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탑 호출장은 초대장이 아니죠?
마탑 호출장은 조용히 오지 않았다.
그 점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통 좋은 소식은 조용히 와도 된다.
나쁜 소식은 꼭 빛나고,
소리를 내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이번에도 그랬다.
결투장 위 허공이 보랏빛으로 갈라졌다.
나는 바로 알았다.
아.
이건 내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계에서 이상한 빛이 생기면 보통 내 쪽으로 온다.
보랏빛 종이가 허공에서 접힌 채 내려왔다.
아주 우아하게.
아주 예의 바르게.
그리고 아주 불길하게.
기사들이 동시에 자세를 바로잡았다.
카르덴은 노트를 품은 채 눈을 크게 떴다.
레오나는 검을 들지 않았지만, 손이 검집 가까이 갔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저거, 혹시 제 것 아닐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이 없으면 보통 맞다는 뜻이다.
보랏빛 종이는 내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스스로 펼쳐졌다.
글자가 떠올랐다.
[마탑 호출장]
나는 눈을 감았다.
제목부터 틀렸다.
초대장이 아니다.
호출이다.
초대장은 갈지 말지 고민할 수 있다.
호출장은 고민하면 끌려갈 것 같은 냄새가 난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이거 못 본 척하면 안 됩니까?”
카르덴이 진지하게 말했다.
“마법 문서라면 수신 확인이 이미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확인 안 했습니다.”
“눈으로 보셨습니다.”
“눈이 잘못했습니다.”
기사 한 명이 낮게 말했다.
“눈의 책임까지 지려 하시는군.”
아니다.
눈을 탓한 것이다.
나는 종이를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글자가 알아서 눈앞으로 떠올랐다.
[수신자: 루카스 에버렛]
틀림없다.
내 것이다.
망했다.
[발신자: 비앙카 아르클레인, 제도 마탑 연구실]
비앙카.
이름은 알고 있었다.
마탑주.
괴짜.
소문대로 마법보다 호기심이 먼저 움직이는 인물.
문제는 그런 사람이 내 예절서 반응을 봤다는 점이다.
나는 품 안의 예절서를 눌렀다.
책은 조용했다.
얌전했다.
진짜 얄밉다.
일은 자기가 벌이고, 수습은 내가 한다.
[귀하에게서 관측된 특이 예절서 반응을 확인하고자 하오니, 즉시 마탑으로 방문 바랍니다.]
“방문 바랍니다.”
나는 작게 읽었다.
“이건 초대장 아닙니까?”
카르덴이 종이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위에 호출장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래도 문장이 부드럽습니다.”
“마탑 문서는 부드럽게 협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움이 안 된다.
정말 도움이 안 된다.
레오나가 종이를 봤다.
“마탑인가.”
“예.”
“위험하다.”
“그럼 안 가도 됩니까?”
“그래도 가야 한다.”
왜요.
왜 위험하면 가야 합니까.
이 세계 사람들은 위험을 피하는 방법을 모르는가.
레오나는 짧게 말했다.
“호출장이다.”
“초대장처럼 읽을 수는 없습니까?”
“없다.”
카르덴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탑 호출장은 제국 공인 요청입니다. 무시하면 마탑에서 직접 옵니다.”
“직접 오면요?”
카르덴은 잠깐 생각했다.
“더 시끄러워집니다.”
그건 싫다.
지금도 충분히 시끄럽다.
나는 종이를 다시 봤다.
[관측 대상: 예절서 반응, 기사단장 전우 선언, 사회적 격 상승, 강제 예법 규칙]
“사회적 격 상승?”
나는 소름이 돋았다.
“제가 상승했습니까?”
카르덴이 엄숙하게 말했다.
“단장님의 전우가 되셨으니까요.”
“저는 아직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전우 선언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공개적으로 동의 안 했습니다.”
“침묵하셨습니다.”
“기절 직전이었습니다.”
기사 한 명이 감동한 얼굴로 말했다.
“너무 벅차 침묵하신 거군.”
아니다.
정신이 나간 것이다.
내 정신이.
레오나는 종이를 접었다.
아니, 종이가 알아서 접혔다.
그녀는 그것을 손끝으로 잡아 내게 건넸다.
“가라.”
“혼자요?”
“보호를 붙인다.”
기사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나는 급히 손을 들었다.
“잠깐만요. 마탑에 기사단 보호 대형으로 들어가면 일이 더 커지지 않습니까?”
카르덴이 진지하게 말했다.
“전우 보호 대형은 당연합니다.”
“당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당연합니다.”
언제부터.
언제 내 주변에 당연한 게 이렇게 많이 생겼나.
레오나가 말했다.
“내가 간다.”
나는 멈췄다.
“기사단장님이요?”
“네가 내 전우라면, 위험한 곳에 혼자 보내지 않는다.”
기사들이 또 감동했다.
나는 더 불안해졌다.
레오나가 같이 가면 안전할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하지만 마탑 입장에서 보면 어떤가.
기사단장이 전우를 데리고 마탑에 들어간다.
그 문장만으로도 오해가 네 개쯤 생긴다.
나는 말했다.
“혹시 조금 덜 공식적으로 갈 수는 없습니까?”
“덜 공식적?”
“예. 그냥 지나가다 들른 사람처럼.”
레오나는 내 손에 든 보랏빛 호출장을 봤다.
“호출장을 받고 지나가다 들른 척하나.”
“안 되겠네요.”
“안 된다.”
짧고 정확했다.
그래서 더 아팠다.
결국 나는 마탑으로 가게 됐다.
전우 보호 대형은 간신히 줄였다.
레오나.
카르덴.
그리고 나.
셋만 가기로 했다.
사실 셋도 많다.
나 혼자 조용히 가고 싶었다.
하지만 레오나와 카르덴에게 조용히는 존재하지 않는 선택지였다.
출발 전부터 문제가 있었다.
기사들이 내 주변에 계속 모였다.
“마탑은 변수가 많습니다.”
“마법사는 말로 검을 숨깁니다.”
“루카스 경의 뒤를 지켜야 합니다.”
나는 손을 저었다.
“괜찮습니다. 기사단장님과 카르덴 경이 같이 가십니다.”
“그러니까 더 중요합니다.”
“왜요?”
“두 분 모두 루카스 경을 중심으로 움직이실 테니까요.”
중심.
그 단어가 너무 싫었다.
나는 중심이 되고 싶지 않다.
가장자리.
구석.
출입문 근처.
그런 곳이 좋다.
레오나는 기사들에게 짧게 말했다.
“물러나라.”
기사들은 바로 물러났다.
멋있다.
나도 저런 말 한마디로 사람들이 물러났으면 좋겠다.
내가 말하면 반대로 더 가까이 온다.
카르덴은 옆에서 노트를 품에 넣었다.
나는 그걸 봤다.
“그 노트는 두고 가시면 안 됩니까?”
“왜입니까?”
“마탑에서 보면 또 연구 대상이 될 것 같습니다.”
카르덴은 잠깐 생각했다.
“그럼 더 조심히 품겠습니다.”
“두고 가는 선택지는요?”
“배움을 두고 갈 수는 없습니다.”
이 사람은 이제 노트를 심장처럼 여긴다.
내 말이 카르덴의 가슴 안쪽에 들어가 버렸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매우 곤란하다.
레오나가 나를 보았다.
“너도 책을 들고 간다.”
“안 들고 가면 안 됩니까?”
“호출장의 목적이다.”
“그렇긴 합니다.”
“숨기지 마라.”
나는 품 안의 예절서를 내려다봤다.
“숨기고 싶습니다.”
“왜지?”
“보이면 다들 해석합니다.”
“그건 맞다.”
레오나가 인정했다.
나는 조금 감동할 뻔했다.
이 사람도 이제 내 고통을 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말이 문제였다.
“그래도 가져가라.”
감동은 짧았다.
명령은 길었다.
우리는 마차를 탔다.
정확히는 기사단 마차였다.
튼튼했다.
너무 튼튼했다.
밖에서 보면 귀족 호송이라기보다 전쟁 포로 이송 같았다.
나는 창밖을 보며 말했다.
“혹시 조금 덜 튼튼한 마차는 없었습니까?”
카르덴이 말했다.
“마탑 주변은 돌발 마법 사고가 많습니다.”
“그럼 튼튼해야겠네요.”
“예.”
“왜 저는 설득되고 있습니까.”
레오나는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목에는 아직도 내 손수건이 있었다.
마차가 흔들릴 때마다 하얀 매듭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보지 말자.
보면 생각난다.
생각하면 말이 나온다.
말이 나오면 사건이 된다.
그때 예절서가 품 안에서 아주 작게 떨렸다.
나는 바로 눌렀다.
“가만히 있어.”
카르덴이 물었다.
“누구에게 하신 말씀입니까?”
“제 마음에게요.”
“마음을 다스리는 중이시군요.”
“책을 누르는 중입니다.”
“마음과 책을 함께 누르는군요.”
나는 창밖을 봤다.
말을 말자.
오늘도 늦었다.
마탑은 제도 한복판에 있었다.
멀리서 봐도 이상했다.
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비틀려 있었고,
건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제멋대로였다.
창문은 각자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고,
계단은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누가 설계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나는 탑 앞에서 멈췄다.
“여기 꼭 들어가야 합니까?”
레오나는 말했다.
“호출장이다.”
“그 단어가 계속 제 목을 조릅니다.”
카르덴이 말했다.
“마탑은 예절이 까다롭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어떤 예절입니까?”
“모릅니다.”
“모르는데 왜 까다롭다고 합니까?”
“마탑이니까요.”
설득력이 있었다.
너무 싫게도 있었다.
탑 문이 알아서 열렸다.
끼익.
안쪽에서 보랏빛 불빛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문 앞에서 떨고 있으면 계측값이 흐려져.”
여자 목소리였다.
가볍고,
빠르고,
어딘가 즐거웠다.
비앙카겠지.
나는 문 안쪽을 보았다.
“저분은 왜 제가 떨고 있는 걸 압니까?”
카르덴이 말했다.
“마법사니까요.”
마법사는 너무 편리한 변명이다.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마탑 내부는 더 이상했다.
책이 떠다녔다.
찻잔도 떠다녔다.
빗자루도 떠다녔다.
내 마음도 거의 떠나갈 뻔했다.
바닥에는 선이 그어져 있었다.
원.
삼각형.
읽을 수 없는 글자.
그리고 왜인지 작은 장미 그림.
나는 그 장미를 보자마자 한 걸음 피했다.
요즘 장미도 위험하다.
손수건도 위험하고,
노트도 위험하고,
장미도 위험하다.
안 위험한 물건이 있기는 한가.
찻잔 하나가 내 앞으로 날아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찻잔은 허공에서 멈췄다.
안에는 차가 들어 있었다.
김이 났다.
“마셔도 되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카르덴이 진지하게 말했다.
“마탑의 차는 함부로 마시면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
“왜요?”
“효과를 모릅니다.”
나는 바로 찻잔에서 멀어졌다.
레오나가 찻잔을 봤다.
“독인가.”
“아마 아닐 겁니다.”
카르덴이 말했다.
“아마?”
나는 물었다.
“확실하지 않습니까?”
“마탑에서는 독이 아니라 실험일 수 있습니다.”
더 나쁘다.
독은 적어도 나쁘다는 정체성이 분명하다.
실험은 웃으면서 다가온다.
나는 찻잔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찻잔이 살짝 흔들렸다.
거절당한 것처럼 보였다.
설마 찻잔도 감정이 있나.
그런 설정은 없었으면 좋겠다.
비앙카의 목소리가 위에서 들렸다.
“오. 찻잔한테도 예의를 차리네.”
나는 위를 봤다.
“처음 보는 물건이라서요.”
“처음 보면 예의를 차리는구나.”
“대부분의 문제는 무례에서 시작하니까요.”
“그 말, 좋다.”
좋지 않다.
마탑주가 내 말을 좋아하면 안 된다.
비앙카는 난간 위에서 다리를 흔들었다.
“기록해 둬야겠어.”
“기록하지 마십시오.”
“왜?”
“기록되면 오래갑니다.”
“그래서 기록하는 거야.”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또 늘었다.
나는 예절서를 품 안에 꼭 눌렀다.
“그거 숨기지 마.”
위쪽 계단 난간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보랏빛 머리카락.
헐렁한 로브.
손에는 마력 사탕 같은 걸 들고 있었다.
그녀는 사탕을 오독 씹으며 나를 내려다봤다.
“숨기면 더 보고 싶어지거든.”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루카스 에버렛입니다.”
“알아.”
“그렇습니까.”
“호출했으니까.”
“초대는 아니었군요.”
비앙카가 웃었다.
“초대였으면 안 왔을 거잖아.”
정확하다.
너무 정확해서 기분이 나빴다.
레오나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용건을 말해라.”
비앙카는 레오나를 보더니 눈을 반짝였다.
“오. 전우 선언 당사자.”
“말해라.”
“차가워라. 좋아. 계측값이 선명해.”
레오나의 손이 검집 가까이 갔다.
나는 급히 말했다.
“마탑 안에서 검은 조금…….”
비앙카가 내 쪽을 봤다.
“말렸네?”
“예?”
“공녀의 검을 말렸어. 방금. 자연스럽게.”
“위험해 보여서요.”
“그게 문제야.”
비앙카가 난간에서 뛰어내렸다.
발소리도 없이 바닥에 내려섰다.
그녀는 내 앞까지 와서 고개를 기울였다.
“너는 계속 위험해 보이는 걸 막아. 그런데 예절서는 그걸 사회적 관계로 읽어.”
나는 품 안의 책을 더 눌렀다.
“그 책이 문제입니다.”
“책만 문제일까?”
“저는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람은 데이터가 아니야.”
말이 어렵다.
마탑답다.
비앙카는 손가락을 튕겼다.
공중에 작은 원형 장치가 나타났다.
그 장치가 내 주변을 빙글 돌았다.
나는 고개를 뒤로 뺐다.
“이건 뭡니까?”
“계측기.”
“저한테 닿습니까?”
“안 닿아.”
“그럼 괜찮습니다.”
장치가 내 어깨 바로 옆을 스쳤다.
나는 움찔했다.
비앙카가 웃었다.
“겁 많네.”
“정확합니다.”
“그런데 자꾸 사람을 지키네.”
“제 의도는 아닙니다.”
“의도가 없는데 결과가 반복된다.”
그녀의 눈이 더 반짝였다.
“재밌어.”
재미없다.
정말 재미없다.
비앙카는 내 품을 가리켰다.
“예절서 꺼내.”
“꺼내면 뭔가 일어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꺼내라는 거야.”
나는 레오나를 봤다.
레오나는 짧게 말했다.
“꺼내라.”
카르덴도 고개를 끄덕였다.
“안전하게 지켜보겠습니다.”
안전하게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나는 불안해진다.
나는 결국 예절서를 꺼냈다.
책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비앙카가 손을 뻗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책을 뒤로 뺐다.
“조심해 주세요.”
비앙카의 눈이 둥글어졌다.
“나한테?”
“예. 오래된 책이라서요.”
“그걸 지키는 거야?”
“망가지면 제가 곤란합니다.”
“책을 보호한다.”
비앙카가 작게 중얼거렸다.
예절서가 그 순간 빛났다.
나는 바로 알았다.
또 뭔가 잘못됐다.
비앙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봤지?”
“못 봤습니다.”
“봤잖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책을 보호하는 반응, 기사단 전우 선언과 같은 계열이야.”
“그런 계열 만들지 마십시오.”
“이미 있어.”
그녀는 즐거워 보였다.
나는 괴로웠다.
둘의 감정 차이가 너무 컸다.
비앙카는 예절서 주변에 빛나는 선을 띄웠다.
선들이 엉켜 작은 장미 모양이 됐다가 다시 풀렸다.
그녀는 손바닥 위에 작은 빛 공을 하나 더 띄웠다.
빛 공은 내 예절서 쪽으로 굴러가듯 움직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책을 품에 끌어당겼다.
“조심해 달라고 했습니다.”
“방금 또 보호했네.”
비앙카가 말했다.
“책을요?”
“응. 그리고 네가 보호한 대상은 반응한다.”
“반응하지 말라고 하면 안 됩니까?”
“그렇게 말한다고 법칙이 멈추면 마법사가 왜 필요하겠어?”
그건 맞는 말 같았다.
그래서 더 싫었다.
비앙카는 빛 공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빛 공이 허공에서 세 갈래로 갈라졌다.
하나는 레오나의 손목으로,
하나는 카르덴의 노트로,
하나는 내 예절서로 향했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세 개가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손수건.
노트.
책.
전부 내 말과 손길이 이상하게 묻은 물건들이다.
나는 작게 말했다.
“이건 다 우연입니다.”
비앙카가 바로 웃었다.
“마법사는 우연을 제일 좋아해.”
“왜요?”
“반복되면 법칙이 되거든.”
반복.
그 단어도 싫다.
내가 원하는 건 단 한 번의 해프닝이다.
그런데 이 세계는 자꾸 해프닝을 제도로 만든다.
그녀의 눈이 번쩍였다.
“이거 단순 검사로 끝낼 게 아니네.”
“끝내 주세요.”
“싫어.”
“왜요?”
“재밌으니까.”
그 한마디가 제일 무서웠다.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사람은 재미를 느낀 전문가다.
비앙카는 내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레오나가 그녀를 노려봤다.
카르덴은 노트를 꺼낼까 말까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꺼내지 마.
제발 여기서 노트까지 나오면 마탑과 기사단이 합쳐진다.
비앙카가 말했다.
“오늘은 예비 관찰만 할 생각이었는데.”
“그걸로 끝내시면 됩니다.”
“안 되겠어.”
“됩니다.”
“안 돼.”
비앙카는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책상 위에는 이미 얇은 양피지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걸 보자마자 긴장했다.
종이.
또 종이다.
이 세계에서 종이는 말보다 위험하다.
비앙카가 깃펜을 들었다.
“간단한 관찰 기록만 남길게.”
“간단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목만.”
“제목도 위험합니다.”
“그럼 제목부터 정하자.”
“안 정하셔도 됩니다.”
비앙카는 이미 쓰고 있었다.
나는 살짝 봤다.
[비논리적 예절 반응체 루카스 에버렛 1차 관찰]
“제 이름 앞에 이상한 말 붙이지 마십시오.”
“비논리적이 싫어?”
“예.”
“그럼 흥미로운?”
“그것도 싫습니다.”
“귀여운?”
레오나의 시선이 차가워졌다.
나는 급히 말했다.
“비논리적으로 하시죠.”
비앙카가 웃었다.
“선택 빠르네.”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다.
요즘 내 선택지는 대체로 생존과 망신 사이에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 둘 다 고르게 된다.
그녀는 아주 밝게 웃었다.
“좋아. 첫 연구 데이트는 밤샘 관찰이네.”
“데이트 아닙니다.”
“같은 공간에서 밤새 서로를 관찰하면 데이트랑 연구가 얼마나 다르겠어?”
“많이 다릅니다.”
“그 차이를 오늘 확인하자.”
그녀는 아주 밝게 웃었다.
“오늘 밤은 실험실에서 보내자.”
나는 굳었다.
레오나의 손이 검집으로 갔다.
카르덴이 숨을 삼켰다.
예절서가 팔락였다.
그리고 나는 확신했다.
마탑 호출장은 절대 초대장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