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섯 명이 동시에 손을 내밀었다
황실 무도회장은 너무 밝았다.
루카스는 입구에 선 순간부터 눈을 가늘게 떴다.
샹들리에가 세 개.
대리석 기둥이 여섯 개.
악단이 오른쪽.
계단은 정면.
퇴장로는 왼쪽과 뒤쪽.
그는 본능적으로 동선을 세었다.
웨딩홀 알바를 오래 하면 이런 버릇이 생긴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꽃보다 출구가 먼저 보인다.
고급스러운 음악보다 사고 날 만한 계단이 먼저 보인다.
그리고 오늘은 출구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었다.
루카스는 안주머니를 조심스럽게 눌렀다.
접힌 일정표가 있었다.
일요일 밤.
황실 사교회 참석.
본행사 종료 후 귀가.
귀가 인사 및 후속 초대 응답.
무도회 첫 곡 파트너 요청 회신.
마지막 줄이 문제였다.
첫 곡.
그 말은 그냥 음악 한 곡이 아니었다.
이 세계의 사교계에서 첫 곡은 이상하게 무거웠다.
처음엔 루카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춤이면 춤이었다.
현대에도 첫 무대, 첫 입장, 첫 건배 같은 건 있었다.
그런데 귀족들은 첫 곡을 거의 서류처럼 다뤘다.
누구와 섰는가.
얼마나 늦게 손을 잡았는가.
눈을 몇 번 피했는가.
끝나고 몇 걸음 떨어졌는가.
그런 것까지 수군거렸다.
루카스는 그 이야기를 듣고 바로 결론을 냈다.
오늘은 최대한 벽과 친하게 지낸다.
벽은 춤을 신청하지 않는다.
벽은 오해하지 않는다.
벽은 기사도 내지 않는다.
그는 조용히 홀의 가장자리를 향해 움직였다.
“루카스 경.”
한 걸음이었다.
딱 한 걸음 움직였을 뿐인데 실패했다.
루카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세라피나 황녀가 계단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은빛 드레스 자락이 계단을 따라 흐르고, 주변 귀족들이 자연스럽게 길을 비켰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무도회장 전체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처럼.
아니, 정확히는 알고도 즐기는 사람처럼.
“전하.”
루카스는 바로 허리를 숙였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초대한 건 황실이고, 기다린 건 나야.”
“기다리게 해 드릴 뜻은 없었습니다.”
“그 말, 오늘은 꽤 위험한데.”
세라피나가 손끝으로 부채를 접었다.
가벼운 소리가 났다.
주변 귀족들의 시선도 같이 접혀 루카스에게 몰렸다.
“첫 곡이 곧 시작돼.”
“예.”
“그리고 숙녀를 기다리게 하는 건 최악의 무례라며?”
루카스의 등골이 차가워졌다.
왜 그 문장이 여기까지 왔지.
그는 일정표를 다시 누르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예절서는 틀린 적이 없었다.
문제는 항상 필요한 설명을 빼먹는다는 점이었다.
세라피나는 계단 마지막 단에 멈춰 섰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그럼 내 신사님, 첫 곡은 어떻게 할래?”
무도회장이 조용해졌다.
완전히 조용해진 건 아니었다.
악단은 아직 현을 고르고 있었고, 잔을 든 귀족들은 작게 웃고 있었다.
그런데 루카스 귀에는 전부 멀어졌다.
손.
황녀의 손.
공개석상.
첫 곡.
기다리게 하면 무례.
거절하면 더 무례.
받으면 기사.
루카스는 짧은 시간 안에 최악의 경우를 세 가지나 떠올렸다.
그리고 네 번째를 떠올리려는 순간,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잠시만요, 전하.”
아이리스 공녀였다.
그녀는 흰 장갑을 낀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다가왔다.
표정은 평소처럼 차분했다.
차분해서 더 무서웠다.
“에버렛 경은 아직 회신을 하지 않았습니다. 순서를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손을 잡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부를 수 있습니다.”
“공녀는 오해를 싫어하지?”
세라피나가 웃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빨리 왔을까?”
아이리스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예법을 바로잡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바로잡아 봐.”
세라피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이리스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루카스는 둘 사이에 서 있었다.
중앙 홀.
두 권력자의 시선 사이.
퇴장로와 벽은 멀어졌다.
“에버렛 경.”
아이리스가 손을 내밀었다.
“첫 곡의 순서가 문제라면, 가장 안전한 선택은 공개적으로 예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제게 손을 주십시오. 제가 절차를 맞춰 드리겠습니다.”
그 말은 이성적이었다.
너무 이성적이라서 루카스는 순간 흔들렸다.
절차를 맞춰 준다.
이보다 좋은 말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세라피나의 손은 아직 내려가지 않았다.
두 손.
둘 중 하나를 잡으면 하나는 기다리게 된다.
숙녀를 기다리게 하는 것은 최악의 무례.
루카스는 입을 열었다.
“두 분 다 잠시만…….”
“루카스 님.”
세 번째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래서 더 치명적이었다.
릴리아 성녀가 사람들 사이로 조심히 걸어왔다.
그녀는 오늘 연한 금빛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성당의 흰 의복이 아니라 무도회용 드레스였는데도, 걸음마다 기도문처럼 조용했다.
“성녀님.”
루카스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릴리아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신탁이 아니라 초대장을 받고 왔어요.”
“예. 참석해 주셔서…… 아니, 제가 초대한 건 아니지만, 아무튼 무사히 오셔서 다행입니다.”
“무사히 왔으니, 이제 첫 곡을 기다려도 될까요?”
루카스의 입이 멈췄다.
릴리아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가, 한 손을 천천히 내밀었다.
“성당에서는 기다림도 기도라고 해요. 하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면 배가 고파져서요.”
주변에서 아주 작은 웃음이 흘렀다.
루카스는 웃지 못했다.
성녀를 기다리게 하면 무례.
성녀를 배고프게 하면 더 무례.
그는 이제 세 손 앞에 서 있었다.
황녀.
공녀.
성녀.
루카스의 눈앞에 웨딩홀 접수대가 스쳤다.
대기표도 없이 동시에 다가온 손님 셋.
그런데 전부 VIP석 명단에 적힌 손님이었다.
“정리를…….”
루카스는 간신히 말했다.
“잠시만 정리를 하겠습니다.”
“정리?”
세라피나가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나와 공녀와 성녀를?”
“사람을 정리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순서를 말한 겁니다.”
“순서.”
아이리스가 낮게 반복했다.
“그건 중요합니다.”
“기도에도 순서가 있긴 해요.”
릴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스는 아주 작은 희망을 느꼈다.
됐다.
순서라는 단어는 먹힌다.
귀족도 성녀도 순서의 중요성을 안다.
이대로 번호표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
그가 숨을 고른 순간이었다.
“도망치지 마라.”
네 번째 목소리가 등 뒤에서 떨어졌다.
루카스는 천천히 돌아섰다.
레오나 기사단장이 서 있었다.
그녀는 드레스 대신 예복에 가까운 검은 제복을 입고 있었다.
검은 없었다.
그런데 검이 없는 쪽이 더 긴장됐다.
양손이 비어 있다는 뜻이었다.
레오나는 곧장 루카스에게 걸어왔다.
“에버렛 경.”
“레오나 경.”
“첫 곡은 전장이다.”
“예?”
“처음 서는 위치가 중요하다. 뒤로 물러나면 밀린다.”
“저는 밀고 당기는 생각은 없습니다.”
“좋다.”
레오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 옆에 서라.”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네 손.
루카스는 눈을 감고 싶었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더 무례해 보일 수 있었다.
그는 눈을 뜬 채로 죽어 갔다.
“레오나 경, 이건 그런 문제가…….”
“그런 문제다.”
“아닙니다. 첫 곡은 모두가 보는 자리라서, 특정한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알고 있다.”
“알고 계십니까?”
“그래서 왔다.”
루카스는 말문이 막혔다.
모르는 줄 알았는데 알고 왔다.
이건 더 나빴다.
“표본이 네 개.”
이번에는 아주 건조한 목소리였다.
루카스는 고개를 돌렸다.
비앙카 마탑주가 이미 가까이 와 있었다.
언제 왔는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붉은 잉크가 묻은 작은 수첩을 들고 있었다.
“정확히는 네 개의 요청과 하나의 미응답 중심값.”
“마탑주님.”
“루카스 에버렛. 첫 곡은 감정 반응이 가장 잘 드러나는 조건이야.”
“오늘은 연구를 쉬시는 게 어떻습니까.”
“싫어.”
비앙카가 손을 내밀었다.
“공동 기록에 필요한 관측이야. 손.”
다섯 손.
루카스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사고가 아니다.
재난이다.
사고는 수습할 수 있다.
재난은 방송부터 나간다.
그리고 실제로 홀 한쪽에서 펜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사각.
사각사각.
루카스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미라벨이 있었다.
장미일보 기자들과 함께.
그녀는 부채로 입가를 가린 채 아주 밝은 눈을 하고 있었다.
“계속하세요.”
미라벨이 속삭였다.
“아직 제목만 세 개 나왔어요.”
“기록하지 마십시오.”
“그 말씀도 좋네요. 기록하지 말라는 남자.”
“제발요.”
“제발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더 좋아져요.”
루카스는 다시 앞을 보았다.
다섯 명은 모두 손을 내밀고 있었다.
세라피나는 웃으며 기다렸다.
아이리스는 격식을 지킨 자세로 기다렸다.
릴리아는 손끝을 살짝 떨며 기다렸다.
레오나는 전장에 서듯 기다렸다.
비앙카는 이미 기다림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루카스의 머릿속에서는 같은 문장이 반복됐다.
숙녀를 기다리게 하는 것은 최악의 무례.
다섯 명을 기다리게 하면?
루카스는 답을 알고 싶지 않았다.
“스승님.”
아니, 여섯 번째였다.
카르덴 로웰이 어느새 옆에 서 있었다.
그는 진지한 얼굴로 작은 수첩을 들고 있었다.
“지금이 가르침의 순간입니까?”
“아닙니다.”
“다섯 요청을 동시에 받고도 흔들리지 않으시는군요.”
“흔들리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 과연.”
“드러났습니다. 아주 많이 드러났습니다.”
카르덴은 고개를 끄덕이며 적었다.
“다섯 손 앞에서 침묵. 무위연애술 심화.”
“적지 마십시오.”
“명심하겠습니다. 적지 않는 척하겠습니다.”
“정말 적지 마십시오.”
루카스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홀의 시선이 더 모였다.
악단장이 손을 들었다.
첫 곡의 전주가 곧 시작될 모양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손은 다섯 개.
첫 곡은 하나.
거절은 무례.
기다림도 무례.
선택은 스캔들.
도망은 불가능.
루카스는 숨을 들이마셨다.
여기서는 감정이 아니라 운영이다.
웨딩홀에서 신부대기실 앞에 하객이 몰렸을 때도 결국 필요한 건 순서였다.
누가 먼저 사진을 찍을지.
누가 양가 부모님께 먼저 인사할지.
누가 부케를 받을지.
그걸 정하지 못하면 웃던 사람도 얼굴이 굳는다.
그러니 지금도 순서를 정해야 했다.
아주 공정하게.
아주 안전하게.
아무 의미도 담지 않고.
루카스는 다섯 명을 차례로 보았다.
“전하, 공녀님, 성녀님, 레오나 경, 마탑주님.”
다섯 시선이 동시에 그에게 꽂혔다.
그는 더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먼저 이렇게 손을 내밀어 주셔서 영광입니다. 다만 이 자리에서 한 분만 선택하면 나머지 네 분을 기다리게 하는 결례가 됩니다.”
세라피나의 눈이 반짝였다.
아이리스의 입술이 아주 조금 굳었다.
릴리아는 두 손을 모았다.
레오나는 턱을 들었다.
비앙카는 펜을 멈췄다.
루카스는 끝까지 말했다.
“그러니 순서를 정해, 제가 순서대로 모두와 추겠습니다.”
정적.
악단의 현 하나가 짧게 떨렸다.
그 소리만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루카스는 안도했다.
말했다.
드디어 말했다.
이제 합리적으로 순서를 정하면 된다.
그러면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아무도 모욕당하지 않는다.
아무도 기사를 내지 않는다.
그의 안도는 삼 초도 가지 않았다.
세라피나가 먼저 웃었다.
“모두와?”
“예. 다섯 분 모두와 공정하게…….”
“공정하게.”
아이리스가 낮게 말했다.
“공개적으로 같은 예를 갖추겠다는 뜻이군요.”
“예, 그러니까 특정한 의미가 아니라…….”
“모두에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위해 모두에게 같은 책임을 지는 방식.”
“책임이라는 단어는 조금…….”
릴리아가 손을 가슴에 얹었다.
“루카스 님은 기도 순서를 밀어내지 않으시는군요.”
“기도가 아니라 춤입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우신 거겠죠.”
레오나가 짧게 말했다.
“좋은 판단이다.”
“그렇습니까?”
“전장을 나누지 않고 모두를 지킨다.”
“전장이 아닙니다.”
비앙카가 수첩에 다시 적었다.
“동일 조건, 전원 수락. 보기 드문 선택이야.”
“수락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저는 대기 문제를 해결하려는 겁니다.”
“그게 수락이야.”
“아닙니다.”
“기록에는 그렇게 남아.”
“기록을 고쳐 주십시오.”
“싫어.”
루카스는 이마를 짚고 싶었다.
하지만 다섯 손 앞에서 이마를 짚으면 또 어떤 의미가 붙을지 몰랐다.
그는 손을 내렸다.
“잠깐만요. 제가 말한 건, 한 분씩 차례로 모시겠다는 뜻입니다. 첫 곡 전체를 다섯 조각으로 나누겠다는 게 아니라, 이후 곡까지 포함해서…….”
“그러니까 오늘 밤 전부를 배정하겠다는 뜻이네.”
세라피나가 말했다.
“아닙니다.”
“내 신사님, 오늘 밤을 꽤 크게 쓰는구나.”
“그렇게 쓰지 않습니다.”
아이리스가 한 걸음 다가왔다.
“에버렛 경, 공식석상에서 같은 예를 약속한 이상 순서가 중요합니다. 누가 먼저입니까?”
루카스는 멈췄다.
그 질문이 가장 위험했다.
누가 먼저인가.
첫 번째는 의미가 있다.
두 번째는 비교된다.
마지막은 기다린다.
다 틀렸다.
모두 오답이었다.
루카스는 절박하게 주변을 봤다.
시계가 보였다.
악단장도 보였다.
계단도 보였다.
그리고 문득 생각났다.
무도회에는 곡 순서가 있다.
첫 곡만 있는 게 아니다.
궁정 악단의 곡목표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는 살았다.
“곡 순서에 맞추겠습니다.”
“곡 순서?”
아이리스가 물었다.
“예. 무도회는 이미 악단의 순서가 정해져 있을 테니, 제 개인 판단이 아니라 공식 진행 순서에 따르는 것이 가장 공정합니다.”
루카스는 스스로 감탄했다.
좋았다.
이건 진짜 괜찮았다.
개인 선택이 아니다.
공식 진행이다.
책임을 시스템에 넘긴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예약표에 따르는 것이다.
세라피나가 천천히 웃었다.
“황실의 순서에 내 밤을 맡기겠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아이리스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공식 절차를 존중하겠다는 뜻이라면, 반박하기 어렵군요.”
릴리아가 작게 웃었다.
“기도 순서처럼요.”
레오나는 짧게 끄덕였다.
“명령 체계가 있으면 움직이기 쉽다.”
비앙카는 수첩에 줄을 그었다.
“외부 변수에 순서 결정권 위임. 책임 회피가 아니라 분산. 흥미로워.”
“흥미롭지 않습니다. 그냥 안전한 겁니다.”
“안전하게 흥미로워.”
루카스는 졌다.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그때 미라벨이 조용히 기자들에게 말했다.
“제목 하나 더.”
“말하지 마십시오.”
루카스가 본능적으로 막았다.
미라벨은 이미 웃고 있었다.
“황실의 순서로 다섯 숙녀에게 답하다.”
“그건 너무합니다.”
“그럼 이건요. 어느 누구도 뒤로 밀지 않은 남자.”
“그건 더 이상합니다.”
“좋아요. 이상하면 팔려요.”
“팔지 마십시오.”
“장미일보는 꽃을 팝니다. 가끔 가시도 같이요.”
“가시를 빼십시오.”
“그럼 꽃이 안 팔려요.”
루카스는 말을 포기했다.
악단장이 마침내 손을 내렸다.
첫 곡이 시작됐다.
문제는 아직도 다섯 손이 내려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루카스는 공식 순서를 확인하려고 진행관을 찾았다.
하지만 진행관은 이미 멀리 있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세라피나 황녀가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첫 곡은 황실이 열어.”
그 말에 홀 전체가 고개를 숙였다.
루카스는 깨달았다.
공식 순서에 책임을 넘기는 순간, 첫 곡은 세라피나가 된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전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미 실례 안 하려고 모두와 추겠다고 했잖아.”
세라피나가 그의 손을 잡았다.
가볍게.
하지만 홀의 시선은 무겁게.
“자, 내 신사님. 첫 번째 책임부터 져 봐.”
“책임이라는 표현은…….”
음악이 시작됐다.
루카스의 말은 음악에 묻혔다.
첫 스텝은 기적적으로 맞았다.
루카스는 춤을 잘 추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웨딩홀에서 수많은 입장 동선을 봤고, 발을 밟지 않기 위해 어느 정도 눈치가 있었다.
게다가 세라피나는 리드가 능숙했다.
정확히는 루카스가 실수할 만한 곳을 미리 막았다.
“긴장했어?”
“예.”
“솔직하네.”
“거짓말을 하면 더 큰 일이 날 것 같아서요.”
“그럼 이것도 솔직하게 말해 봐.”
세라피나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속삭였다.
“다섯 명 모두와 추겠다는 말, 정말 아무 뜻도 없었어?”
루카스는 바로 대답했다.
“예.”
세라피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게 빠르게 말하면 상처받을 사람도 있어.”
“상처를 드릴 뜻은 없었습니다.”
“그 말이 더 위험하다니까.”
“오늘 위험하지 않은 말이 있습니까?”
세라피나는 잠깐 웃음을 멈췄다.
그리고 아주 작게 웃었다.
“있어.”
“무엇입니까?”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루카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세라피나의 손이 아주 살짝 힘을 줬다.
“오늘은 그거면 돼.”
첫 곡의 마지막 박자가 홀에 퍼졌다.
루카스는 박수를 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겨우 숨을 쉬었다.
하지만 박수가 끝나기도 전에 아이리스가 다가왔다.
“다음 곡입니다.”
“벌써입니까?”
“공식 순서를 따르신다고 하셨습니다.”
“예. 그랬습니다.”
“그러면 지체는 결례입니다.”
예절서가 머릿속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루카스는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아이리스는 그의 손을 잡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하지만 걸음은 정확했다.
아이리스와의 춤은 대화보다 시험에 가까웠다.
각도.
거리.
속도.
시선.
그녀는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루카스는 틀리지 않으려고 필사적이었다.
“에버렛 경.”
“예, 공녀님.”
“모두와 추겠다는 말씀은 위험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셨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이리스는 잠깐 침묵했다.
“그게 더 문제입니다.”
“예?”
“다른 방법이 없을 때에도 예법을 골랐다는 뜻이니까요.”
“저는 그냥 사고를 줄이려고…….”
“사고를 줄이는 방식이 사람의 체면을 세우는 쪽이었습니다.”
아이리스는 그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귀 끝이 아주 희미하게 붉었다.
“불필요하게 품위 있는 선택입니다.”
루카스는 대답을 골랐다.
칭찬인가?
꾸중인가?
둘 다 같았다.
“주의하겠습니다.”
“아니요.”
아이리스가 짧게 말했다.
“계속하십시오. 다만 다음에는 먼저 제게 알려 주십시오.”
“무엇을요?”
“그런 무모한 예법을 쓸 때요.”
두 번째 곡의 박수는 조금 더 짧게 지나갔다.
릴리아는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루카스는 죄책감이 더 컸다.
“성녀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괜찮아요. 기다리는 동안 작은 기도를 했어요.”
“무슨 기도입니까?”
“루카스 님의 발이 무사하기를요.”
“감사합니다. 매우 현실적인 기도입니다.”
릴리아는 웃었다.
그녀와의 춤은 느렸다.
루카스가 맞추기 쉬울 만큼.
하지만 사람들은 느린 춤을 더 다정하게 보았다.
그 사실을 루카스는 세 박자쯤 지나고 깨달았다.
“성녀님, 혹시 조금 빠르게…….”
“빠르게 추면 배가 고파져요.”
“그럼 이 속도가 좋습니다.”
“역시 루카스 님은 사람을 잘 보세요.”
“아닙니다. 배고픈 상태는 중요한 정보라서요.”
“성녀의 배고픔도요?”
“성녀님도 사람이시니까요.”
릴리아의 발이 아주 잠깐 멈췄다.
루카스는 바로 속도를 줄였다.
“죄송합니다. 발을 밟을 뻔했습니까?”
“아니요.”
릴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그 말이 좋아서요.”
루카스는 다시 위기를 느꼈다.
좋다는 말은 위험하다.
오늘은 특히 위험하다.
세 번째 곡이 끝나자 레오나가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
“다음.”
“예.”
“힘들면 말해라.”
“조금 힘듭니다.”
“그래도 서라.”
“말하라면서요.”
“들었다.”
레오나와의 춤은 춤이라기보다 훈련이었다.
그녀는 동작이 짧고 정확했다.
루카스가 한 번 발을 헛디딜 때마다 바로 균형을 잡아 줬다.
“등 펴라.”
“예.”
“시선 내리지 마라.”
“예.”
“도망치지 마라.”
“그건 계속 듣고 있습니다.”
“중요하니까.”
레오나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네가 모두와 추겠다고 했을 때, 나는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정말입니까?”
“한 사람만 지키면 나머지가 빈다. 전열은 그렇게 무너진다.”
“전열이 아니라 무도회입니다.”
“지키는 방식은 같다.”
루카스는 반박을 포기했다.
레오나는 잠깐 그의 손을 고쳐 잡았다.
“내 옆에 서는 걸 두려워하지 마라.”
“두려워하는 건 경이 아닙니다. 상황입니다.”
“그럼 상황을 베면 되겠군.”
“베지 마십시오.”
네 번째 곡이 끝나고, 루카스는 정말로 숨이 찼다.
하지만 비앙카는 이미 손을 내밀고 있었다.
“마지막 표본.”
“표본이라는 말은 피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럼 마지막 변수.”
“더 이상합니다.”
“마지막 춤.”
“그게 좋습니다.”
비앙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춤.”
그 말이 또 이상하게 들렸는지 주변이 술렁였다.
루카스는 즉시 덧붙였다.
“오늘 순서상 마지막이라는 뜻입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더 기록하고 싶어져.”
“기록을 참아 주십시오.”
“힘들어.”
비앙카와의 춤은 의외로 조용했다.
그녀는 발을 거의 틀리지 않았다.
대신 계속 관찰했다.
눈.
손.
호흡.
루카스는 실험대가 된 기분이었다.
“루카스 에버렛.”
“예.”
“다섯 명 모두에게 같은 예를 갖추면, 같은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했어?”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길 바랐습니다.”
“틀렸어.”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흥미로운 선택이야. 차이를 지우려고 같은 행동을 했는데, 오히려 각자의 반응이 더 선명해졌어.”
“그런 해석은 내일 하시면 안 됩니까?”
“지금이 제일 선명해.”
비앙카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네가 가장 피곤할 때가 가장 솔직해.”
“그럼 오늘은 여기서 그만하겠습니다.”
“도망?”
“휴식입니다.”
“같은 말일 수도 있어.”
“제발 다르게 기록해 주십시오.”
다섯 번째 곡의 마지막 인사가 끝나자, 루카스는 박수 소리 속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드디어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다섯 명 모두와 추었다.
아무도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순서도 지켰다.
공식 진행도 따랐다.
이 정도면 사고를 줄인 것이다.
정말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러나 홀의 분위기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커졌다.
귀족들이 한꺼번에 수군거렸다.
“황녀 전하가 첫 번째였어.”
“공녀님은 바로 두 번째였지.”
“성녀님과는 너무 느렸어.”
“기사단장과는 전우 같더군.”
“마탑주가 마지막이라니, 기록을 남기겠다는 뜻인가?”
루카스는 귀를 막고 싶었다.
다 들렸다.
왜 전부 들리지.
왜 아무도 좋은 쪽으로 해석하지 않지.
미라벨이 기자들 사이에서 앞으로 나왔다.
그녀는 얼굴이 환했다.
그 얼굴을 본 순간 루카스는 알았다.
끝난 게 아니었다.
진짜는 지금부터였다.
“에버렛 경.”
미라벨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부탁하지 마십시오.”
“다섯 숙녀와 차례로 춤춘 소감은요?”
“예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미라벨의 눈이 반짝였다.
“예법을 지키기 위해 다섯 마음을 모두 받았다.”
“아닙니다.”
“그럼 다섯 손을 모두 놓지 않았다.”
“그것도 아닙니다.”
“어느 쪽이든 좋아요.”
“좋지 않습니다.”
그때 홀 뒤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저건 위험하군.”
“공식 검증이 필요하겠어.”
루카스는 고개를 돌렸다.
낯선 귀족 몇 명이 서 있었다.
나이가 지긋했고, 옷차림이 단정했으며, 표정은 딱딱했다.
그들은 춤을 보러 온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시험을 보러 온 사람처럼 보였다.
아이리스가 그쪽을 보고 표정을 굳혔다.
세라피나는 부채를 천천히 폈다.
릴리아는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레오나는 어깨를 바로 세웠다.
비앙카는 수첩 한쪽을 접었다.
루카스는 본능적으로 물었다.
“저분들은 누구십니까?”
카르덴이 옆에서 진지하게 답했다.
“예절위원회입니다.”
“예절위원회요?”
“제국의 공식 예법을 심사하는 분들입니다. 스승님께 큰 관심을 보이는 듯합니다.”
“관심을 거둬 주셨으면 합니다.”
“어렵겠습니다.”
“왜요?”
카르덴은 수첩을 내려다봤다.
“오늘 스승님께서는 황녀, 공녀, 성녀, 기사단장, 마탑주 모두에게 같은 예를 갖추셨습니다. 겉으로는 무모하나, 결과적으로 누구도 모욕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괜찮은 것 아닙니까?”
“너무 괜찮아서 문제입니다.”
루카스는 멍하니 카르덴을 봤다.
카르덴은 아주 진지했다.
“저 정도면 검증하고 싶어집니다.”
“저는 검증용 인물이 아닙니다.”
“스승님은 늘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진심입니다.”
“그래서 더 가르침 같습니다.”
루카스는 대답을 포기했다.
그 순간 미라벨이 참지 못하고 외쳤다.
“올해 최대 스캔들입니다!”
장미일보 기자들이 동시에 펜을 들었다.
사각사각사각.
소리가 빗소리처럼 퍼졌다.
루카스는 반사적으로 말했다.
“스캔들이 아닙니다.”
미라벨은 환하게 웃었다.
“그럼 올해 최대 예법 사건으로 하죠.”
“그것도 아닙니다.”
“예절위원회가 움직이면 사건입니다.”
“움직이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건 제가 못 해요. 저는 쓰는 쪽이라서요.”
루카스는 예절위원회 쪽을 다시 봤다.
그들 중 가장 앞에 선 노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은 칭찬이 아니었다.
채점 시작에 가까웠다.
루카스의 머릿속에 문장이 떠올랐다.
다음 순서는 공식 검증일 수 있습니다.
그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도망칠 빈칸은 없었다.
무도회장에도 없었다.
일정표에도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기사 제목에도 없을 예정이었다.
미라벨이 마지막 제목을 불렀다.
“다섯 손을 모두 잡은 남자, 예절위원회를 깨우다!”
루카스는 작게 말했다.
“제발 깨우지 마십시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예절위원회의 시선이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 시선은 아주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다음은 당신 차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