노나가 모은 데이터였다.

"동쪽 복도 3층. CCTV 사각지대."

은명의 손가락이 빨간 점 하나를 눌렀다.

"위노나의 정찰 결과.

2학년 명문가 3명이 편입생 한 명을 불러냈어."

위노나가 드론 모니터를 확인했다.

"움직이기 시작했어. 동쪽 복도로 향하는 중."

리오가 손가락을 꺾었다.

"3명? 또 3명이네~"

"또?"

"지난번 시뮬레이션도 3명이었잖아."

은명이 리오를 봤다.

"시뮬레이션이랑 같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전태산이 이마를 짚었다.

"작전 뭔데."

은명이 태블릿을 넘겼다.

"위노나가 진입로 정찰.

리오가 퇴로 차단.

전태산이 현장 개입.

내가 증거 확보."

잠깐 멈췄다.

"목표는 제압이 아니야. 보호와 대피. 30초."

전태산이 눈을 깜빡였다.

"30초? 지난번 38초였는데."

"그래서 훈련했잖아."

전태산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리오가 팔을 벌렸다.

"축제 시작~!"

"축제 아니야. 조용히."

4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노나의 드론이 먼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은명이 뒤에서 전자부적을 꺼냈다. CCTV 잔여 데이터 교란.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첫 번째야. 시뮬레이션이 아니야. 진짜야.

동쪽 복도 3층.

어두운 복도 끝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훈련이라고 했잖아. 힘을 보여봐."

둔탁한 소리.

누군가의 등이 벽에 부딪힌 소리였다.

"못 하겠으면 네가 약한 거야."

"……그만해주세요."

떨리는 목소리.

편입생이 벽에 등을 대고 세 명의 2학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위노나 통신.

"위치 확인. 3명. 무장 없음.

퇴로 하나. 리오, 뒤쪽."

리오의 속삭임.

"준비 완료~"

은명의 통신.

"전태산. 들어가."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울렸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전태산이었다.

"야."

가해자 3명이 돌아봤다.

"……너 누구야? 1학년이잖아."

전태산이 멈췄다. 편입생과 가해자 사이.

"그 손 치워."

주먹을 쥐었다. 관절이 우두둑 소리를 냈다.

"한 번 더 말해야 해?"

가해자 중 키가 큰 놈이 코웃음을 쳤다.

"1학년이 선배한테 건방지게"

전태산의 주먹이 떨렸다.

때리고 싶었다. 정말로 때리고 싶었다.

주먹을 올리면 끝나는 일이었다.

3명. 시뮬레이션에서는 제압에 몇 초 안 걸렸다.

실전이면 더 빨라.

……근데.

은명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제압이 아니라 보호와 대피.

전태산이 주먹을 내렸다.

한 발 앞으로 나갔다.

가해자를 향한 게 아니었다.

편입생 앞. 등을 보였다.

때리는 게 아니라 막아선 거였다.

"……뭐?"

가해자들이 당황했다.

"뭐하는 거야, 넌. 치우라고."

"네가 지금 하는 것도 교칙 위반이야."

전태산이 뒤의 편입생에게 작게 말했다.

"움직이지 마. 금방 끝나."

복도 조명이 한 번 깜빡였다.

가해자 3명이 동시에 움찔했다.

은명의 전자부적.

깜빡임 한 번. 그것으로 충분했다.

은명 통신.

"CCTV 교란 시간 제한 있어. 빨리."

리오가 복도 반대편에서 나타났다.

카포에라 스탠스.

양팔을 벌리고 리듬을 타며 서 있을 뿐인데 퇴로가 막혔다.

앞에는 전태산. 뒤에는 리오.

가해자 중 한 명이 뒤를 돌아봤다.

"……뭐야, 저놈은."

리오가 웃었다.

"안녕~"

키 큰 가해자가 이를 갈았다.

"……기억해. 이거 끝나지 않았어."

3명이 움직였다.

리오가 한 발 옆으로 비켜 지나가게 해줬다.

키 큰 놈이 복도를 벗어나면서 한 번 뒤돌아봤다.

전태산과 눈이 마주쳤다.

시선에 약속이 담겨 있었다. 반드시 다시 온다는.

발소리가 멀어졌다.

은명 통신.

"이동해. 위노나가 안전 경로 안내."

전태산이 편입생의 팔을 잡았다.

"가자."

편입생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젖어 있었다.

"……진짜로 온 거예요?"

전태산이 멈췄다.

편입생의 표정을 봤다.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응. 왔어."

위노나의 드론이 복도 천장에서

작은 빛을 깜빡이며 경로를 안내했다.

전태산이 편입생을 데리고 안전 구역으로 이동했다.

체육관 뒤편. 4인이 다시 모였다.

은명이 타이머를 봤다.

"28초."

전태산이 벽에 기댔다.

숨이 찼다. 긴장 때문이지 체력 때문이 아니었다.

"성공이야?"

"성공이야."

은명이 태블릿을 접었다.

"목표 30초. 28초.

아무도 안 다쳤어.

드론 로그랑 교란 전후 CCTV 프레임도 남겨뒀고."

리오가 손을 들었다.

"나 퇴로 차단 잘했지?

안녕~ 했더니 그놈 표정 ㅋㅋ"

위노나가 드론을 회수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전태산이 자기 손을 봤다. 열었다. 닫았다.

"……안 때려도 되네."

은명이 고개를 돌렸다.

"뭐?"

"안 때려도 돼. 막아서면 되는 거잖아."

은명이 전태산을 봤다. 작은 미소.

"그게 우리 방식이야."

전태산이 씩 웃었다.

"……근데 좀 때리고 싶었어."

"참아."

"참았잖아."

"그래. 잘했어."

전태산이 풀밭에 드러누웠다.

별이 보였다. 심장이 아직 뛰고 있었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때리지 않고 지켰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주먹이 아프지 않은데 기분은 좋았다.

다음 날 아침. 소문이 돌았다.

"어젯밤 동쪽 복도에서 누가 편입생 도와줬대."

"활빈당이래."

"활빈당이 진짜 한 거야?"

"진짜래. 직접 막아섰다는데."

교실.

편입생들의 표정이 어제와 달랐다.

어깨가 조금 펴져 있었다.

장석현이 피해자와 만났다.

"괜찮아요? 다치진 않았어요?"

피해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빨간 채로.

"도와줄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

솔직히 안 믿었어요.

근데……진짜 와줬어요."

장석현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되는 거구나.

복도에서 명문가 학생들 사이에 다른 목소리도 섞였다.

"비공인 조직이 야간에 활동?

이게 허용이 되는 거야?"

"편입생 편드는 건 좋은데, 방법이……"

"근데 때리진 않았다며?"

"그건 그런데. 교칙은 교칙이잖아."

학교가 둘로 나뉘기 시작했다.

복도에서 아서 펜드래곤 2세가 전태산에게 다가왔다.

"전태산."

"오, 아서."

아서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때리지 않았다고? 네가?"

전태산이 어깨를 으쓱했다.

"응. 참았어."

아서의 녹색 눈이 흔들렸다.

"……Pardon.

진심으로 놀랐다."

"뭐가."

"네가 참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게."

전태산이 웃었다.

"나도 놀랐어."

아서가 작게 고개를 숙였다.

"성장했구나."

"성장은 무슨. 참은 건데."

아서가 돌아서며 작게 웃었다.

전태산이 아서의 등을 보며 혼잣말했다.

……참는 거랑 성장하는 거랑 같은 거 아닌가.

모르겠다.

근데 기분은 나쁘진 않네.

교관실.

운소하가 보고서를 읽었다.

'야간 기숙사 사각지대. 동쪽 복도 3층.

학생 간 물리적 마찰 정황. 조치 사항: 미상.'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야간 활동. 비공인 조직이 움직인 흔적.

이건 보고 대상이다.

하지만 보고서에 적힌 건 가해자 3명의 이름이지

도운 쪽의 이름이 아니었다.

운소하의 손이 보고서 위에서 멈췄다.

접어서 서랍에 넣었다.

……피해 보고 23건. 전부 기각.

위에 올려봤자 또 같은 결과겠지.

창밖을 봤다.

구름 없는 아침이었다.

활빈당의 첫 번째 일.

28초. 아무도 때리지 않았다. 한 명을 지켰다.

그것으로 충분했어야 했다.

하지만 아침이 되자 학교가 둘로 나뉘기 시작했고

활빈당은 아직 그 무게를 모르고 있었다.

같은 아침.

학생회실 앞에 공지 한 장이 붙었다.

'비공인 단체 활동 관련 — 긴급 학생회 소집 안내.'

작가의 말

3차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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