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르덴의 결투 상담
다음 날도 새벽이었다.
이쯤 되면 새벽이 나를 따라다니는 게 아닐까 싶다.
훈련장 문 앞에서 나는 잠깐 멈췄다.
손수건은 챙겼다.
아니, 챙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안 챙기면 더 무서웠다.
전우의 상처를 외면할 셈인가.
누군가 그렇게 말할 것 같았다.
그래서 챙겼다.
챙기면서도 억울했다.
내 인생이 천 조각 하나에 이렇게 휘둘릴 줄은 몰랐다.
“왔군.”
레오나가 안쪽에서 말했다.
오늘도 은빛 갑주였다.
그리고 왼쪽 손목에는 아직 하얀 손수건 매듭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나는 그걸 보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못 본 척.
그게 예의다.
그리고 생존이다.
“좋은 새벽입니다.”
“좋은 새벽이다.”
“저는 오늘도 판단을 보류하겠습니다.”
“오늘은 상담이 있다.”
상담.
나는 그 단어를 듣고 잠깐 안심했다.
훈련보다 낫다.
결투보다 낫다.
칼보다 낫다.
“상담이면 제가 빠져도 되겠습니까?”
“네 상담이다.”
안 낫다.
전혀 안 낫다.
나는 천천히 훈련장 안을 봤다.
카르덴이 서 있었다.
평소보다 더 진지한 얼굴이었다.
목검도 들지 않았다.
그 대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었다.
무섭다.
무기를 든 카르덴보다, 무기를 안 든 카르덴이 더 무섭다.
뭔가 배울 준비가 된 얼굴이었다.
나는 어제 그의 눈을 기억했다.
이미 늦었습니다.
그 말.
그 눈.
정말 늦은 사람이 저기 서 있었다.
카르덴이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루카스 경.”
“예.”
“부디 오늘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
“싫습니다.”
너무 빨랐나.
카르덴이 멈췄다.
레오나도 나를 봤다.
나는 급히 말을 고쳤다.
“아니, 그러니까 저는 누구를 가르칠 자격이 없습니다.”
카르덴은 오히려 감동한 얼굴이 됐다.
“스스로를 낮추는군요.”
“진짜 낮습니다.”
“높은 사람이 낮아지는 법을 보여 주는 것.”
“아닙니다. 그냥 낮습니다.”
“그 시작부터 배우겠습니다.”
시작하지 마.
제발 시작하지 마.
나는 레오나를 보았다.
도와달라는 뜻이었다.
레오나는 짧게 말했다.
“해라.”
도움이 아니었다.
명령이었다.
“기사단장님. 제가 뭘 가르칩니까?”
“네가 어제 했다.”
“저는 상처를 묶었습니다.”
“카르덴은 그걸 보고 배웠다.”
“잘못 배웠습니다.”
카르덴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맞습니다.”
“저는 어제 깨달았습니다.”
깨닫지 마.
이 훈련장에서는 깨달음이 제일 위험하다.
카르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저는 늘 레오나 공녀를 검으로만 상대하려 했습니다.”
“그건 기사니까 그렇겠죠.”
“하지만 루카스 경은 달랐습니다.”
“저는 검을 못 씁니다.”
“그래서 더 대단합니다.”
아니, 못 한다는 말은 대단하다는 말이 아니다.
못 한다는 말이다.
카르덴은 레오나의 손목을 보았다.
나는 보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하얀 손수건이 너무 눈에 띄었다.
정말 너무 눈에 띄었다.
“경은 검을 들지 않고 단장님의 손을 지켰습니다.”
“피가 나서 묶었습니다.”
“그리고 단장님은 그 매듭을 풀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건 제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부분입니다.”
“이해하지 못했기에 가능한 경지일 수도 있지요.”
말이 점점 무서워졌다.
나는 두 손을 들었다.
“연애도, 결투도, 기사도도 모릅니다.”
말하고 나서 나는 멈췄다.
연애.
내 입에서 왜 그 단어가 나왔지.
나는 급히 손을 저었다.
“방금 연애는 취소하겠습니다.”
카르덴의 눈이 반짝였다.
“가장 먼저 취소하시는군요.”
“그 단어가 제일 위험하니까요.”
“위험한 것을 가장 먼저 다룬다.”
“아닙니다. 가장 먼저 버린 겁니다.”
“버릴 정도로 무겁게 여기신다는 뜻이군요.”
“아니요. 그냥 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카르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함부로 쥐지 않는다.”
“예?”
“연애도 검도 같은 이치였군요.”
아니다.
같은 이치가 아니다.
연애와 검을 같은 선반에 올리지 마라.
나는 칼도 못 쓰고 연애도 못 한다.
둘 다 못 하면 보통 스승이 아니라 피해야 할 사람이다.
카르덴은 이미 배움의 얼굴이었다.
“세 가지를 한 번에 부정하셨군요.”
“예. 전부 부정합니다.”
“그럼에도 결과는 남았습니다.”
“결과가 이상한 겁니다.”
“결과를 만든 사람이 스스로 이상하다 말하는 겸손.”
나는 숨을 들이켰다.
침착하자.
29화부터 배웠다.
이 사람들은 말을 하면 할수록 더 크게 오해한다.
그러면 아주 단순하게 말해야 한다.
짧게.
쉽게.
도망치기 좋게.
“카르덴 경.”
“예.”
“레오나 공녀를 상대할 때 제일 중요한 건 하나입니다.”
카르덴이 허리를 폈다.
기사들도 조용해졌다.
레오나도 나를 보았다.
나는 말했다.
“일단 덤비지 마십시오.”
훈련장이 조용해졌다.
카르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검을 들지 않는다.”
“예. 무섭잖습니까.”
“상대가 움직이기 전 마음을 읽는다.”
“아니요. 맞기 전에 피하는 겁니다.”
“맞기 전.”
카르덴은 그 말을 아주 소중하게 반복했다.
나는 불길했다.
“두 번째.”
“예.”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카르덴의 눈이 더 진지해졌다.
“거리를 둔다.”
“예. 칼이 닿지 않을 만큼요.”
“마음이 앞서도 몸은 물러난다.”
“마음은 그냥 집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군요.”
“감정이 아니라 생존입니다.”
“생존을 먼저 두는 사랑.”
“사랑 아닙니다.”
기사 한 명이 작게 숨을 삼켰다.
왜.
나는 바로 덧붙였다.
“정말 아닙니다.”
“부정이 빠르군.”
카르덴이 말했다.
“그 빠름도 배워야겠습니다.”
배우지 말라니까.
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세 번째.”
“예.”
“눈이 마주치면 일단 사과하십시오.”
카르덴이 굳었다.
“이유 없이 말입니까?”
“이유는 나중에 생각해도 됩니다.”
“먼저 사과하고, 이유를 찾는다.”
“예. 그게 제일 안전합니다.”
“상대의 분노보다 빠른 예.”
그럴듯하게 만들지 마.
제발.
나는 손가락을 세웠다.
“그리고 사과는 짧게 하십시오.”
“왜입니까?”
“길게 하면 꼬입니다.”
“마음을 길게 말하지 않는다.”
“마음 말고 변명입니다.”
“변명을 줄이고 진심만 남긴다.”
“진심도 줄이십시오.”
카르덴이 잠깐 멈췄다.
“진심도 말입니까?”
“예. 여기서는 진심도 이상하게 번역됩니다.”
기사 몇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끄덕여.
내 편이 아닌 끄덕임이었다.
“짧은 사과.”
카르덴이 낮게 중얼거렸다.
“긴 시선보다 짧은 예.”
“그런 식으로 외우지 마십시오.”
“외우지 않겠습니다.”
“정말입니까?”
“새기겠습니다.”
그게 더 나쁘다.
레오나가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게 더 무서웠다.
차라리 틀렸다고 해 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레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카르덴은 두 손을 모았다.
“넷째는 무엇입니까?”
“검을 쥔 손은 함부로 건드리지 마십시오.”
말하고 나서 나는 바로 후회했다.
레오나의 손목.
하얀 매듭.
기사들의 시선.
전부 한곳으로 갔다.
나는 급히 말했다.
“저처럼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카르덴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함부로가 중요하군요.”
“예?”
“경은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상처를 보고, 필요할 때, 책임지고 손을 잡았습니다.”
“그냥 피가 나서요.”
“그러니까 필요할 때.”
아.
큰일이다.
이건 내가 말로 판 함정이다.
레오나가 손목을 한 번 내려다봤다.
나는 숨을 멈췄다.
레오나는 짧게 말했다.
“맞는 말이다.”
아니요.
맞지 않다고 해 주세요.
카르덴은 거의 기도하는 얼굴이 됐다.
“단장님께서 인정하셨습니다.”
“인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들었습니다.”
“듣지 마십시오.”
“늦었습니다.”
또 늦었다.
이 사람은 왜 항상 늦나.
나는 이마를 짚었다.
상담은 여기서 끝내야 했다.
그러나 카르덴은 아직 끝낼 얼굴이 아니었다.
“루카스 경. 실전으로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짧게만.”
“없습니다.”
“제가 천천히 공격하겠습니다.”
“공격하지 마십시오.”
카르덴은 이미 목검을 집었다.
왜 상담에 목검이 필요한데.
나는 뒤로 물러났다.
“카르덴 경.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방금 제가 말했잖습니까.”
“거리 유지.”
카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걸음 다가왔다.
“유지한다면서요!”
“상대가 물러나는 폭을 보려 합니다.”
“보지 마십시오!”
나는 한 걸음 물러났다.
카르덴도 한 걸음 다가왔다.
나는 두 걸음 물러났다.
카르덴이 멈췄다.
“과연.”
“뭐가요?”
“먼저 물러나 상대의 속도를 늦춘다.”
“그냥 도망치는 겁니다.”
“도망을 가르침으로 바꾸셨군요.”
“안 바꿨습니다.”
훈련장 옆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카르덴 경이 멈췄다.”
“루카스 경이 싸우지 않고 공격을 끊었다.”
“비무의 흐름을 지웠군.”
나는 그냥 뒤로 갔다.
뒤로 가면 멈추겠지 싶었다.
그게 전부였다.
카르덴은 목검을 가볍게 들었다.
“그럼 이번에는 조금 빠르게 가겠습니다.”
“왜요?”
“배워야 하니까요.”
“배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카르덴이 움직였다.
나는 바로 옆으로 피했다.
정확히는 발이 미끄러졌다.
훈련장 흙바닥에 작은 돌이 있었다.
나는 중심을 잃었다.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망했다.
넘어진다.
그 순간 카르덴의 목검이 내가 있던 자리 위를 지나갔다.
휙.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쳤다.
나는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야.”
훈련장이 멈췄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카르덴은 목검을 든 채 굳어 있었다.
기사들도 굳어 있었다.
레오나만 조용히 보고 있었다.
“방금 보았나?”
누군가 말했다.
보지 마.
그냥 넘어졌다.
“검이 닿기 전에 스스로 자세를 낮췄다.”
“상대의 공격선을 비워 버렸군.”
“저게 방금 말한 거리 유지인가.”
아니다.
저건 돌이다.
돌멩이다.
나는 바닥을 가리켰다.
“여기 돌이 있었습니다.”
카르덴이 천천히 돌을 봤다.
그리고 더 감동한 얼굴이 됐다.
“지형까지 이용하셨군요.”
“아니요. 지형이 저를 이용했습니다.”
“상대가 보기에는 같은 말입니다.”
왜 또 같은 말인데.
레오나가 한 걸음 다가왔다.
나는 얼른 일어나려 했다.
다리가 살짝 저렸다.
“괜찮나.”
레오나가 물었다.
“예. 돌이 조금 강했습니다.”
“돌보다 약한가.”
“대부분의 사람은 돌보다 약합니다.”
레오나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웃은 건가.
아니겠지.
웃었으면 더 큰일이다.
카르덴이 목검을 내려놓았다.
“루카스 경.”
“예.”
“오늘 배운 것을 정리해도 되겠습니까?”
“정리하지 마십시오.”
“첫째, 덤비지 않는다.”
“듣고 있습니까?”
“둘째, 거리를 둔다.”
“카르덴 경.”
“셋째, 먼저 사과한다.”
“그만.”
“넷째, 손은 필요할 때만 책임지고 잡는다.”
기사들이 조용히 감탄했다.
나는 얼굴을 감쌌다.
이 문장은 너무 위험하다.
매우 위험하다.
레오나가 말했다.
“나쁘지 않군.”
“나쁩니다.”
“살아남았다.”
“그건 맞습니다.”
“카르덴도 다치지 않았다.”
“그것도 맞습니다.”
“그럼 됐다.”
왜 결론이 그렇게 간단합니까.
나는 항의하려 했지만, 카르덴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스승님.”
“아닙니다.”
“루카스 경.”
“그건 맞습니다.”
“내일 결투장에서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뭘요?”
“오늘 배운 것을.”
“확인하지 마십시오.”
“실전 없이 배움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완성하지 마십시오.”
카르덴은 이미 결심한 얼굴이었다.
그 얼굴은 검보다 단단했다.
나는 레오나를 봤다.
“기사단장님. 말려 주십시오.”
레오나는 잠깐 카르덴을 보았다.
그리고 나를 보았다.
“다치지 않게 해라.”
“제가요?”
“네 조언이다.”
아니다.
아니라고 했잖습니까.
하지만 훈련장은 이미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카르덴은 목검을 정리하고, 어딘가로 빠르게 걸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정리하지 말라니까.
배우지 말라니까.
확인하지 말라니까.
이 세계 사람들은 왜 부정문을 전부 의지로 읽는가.
나는 그날 훈련이 끝난 뒤에도 한참 훈련장 구석에 서 있었다.
정확히는 도망칠 타이밍을 놓쳤다.
기사들이 나를 지나칠 때마다 한마디씩 했다.
“좋은 가르침이었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는 거리, 깊이 새기겠습니다.”
“먼저 사과한다는 부분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면 또 가르침이 된다.
침묵했다.
그러자 한 기사가 작게 말했다.
“말보다 침묵으로 남은 부분을 스스로 깨닫게 하시는군.”
침묵도 가르침이 됐다.
이제 방법이 없다.
나는 숨 쉬는 것도 조심해야 했다.
숨을 크게 쉬면 ‘상대의 호흡을 받아들인다’ 같은 말이 나올 것 같았다.
레오나는 훈련장 끝에서 손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얀 매듭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나는 그걸 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사람은 보지 않으려는 것을 더 잘 본다.
하얗다.
단단하다.
내 손수건이다.
그리고 지금은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루카스.”
레오나가 불렀다.
“예.”
나는 바로 대답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슬프다.
“카르덴에게 한 말.”
“예?”
“나쁘지 않았다.”
“그건 정말 생존용입니다.”
“그래서 좋다.”
“좋으면 안 됩니다.”
“살아남는 법이니까.”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은 반박하기 어려웠다.
레오나가 손목을 살짝 돌렸다.
“이것도 그렇다.”
“손수건이요?”
“상처가 벌어지지 않는다.”
“그건 좋습니다.”
“네 말도 그렇다.”
“제 말이요?”
“불필요한 상처를 줄인다.”
아.
그렇게 들으면 또 말이 괜찮아 보인다.
나는 싫었다.
내가 틀렸다고 해야 도망갈 수 있는데, 이상하게 맞는 부분이 생기면 발목이 잡힌다.
“그래도 저는 스승이 아닙니다.”
“그건 카르덴이 정할 일이다.”
“아닙니다. 스승 당사자에게도 권리가 있어야 합니다.”
레오나는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거절해라.”
“거절하면 더 배우려 합니다.”
“그럼 도망쳐라.”
“도망치면 회피술로 봅니다.”
레오나는 아주 조금 조용해졌다.
나도 조용해졌다.
둘 다 답을 찾지 못했다.
그 사실이 더 무서웠다.
레오나도 못 푸는 문제가 내 앞에 놓인 것이다.
그 문제 이름은 카르덴이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레오나가 그 문제를 흥미롭게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재미있군.”
“재미없습니다.”
“카르덴이 변했다.”
“제가 원한 변화는 아닙니다.”
“그래도 덜 다친다.”
그 말에 나는 또 막혔다.
덜 다친다.
그건 좋은 말이다.
하지만 좋은 말이 내 목에 밧줄처럼 걸리는 느낌이었다.
이 세계는 좋은 결과도 너무 위험하다.
실수로 좋은 일을 하면, 다음부터 책임자가 된다.
나는 책임자가 되고 싶지 않다.
특히 기사단 책임자는 더더욱 싫다.
레오나가 짧게 말했다.
“내일 보자.”
“내일도요?”
“카르덴이 확인한다.”
“제가 빠지면 안 됩니까?”
“네 말이다.”
내 말.
그게 제일 무서웠다.
내 말은 이제 내 것이 아니었다.
말은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주인이 바뀐다.
특히 이 훈련장에서는 더 그렇다.
내가 살려고 뱉은 말은 누군가의 가르침이 되고,
피하려고 한 걸음 물러나면 누군가의 기술이 되고,
넘어지면 누군가의 비기가 된다.
이쯤 되면 나는 조용히 서 있어도 위험하다.
서 있는 자세마저 누군가 분석할지 모른다.
‘루카스 경은 오늘 무게중심을 왼쪽에 두셨다.’
그런 소리가 들리면 나는 정말 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일은 아무 말도 하지 말자.
움직이지도 말자.
가능하면 숨도 작게 쉬자.
하지만 이 결심도 오래가지 못할 것 같았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내 결심보다 남의 오해가 빠르기 때문이다.
다음 날.
나는 결투장 앞에서 멈췄다.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레오나가 뒤에서 말했다.
“들어가라.”
“오늘 꼭 들어가야 합니까?”
“네 상담이다.”
“상담이 이렇게 커질 일이었습니까?”
레오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문이 열렸다.
결투장 한가운데 카르덴이 서 있었다.
갑옷은 단정했다.
목검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작은 노트가 들려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멈췄다.
노트.
왜 노트.
카르덴은 노트를 펼쳐 들고 아주 진지하게 읽고 있었다.
“일단 덤비지 않는다. 가까이 가지 않는다. 눈이 마주치면 먼저 사과한다. 검을 쥔 손은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
내가 한 말이었다.
망했다.
말이 종이가 됐다.
종이가 되면 더 오래간다.
카르덴이 고개를 들었다.
눈빛이 맑았다.
너무 맑아서 더 무서웠다.
“준비됐습니다, 루카스 경.”
“저는 준비 안 됐습니다.”
그는 노트를 가슴에 소중히 품었다.
그리고 결투장 중앙으로 걸어갔다.
나는 레오나 뒤에서 조용히 비명을 삼켰다.
내 조언이 활자로 굳은 순간이었다.
카르덴이 결투장에 노트를 들고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