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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절위원회가 움직였다 일러스트

예절위원회가 움직였다

아침은 조용해야 했다.

무도회에서 다섯 곡을 추고 돌아온 사람에게는 적어도 반나절 정도의 침묵이 필요했다.

루카스는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이 세계는 그의 믿음을 별로 존중하지 않았다.

창밖이 밝아지기도 전에 문이 조심스럽게 두드려졌다.

“도련님.”

루카스는 이불 속에서 눈을 떴다.

아직도 귓가에 악단 소리가 남아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장미일보가 도착했습니다.”

루카스는 눈을 감았다.

신문은 보통 아침에 온다.

그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새벽부터 사람을 깨우는 신문은 신문이 아니라 통보다.

“문 앞에 두고 가셔도 됩니다.”

“그게…… 이미 하인들이 봤습니다.”

루카스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왜 그걸 먼저 봅니까?”

“문 앞에 놓여 있었는데 제목이 너무 컸습니다.”

큰 제목.

루카스는 그 말만으로도 속이 내려앉았다.

어제 미라벨은 웃으며 말했다.

다섯 손을 모두 잡은 남자, 예절위원회를 깨우다.

설마 그걸 그대로 썼을까.

설마.

루카스는 봉투처럼 접힌 신문을 받았다.

첫 줄이 눈에 들어왔다.

「다섯 손을 모두 잡은 남자, 예절위원회를 깨우다」

그대로였다.

정말 그대로였다.

루카스는 신문을 덮었다.

“이건 사실과 다릅니다.”

하인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예. 도련님께서는 순서를 지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더 문제입니다.”

“모두를 동등하게 대하셨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냥 싸움이 날까 봐…….”

말하다가 루카스는 멈췄다.

싸움이 날까 봐 모두와 춤을 췄다.

이 문장도 이상했다.

이상하지 않은 변명이 없었다.

루카스는 다시 신문을 펼쳤다.

본문은 더했다.

황녀와 공녀, 성녀, 기사단장, 마탑주가 한 자리에서 손을 내밀었다.

에버렛 경은 누구도 물러서게 하지 않았다.

순서를 정해 모두의 체면을 세웠다.

예절위원회는 오래 침묵했던 눈을 떴다.

“눈을 뜨지 마십시오.”

루카스가 중얼거렸다.

하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

“아닙니다.”

루카스는 신문을 내려놓았다.

머릿속에 짧은 문장이 지나갔다.

공식 시선 앞에서는 작은 몸짓도 기록된다.

예절서는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문제는 틀린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작은 몸짓도 기록된다면, 어제 그는 너무 많은 몸짓을 했다.

손을 잡았다.

고개를 숙였다.

순서를 정했다.

다섯 번이나 춤을 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예절위원회의 시선까지 받았다.

루카스는 잠깐 이불을 다시 뒤집어쓸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불은 성이 아니었다.

문밖에서 두 번째 노크가 들렸다.

“도련님.”

“또 신문입니까?”

“아닙니다. 황실에서 문서가 왔습니다.”

루카스는 눈을 감았다.

신문보다 나쁜 것은 황실 문서였다.

황실 문서보다 더 나쁜 것은 신문 직후에 오는 황실 문서였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들어오십시오.”

문이 열렸다.

은색 끈으로 묶인 문서가 들어왔다.

붉은 밀랍 위에는 황실 예절위원회의 문장이 찍혀 있었다.

루카스는 그 문장을 보자마자 등 뒤가 서늘해졌다.

예절위원회.

어제 미라벨이 깨웠다고 떠든 그곳.

정말 깨어난 모양이었다.

문서는 정중했다.

정중해서 더 무서웠다.

루카스 에버렛 경께.

최근 황실 사교회에서 보여 주신 품위 있는 처신과 관련하여, 본 위원회는 경의 사교 예법 이해도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확인.

루카스는 그 단어에서 이미 면접 냄새를 맡았다.

확인이라고 쓰고 시험이라고 읽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았다.

이어지는 문장은 더했다.

기초 품위 확인.

예비 문답.

황실 사교 예법 이해도 점검.

공개 참관 허용.

루카스는 마지막 줄에서 문서를 내려놓았다.

“공개 참관이 왜 붙습니까?”

하인이 대답하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루카스는 다시 읽었다.

공개 참관 허용.

틀림없었다.

망신도 공개로 당하라는 뜻이었다.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하인은 매우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잘하셔서 부른 것 같습니다.”

“잘하면 왜 부릅니까?”

“더 잘하는지 보려고…….”

“그게 시험입니다.”

루카스는 문서를 다시 접었다.

예절위원회가 공개 검증을 한다.

사교계는 구경한다.

장미일보는 제목을 뽑는다.

이건 완벽한 재난이었다.

루카스는 옷을 갈아입으며 계속 중얼거렸다.

“기초 품위 확인이라니. 기초가 없으면 어떡하지.”

그는 귀족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원래 몸의 기억은 조금 있었지만, 그것도 예절서 한 권으로 정리되는 수준이 아니었다.

진유진이 가진 건 웨딩홀 알바 기억뿐이었다.

하객이 많으면 출구를 비워 둔다.

신부 부모님 앞에서는 절대 큰소리 내지 않는다.

늦은 손님에게도 웃으면서 안내한다.

음식 동선이 막히면 먼저 사과한다.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는 적어도 예절위원회가 없었다.

루카스가 현관으로 내려가자 이미 저택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하인들이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

고개 숙이는 각도도 묘하게 깊었다.

루카스는 그게 더 불안했다.

“평소처럼 하셔도 됩니다.”

“도련님께서 오늘 황실 예절위원회에 나가신다고 들었습니다.”

“나가는 게 아니라 끌려가는 쪽에 가깝습니다.”

“건승을 빕니다.”

“싸우러 가는 게 아닙니다.”

하인은 잠깐 생각하더니 다시 고개를 숙였다.

“품위 있게 다녀오십시오.”

“그 말도 부담됩니다.”

저택 밖에는 이미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차 문 옆에는 황실에서 보낸 안내인이 서 있었다.

그리고 안내인 뒤로는 몇 명의 귀족 청년들이 지나가는 척 멈춰 있었다.

지나가는 척이라고 하기엔 너무 오래 멈춰 있었다.

“저 사람이야?”

“다섯 명과 전부 춤췄다는 그 영식?”

“촌놈이라더니, 예법으로 위원회를 움직였다고?”

루카스는 마차에 타려다 멈췄다.

촌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세계 기준으로도 그는 에버렛 가문의 변두리 영식이었다.

현대 기준으로는 더했다.

그는 귀족 교육 대신 예식장 대기실에서 축의금 봉투 위치를 외웠다.

루카스는 괜히 마차 발판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미끄러지면 안 된다.

여기서 넘어지면 장미일보는 `예절위원회 앞에서 무릎 꿇은 남자` 정도를 뽑을 것이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루카스 경.”

세라피나 황녀였다.

그녀는 황실 마차에서 내려오며 아주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루카스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전하. 아침부터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내가 부른 건 아닌데?”

“그래도 황실 일이라면 제가 조심했어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더 재미있어지잖아.”

루카스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재미있으면 안 됩니다.”

세라피나는 웃었다.

“도망치고 싶어?”

“가능하다면, 아주 정중하게 사라지고 싶습니다.”

“정중하게 사라지는 건 꽤 어려워. 보통은 떠나는 인사부터 문제가 되거든.”

루카스는 진심으로 절망했다.

떠나는 것도 예절 문제라니.

이 세계는 출구에도 함정을 깔아 둔다.

세라피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 더 즐거워했다.

“걱정 마. 오늘은 아직 본검증이 아니야.”

“아직이라는 말이 붙으면 더 걱정됩니다.”

“예비 문답이래. 위원회가 먼저 맛을 보는 거지.”

“저는 음식이 아닙니다.”

“사교계에서는 비슷해. 모두가 한입씩 보려 하니까.”

루카스는 대답을 포기했다.

세라피나는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루카스 경.”

“예, 전하.”

“오늘도 모두를 기다리게 하지 않을 건가?”

“가능하면 아무도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말, 위원회 앞에서는 조심해.”

“왜입니까?”

“모두를 책임지겠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거든.”

루카스는 입을 다물었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인생에서 조심하라는 말은 보통 일이 터진 뒤에 왔다.

황실 별관은 전날 무도회장보다 작았다.

하지만 무서운 건 더했다.

무도회장은 최소한 음악이 있었다.

여기는 의자 끄는 소리까지 선명했다.

긴 탁자 뒤에는 예절위원회 위원들이 앉아 있었다.

대부분 나이가 많았다.

눈빛은 조용했다.

조용해서 더 피곤했다.

그들 앞에는 두꺼운 기록장이 놓여 있었다.

루카스는 그 기록장을 보자마자 몸이 굳었다.

쓰지 마십시오.

제발 아무것도 쓰지 마십시오.

하지만 위원들은 이미 깃펜을 들고 있었다.

방 한쪽에는 귀족들이 참관석처럼 모여 있었다.

참관이라고 쓰고 구경이라고 읽는 자리였다.

장미일보 미라벨도 있었다.

그녀는 펜을 들고 아주 반짝이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루카스는 못 본 척했다.

그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저항이었다.

위원장으로 보이는 노인이 입을 열었다.

“루카스 에버렛 경.”

“예.”

루카스는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오늘의 자리는 처벌이나 추궁이 아닙니다.”

“예.”

그 말을 믿을 수는 없었다.

처벌이 아닌 자리는 보통 처벌보다 더 길었다.

“최근 경의 처신이 황실 사교회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위원장 손이 멈췄다.

“송구하다?”

루카스는 심장이 내려앉았다.

틀렸나.

벌써 틀렸나.

“소란을 만든 의도는 없었습니다. 혹여 제 행동으로 누군가 불편해졌다면 먼저 사과드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원들이 서로를 보았다.

참관석이 조용해졌다.

루카스는 더 불안해졌다.

너무 조용한 반응은 늘 위험했다.

위원장 옆의 여인이 낮게 말했다.

“먼저 사과한다.”

다른 위원이 기록장에 무언가를 적었다.

루카스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적지 마십시오.

그건 그냥 서비스직 반사 행동입니다.

위원장이 다음 질문을 꺼냈다.

“경은 어젯밤 다섯 숙녀가 동시에 손을 내밀었을 때, 왜 순서를 정했습니까?”

가장 나쁜 질문이 바로 나왔다.

루카스는 목이 말랐다.

“그 자리에서 어느 한 분을 먼저 택하면, 남은 분들이 공개적으로 물러나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건 제가 감당할 일이 아니라, 제가 만든 불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불편.”

“예. 모두가 보는 자리였으니, 어느 분도 무안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위원장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루카스는 급히 덧붙였다.

“물론 제가 부족해서 제대로 처리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싸움이 나지 않게…… 아니, 갈등이 커지지 않게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참관석에서 작은 숨소리가 퍼졌다.

“싸움.”

“갈등.”

“모두의 체면.”

“그걸 그 순간에?”

루카스는 속으로 머리를 감쌌다.

아니,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그냥 저는 사고 처리 담당자처럼 굴었을 뿐입니다.

위원장 옆 여인이 다시 적었다.

“공개석상에서 모두의 체면을 살핌.”

루카스는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모두의 체면을 살핀다니.

그런 메뉴는 웨딩홀 뷔페에도 없었다.

위원장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숙녀를 기다리게 하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루카스는 거의 자동으로 대답했다.

“되도록 피해야 합니다.”

“이유는?”

“기다리는 쪽은 이유를 모릅니다. 상대가 늦는 건지, 자신이 무시당한 건지, 안내가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면 불안해집니다.”

그는 말하다가 숨을 골랐다.

“그래서 기다리게 했다면 먼저 설명하고 사과하는 게 맞습니다. 기다림은 짧아도 마음이 길어질 수 있으니까요.”

위원회가 완전히 조용해졌다.

루카스는 그제야 자신이 쓸데없는 말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웨딩홀에서 배운 말이었다.

혼주가 늦으면 하객들이 술렁인다.

신부가 대기실에서 기다리면 마음이 탄다.

안내가 늦으면 작은 불편도 큰 불만이 된다.

그냥 그런 뜻이었다.

하지만 위원들은 그렇게 듣지 않는 얼굴이었다.

위원장 옆의 여인이 아주 천천히 말했다.

“기다림은 짧아도 마음이 길어진다.”

미라벨의 펜이 바쁘게 움직였다.

루카스는 그녀 쪽을 보지 않으려 했다.

눈이 마주치면 바로 제목이 될 것 같았다.

세라피나는 참관석 앞줄에서 턱을 괴고 있었다.

눈이 웃고 있었다.

“루카스 경.”

위원장이 다시 물었다.

“누군가 공개석상에서 실수했을 때, 옆 사람이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입니까?”

“먼저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시선을?”

“예. 실수한 사람이 바로 수습할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지적하면 더 큰 실수가 됩니다.”

“그다음은?”

“가능하면 가까운 사람이 조용히 도와야 합니다. 물건이 떨어졌으면 주워 드리고, 옷매무새가 흐트러졌으면 다른 사람이 보지 않게 가려 드리고, 말이 막혔다면 대화의 방향을 잠깐 바꾸는 식으로…….”

루카스는 말을 멈췄다.

아이리스의 손수건 사건이 떠올랐다.

그는 그때도 그냥 넘어진 사람을 도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는 모든 것을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위원장도 그 사건을 떠올린 듯했다.

“공녀의 체면을 지킨 일도 같은 기준이었습니까?”

루카스는 고개를 숙였다.

“그때는 제가 더 조심했어야 합니다.”

참관석 한쪽에서 작은 웃음이 들렸다.

젊은 귀족 둘이었다.

“조심했어야 한다니.”

“촌놈이 말은 잘 배웠군.”

“공녀가 없었다면 누가 저런 걸 알아봤겠나.”

루카스는 못 들은 척했다.

못 들은 척하는 건 꽤 자신 있었다.

예식장에서도 손님 불평은 들리지만 들은 척하면 일이 커졌다.

그는 고개를 더 낮췄다.

“제가 부족한 부분은 인정합니다.”

웃음이 조금 더 커졌다.

“인정한다는데?”

“검증할 것도 없겠군.”

“예법은 혈통과 교육의 문제지. 하루아침에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야.”

그 말은 꽤 아팠다.

루카스는 반박할 수 없었다.

혈통도 교육도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가 가진 건 빌린 몸과, 낡은 예절서와, 웨딩홀에서 굴러다닌 기억뿐이었다.

그런 것으로 황실 예절위원회 앞에 서 있는 지금이 이상했다.

루카스는 조용히 말했다.

“맞습니다. 저는 많이 배워야 합니다.”

그 순간, 차가운 목소리가 방을 가로질렀다.

“예법은 조롱의 도구가 아닙니다.”

아이리스였다.

참관석 뒤쪽에 서 있던 그녀가 앞으로 나왔다.

흰 장갑을 낀 손이 가지런히 모여 있었다.

표정은 평소처럼 차가웠다.

하지만 눈빛은 웃던 귀족들을 향해 있었다.

“공녀님.”

귀족들이 바로 자세를 고쳤다.

아이리스는 그들을 길게 보지 않았다.

길게 볼 필요도 없다는 듯 시선을 거두었다.

“황실 예절위원회의 자리는 사람을 낮추기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품위를 확인하는 자리라면, 참관하는 이들도 품위를 지켜야 합니다.”

방이 조용해졌다.

루카스는 당황해서 말했다.

“공녀님, 저는 괜찮습니다.”

아이리스가 그를 보았다.

“괜찮다는 말로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정말로 크게 문제 된 건 아닙니다.”

“에버렛 경.”

짧은 부름이었다.

루카스는 입을 다물었다.

아이리스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의 체면을 그렇게 쉽게 내려놓지 마십시오.”

루카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체면을 챙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체면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그걸 다르게 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체면은 장식이 아니었다.

누군가 공개석상에서 밟히지 않게 지켜야 하는 선이었다.

위원장이 헛기침을 했다.

“아이리스 공녀. 오늘은 참관 자격으로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 참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발언은…….”

“참관석의 무례도 이 자리에 포함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원장은 잠깐 침묵했다.

세라피나는 손등으로 입가를 가리고 웃었다.

루카스는 웃을 수 없었다.

상황이 더 커지고 있었다.

그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제 일로 자리가 불편해졌다면 죄송합니다.”

아이리스의 시선이 다시 그에게 왔다.

“그 말도 문제입니다.”

“예?”

“모든 불편을 경의 책임으로 돌리지 마십시오.”

루카스는 눈을 깜빡였다.

그건 어려운 요구였다.

그는 모든 일이 자기 책임이 되는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신문도.

무도회도.

다섯 손도.

예절위원회도.

그래서 먼저 사과하는 편이 안전했다.

아이리스는 그 생각을 읽은 듯 낮게 말했다.

“예법은 자신을 깎아내리는 기술이 아닙니다.”

그 말은 방 안을 한 번 더 조용하게 만들었다.

위원장 옆 여인이 다시 적었다.

루카스는 기록장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아이리스 말까지 기록되고 있었다.

미라벨도 거의 숨을 참고 펜을 놀리고 있었다.

세라피나가 가볍게 말했다.

“공녀가 직접 설명해 주면 되겠네.”

루카스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세라피나는 그런 예감을 늘 현실로 만드는 쪽이었다.

아이리스는 아주 잠깐 세라피나를 보았다.

“전하.”

“왜? 에버렛 경은 많이 배워야 한다고 했잖아.”

“그렇습니다.”

루카스는 급히 끼어들었다.

“제가 혼자 공부하겠습니다.”

아이리스가 말했다.

“혼자 공부해서 될 문제가 아닙니다.”

“책을 보면…….”

“책은 상황을 보지 못합니다.”

예절서는 분명 그 말을 듣고도 반박하지 않을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이리스는 위원회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위원장님. 에버렛 경에게 정식 검증 전 기본 절차를 보완할 시간을 주실 수 있습니까?”

위원장이 눈썹을 움직였다.

“공녀께서 보증하겠다는 뜻입니까?”

보증.

루카스는 그 단어에 바로 반응했다.

“아닙니다. 보증까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정말로…….”

아이리스가 그를 보았다.

그 시선 하나로 말이 멈췄다.

그녀는 다시 위원장을 보았다.

“보증이 아니라 지도입니다.”

참관석이 술렁였다.

지도.

공녀가 직접.

루카스는 그 술렁임이 어디로 갈지 너무 잘 알았다.

안 됩니다.

그건 안 됩니다.

그는 황급히 말했다.

“공녀님께 폐를 끼칠 수 없습니다.”

아이리스는 짧게 대답했다.

“폐가 아닙니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 혼자 실수한 일이니 제가…….”

“혼자 실수하지 않게 하는 것이 수업입니다.”

루카스는 막혔다.

논리적으로 맞았다.

맞는 말은 늘 가장 위험했다.

세라피나는 아주 즐거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좋네. 개인 지도.”

“전하.”

루카스의 목소리가 거의 울었다.

“그런 말은 제목이 됩니다.”

“이미 될걸?”

미라벨이 펜을 든 채 고개를 끄덕였다.

“됩니다.”

“쓰지 마십시오.”

“아직 제목은 안 정했습니다.”

“그럼 정하지 마십시오.”

미라벨은 밝게 웃었다.

“그건 어렵습니다.”

루카스는 다시 아이리스를 보았다.

“공녀님. 정말 괜찮습니다. 저는 망신을 조금 당해도…….”

“저는 괜찮지 않습니다.”

아이리스의 말은 조용했다.

그래서 더 선명했다.

루카스는 숨을 멈췄다.

아이리스는 시선을 살짝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

“경은 다른 사람의 실수를 가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실수는 너무 쉽게 내놓습니다.”

“그건…….”

“그런 식으로는 품위를 지킬 수 없습니다.”

품위.

루카스에게는 너무 큰 단어였다.

하지만 아이리스가 말하니 이상하게 도망칠 말이 없어졌다.

위원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공녀의 지도가 있다면, 본 위원회는 정식 확인 일정을 며칠 뒤로 미루겠습니다.”

루카스는 귀를 의심했다.

며칠 뒤.

미뤄졌다.

살았다.

아니, 아니었다.

미뤄진 것은 처형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 사이에 공녀의 개인 지도가 붙었다.

참관석은 이미 조용히 달아오르고 있었다.

“공녀가 직접?”

“에버렛 경을?”

“손수건도 아직 돌려받지 않았다던데.”

“이번엔 예절 수업인가.”

루카스는 손수건이라는 단어를 듣고 멈칫했다.

그 문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난 일이 하나도 없었다.

세라피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루카스 경, 축하해.”

“무엇을 축하하시는 겁니까?”

“도망칠 시간이 생겼잖아.”

“수업이 생겼습니다.”

“공녀의 수업이지.”

“그게 더 무섭습니다.”

“그 말을 공녀 앞에서 하는 건 별로 예의가 아니야.”

루카스는 바로 아이리스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리스는 아주 잠깐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 배워야 한다는 겁니다.”

루카스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위원장이 문서를 닫았다.

“그럼 정식 검증 전, 아이리스 공녀의 기본 지도 결과를 참고하겠습니다.”

루카스는 그 문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바로 알았다.

기본 지도 결과.

참고.

사교계가 들으면 이것은 그냥 수업이 아니었다.

공녀가 직접 루카스를 다듬어 공식 무대에 세우는 일이었다.

루카스는 머릿속으로 탈출로를 찾았다.

없었다.

문은 많았다.

하지만 출구가 없었다.

그때 아이리스가 한 걸음 다가왔다.

가까운 거리였다.

너무 가깝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녀가 먼저 다가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방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아이리스는 루카스를 똑바로 보았다.

“에버렛 경.”

“예, 공녀님.”

“오늘부터 자세와 인사 순서부터 보겠습니다.”

“오늘부터입니까?”

“늦출 이유가 없습니다.”

루카스는 속으로 무너졌다.

늦출 이유는 많았다.

마음의 준비.

생존 계획.

신문 대응.

그리고 무엇보다 도망.

하지만 그중 어느 것도 예법상 훌륭한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아이리스는 마지막으로 아주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가르치겠습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그 침묵은 방금 전과 달랐다.

아무도 비웃지 않았다.

아무도 가볍게 떠들지 않았다.

그 대신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공녀가 직접 나섰다.

루카스는 그 생각이 제목이 되는 소리를 들었다.

미라벨의 펜이 종이를 긁었다.

그 소리가 너무 선명해서, 루카스는 차라리 예절위원회가 바로 시험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예절위원회는 움직였고.

아이리스도 움직였다.

그리고 루카스는, 또 한 번 예의 바르게 도망칠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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