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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춤을 피하는 법 일러스트

첫 춤을 피하는 법

무도회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그런데 나는 이미 지고 있었다.

초대장은 품 안에 있었다.

황실 장미 문양이 박힌 봉투.

가볍다.

종이니까 당연히 가볍다.

하지만 이상하게 어깨가 무거웠다.

첫 춤.

공개 선택.

다섯 장미.

이 세 단어가 머릿속에서 계속 돌았다.

나는 마탑 실험실 구석에 앉아 있었다.

정확히는 앉혀졌다.

비앙카가 말했다.

“도망가면 반응 놓쳐.”

“도망가려고 한 적 없습니다.”

“문 쪽 보고 있었잖아.”

“문은 원래 봅니다.”

“나갈 문을?”

“예.”

너무 솔직했나.

비앙카는 웃었다.

세라피나는 황실 초대장 사본을 정리하고 있었다.

레오나는 문 옆에 서 있었다.

카르덴은 노트를 들고 있었다.

나는 그 노트를 보자마자 불안해졌다.

“카르덴 경.”

“예.”

“오늘은 적지 마십시오.”

“아직 아무것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 말도 적을 것 같아서요.”

카르덴은 잠깐 멈췄다.

그리고 조용히 노트를 조금 닫았다.

좋다.

조금 이겼다.

아주 조금.

세라피나가 말했다.

“루카스 님. 무도회 참석 여부 답변은 사흘 안에 주시면 됩니다.”

“사흘.”

나는 그 말을 붙잡았다.

시간이 있다.

사흘이면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첫 춤을 피하는 방법.

무도회를 피하는 방법.

장미를 피하는 방법.

가능하면 인생을 피하는 방법.

비앙카가 내 얼굴을 보고 말했다.

“지금 도망칠 계획 세우지?”

“아닙니다.”

“거짓말.”

“예.”

빠른 인정은 요즘 내 생존 기술이다.

세라피나는 미소를 유지했다.

“피하실 방법을 찾으시는 건 이해합니다.”

“이해해 주십니까?”

희망.

“다만 대부분 결례입니다.”

희망 사망.

나는 품 안의 예절서를 꺼냈다.

“그럼 확인해 보겠습니다.”

예절서는 조용했다.

나는 책을 펼쳤다.

“공식 무도회 첫 춤 회피 방법.”

책장이 팔락였다.

[공식 무도회에서 첫 춤을 회피하는 행위는 상대와 주최 측에 결례가 될 수 있습니다.]

“될 수 있다.”

나는 바로 그 문장을 잡았다.

“될 수 있다는 건 안 될 수도 있다는 뜻 아닙니까?”

비앙카가 눈을 반짝였다.

“논리 싸움 시작?”

“생존입니다.”

세라피나는 조용히 말했다.

“어떤 사유인지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좋다.

사유.

나는 첫 번째 방법을 떠올렸다.

“몸이 아프면요?”

예절서가 바로 팔락였다.

[건강 문제를 이유로 참석을 제한할 경우, 공식 진단과 주최 측 사전 통지가 필요합니다.]

“진단.”

나는 비앙카를 봤다.

“마탑에서 진단서 같은 걸 써 줄 수 있습니까?”

비앙카가 활짝 웃었다.

“써 줄 수 있어.”

“정말입니까?”

“예절서 반응 과잉으로 인한 사교 회피 충동.”

“그건 병명이 아니라 제 상황 설명입니다.”

“마탑식 병명으로 만들 수 있어.”

세라피나가 부드럽게 끼어들었다.

“마탑 진단은 황실 검토 대상입니다.”

“검토되면요?”

“흥미로운 사례로 남습니다.”

“취소합니다.”

나는 바로 말했다.

병으로 피하려다 사례가 된다.

안 된다.

카르덴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훈련 중 부상은 어떻습니까?”

레오나의 시선이 카르덴에게 갔다.

카르덴은 바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고의 부상을 뜻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들렸습니다.”

내가 말했다.

카르덴은 진지하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예절서가 팔락였다.

[고의 부상 또는 허위 부상은 기사단 및 황실 예법상 중대한 결례입니다.]

“봤죠.”

나는 말했다.

“다치지도 못합니다.”

레오나가 짧게 말했다.

“다치지 마라.”

“예. 그건 저도 원합니다.”

첫 번째 방법 실패.

나는 손가락을 접었다.

“두 번째. 춤을 못 춘다고 합니다.”

예절서가 팔락였다.

[공식 무도회 참석자가 춤을 거부할 정도로 준비되지 않았다는 고백은 보호자 또는 지도자의 동행 요청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나는 바로 책을 닫을 뻔했다.

“보호자.”

레오나가 말했다.

“필요하면 선다.”

“필요 없습니다.”

카르덴도 말했다.

“지도라면 제가 기본 스텝을 정리하겠습니다.”

“정리하지 마십시오.”

비앙카가 손을 들었다.

“마탑에는 균형 보정 마법도 있어.”

“보정하지 마십시오.”

세라피나는 웃었다.

“황실 무도 교사도 있습니다.”

“모두 멈춰 주세요.”

나는 양손을 들었다.

춤을 못 춘다고 하면 가르치려 든다.

안 된다.

두 번째 방법 실패.

나는 손가락 두 개를 접고 잠깐 멈췄다.

사람은 보통 두 번 실패하면 배운다.

하지만 나는 배울 수 없었다.

배우면 무도회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 번째 실패를 향해 가기로 했다.

그게 현명하지 않다는 건 안다.

하지만 가끔 사람은 현명하지 않아서 버틴다.

세라피나가 말했다.

“너무 무리해서 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무리하지 않으면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피하지 않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건 방법이 아니라 항복입니다.”

비앙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항복도 전략이지.”

“그런 전략 싫습니다.”

“생존에는 좋아.”

“저는 존엄도 챙기고 싶습니다.”

비앙카는 나를 잠깐 보더니 웃었다.

“그럼 어렵네.”

왜 그렇게 쉽게 인정합니까.

카르덴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존엄을 지키는 회피라면, 공식적인 사명 수행 중이라는 명목은 어떻습니까?”

나는 눈을 들었다.

“사명 수행.”

“예. 중요한 일을 맡았다고 하면 첫 춤을 뒤로 미룰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좋다.

그럴듯하다.

나는 바로 예절서를 봤다.

“공식 사명 수행으로 첫 춤을 연기하는 경우.”

예절서가 팔락였다.

[공식 사명 수행은 주최 측 승인과 사명 내용 공개가 필요합니다.]

“내용 공개.”

나는 카르덴을 봤다.

“내용을 뭘로 합니까?”

카르덴은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공평 전략 수립.”

“그걸 공개하면 끝장입니다.”

“그렇군요.”

“그렇습니다.”

비앙카가 손을 들었다.

“예절서 반응 관찰 임무.”

“그것도 공개하면 끝장입니다.”

세라피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황실 조사 협조.”

나는 잠깐 멈췄다.

그럴듯했다.

너무 그럴듯해서 위험했다.

“그걸 쓰면 어떻게 됩니까?”

세라피나가 대답했다.

“공식 조사 협조자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분류.”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분류되는 순간 끝이다.

나는 사람인데 자꾸 항목이 된다.

사명 수행도 실패.

실패가 쌓인다.

쌓인 실패는 길이 아니라 벽이다.

나는 그 벽 앞에 앉아 있었다.

“세 번째.”

나는 숨을 골랐다.

“첫 춤 시간에 잠깐 자리를 비웁니다.”

예절서가 팔락였다.

[첫 춤 직전의 이탈은 공개 회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상대 특정 여부와 무관하게 결례입니다.]

“화장실은요?”

나는 물었다.

실험실이 조용해졌다.

세라피나가 눈을 깜빡였다.

비앙카는 웃음을 참았다.

카르덴은 노트를 열지 않으려고 애썼다.

레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제일 고마웠다.

예절서가 아주 차갑게 팔락였다.

[공식 진행 직전의 사적 이탈은 사전 고지가 필요합니다.]

“사전 고지하면요?”

[공식 배려 대상이 되어 동행 또는 안내가 붙을 수 있습니다.]

“동행.”

나는 책을 닫았다.

화장실도 못 간다.

무도회는 인간의 기본권을 위협한다.

세 번째 방법 실패.

비앙카는 책상 위에 턱을 괴었다.

“재밌다.”

“재미없습니다.”

“모든 회피가 더 큰 공개성으로 돌아오네.”

“요약하지 마십시오.”

“깔끔하게 막혔네.”

“나쁜 구조입니다.”

비앙카는 손가락으로 공중에 작은 원을 그렸다.

보랏빛 선이 생기더니 초대장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나는 바로 봉투를 품 안으로 숨겼다.

“건드리지 마십시오.”

“안 건드렸어. 관찰만 했어.”

“관찰도 건드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마탑에서는 다르지.”

“제 입장에서는 같습니다.”

비앙카가 웃었다.

“그럼 네 입장을 조항으로 써야겠네.”

“쓰지 마십시오.”

“왜? 도움이 되잖아.”

“도움이 되면 남습니다.”

“남으면 좋잖아.”

“안 좋습니다.”

나는 요즘 내 말이 너무 많이 남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손수건에는 손길이 남고,

노트에는 말이 남고,

계약서에는 이름이 남고,

초대장에는 선택이 남는다.

나는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사라지려고 할수록 더 선명하게 남는다.

비앙카가 말했다.

“회피하려는 사람이 이렇게 흔적을 많이 남기는 것도 특이해.”

“남기고 싶어서 남기는 게 아닙니다.”

“그게 더 특이해.”

“특이하지 않다고 해 주세요.”

“싫어.”

마탑주는 위로에 재능이 없다.

전혀 없다.

카르덴이 결국 노트를 열었다.

나는 바로 봤다.

“카르덴 경.”

“아직 쓰지 않았습니다.”

“쓰려고 했죠.”

“예.”

“왜요?”

카르덴은 진지하게 말했다.

“루카스 경의 회피 시도가 전부 다른 형태의 공평함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공평함?”

“누구도 선택하지 않으려 하시지만, 그 회피가 모두에게 같은 거리를 두는 전략처럼 보입니다.”

아니다.

절대 아니다.

나는 그냥 도망치고 싶다.

카르덴은 계속했다.

“고도의 공평 전략입니다.”

“아닙니다.”

“첫 춤을 피하는 것으로 누구도 우선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려는 것.”

“그게 아니라 모두에게서 도망치는 겁니다.”

“모두에게서 같은 거리.”

“말장난하지 마십시오.”

카르덴은 노트에 적었다.

[모두에게서 같은 거리 = 공평 전략]

“쓰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이미 늦었습니다.”

또 늦었다.

카르덴의 늦음은 이제 예술이다.

비앙카가 박수를 쳤다.

“좋네. 공평 전략.”

“좋지 않습니다.”

세라피나는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사교적으로도 흥미로운 해석입니다.”

“해석하지 마십시오.”

“첫 춤을 누구와도 추지 않으려는 행동이 모두에게 같은 예를 지키려는 것이라면, 확실히 충돌을 줄일 수는 있습니다.”

“그럼 그걸로 갑니까?”

나는 희망을 품었다.

세라피나는 바로 말했다.

“하지만 무도회에서는 주최 측이 첫 춤 진행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희망 사망 두 번째.

나는 의자에 기대고 싶었다.

하지만 기대면 또 ‘피로 반응’이니 ‘사교 압박 반응’이니 할 것 같아서 참았다.

“네 번째.”

나는 마지막 희망을 꺼냈다.

“대리인을 세웁니다.”

예절서가 팔락였다.

[첫 춤은 본인의 의사 표시가 필요한 예식입니다. 대리 춤은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원칙적으로.”

나는 다시 그 단어를 잡았다.

“예외는요?”

[혼인 대리, 국가 조약, 부상으로 인한 의전 대행 등 제한적 예외가 있습니다.]

“전부 더 큽니다.”

나는 바로 포기했다.

대리인을 세우려다 혼인이나 국가 조약으로 간다.

안 된다.

네 번째 방법 실패.

레오나가 조용히 말했다.

“결국 가야 하나.”

“안 가는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안 가도 선택으로 읽힌다.”

“그 말은 아까 들었습니다.”

“그럼 가서 조심하는 편이 낫다.”

나는 레오나를 봤다.

정론이다.

정론은 싫다.

하지만 틀리지 않았다.

세라피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참석 후 첫 춤 대응 방안을 정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대응 방안.”

나는 힘없이 반복했다.

“도망이 아니라 대응.”

카르덴이 바로 적었다.

[도망이 아니라 대응]

“그거 지우십시오.”

“중요합니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루카스 경께서 회피를 대응으로 바꾸셨습니다.”

“안 바꿨습니다.”

비앙카가 웃었다.

“바뀌었어.”

“안 바뀌었습니다.”

세라피나는 초대장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첫 춤 상대가 공개 선택이라면, 누구와도 사전 확정하지 않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안전합니다.”

“그건 좋습니다.”

“다만 무도회장에서는 이름이 호명될 수 있습니다.”

나는 멈췄다.

“이름이요?”

“첫 춤 후보가 공식적으로 안내될 때가 있습니다.”

“후보?”

“예.”

나는 목이 말랐다.

후보.

공식.

호명.

또 싫은 단어 세 개가 붙었다.

“그 후보는 누가 정합니까?”

세라피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비앙카가 대신 말했다.

“표식 반응이 참고될 수 있겠지.”

“참고하지 마십시오.”

“이미 반응했잖아.”

이미.

또 이미.

나는 예절서를 내려다봤다.

책은 조용했다.

이럴 때만 조용하다.

정말 얄밉다.

세라피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공식 후보는 보통 무도회장에서 안내됩니다. 하지만 특수한 반응이 있으면 초대장 쪽에 사전 표기가 뜰 수도 있습니다.”

“초대장에요?”

나는 품 안의 봉투를 더 세게 눌렀다.

“그럼 지금 뜨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원래는 당일 공표입니다.”

“원래는.”

나는 그 말을 되씹었다.

원래.

요즘 원래대로 되는 게 없다.

비앙카가 유리구를 봤다.

“다섯 표식이 이미 반응했으니까, 후보 안내도 앞당겨질 수 있어.”

“앞당겨지지 마십시오.”

“나한테 말해도 안 돼.”

“그럼 누구한테 말해야 합니까?”

비앙카는 내 품을 가리켰다.

예절서.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쟤는 제 말을 안 듣습니다.”

예절서가 아주 작게 팔락였다.

나는 책을 노려봤다.

“듣고 있었으면 평소에도 들으십시오.”

책은 조용했다.

역시 얄밉다.

“그럼 방법이 없습니까?”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마지막이라는 말을 속으로만 했다.

입 밖으로 내면 또 누군가 받아 적을 것 같았다.

카르덴은 이미 충분히 많이 적었다.

비앙카는 충분히 많이 관찰했다.

세라피나는 충분히 많이 해석했다.

레오나는 충분히 많이 걱정했다.

그리고 나는 충분히 많이 망했다.

정말 충분했다.

하지만 충분하다는 건 멈춘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 세계에서는 충분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그게 제일 무섭다.

세라피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있습니다.”

나는 바로 고개를 들었다.

희망.

“정중히 모두를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

희망이 애매하게 살아남았다.

“그게 방법입니까?”

“예.”

“구체적으로요?”

“누구에게도 무례하지 않게, 누구도 확정하지 않게, 공식 절차를 따르는 것.”

비앙카가 웃었다.

“완전 루카스네.”

“저 아닙니다.”

“네가 맨날 하는 거잖아.”

“살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비앙카는 손뼉을 쳤다.

“생존형 공평 전략.”

카르덴의 노트가 움직였다.

“적지 마십시오!”

나는 외쳤다.

카르덴은 멈췄다.

하지만 눈빛이 이미 적고 있었다.

눈으로 적지 마.

나는 머리를 감싸고 싶었다.

그때였다.

품 안의 초대장이 뜨거워졌다.

나는 천천히 꺼냈다.

황실 장미 문양이 빛나고 있었다.

카드 안쪽의 글자가 바뀌었다.

[장미 무도회 첫 춤 후보 안내]

“후보 안내?”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읽었다.

세라피나의 얼굴도 조금 굳었다.

“벌써?”

비앙카가 유리구를 봤다.

다섯 빛이 동시에 흔들렸다.

“이건 예고야.”

비앙카가 말했다.

“무도회장에서 실제로 뜰 거야.”

“실제로 뜨지 마십시오.”

“나한테 말해도 안 돼.”

맞다.

요즘 중요한 건 늘 내 허락도, 비앙카의 통제도 피해 간다.

그 뒤 사흘은 너무 빨리 지나갔다.

정확히는 지나가 버렸다.

나는 그 사흘 동안 첫 춤을 피하는 법을 더 찾아봤다.

걷는 속도를 늦추기.

음악이 시작될 때 박자를 못 들은 척하기.

장미를 떨어뜨리기.

초대장을 두고 오기.

전부 예절서에게 막혔다.

[고의 지연은 결례입니다.]

[공식 음악을 모른 척하는 행위는 결례입니다.]

[장미 훼손은 결례입니다.]

[초대장 미지참은 결례입니다.]

예절서는 성실했다.

너무 성실했다.

성실한 적은 무섭다.

그리고 장미 무도회 당일.

나는 황실 무도회장 앞에 서 있었다.

도착해 버렸다.

도망치지 못했다.

아니, 도망치려다 모두에게 막혔다.

레오나는 말없이 옆에 섰고,

카르덴은 공평 전략을 세 장으로 정리했고,

세라피나는 황실 안내를 맡았고,

비앙카는 “현장 반응”이라는 말로 따라왔다.

나는 혼자 오고 싶었다.

아니, 사실은 아예 오고 싶지 않았다.

무도회장 문은 크고 화려했다.

금빛 장미가 문 위에 새겨져 있었다.

나는 그 문을 보고 작게 말했다.

“문이 너무 큽니다.”

세라피나가 웃었다.

“황실 무도회장이니까요.”

“작은 문은 없습니까?”

“하인 출입문은 있습니다.”

예절서가 팔락였다.

[초대받은 참석자의 하인 출입문 이용은 결례입니다.]

“물어만 봤습니다.”

나는 책을 닫았다.

무도회장 안은 이미 사람으로 가득했다.

음악.

향수.

드레스.

검은 예복.

장미.

장미.

또 장미.

나는 꽃밭에 들어온 게 아니라 사건 현장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리고 시선이 몰렸다.

정확히 나에게.

나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안 보이면 좋겠습니다.”

카르덴이 낮게 말했다.

“지금은 정면을 보는 편이 낫습니다.”

“왜요?”

“숙이면 더 겸손해 보여서 시선이 늘어납니다.”

나는 바로 고개를 들었다.

늦었다.

이미 몇 사람이 감탄한 얼굴이었다.

나의 회피는 또 의미가 됐다.

무도회장 중앙에는 황실 장미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 위에 첫 춤을 위한 빈 공간이 남아 있었다.

너무 넓었다.

사람 하나 망하기에 충분히 넓었다.

나는 뒤로 물러나려 했다.

예절서가 팔락였다.

[공식 호명 직전의 후퇴는 결례입니다.]

“아직 호명 안 했잖아.”

나는 아주 작게 말했다.

[곧 호명됩니다.]

책이 미래까지 예의로 막는다.

정말 얄밉다.

황실 악단의 음악이 낮아졌다.

무도회장 전체가 조용해졌다.

황실 의전관이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나는 속으로 빌었다.

한 명.

제발 한 명.

아니, 가능하면 아무도.

의전관이 금빛 명부를 펼쳤다.

그 순간 내 품 안의 예절서가 아주 작게 떨렸다.

유리구는 없었지만, 나는 다섯 빛이 떠오르는 것 같은 착각을 했다.

푸른빛.

금빛.

은빛.

보랏빛.

붉은빛.

의전관의 목소리가 무도회장에 울렸다.

“장미 무도회 첫 춤 후보를 호명하겠습니다.”

나는 숨을 멈췄다.

“아이리스 에델바인 공녀.”

푸른 장미가 시야 끝에서 움직였다.

“릴리아 세인트로즈 성녀.”

금빛 장미가 조용히 빛났다.

“레오나 발크리아 기사단장.”

은빛 장미가 곧게 섰다.

“비앙카 아르클레인 마탑주.”

보랏빛 장미가 장난처럼 흔들렸다.

나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전관은 명부를 닫지 않았다.

마지막 이름이 남아 있었다.

“세라피나 로제하트 황녀 전하.”

붉은 장미가 열렸다.

무도회장이 완전히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 다섯 이름이 마치 한 번에 울린 것처럼, 사람들의 숨소리 위로 동시에 겹쳤다.

아이리스.

릴리아.

레오나.

비앙카.

세라피나.

다섯 여인의 이름이 무도회장 한가운데서 동시에 호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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