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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판 시너지 일러스트

개판 시너지

남은 시간: 18분 32초.

은명은 서 있었다.

태블릿 화면에 두 개의 점이 떠 있다.

붉은 점. 태산이 갇힌 결계.

그리고 200미터 전방, 상대 팀의 깃발.

통신기에서 태산이 결계 벽을 두드리는 소리.

쿵. 쿵.

"야, 듣고 있어? 이거 진짜 안 깨져."

은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태블릿 위의 손가락이 멈춰 있었다.

화면에는 선택지가 둘 떠 있었다.

`FLAG`와 `PARTNER`.

논리 회로처럼 단순한 두 단어.

둘 중 하나를 누르면 다른 하나는 늦어진다.

은명은 숫자를 믿는 쪽이었다.

그리고 숫자는 지금 깃발 쪽이 정답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깃발까지 200미터. 장애물 없음. 달리면 2분.

태산의 결계를 해제하려면 전자부적으로 코드를 분석해야 한다.

운소하가 직접 깐 함정.

해제에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될지도 모른다.

깃발을 가져가면 이긴다.

혼자서도 가능하다.

은명의 발이 깃발 쪽으로 향했다.

반 보.

멈췄다.

머릿속에서 문장이 스쳤다.

'팀전에서 감정은 비용이다.'

홍씨세가에서 수도 없이 들은 말.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짜증 났다.

맞는 말만으로는 지금 이 장면을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

"야."

태산의 목소리.

"혹시 깃발 먼저 가져올 수 있으면

그렇게 해. 난 괜찮아."

은명의 눈이 가늘어졌다.

태산의 목소리는 농담이 아니었다.

결계 안에 갇힌 채로,

자기 걱정이 아니라 승리를 먼저 말하고 있다.

바보 같은 놈.

은명은 돌아섰다.

깃발 반대 방향. 태산 쪽으로.

"뭐 해? 깃발 가라고."

"닥쳐."

은명이 달렸다.

신발 밑창이 흙을 차올렸다.

호흡이 금방 거칠어졌지만 발은 멈추지 않았다.

머리로는 비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걸 아는데,

몸은 이미 결론을 낸 뒤였다.

태산이 갇힌 결계 앞에 도착했을 때 숨이 차 있었다.

체력은 역시 바닥이다.

결계의 표면.

반투명한 벽 너머로 태산이 보였다.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주먹 자국이 벽면에 얼룩처럼 남아 있었다.

"……왔네."

"올 것 같았어?"

"아니. 근데 왔잖아."

은명은 대꾸하지 않고 태블릿을 펼쳤다.

결계의 코드 구조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결계의 코드는 운소하 수준이었다.

3중 암호화. 자기수복형 구조.

은명의 손가락이 태블릿 위를 빠르게 훑었다.

1층 해독. 30초.

2층 해독. 45초.

3층.

"야, 시간 괜찮아?"

"시끄러워."

3층은 달랐다.

자기수복형이라 코드를 풀어도 바로 재생된다.

정석으로는 안 된다.

은명은 짧게 이를 악물었다.

정석으로 안 되면 변칙으로 간다.

문제는 변칙은 항상 사용자에게 반동을 남긴다는 것.

은명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 다시 움직였다.

정석이 아닌 방법.

지난번 테스트에서 터진 그 방식.

백도어를 열어서 중앙 인자에 직접 접근.

그때는 출력을 못 잡아서 터졌다.

이번에는.

은명의 손가락이 코드를 재편했다.

중앙 인자에 직접 접근하되,

출력을 결계 자체에 돌려보낸다.

출력 역류(逆流). 결계의 에너지로 결계를 깬다.

태블릿이 떨렸다.

손끝에 열이 올라왔다. 과부하 직전.

"됐어. 3초 뒤에 벽이 풀린다.

풀리는 순간 달려."

"어디로?"

"깃발."

"방향은?"

"직선."

태산이 씩 웃었다.

"그거 좋아하는 건데."

3.

2.

1.

쾅!

결계가 안에서부터 터졌다.

파란 빛의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태산이 뛰어나왔다.

결계 파편이 공중에서 푸르게 흔들리다 먼지처럼 사라졌다.

태산은 그 틈을 몸으로 뚫고 나왔고,

은명은 반 박자 늦게 태블릿 경고창을 닫았다.

출력 과열. 손끝이 화끈거렸다.

왼손 검지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태산이 달렸다.

깃발까지 200미터.

은명이 뒤에서 따라왔다.

아니, 따라오려고 했다.

50미터 만에 숨이 턱에 찼다.

"하……하……"

"야, 괜찮아?"

"달려. 나 신경 쓰지 마."

은명은 그렇게 말해 놓고 통신 채널을 끊지 못했다.

태산 발소리가 채널에 남아 있는 한

경로 지시를 멈출 수 없었다.

태산이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150미터.

바리케이드 뒤에서 적 팀이 튀어나왔다.

마지막 방어선. 두 팀, 네 명.

태산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비켜!"

정면 돌파.

첫 번째. 주먹이 날아왔다.

태산이 팔로 막고 어깨로 밀어붙였다.

두 번째. 발차기가 옆구리를 노렸다.

태산이 정강이로 받아내고 카운터로 밀었다.

세 번째. 부적이 날아왔다.

태산은 부적을 못 막는다.

"왼쪽."

은명의 목소리가 통신기에서 울렸다.

태산이 왼쪽으로 몸을 꺾자 부적이 빗나갔다.

"오른쪽 돌아서 직진.

5보 뒤에 함정 하나. 뛰어넘어."

태산이 지시대로 오른쪽을 돌았다.

5보 뒤. 바닥에서 푸른 빛.

뛰었다.

함정을 넘으면서 동시에 네 번째 적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착지. 앞이 열렸다.

"저놈 뭐야."

뒤에서 적의 당혹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태산은 돌아보지 않았다.

깃발이 보였다.

50미터.

"야, 뒤에 아직 하나 남았어?"

"없어. 달려."

태산이 전력으로 달렸다.

30미터.

20.

10.

손이 뻗었다.

깃발대를 잡았다.

뽑았다.

바람이 불었다.

붉은 깃발이 태산의 손에서 펄럭였다.

그 순간 필드 여기저기서 짧은 탄성이 튀었다.

누군가는 혀를 찼고,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방금 장면을 단말기에 저장했다.

깃발 하나 뽑았을 뿐인데

오늘 이후의 평가표가 조금씩 달라지는 소리가 났다.

사이렌이 울렸다.

"홍은명·전태산 팀, 깃발 탈환 완료."

남궁현의 목소리가 필드 전체에 울렸다.

"기록 시간: 22분 14초."

태산이 깃발을 들고 숨을 몰아쉬었다.

씩 웃었다.

"야! 이겼다!!"

은명은 100미터 뒤에서

무릎에 손을 짚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폐가 타는 듯했지만 표정만큼은 끝까지 무표정이었다.

승리의 기분보다 먼저 결계 해제 로그가 떠올랐다.

다음에는 더 빠르게 풀 수 있을지,

혹은 아예 안 걸리게 만들 수 있을지.

은명의 머릿속은 이미 다음 변수 계산으로 넘어가 있었다.

전체 팀이 필드 중앙에 집결했다.

운소하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결과 발표할게~."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1위: 제갈 린 · 킹야치나 — 15분 38초.

2위: 홍은명 · 전태산 — 22분 14초.

3위: 아르준 싱 · 마르쿠스 — 24분 01초.

태산이 순위를 봤다.

"2등이야?"

"제갈린 팀이 15분이래."

태산의 입이 벌어졌다.

"……빠르다."

제갈 린이 순위표 앞에 서 있었다. 표정 변화 없이.

다만 드론 한 대가 미세하게 고도를 올렸다.

만족감의 표현이 저것뿐인 사람.

운소하가 느릿하게 순위표를 내리며 말했다.

"자, 시간 순위는 위에 보이는 대로.

근데 이 시험은 속도만 측정하는 게 아니야."

손가락을 튕기자 새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평가 기준 네 가지.

작전 수행. 파트너 호환성.

상황 대응. 전투 기여.

"항목별로 설명해 줄게.

불만 있으면 끝나고 받아."

운소하가 제갈린 팀 쪽을 먼저 봤다.

"제갈린 팀.

작전 수행 S.

사전에 세운 작전을 한 치 오차 없이 실행했어.

드론 정찰, 함정 회피 경로, 적 조우 타이밍 관리.

교과서에 실어도 될 수준."

제갈 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트너 호환성 A.

킹야치나가 제갈린의 지시를 정확히 따랐고,

역할 분담이 깔끔했어.

다만 '따르기만 했다'는 점에서 A+는 아니야."

킹야치나의 눈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상황 대응 B."

제갈 린의 표정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왜 B입니까?"

"너희 팀은 예외 상황이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어."

운소하가 느릿하게 말했다.

"함정을 전부 피해갔고,

적과의 교전도 최소화했지. 그건 훌륭해.

근데 뒤집어 말하면

예외가 없었으니까 대응할 일도 없었다는 뜻이야."

"검증되지 않은 항목에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어.

B는 '증명할 기회가 없었다'는 의미야."

제갈 린이 입을 다물었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드론 카메라 각도가 미세하게 내려갔다.

불만을 숨길 때 나오는 습관이었다.

"전투 기여 A.

적과의 접촉을 최소화한 건

전략적 선택이었으니 감점은 없어.

종합 A-."

운소하가 돌아섰다. 은명과 태산을 봤다.

"홍은명·전태산 팀."

"작전 수행 D.

이건 설명 안 해도 알지?

사전 작전 경로 3초 만에 이탈.

그 뒤로는 실시간 즉흥. 작전이라고 부를 수가 없어."

태산이 머리를 긁었다.

옆에서 누군가 실소를 터뜨렸다.

"파트너 호환성 C.

소통의 질은 나쁘지 않았어.

통신 지시와 반응 속도는 의외로 빨랐거든."

운소하가 슬쩍 웃었다.

"근데 홍은명의 지시를 전태산이 따른 비율이 약 40%.

나머지 60%는 본능으로 움직였어.

그건 신뢰가 아니라 우연이야. 아직은."

"상황 대응 S."

운소하의 톤이 달라졌다.

학생들 몇 명이 고개를 들었다.

"여기가 핵심이야. 이유를 말해 줄게."

운소하가 손가락을 꼽았다.

"첫째, 경로 이탈 후 실시간으로 작전을 재편성한 점.

파트너가 예측 불가능하게 움직이는 상황에서

홍은명이 즉석으로 지시 체계를 바꿨어.

그건 기본기가 아무리 좋아도 못 하는 거야."

"둘째, 교관급 결계를 현장에서 해제한 점.

내가 직접 깐 3중 결계야.

정석으로는 못 풀게 만들었는데,

정석이 아닌 방법으로 풀었어.

실전에서 표준 매뉴얼 밖의 답을 찾는 건

상황 대응의 핵심이야."

몇몇 학생이 동시에 은명을 봤다.

입학식 때 붙어 있던 소문과

지금 눈앞에서 확인한 결과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조용한 애가 아니라 조용히 하고 있던 애였다.

"셋째, 전태산이 갇혔을 때

깃발을 포기하고 파트너를 먼저 구출한 판단.

깃발을 혼자 가져갈 수 있었어.

근데 파트너를 데리고 간 쪽이

마지막 방어선 돌파에서 실제로 더 빠른 결과를 만들었지."

운소하가 은명을 봤다.

"혼자 깃발까지 갔으면

마지막 방어선에서 막혔을 거야.

체력이 안 되니까.

파트너를 살린 게 결과적으로 정답이었어."

남궁현이 옆에서 첫 마디를 보탰다.

"전투 기여도 말해 주지."

운소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 기여 A.

전태산은 적 팀 6명과 정면 교전하면서 전부 돌파했어.

홍은명은 후방에서 부적 간섭 3회, 함정 역이용 2회.

직접 교전은 아니지만 지원 화력으로서 유효했어."

남궁현이 덧붙였다.

"전태산. 교전 6회 중 피격 허용 2회.

어제 스파링보다 낫다.

근데 결계에 걸린 건 감점이야.

함정 감지를 파트너에게 전적으로 의존했거든.

혼자였으면 끝났어."

태산이 씩 웃었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는데 주먹이 쥐어져 있었다.

운소하가 정리했다.

"종합 A-.

상황 대응이 극단적으로 높아서

다른 항목의 낮은 점수를 끌어올린 거야.

편애가 아니라 배점 구조야.

이 시험의 비중은 상황 대응이 가장 높거든."

운소하는 마지막 문장을 말할 때

학생들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누가 점수만 보고 있고,

누가 항목 의미를 보고 있는지

그 짧은 시선으로 구분하는 듯했다.

운소하가 전체를 둘러보며 말했다.

"왜냐면, 실전에서 작전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

정적.

정적 뒤로 멀리서 바람 소리가 한 번 훑고 지나갔다.

필드에 서 있던 학생들이 그제야 어깨 힘을 조금 풀었다.

몇몇 시선이 은명 쪽으로 돌아갔다. 입학식 이후 처음.

하지만 은명은 태블릿을 접고 있었다. 고개를 들지 않았다.

시선들이 다시 흩어졌다. 이번에는 더 빨리.

제갈 린의 입술이 얇게 다물어졌다.

"배점 기준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은 건

공정하지 않습니다."

"맞아."

운소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실전에서 배점을 미리 알려주는 적은 없거든."

제갈 린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선이 은명에게 향했을 때

차가운 빛이 한 겹 더 깊어져 있었다.

"변수를 자처하는 건 전략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은명의 시선이 제갈 린에게 향했다.

"변수가 패턴이 되면 그게 전략이야."

제갈 린이 돌아봤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네 정석은 예측 가능했어."

제갈 린의 드론 두 대가 미세하게 떨렸다.

떨림은 1초도 안 갔다.

하지만 은명은 봤다.

완벽하게 통제되는 사람도

건드려지는 지점이 있다는 사실을.

운소하가 두 사람 사이에 느릿하게 끼어들었다.

"하아~ 수업 끝나고 싸워.

여기선 다 시험이라니까."

태산은 둘 사이의 팽팽한 시선을 보며 킥킥 웃었다.

운소하가 은명과 태산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홍은명. 전태산."

잠깐 멈추고.

"너희 둘은…… 조금 위험해."

은명의 눈이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운소하가 웃었다.

"아주 재미있는 종류의 위험."

해가 기울어 기숙사 복도에 주황빛이 깔렸다.

태산이 기숙사 방 앞에서

가방을 내려놓으며 은명에게 말을 걸었다.

"야."

은명은 옆 방 문 앞에서 카드키를 대고 있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오늘 재밌었다."

"……네 기준이 이상한 거야."

"작전 수행 D인데 A-인 거 좀 웃기지 않아?"

은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문이 열렸다.

"같이 밥 먹자, 내일도."

은명이 문 안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마음대로 해."

문이 닫혔다.

태산이 씩 웃었다.

"거절은 안 했네."

혼잣말을 한 뒤,

태산은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결계를 두드리던 감각이 아직 남아 있었다.

혼자서는 못 깼다.

그게 좀 씁쓸한데, 좀 신기했다.

자기 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복도 끝에서 작게 울렸다.

태산은 신발도 벗기 전에

침대 가장자리에 털썩 앉았다.

손바닥을 다시 쥐었다 폈다.

결계 벽의 탄성은 아직 생생했는데,

그 벽을 부순 순간의 파열음도 같이 남아 있었다.

복도가 조용해졌다.

형광등 불빛만이 하얗게 복도를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복도 끝. 천장에 붙은 CCTV 하나.

그 카메라의 각도가 미세하게 틀어져 있었다.

두 사람의 방 앞을 정확하게 비추는 각도로.

렌즈 옆 점등부가 녹색에서 황색으로 잠깐 바뀌었다.

일반 순찰 모드가 아니라

지정 추적 모드에서만 뜨는 색.

기숙사 복도는 여전히 조용했지만,

조용하다는 건 누가 보고 있지 않다는 뜻이 아니었다.

문 너머에서

은명은 태블릿을 켰고,

태산은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지 않았지만

오늘의 선택은 둘 다에게 남아 있었다.

내일 수업에서 다시 값이 매겨질 뿐이었다.

그리고 선택은 또 온다.

아마 더 잔인하게.

그래도 온다.

반드시.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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