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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녀님, 배고프면 말하세요 일러스트

성녀님, 배고프면 말하세요

“이 의미를 알고 주신 건가요?”

아이리스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무도회장의 음악은 다시 흐르고 있었지만, 루카스가 선 자리만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세라피나는 부채 뒤에서 웃고 있었고, 장미일보 기자는 숨도 쉬지 않는 얼굴로 펜을 들고 있었다.

고작 손수건 하나 때문에 루카스는 죄인처럼 서 있게 됐다.

루카스는 아이리스의 손에 들린 흰 천을 보았다. 에버렛 가문의 작은 은색 문양이 촛빛 아래 은은하게 빛났다.

얌전한 건 그 문양뿐이었다.

“공녀님.”

루카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정말로 그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아이리스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 의미를 모르고 주셨다?”

“손수건이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줄은 몰랐습니다.”

“가문 문양이 있는 손수건을, 공개석상에서, 숙녀에게.”

“그 부분은 제가 무지했습니다.”

“무지.”

아이리스가 그 단어를 조용히 되풀이했다.

루카스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무지다.

완벽한 단어다.

그는 이 세계 손수건이 이렇게 위험한 물건인지 몰랐다. 웨딩홀에서 손수건은 손수건이었다. 신랑이 땀을 닦고, 신부 어머니가 눈물을 찍고, 사회자가 급하게 마이크를 닦는 물건.

그런데 여긴 달랐다.

여기선 손수건 하나가 약혼 소문까지 끌고 오는 물건이었다.

“그러면 에버렛 경은 의미도 모른 채 제게 건네신 겁니까?”

아.

무지도 안전하지 않다.

루카스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들리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저는 공녀님의 체면을 지키려 했을 뿐입니다.”

“제 체면을.”

아이리스가 손수건을 조금 더 꽉 쥐었다.

“그건 아시는군요.”

“네?”

“제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

아니요.

그렇게까지는 모릅니다.

루카스는 입술을 다물었다. 지금 아니라고 하면 더 무례해진다. 안다고 하면 이상해진다. 침묵하면 또 무슨 뜻으로 받아들일지 모른다.

어느 쪽으로 말해도 위험했다.

그때 세라피나가 가볍게 끼어들었다.

“아이리스, 너무 몰아붙이지 마. 루카스 경은 오늘 밤 이미 내 책임도 맡았고, 네 체면도 맡았잖아.”

“전하.”

아이리스의 목소리가 조금 차가워졌다.

“맡겼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손수건은 맡아 두겠다며?”

“그것은 물건의 처리 문제입니다.”

“귀엽네.”

“전하.”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싸늘해졌다.

하필 루카스는 그 가운데 끼어 있었다.

왜 나는 오늘 밤 계속 중앙에 서는가.

장미일보 기자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실례지만, 방금까지는 기사에 넣어도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루카스가 즉시 말했다.

기자는 밝게 웃었다.

“그럼 ‘부정했다’고 적겠습니다.”

“그것도 안 됩니다.”

“두 번이나 부정하셨군요. 제목감입니다.”

루카스는 잠깐 눈을 감았다.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도망치면 무례다. 세라피나가 이미 그렇게 못 박았다. 손수건을 돌려받지 못한 채 사라지면 아이리스에게도 무례다. 기자 앞에서 뛰면 내일 아침 1면 제목은 더 끔찍해진다.

예절서에서 본 문장이 머릿속을 스쳤다. 어느 한쪽의 체면도 깎지 말고, 대화를 부드럽게 돌릴 것.

전환.

좋다.

무슨 주제로?

루카스는 주변을 훑었다. 춤, 음악, 술잔, 장미, 촛불, 귀족들의 눈. 전환할 만한 안전한 소재가 하나도 없었다.

그 순간, 무도회장 가장자리에서 아주 작은 흔들림이 보였다.

흰 장미 장식 아래.

성당 사람들처럼 보이는 무리가 서 있었다. 은색 자수가 들어간 흰 예복, 작은 성표, 차분한 미소. 그 가운데 한 여인이 있었다.

연한 금발이 어깨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아 있고, 흰 드레스 위에는 옅은 하늘색 숄이 걸려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낮췄다.

릴리아 세인트벨.

성녀.

원작의 릴리아는 늘 성스럽게만 묘사됐다. 그런데 지금 루카스가 먼저 본 건 다른 쪽이었다.

그녀의 손끝이 컵받침을 잡고 있었다.

정확히는 잡고 있는 척하고 있었다. 힘이 조금 빠진 손. 입가의 미소는 그대로인데, 시선이 아주 잠깐 접시 쪽으로 내려갔다가 돌아왔다. 몸은 곧게 서 있었지만, 발끝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루카스는 그걸 알아봤다.

빈속이다.

웨딩홀에서 오후 예식이 길어질 때 자주 보던 얼굴이었다. 신부 친구가 드레스를 입고 네 시간째 아무것도 못 먹었을 때. 사회자가 리허설부터 본식까지 물만 마셨을 때. 혼주가 긴장해서 밥을 못 먹고 인사만 돌 때.

웃고 있지만 당 떨어진 얼굴.

릴리아는 바로 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루카스가 시선을 오래 두자 아이리스가 물었다.

“에버렛 경?”

“잠시만 양해해 주십시오.”

“이번에는 어디를 보신 겁니까?”

드레스 뒤쪽 다음에 성녀의 빈속이라고 말하면 정말 끝이다.

루카스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했다.

“성녀님께서 조금 불편해 보이십니다.”

아이리스와 세라피나가 동시에 릴리아 쪽을 보았다.

장미일보 기자도 보았다.

보지 마.

다 같이 보면 더 불편해진다.

루카스는 속으로 울었다.

예절서는 성직자의 약점을 공개적으로 짚지 말라고 했다. 괜히 티를 내면 도와주는 게 아니라 망신 주는 꼴이었다.

그래.

그건 나도 안다.

문제는 도움이다.

루카스는 품 안쪽을 더듬었다. 손수건은 없다. 아이리스가 갖고 있다. 대신 작은 종이 봉투가 손끝에 닿았다.

마들렌.

그는 무도회장 한쪽 다과대에서 챙겨 둔 작은 과자를 떠올렸다. 정확히는 챙겼다기보다, 예절서가 ‘빈 접시를 오래 들고 있는 것은 부자연스럽다’고 해서 집어 둔 것이었다. 먹을 생각은 없었다. 원작 추방 위기에 몰린 판에 과자를 먹을 정신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쓸 수 있었다.

빈속에는 달달한 게 빠르다.

루카스는 다시 아이리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공녀님, 손수건의 의미는 반드시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다만 잠시만 양해해 주시겠습니까?”

아이리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번에는 누구 체면을 챙기시려는 겁니까?”

정확하다.

너무 정확해서 무섭다.

“성녀님의 체면입니다.”

이번에는 장미일보 기자가 펜을 떨어뜨릴 뻔했다.

세라피나는 정말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이리스의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에버렛 경은 오늘 밤 참 바쁘시군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진심이었다.

루카스는 릴리아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이번에도 뛰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지나고, 술잔을 피하고, 옆 사람의 드레스가 장미 장식에 걸리지 않도록 한 번 더 살폈다.

릴리아는 그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정말 성녀 같았다.

하지만 루카스는 미소보다 손끝을 보았다. 컵받침을 쥔 손에 힘이 빠졌다가 들어갔다. 배고픈 사람이 괜찮은 척할 때 나오는 작은 버릇이었다.

“성녀님.”

루카스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루카스 에버렛입니다. 갑작스레 인사드려 죄송합니다.”

릴리아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알고 있습니다, 루카스 님.”

알고 있다.

또 이름을 안다.

오늘 밤 유명해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황녀 전하와 함께 춤추신 분이시고, 공녀님께 손수건을 건네신 분이시지요.”

루카스는 숨을 멈췄다.

성녀님.

그렇게 정리하면 안 됩니다.

“둘 다 오해가 있습니다.”

“오해인가요?”

릴리아가 작게 고개를 기울였다.

“오늘은 뭐든 오해로 번지는 날인가 보네요.”

그런 날이면 제 차례는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루카스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대신 품 안에서 종이 봉투를 꺼냈다.

그 순간 릴리아의 눈이 아주 작게 커졌다.

그걸 보고 루카스는 확신했다. 역시 빈속이다.

루카스는 봉투를 바로 내밀지 않았다. 대놓고 건네면 ‘성녀가 배고프다’는 사실을 광고하는 꼴이 된다. 그는 옆의 작은 테이블에 놓인 빈 접시를 가리켰다.

“다과대의 마들렌입니다. 차 드실 때 곁들이시면 어떨까 해서요.”

릴리아의 시선이 마들렌에 고정됐다.

아주 잠깐.

정말 아주 잠깐이었다.

하지만 루카스는 봤다.

웨딩홀에서 케이크 컷팅 전 신부가 케이크를 보는 눈과 비슷했다. 먹고 싶은데 아직 먹으면 안 되는 눈.

릴리아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게요?”

“성녀님께 드리려고 가져왔습니다.”

“왜요?”

루카스는 가장 안전한 답을 골랐다.

“오래 서 계신 것 같아서요.”

“그것뿐인가요?”

“빈속이면 오래 서 있기 힘드니까요.”

말하고 나서 루카스는 멈췄다.

너무 솔직했다.

성녀에게 빈속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정말 수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성당 사람들 몇 명이 눈을 크게 떴다. 아이리스 쪽에서는 부채가 아주 작게 움직였고, 세라피나는 입가를 가렸다. 장미일보 기자의 펜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릴리아는 눈을 깜박였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웃었다.

그 웃음은 아까보다 훨씬 사람 같았다. 성화 속 미소가 아니었다. 몰래 간식을 발견한 사람의 웃음에 가까웠다.

“루카스 님은 제가 배고픈 것을 아셨나요?”

“티를 내고 싶지 않으신 것 같아서, 조심하려 했습니다.”

“아니요.”

릴리아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화난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마들렌을 보았다.

“다들 제가 지치지 않는다고 생각하세요. 기도하는 사람은 배고프지 않고, 축복하는 사람은 지치지 않는다고요.”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무겁게 말하지 않았다. 담담해서 더 잘 들렸다.

“하지만 저는 가끔 배고픕니다.”

루카스는 조심스럽게 접시 위에 마들렌을 올렸다.

“그럴 땐 말씀하셔도 됩니다.”

무도회장 한쪽이 조용해졌다.

루카스는 또 깨달았다.

너무 바로 말해 버렸다.

성녀님, 배고프면 말하세요.

현대 행사장에서는 당연한 말이다. 축복을 하든 사회를 보든, 사람이 배고프면 먹어야 한다. 빈속으로 버티다가 쓰러지면 더 큰 사고다.

하지만 이곳은 황실 무도회장이었다.

성녀에게 배고프면 말하라고 하는 영식.

좋게 들으면 다정했고, 나쁘게 들으면 큰일 날 말이었다.

릴리아는 조심스럽게 마들렌을 집었다.

“정말 먹어도 될까요?”

“작은 과자라 눈에 띄지 않을 겁니다.”

“눈에 띄지 않게.”

그녀가 그 말을 살짝 되풀이했다.

“제가 배고픈 것도 들키지 않게 해 주시고, 체면도 지켜 주시는군요.”

아니다.

마들렌은 가림막이 아니다.

손수건 다음은 마들렌입니까. 제발 그러지 말아 주세요.

루카스는 다급히 말했다.

“그냥 간식입니다.”

릴리아는 마들렌을 두 손으로 받았다.

“그냥 간식.”

“다과대에 있던 마들렌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게는 정말 큰 위로입니다.”

성당 수행원 중 한 명이 작게 숨을 삼켰다.

장미일보 기자의 펜이 더 빨라졌다.

루카스는 기자 쪽을 돌아봤다.

“그건 빼 주십시오.”

“성녀님 말씀이니 뺄 수 없습니다.”

“틀리게 적어도 됩니다.”

“그게 더 큰일입니다.”

말이 안 통한다.

릴리아는 아주 작게 마들렌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정말 작은 한 입이었다. 성녀답게 품위 있고 조용했다. 하지만 눈이 반짝였다.

루카스는 그 반응을 보고 안심했다.

통했다.

다행이다.

웨딩홀에서도 당 떨어진 사람에게 달달한 빵을 주면 표정이 돌아왔다. 어느 세계든 당 떨어진 사람에게 단것이 통하는 건 같았다.

릴리아가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물었다.

“이 마들렌은 어디에서 가져오셨나요?”

“다과대에 있었습니다.”

“다과대의 마들렌을 제게 가져다주신 건가요?”

“성녀님께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많은 사람 중에서요?”

“성녀님께 제일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또 조용해졌다.

루카스는 손가락 끝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필요해 보였다.

이 말도 위험했나?

릴리아는 마들렌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귀끝이 아주 살짝 붉어졌다. 아이리스처럼 확 붉어진 건 아니고, 아주 조금 색이 올랐다.

“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많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기도를 원하고, 축복을 원하고, 제가 성녀답게 웃어 주길 바라지요.”

루카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릴리아는 천천히 웃었다.

“그런데 제게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본 사람은 드뭅니다.”

아.

루카스는 잠깐 말을 잃었다.

그는 그냥 당 보충을 하려 했다. 정말로 그뿐이었다. 하지만 릴리아의 말은 가볍게 지나가기 어려웠다.

직함이 뭐든 사람은 사람이었다.

황녀도 넘어질 수 있고, 공녀도 체면을 신경 쓴다. 성녀도 배고플 수 있다.

그리고 추방 예정 영식도 도망치고 싶을 수 있다.

루카스는 결국 가장 단순한 말을 골랐다.

“다음부터는 배고프시면 말씀하십시오.”

릴리아가 눈을 들었다.

“제가요?”

“성녀님께서요.”

“성녀가요?”

“성녀님도 사람이시니까요.”

이번에는 정말 무도회장 전체가 조용해졌다.

루카스는 즉시 후회했다.

너무 직설적이었다.

성녀님도 사람이시니까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맞는 말이 가장 위험하다.

릴리아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들렌을 들고, 루카스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지키던 성스러운 미소가 잠깐 풀렸다.

그리고 진짜 웃음이 나왔다.

“루카스 님.”

“말씀하십시오, 성녀님.”

“그 말은 조금 위험합니다.”

“표현이 지나쳤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니요.”

릴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이라서 더 좋았습니다.”

좋으면 안 됩니다.

루카스는 속으로 두 손을 들었다.

세라피나가 어느새 가까이 와 있었다. 아이리스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손수건을 쥔 채 보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릴리아가 든 마들렌을 보았다.

“루카스 경.”

세라피나가 말했다.

“오늘 밤 루카스 경은 바쁘네. 내 손을 잡고, 아이리스에게 손수건을 주고, 성녀님께는 마들렌까지.”

“전하, 그런 식으로 묶으시면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묶을까?”

“묶지 말아 주십시오.”

아이리스가 차분하게 말했다.

“전하, 성녀님 앞입니다.”

“알아. 그래서 이 정도로만 하는 거야.”

릴리아는 마들렌을 두 손으로 감싸고 세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황녀 전하께서도 마들렌을 드시나요?”

세라피나의 눈이 반짝였다.

“루카스 경이 주면?”

“전하.”

루카스의 목소리가 거의 울음에 가까워졌다.

아이리스는 손수건을 더 단단히 쥐었다.

“에버렛 경은 가문 손수건도, 마들렌도 너무 쉽게 건네시는군요.”

“손수건은 실수였고, 마들렌은 간식입니다.”

“손수건은 실수, 마들렌은 배려라. 구분이 참 편하시군요.”

“그렇게 나누려던 건 아닙니다.”

루카스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절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장미일보 기자가 작게 중얼거렸다.

“황녀의 밤, 공녀의 손수건, 성녀의 마들렌…….”

루카스는 천천히 기자를 돌아봤다.

“제발 아무것도 묶지 말아 주십시오.”

기자는 진심으로 감탄한 얼굴이었다.

“에버렛 경, 안 묶어도 독자들이 알아서 묶을 겁니다.”

그게 더 무섭다.

릴리아는 마들렌을 한 입 더 먹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편안해 보였다. 성녀다운 태도는 잃지 않았지만,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이 살짝 풀렸다.

“루카스 님.”

“말씀하십시오.”

“혹시 이 마들렌은 원래 누구에게 드리려던 것이었나요?”

“누구에게 드리려고 챙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들고 있던 겁니다.”

“그럼 루카스 님 몫이었군요.”

“먹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왜요?”

“오늘 밤은 먹다가 사고 칠 것 같아서요.”

릴리아가 작게 웃었다.

정말 작았지만, 주변 성당 수행원들이 모두 눈을 크게 뜰 만큼 드문 웃음인 모양이었다.

“그럼 저도 공범인가요?”

“아니요. 사고가 아니라 과자입니다.”

“과자라서 다행이네요.”

릴리아는 마들렌 조각을 내려다보았다.

“작아서 몰래 먹기 좋네요.”

“마들렌이 원래 그렇습니다.”

“마들렌 하나 때문에 오늘 밤을 기억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 말은 조금 알 것 같았다.

루카스는 대답을 포기했다.

릴리아는 마지막 조각을 먹지 않고 손바닥 위에 올려두었다.

“저는 아까부터 배고프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다.

“하지만 성녀가 무도회장에서 배고프다고 말하면, 누군가는 검소하지 못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몸이 약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축복을 기다리는 사람들 앞에서 먹을 것부터 찾았다고 하겠지요.”

루카스는 조용히 들었다.

릴리아는 웃었다.

“그런데 루카스 님은 그냥 마들렌을 주셨습니다.”

“정말 그냥 드린 겁니다.”

“그래서 더 신기합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마들렌 부스러기를 살짝 모았다.

“저를 특별하게 대하는 사람들은 늘 제가 성녀라는 사실부터 봅니다. 그런데 아무 뜻이 없었다는 분은 제가 배고픈 것부터 보셨네요.”

루카스는 입을 열지 못했다.

그 말은 반박하기 어려웠다.

그는 정말 배고픈 것부터 봤다.

성녀라서가 아니라, 힘들어 보이는 사람이라서.

웨딩홀에서 누가 쓰러지려 하면 직함을 먼저 묻지 않는다. 신부든, 하객이든, 사장님이든, 알바생이든. 일단 앉히고, 물을 주고, 단 걸 먹인다.

그게 당연했다.

루카스는 작게 말했다.

“당연한 일입니다.”

릴리아가 부드럽게 웃었다.

“루카스 님에게는요.”

성당 수행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성녀님, 괜찮으십니까?”

릴리아는 마들렌을 손에 든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괜찮습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루카스를 보았다.

“혹시 하나만 더 있나요?”

무도회장 한쪽에서 누군가 작게 기침했다.

아이리스의 부채가 멈췄다.

세라피나는 결국 웃었다.

루카스는 품 안을 더듬었다.

있었다.

왜 두 개가 있지.

아까 다과대에서 빈 접시가 어색하다고 하나 더 집었나 보다.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도 습관대로 움직인다. 간식은 남으면 챙겨 둬야 한다. 행사장에서 굴러먹은 습관은 무서웠다.

그는 두 번째 마들렌을 꺼냈다.

릴리아의 시선이 잠깐 흔들렸다.

루카스는 봉투를 건네며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성녀님, 배고프면 말하세요.”

이번에는 목소리를 낮춘다고 낮췄는데도 주변에 다 들린 것 같았다.

루카스는 말이 나간 뒤에야 깨달았다.

성녀에게 공개적으로 배고프면 말하라고 했다.

이제 또 빠져나가기 어려워졌다.

릴리아는 두 번째 마들렌을 받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말해도 되나요?”

“말씀하셔도 됩니다.”

“정말로요?”

“빈속이면 힘드시니까요.”

릴리아는 눈을 내리깔았다.

작은 미소가 입가에 머물렀다.

“그럼 지금 말할게요.”

“네?”

“저는 조금 더 배고픕니다.”

루카스는 잠깐 멍해졌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과대에서 더 가져오겠습니다.”

릴리아가 웃었다.

세라피나는 부채로 입가를 가렸고, 아이리스는 손수건을 내려다보았다. 장미일보 기자는 펜을 멈추지 않았다.

“황녀의 밤, 공녀의 손수건, 성녀의 마들렌. 좋습니다. 오늘 1면은 이걸로 충분합니다.”

“제발 넘기지 마십시오.”

물론 기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릴리아는 시선을 마들렌 위에 오래 두었다.

성당 수행원의 얼굴에서 혈색이 조금 빠졌다.

장미일보 기자의 펜이 처음으로 멈췄다.

릴리아는 아주 낮게, 그러나 분명하게 중얼거렸다.

“신탁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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