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오전, 학생회실.
이자벨라가 기율 심의 이후 퍼진 소문의
확산 패턴을 추적하고 있었다.
화면에 타임라인이 펼쳐져 있었다.
소문의 발생 시점, 확산 경로, 도달 범위.
색상으로 코딩된 그래프가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이 패턴. 정보 교란. 과거 노출. 내부자 의심.
체계적이다. 학생 수준이 아니다.
학생이 만들 수 있는 소문은 단순하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 누가 시험을 컨닝했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여론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구조다.
이자벨라가 화면을 넘겼다.
소문의 출처를 역추적한 그래프.
모든 소문이 하나의 시점에서 분기하고 있었다.
기율 심의 3일 전.
그리고 그 시점에 활성화된 계정들이
하나의 IP 대역에서 나오고 있었다.
3학년 기숙사 구역.
이자벨라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
금발이 화면의 빛을 받아 빛났다.
문이 열렸다.
제갈린이 들어왔다.
서류를 들고.
안경이 형광등 빛을 받아 빛났지만
평소와 달리 차가움이 없었다.
피곤한 빛이 섞여 있었다.
"이자벨라 선배. 활빈당 상황 보고입니다."
태블릿을 건넸다.
"내부 분열이 심화되어
사실상 활동 정지 상태입니다.
리오와 올가가 이탈.
카이와 위노나 사이에 신뢰 균열.
즉응팀 활동 중단."
이자벨라가 보고서를 받았다.
한 줄 한 줄 읽었다.
읽는 속도가 느렸다.
평소와 달랐다.
"그래."
제갈린을 봤다.
"제갈린. 이거 이상하지 않아?"
제갈린이 고개를 기울였다.
"뭐가요?"
이자벨라가 화면을 가리켰다.
"우리가 기율 심의를 할 때 사용한 데이터.
활빈당의 보호 성공률 72%, 구역별 대응 시간, 멤버 활동 내역.
그 데이터가 어디서 왔는지 추적해봤어?"
제갈린의 눈이 좁아졌다.
"활빈당 내부 유출로 판단했습니다만."
이자벨라가 말했다.
금발을 귀 뒤로 넘기며.
"유출이 아니라 공급이었으면?"
제갈린이 멈췄다.
안경 너머 눈이 한 번 흔들렸다.
"공급?
누군가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데이터를 흘렸다는 건가요?"
이자벨라가 창밖을 봤다.
교정에 학생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평범한 아침. 평범한 풍경.
하지만 그 아래서 보이지 않는 전쟁이 진행 중이었다.
"빅토르 선배."
금빛 눈동자에 그림자가 지났다.
"혹시 우리도 체스 말이었던 건 아닐까."
제갈린의 얼굴이 굳었다.
체스 말.
내가 공정하다고 생각한 기율 조사가
누군가의 수였다면?
28%를 들이밀었던 내 논리가
처음부터 다른 사람의 각본이었다면?
안경을 한 번 올렸다.
손가락이 예전처럼 빠르지 않았다.
방과 후. 활빈당 아지트.
은명이 멤버들을 다시 소집했다.
올가, 리오, 카이, 위노나, 아르준, 태산까지 전원이 모였다.
리오와 올가가 돌아온 것은
은명이 개별적으로 연락했기 때문이다.
"오고 싶지 않으면 오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들어야 할 게 있다."
그 한마디에 둘 다 왔다.
하지만 자리가 달랐다.
리오는 평소 자리에 앉았지만
올가는 문 가까운 쪽에 앉았다.
언제든 나갈 수 있는 자리.
카이와 위노나 사이에는 빈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아무도 그 의자를 치우지 않았다.
태산은 벽에 기대 서 있었다.
팔짱을 낀 채. 시선은 은명에게.
은명이 화면을 띄웠다.
"증거를 보여줄게."
위노나가 일어섰다.
태블릿을 프로젝터에 연결했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이미 수십 번 확인한 데이터였다.
밤새 울면서 만든 데이터.
하지만 지금은 울지 않았다.
"이것이 증거예요."
화면을 가리켰다.
경유 패턴 도표. 프록시 3단 체인.
1단 경유: 교내 게스트 네트워크.
2단 경유: 외부 VPN 서버.
3단 경유: 학생회 서버 내부 포트.
그리고 인티의 전파 감지 데이터.
두 데이터의 겹치는 지점이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외부 침입 경로와 인티 선배의 전파 감지 데이터가
정확히 일치해요.
빅토르의 방에서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
3주 동안 5회 반복.
매번 같은 주파수 대역, 같은 시간대."
위노나가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제 서명은 조작된 거예요."
아르준이 말했다.
일어서며.
"검증했습니다.
로그 원본 대조, 시그니처 체인 복구, 타임존 교차 검증
세 단계 전부 완료했습니다."
안경을 올리며.
"기술적으로 성립합니다.
위노나 씨는 무고합니다."
아르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기술적 결론을 말하는 것인데
목소리에 감정이 실려 있었다.
이 사람도 위노나를 의심했었기 때문이다.
99%라고 말했던 사람이니까.
침묵.
카이가 일어섰다.
긴 침묵 후 입을 열었다.
입술이 한 번 떨렸다.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위노나 누나."
얼굴을 똑바로 보며.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서명이 있다고 바로 의심했어.
증거를 먼저 본 게 아니라
의심을 먼저 한 거였어."
위노나가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요, 카이 씨.
증거가 그랬으니까."
미소를 지으려 했다.
하지만 입꼬리가 올라가다가 멈췄다.
완전한 미소는 아직 이르다.
올가가 말했다.
문 가까운 자리에서.
시선을 내리며.
"나도.
증거를 앞세워서 미안해.
내가 소문에 당했을 때의 마음을 잊고 있었어."
올가가 위노나를 봤다.
같은 종류의 상처를 가진 사람의 시선이었다.
"다시는 안 그럴게."
리오가 눈을 붉혔다.
코를 훌쩍이며.
"야, 다들 미안하다고 하니까
나까지 울리지 마."
리오가 의자에서 일어나 위노나에게 다가갔다.
주저하다가 위노나의 어깨를 한 번 톡 쳤다.
말 대신 행동으로 하는 사과.
하지만 사과가 끝난 뒤에도 아무도 먼저 웃지 못했다.
카이와 위노나 사이의 빈 의자는 아직 거기 있었다.
올가는 여전히 문 가까운 쪽에 앉아 있었다.
깨진 신뢰가 붙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과 행동.
그때 위노나의 태블릿에서 알림이 울렸다.
위협 감지 시스템.
빨간 테두리.
'알림: 학생회 서버에서 활빈당 관련 파일 접근 시도.
시간: 현재. 출처: 학생회 부회장 제갈린 계정.'
멤버들의 시선이 모였다.
카이가 먼저 반응했다.
"제갈린이? 또 공격이야?"
은명이 화면을 봤다.
접근 패턴을 읽었다.
"아니. 이건 공격이 아니야.
데이터를 삭제하거나 복사하는 게 아니라
열람만 하고 있어.
제갈린이 뭔가 찾고 있는 거야.
데이터의 출처를."
은명의 눈이 좁아졌다.
"이자벨라가 움직이기 시작한 거야."
은명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갈라진 건 빅토르의 조종 때문이야.
하지만 갈라질 수 있었던 건
우리 안에 약점이 있었기 때문이야."
멤버들을 둘러봤다.
"증거가 나오면 의심했고,
의심이 나오면 갈라졌어.
그건 빅토르 탓만이 아니야.
우리가 서로를 충분히 몰랐기 때문이야."
은명이 화면을 넘겼다.
"빅토르가 진짜 적이라는 건 알았어.
하지만 이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위노나가 말했다.
태블릿을 들며.
"빅토르가 사용한 해킹 도구 일부가
학교 외부 출처예요.
상업용 침투 테스트 도구가 커스터마이징 되어 있었어요.
라이선스 키가 학교 네트워크가 아니라
외부 서버에서 발급된 거예요."
위노나의 눈이 선명해졌다.
기술자의 눈.
"이건 학생의 기술이 아니에요."
빅토르 뒤에 또 다른 누군가?
아니면 천기?
태산이 은명을 봤다.
벽에서 등을 뗐다.
"어쨌든 적이 누구든."
주먹을 한 번 쥐었다.
"됐고. 가자."
은명이 짧게 웃었다.
처음으로.
갈라진 뒤 처음으로 짓는 웃음이었다.
"가자. 먼저 빅토르의 조작 증거를 정리해서
이자벨라 회장한테 제출한다.
위노나, 역추적 보고서 최종본 만들어.
아르준, 기술 검증 보고서 첨부.
카이, 리오, 올가는 현장 목격 진술을 정리해."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씩.
느리지만 확실하게.
같은 밤. 제갈린의 방.
이자벨라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우리도 체스 말이었던 건 아닐까.'
내가 공정하다고 믿었던 기율 조사가
빅토르의 수였다면.
내 원칙은 누군가의 도구였던 건가?
제갈린이 공개 심의를 떠올렸다.
은명의 목소리.
'28%는 내 책임이야.
하지만 실패했다고 그만둘 거면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았어.'
홍은명에게 28%를 물었을 때 홍은명은 인정했다.
인정하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 원칙이 이용당했을 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을까?
제갈린이 병법서를 폈다.
집중이 안 됐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책장을 넘겨도 내용이 머리에 남지 않았다.
복도에서 편입생이 혼자 일어나던 장면이 겹쳤다.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았던 그 장면.
교복에 먼지가 묻어 있었던 무릎.
그리고 나도 지나갔다.
교칙 제7조를 근거로.
병법서를 덮었다.
안경을 벗었다.
눈을 감았다.
홍은명.
네가 했던 말이 떠올라.
'실패했다고 그만둘 거면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았어.'
나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내 원칙이 누군가의 도구였다고 인정하고도
원칙을 놓지 않을 수 있을까.
안경을 책상 위에 놓았다.
안경 없이도 창밖의 별은 보였다.
흐릿하지만 보였다.
디지털 공간. 화면이 빛났다.
부드럽지만 공허한 음성.
"교내 균열 지수."
"현재: 65%. 목표 도달."
화면이 전환됐다.
학교 전체 도면 위에 균열선이 표시되어 있었다.
활빈당과 체제파 사이의 선이 가장 굵었다.
"빅토르의 이간으로
활빈당과 체제파의 간극이 최대치에 도달.
양쪽 모두 내부 균열 진행 중."
"최적의 침투 조건이에요."
화면이 전환됐다.
"흥미로운 건 인티 유팡키의 개입이에요.
예측 모델에 없던 변수.
활빈당의 회복 속도가 예측보다 빨라졌어요."
"하지만 균열 지수 자체는 이미 목표를 넘었어요.
회복이 되더라도 상처는 남아요.
상처가 남은 조직은 다음 충격에 더 약해요."
화면에 카운트다운이 떴다.
'침투 최적 시점: 확정.
D-14.'
"12월. 시험 시작이에요."
미소를 담은 음성.
"다시 만나요, 율도고등학교 여러분."
화면이 꺼졌다.
네 장소. 같은 밤.
활빈당 아지트.
은명이 태블릿에 적었다.
'빅토르 드라쿨레스쿠 — 확정.
하지만 빅토르 뒤에 무엇이 있는가?'
태블릿을 닫았다.
옆에 위노나의 역추적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외부 출처 해킹 도구' 항목에 빨간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은명이 그 밑줄을 한 번 더 봤다.
학교 바깥. 학생이 아닌 누군가.
이자벨라의 방.
학생회 문서를 뒤지며.
빅토르가 1학년 때 학생회에 제출한 규율 체계 원안을 펼쳤다.
3년 전의 서류. 종이가 약간 누렇게 변해 있었다.
빅토르 선배가 설계한 규율 체계.
교칙 제7조. '살상 아닌 한 개입 불가.'
이 조항의 초안을 작성한 것도 빅토르였다.
이 체계가 처음부터 분열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금발이 책상 위의 서류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이자벨라의 펜이 교칙 제7조 옆에 물음표를 적었다.
제갈린의 방.
창밖을 보며.
원칙이 도구가 되었다면
새 원칙이 필요한 건가.
아니면 원칙을 쥔 사람이 바뀌어야 하는 건가.
안경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안경 없이도 창밖의 별은 보였다.
흐릿하지만. 그 흐릿함이 오히려 편했다.
디지털 공간.
화면.
D-14.
"준비가 됐어요.
이번 시험은 특별해요.
모두를 초대할 거예요."
네 개의 시선이
같은 12월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