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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전언 일러스트

태양의 전언

다음 날 오후, 은명이 뒷산 벤치로 올라가자

태산이 뒤를 붙었다.

"혼자 가지 마."

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산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없었다.

어제 옥상에서와 같은 무게.

벤치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짙은 갈색 피부. 호박빛 눈동자.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가

잉카식 직조 끈으로 묶여 있었다.

햇빛이 그 끈에 비쳐 금빛으로 번졌다.

인티 유팡키.

2학년 B반 에이스.

인티가 고개를 든다.

은명의 발이 잠깐 멈춘다.

"왔구나. 홍은명."

은명이 인사했다.

"2학년 인티 유팡키 선배.

왜 저를 부른 거예요?"

인티가 하늘 쪽으로 시선을 올렸다.

11월의 구름. 얇고 높았다.

"활빈당이 흔들리고 있다고 들었다.

내부자 의심."

은명이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인티가 은명을 봤다.

호박빛 눈동자가 깊었다.

태양을 직접 보는 것 같은 눈이었다.

"내부자는 없어."

은명과 태산이 긴장했다.

태산의 주먹이 쥐어졌다.

"확신하세요?"

인티가 일어섰다.

바람이 불었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렸다.

"3주 전.

빅토르의 방에서 이상한 전파 패턴이 나왔어."

은명의 눈이 좁아졌다.

"전파?"

인티가 설명했다.

"내 능력은 태양의 빛에너지야.

빛은 전파와 같은 전자기파 스펙트럼에 속해."

태산이 끼어들었다.

"그래서 전파를 감지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정확히는, 특정 주파수 대역의 전자기파를

빛의 감각으로 '느끼는' 거야."

인티가 손을 펼쳤다.

손바닥 위로 미세한 금빛 입자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빅토르의 방에서 활빈당 네트워크 주파수와

일치하는 신호가 나온 걸 내가 감지했어.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

3주 동안 5회 반복.

매번 같은 주파수 대역, 같은 시간대."

은명이 숨을 삼켰다.

"그러면."

인티가 말했다.

"바로 말하려 했지만, 증거가 확실하지 않았어.

감지한 건 전파 패턴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네 조직에서 조작 로그가 발견됐다는 소문을 듣고

퍼즐이 맞춰졌어."

인티의 시선이 은명을 관통했다.

"위노나의 서명이 조작된 거야.

빅토르가 외부에서 심은 거야."

은명의 손이 떨렸다.

태산이 주먹을 쥐었다.

손등의 힘줄이 섰다.

"빅토르."

은명이 물었다.

"왜 저한테 이걸 알려주시는 거예요?"

인티의 눈빛이 깊어졌다.

호박빛 안에서 빛이 움직였다.

"태양은 모두에게 빛을 내린다.

강한 자에게도. 약한 자에게도."

인티가 은명을 봤다.

"네가 하는 일,

잉카에서는 '아이니'라고 불러.

호혜.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

보호받은 자가 다른 약자를 보호하는 것."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그 정신이 무너지면 안 돼."

은명이 말을 잃었다.

태산도 침묵했다.

바람만 세 사람 사이를 지나갔다.

인티가 돌아섰다.

"하지만 나는 여기까지야.

빅토르를 직접 적대할 수 없어.

2학년 B반의 입장이 있으니까."

은명을 한 번 보며.

"이 정보를 어떻게 쓸지는 네 몫이야."

태산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인티 선배."

인티가 걸어갔다.

멈췄다.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태양이 본다. 잘 싸워."

인티가 사라졌다.

뒷산 벤치에 은명과 태산만 남았다.

태산이 말했다.

"빅토르가 처음부터 끝까지 조작한 거였어."

은명이 주먹을 쥐었다.

"위노나는 처음부터 무고했어."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리고 나는 1초 멈췄어."

태산이 은명을 봤다.

"지금 알았잖아. 늦지 않았어."

은명이 일어섰다.

"가자. 위노나에게 알려줘야 해."

같은 날 저녁. 2학년 B반 교실.

인티가 돌아왔다.

솔로몬 메코넨이 책상에 앉아 있었다.

188cm. 칠흑빛 피부. 금빛 눈동자.

교복이 잘 어울리지 않는 체격이었다.

왕족의 위엄이 교복 안에서도 드러났다.

솔로몬이 물었다.

책에서 고개를 들며.

"어디 갔다 왔어?"

인티가 대답했다.

"산책."

솔로몬이 인티를 봤다.

금빛 눈동자가 읽으려는 시선이었다.

"뒷산에서?"

인티가 미세하게 웃었다.

"태양이 본다, 솔로몬.

넌 어떨 거야?"

솔로몬이 대답하지 않았다.

인티가 나갔다.

솔로몬이 혼자 남았다.

책을 덮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었다.

활빈당.

보호하되 지배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찾는 왕의 길과 닮아 있다.

솔로몬이 복도를 걸었다.

1학년 건물 쪽.

해가 지고 있었다.

복도에 주황빛이 깔렸다.

편입생 하나가 상급생에게 밀리고 있었다.

벽에 등이 붙어 있었다.

교복 깃이 잡혀 구겨져 있었다.

"네가 뭘 잘했다고 반 배정에 불만이야?"

편입생이 벽에 부딪혔다.

어깨가 벽에 닿는 소리가 났다.

솔로몬이 멈췄다.

3미터 거리.

"그만 해."

목소리가 낮았다. 하지만 무거웠다.

복도의 주황빛 안에서 188cm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상급생이 돌아봤다.

솔로몬 메코넨. 2학년 B반 에이스.

얼굴이 굳었다.

"솔로몬 선배."

"왕의 힘은 지배가 아니라 보호다.

그걸 잊은 자가 폭군이 되는 거지."

상급생이 물러났다. 빠르게.

편입생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솔로몬 선배님!"

솔로몬이 걸어갔다.

편입생의 구겨진 교복 깃을 한 번 보고.

보호는 했다.

하지만 이건 한 번뿐이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내가 없는 곳에서 또 일어난다.

활빈당은 구조를 바꾸려고 하고 있다.

나는 아직 한 사람만 지키고 있다.

솔로몬이 주머니에서 '명상록'을 꺼냈다.

책갈피가 끼워진 곳을 폈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왜 하지 않는가?'

같은 밤. 빅토르의 방.

체스판.

빅토르가 보고를 받았다.

"홍은명이 뒷산에서

2학년 인티 유팡키와 접촉한 것으로 보입니다."

빅토르의 미소가 사라졌다.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소리를 내며.

평소와 달랐다.

"인티 유팡키. 태양전사."

적갈색 눈동자가 좁아졌다.

"예상 밖이야."

빅토르가 체스판을 봤다.

"인티가 뭘 전달했는지는 모르지만,

활빈당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 가능성이 생겼군."

체스 말을 바라보며.

"변수가 또 나타났어."

미소가 돌아왔다.

하지만 이전의 여유로운 미소가 아니었다.

날카로운 미소였다.

"이래서 게임은 재밌지.

계획을 수정하자."

체스판에서 검은 비숍을 한 칸 뒤로 뺐다.

"활빈당이 무너지지 않더라도

체제파와의 간극은 이미 깊어졌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하지만 이자벨라가 신경 쓰인다.

최근 눈빛이 예전과 다르다.

활빈당 아지트.

은명이 돌아왔다.

위노나가 태블릿 앞에 앉아 있었다.

역추적 진행도 바가 95%를 가리키고 있었다.

프록시 체인 세 노드 전부가 녹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은명이 위노나 앞에 앉았다.

"위노나."

위노나가 고개를 들었다.

충혈된 눈. 하지만 선명한 시선.

"찾았어. 네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를."

위노나의 역추적 결과.

인티의 전파 감지 정보.

두 가지를 나란히 놓았다.

경유 패턴과 전파 발신 패턴이 정확히 일치했다.

"빅토르가 조작한 거야.

외부에서 네 서명을 위장해서 심었어."

위노나가 화면을 봤다.

한참 동안.

두 데이터가 겹쳐지는 지점을 확인했다.

기술자의 눈으로.

그리고 무고한 사람의 눈으로.

울음이 터졌다.

참으려 했지만 참을 수 없었다.

소리 없이. 어깨만 떨렸다.

은명이 말했다.

"미안해. 늦어서."

위노나가 울면서 말했다.

"아니에요.

찾아줘서 고마워요."

손으로 눈을 닦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데이터가 거짓말 안 한다고 했잖아요."

울면서 웃었다.

"데이터가 저를 살렸어요."

은명이 태블릿을 열었다.

"이제 활빈당을 되찾을 차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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