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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를 묶었을 뿐입니다 일러스트

상처를 묶었을 뿐입니다

다음 날도 훈련장이었다.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새벽.

훈련장.

레오나.

이 셋은 붙어 다니는 단어가 된 모양이다.

나는 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

어제 레오나는 내게 말했다.

내일도 그 위치다.

그 위치.

내 뒤.

나는 밤새 그 말을 생각했다.

무서운 말이다.

하지만 솔직히 안전했다.

문제는 이 세계에서 안전한 위치는 보통 안전하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훈련장 안으로 들어갔다.

“왔군.”

레오나 발크리아가 이미 서 있었다.

오늘도 은빛 갑주였다.

그리고 오늘도 검을 들고 있었다.

나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좋은 새벽입니다.”

“좋은 새벽이다.”

“저는 아직 그 판단을 보류하겠습니다.”

레오나가 나를 보았다.

“뒤로 와라.”

너무 자연스러웠다.

나는 잠깐 대답을 잃었다.

어제는 명령 같았는데, 오늘은 자리 배정 같았다.

나는 조용히 레오나 뒤로 갔다.

그리고 바로 마음이 편해졌다.

큰일이다.

이제 몸이 이 위치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기사들이 양옆에서 정렬했다.

카르덴도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그 위치군요.”

“예. 물리적으로 안전해서요.”

“전우의 등 뒤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저는 전우가 아니라 생존자입니다.”

카르덴은 진지하게 고개를 저었다.

“겸손은 때로 검보다 깊습니다.”

아니다.

그냥 말이 안 통하는 것이다.

레오나가 짧게 말했다.

“시작한다.”

훈련은 어제보다 빨랐다.

기사들이 차례로 움직이고, 레오나는 앞에서 그 움직임을 받아냈다.

나는 뒤에서 따라갔다.

정확히 말하면 따라간 게 아니다.

숨었다.

레오나가 왼쪽으로 움직이면 나도 왼쪽으로 갔다.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오른쪽으로 갔다.

목검이 보이면 한 발 더 뒤로 갔다.

그 결과, 나는 매우 성실하게 레오나의 그림자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내 의도는 그림자가 아니라 방패 뒤의 민간인이었다.

“좋다.”

레오나가 말했다.

“뭐가요?”

“늦지 않는다.”

“무서우면 빨라집니다.”

“그것도 재능이다.”

그런 재능은 싫다.

훈련장 한쪽에서 기사들이 낮게 수군거렸다.

“단장님의 움직임을 읽고 있어.”

“한 박자 늦지도 빠르지도 않군.”

“등을 맡는다는 건 저런 거지.”

나는 속으로 외쳤다.

아니요.

저는 등 뒤에서 살길을 찾고 있습니다.

그때였다.

오른쪽에서 목검이 날아왔다.

훈련용이라고는 하지만 충분히 아파 보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오른쪽입니다.”

말이 나갔다.

레오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검집째로 목검을 밀어냈다.

탁.

짧은 소리가 났다.

목검을 들었던 기사가 한 걸음 물러났다.

레오나가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봤나?”

“예. 무서워서요.”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니다.”

레오나는 다시 앞을 봤다.

“계속 봐라.”

싫습니다.

보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기사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레오나 뒤에 선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너무 진지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훈련은 계속됐다.

레오나는 방향을 바꿨다.

이번에는 내가 뒤에서 따라오는지 보려는 것 같았다.

왼쪽.

오른쪽.

한 걸음 멈춤.

다시 앞으로.

나는 최대한 늦지 않게 움직였다.

늦으면 목검이 보였다.

목검이 보이면 심장이 먼저 움직였다.

그 결과, 나는 의외로 열심히 따라가고 있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성실하게 움직인 적이 있었나.

아마 없을 것이다.

위험은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든다.

“호흡이 맞는군.”

카르덴이 말했다.

“안 맞으면 맞을 것 같아서 맞추는 겁니다.”

“그게 전장 호흡입니다.”

“살려고 맞추는 겁니다.”

“전장에서는 생존이 곧 호흡입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카르덴과 대화하면 단어들이 갑옷을 입고 돌아온다.

그때 레오나가 검을 세웠다.

기사들이 동시에 멈췄다.

“간격을 좁힌다.”

좁히지 마십시오.

나는 속으로 말했다.

하지만 기사들은 이미 움직였다.

양쪽에서 목검이 가까워졌다.

가상 위협이라고 했다.

가상치고는 나무 냄새가 너무 선명했다.

나는 레오나 망토 뒤로 바짝 붙었다.

그러다 망토 끝을 밟을 뻔했다.

“죄송합니다.”

“괜찮다.”

“망토 밟을 뻔했습니다.”

“넘어지지 않았군.”

“넘어지면 제가 죽을 것 같아서요.”

“잘했다.”

왜 칭찬이지.

훈련장 옆에서 누군가 작게 말했다.

“단장님의 걸음을 해치지 않으려 자기 몸부터 낮췄다.”

“전우의 망토까지 살피는군.”

“섬세하다.”

나는 그냥 밟으면 혼날까 봐 조심했다.

혼나지 않으려는 마음이 이렇게 좋게 포장될 줄은 몰랐다.

레오나는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카르덴이 앞으로 나왔다.

그는 목검을 양손으로 쥐고 깊게 숨을 골랐다.

“단장님. 한 수 부탁드립니다.”

레오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와라.”

카르덴이 움직였다.

빠르다.

역시 원작 남주다.

나는 검을 잘 모르지만, 저건 피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카르덴의 목검이 낮게 들어왔다.

레오나가 몸을 틀었다.

나는 뒤에서 같이 틀었다.

그러다 봤다.

레오나의 왼쪽 손목.

갑주 틈 아래로 붉은 선이 보였다.

처음에는 먼지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피였다.

“잠깐만요.”

내 입이 또 먼저 움직였다.

훈련장이 멈췄다.

레오나가 고개만 돌렸다.

“뭐지?”

“손목이요.”

“괜찮다.”

“안 괜찮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전혀 안 괜찮았다.

상처가 작긴 했다.

하지만 움직일 때마다 피가 맺혔다.

검을 쥐는 손목이다.

거기에 피가 나는데 괜찮다고 하면, 이 세계 기사들은 대체 어디까지 가야 안 괜찮은가.

목이 떨어져도 내일 붙이면 된다고 할 것 같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피가 납니다.”

레오나는 자기 손목을 내려다봤다.

“스쳤군.”

“스쳤으면 닦아야 합니다.”

“훈련 중이다.”

“훈련보다 지혈이 먼저입니다.”

훈련장이 다시 조용해졌다.

아.

또 내가 이상한 말을 했나.

나는 급히 덧붙였다.

“상식적으로요. 상처에 흙 들어가면 곪습니다. 그러면 며칠 쉬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레오나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며칠.”

“예.”

“훈련을?”

“예.”

그제야 레오나는 손목을 내밀었다.

이 사람은 아픈 것보다 훈련을 못 하는 게 더 무서운 모양이다.

나는 품 안을 뒤졌다.

손수건은 있었다.

깨끗했다.

다행이다.

요즘 내 손수건은 너무 많은 사건을 일으켰다.

하지만 피를 닦는 데 손수건보다 나은 물건도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레오나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바로 후회했다.

훈련장 전체가 숨을 삼켰다.

왜.

손목을 잡아야 닦지.

공중에서 지혈할 수는 없지 않나.

레오나는 손목을 빼지 않았다.

그게 더 문제였다.

나는 최대한 빨리 끝내기로 했다.

“조금 따가울 수 있습니다.”

“괜찮다.”

“안 괜찮으셔도 괜찮다고 하실 것 같아서 믿음이 안 갑니다.”

레오나가 나를 봤다.

나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계속해라.”

나는 손수건으로 피를 닦았다.

상처는 길지 않았다.

얕았다.

그런데 위치가 애매했다.

검을 쥐면 다시 벌어질 것 같았다.

나는 손수건을 접었다.

그리고 손목 위에 대고 감았다.

한 바퀴.

두 바퀴.

풀리지 않게 당겼다.

“너무 조이나요?”

“아니다.”

“손가락 움직여 보십시오.”

레오나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잘 움직였다.

좋다.

나는 끝을 묶었다.

단단하게.

혹시 풀리면 또 피가 날 테니까.

정말 그 생각뿐이었다.

매듭 모양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매듭을 묶는 순간, 훈련장 공기가 이상해졌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기사들이 전부 보고 있었다.

카르덴은 목검을 든 채 굳어 있었다.

첫 번째 기사가 작게 말했다.

“저 매듭…….”

두 번째 기사가 입술을 떨었다.

“전우 매듭이다.”

나는 손을 멈췄다.

“예?”

전우.

또 그 단어다.

나는 천천히 매듭을 내려다봤다.

그냥 매듭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냥 잘 안 풀리게 묶은 손수건이었다.

하지만 기사들의 얼굴은 전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았다.

카르덴이 조용히 다가왔다.

“루카스 경.”

“아닙니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닙니다.”

카르덴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레오나의 손목에 묶인 손수건을 보며 숨을 삼켰다.

“전장에서 다친 전우의 손목을 묶는 것은, 그 검을 함께 지키겠다는 뜻입니다.”

“저는 상처를 지킨 겁니다.”

“같은 뜻입니다.”

“다릅니다.”

“기사단에서는 같습니다.”

왜 기사단에서는 모든 다른 말이 같은 말이 되지.

나는 다급히 레오나를 보았다.

“기사단장님. 설명해 주십시오. 이건 그냥 지혈입니다.”

레오나는 손목을 내려다봤다.

하얀 손수건.

붉은 피가 아주 조금 배어 있었다.

내가 묶은 매듭.

레오나는 손가락으로 그 매듭을 한 번 눌렀다.

“단단하군.”

“풀리면 안 되니까요.”

“내가 검을 놓치지 않게 하려는 건가.”

“상처가 벌어지지 않게 하려는 겁니다.”

“검을 쥐는 손이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죠.”

레오나가 고개를 들었다.

기사들이 다시 술렁였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망했다.

내 말이 전부 반대로 들어가고 있다.

나는 손을 뻗었다.

“그러면 제가 다시 묶겠습니다. 아주 평범하게요. 누가 봐도 그냥 치료처럼 보이게…….”

레오나가 손목을 뒤로 뺐다.

빠르다.

엄청 빠르다.

내 손은 허공을 잡았다.

“기사단장님?”

레오나는 나를 보았다.

표정은 평소와 같았다.

차갑고.

곧고.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얼굴.

그런데 귀 끝이 아주 조금 붉었다.

나는 못 본 척했다.

그게 예의다.

그리고 생존이다.

레오나가 낮게 말했다.

“왜 다시 묶지?”

“오해를 막으려고요.”

“오해가 아니다.”

“오해입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여기서 목소리가 떨리면 또 진심을 숨기는 걸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안 떨리게 말하려고 하니 더 떨렸다.

“정말입니다. 저는 기사단 전통을 모릅니다. 전우 매듭도 방금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의도 없는 매듭입니다.”

“의도 없이 손이 먼저 움직였나.”

“피가 보여서요.”

“생각보다 먼저 움직였군.”

“상처 보면 보통 그렇습니다.”

“그게 중요하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발 중요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상처를 보고 멈췄다.”

“피가 나서요.”

“훈련보다 먼저 보았다.”

“피가 나서요.”

“내 손을 지키려 했다.”

“상처가 벌어질까 봐요.”

레오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짧게 말했다.

“충분하다.”

뭐가.

뭐가 충분합니까.

나는 주변을 봤다.

기사들은 이미 감동하고 있었다.

한 기사는 가슴에 주먹을 얹었다.

다른 기사는 고개를 숙였다.

카르덴은 눈이 젖어 있었다.

왜 울 것 같은데.

울지 마.

내가 더 울고 싶다.

“루카스 경.”

카르덴이 말했다.

“저는 오늘 또 배웠습니다.”

“배우지 마십시오.”

“진정한 전우는 상대가 강하다고 방치하지 않는군요.”

“방치하면 상처가 곪습니다.”

“그 상처까지 책임지는 마음.”

“소독의 문제입니다.”

“깊습니다.”

“얕은 상처입니다.”

카르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얕은 상처를 깊게 보셨군요.”

아니.

정말 얕다니까.

나는 말하기를 포기했다.

이 훈련장에서는 말이 칼보다 위험하다.

레오나는 손목을 한 번 움직였다.

손수건 매듭은 풀리지 않았다.

잘 묶였다.

그 사실이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

차라리 느슨했으면 다시 묶을 명분이라도 있었을 텐데.

나는 마지막으로 시도했다.

“그래도 피가 멎으면 풀어야 합니다.”

“왜지?”

“손수건이니까요.”

“네 손수건인가.”

“예.”

“그렇군.”

레오나는 손목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말했다.

“보관하겠다.”

“아니요. 세탁해야 합니다.”

기사들이 또 술렁였다.

나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세탁도 위험한 단어였나.

기사 한 명이 낮게 말했다.

“피를 지우겠다는 건가.”

“오염을 지우겠다는 겁니다.”

“전우의 흔적을 오염이라 부르다니, 겸손이 지나치군.”

“겸손이 아니라 세탁입니다.”

“그 세탁까지 책임지겠다는 뜻인가.”

나는 이마를 짚었다.

이제는 빨래까지 이상한 의미가 붙었다.

손수건 하나가 이렇게 커질 일인가.

분명 원래 세계에서는 손수건은 그냥 손수건이었다.

여기서는 손수건이 청혼서가 되고, 축복물이 되고, 전우 매듭이 된다.

이쯤 되면 문제는 손수건이 아니라 이 세계의 해석력이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면 새 붕대를 가져오겠습니다.”

“필요 없다.”

“깨끗한 게 좋습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피가 묻었습니다.”

“그래서 기억할 수 있다.”

기억하지 마십시오.

그냥 상처가 나았으면 잊어 주십시오.

나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꺼내는 순간 또 ‘잊지 않겠다는 반대말’ 같은 걸로 해석될 것 같았다.

레오나가 아주 천천히 나를 봤다.

“피가 묻었다.”

“그래서 세탁을…….”

“전우의 피와 손길이 함께 묻었다.”

“그 표현은 너무 위험합니다.”

“위험하지 않다.”

“저한테는 위험합니다.”

레오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매듭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 동작 하나에 훈련장 전체가 조용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뭔가 선언이 온다.

막아야 한다.

하지만 늦었다.

레오나가 말했다.

“이 매듭은 풀지 않겠다.”

훈련장이 터졌다.

“단장님께서 인정하셨다!”

“전우 매듭이다!”

“루카스 경이 단장님의 검을 지킨다!”

“검뿐이겠나. 손목이다. 검을 쥐는 손이다.”

“그러면 검의 생명줄을 맡긴 셈이지.”

아니다.

나는 상처를 묶었다.

그냥 상처를 묶었다.

나는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이건 의학입니다.”

기사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장의 의학이지.”

“그냥 지혈입니다.”

“전우를 살리는 첫 기술이다.”

“아니요. 누구든 피가 나면 하는 겁니다.”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일을 단장님께 했다는 게 중요하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말하면 말할수록 상황이 나빠진다.

이 훈련장은 대화가 아니라 번역이 문제다.

내 말은 모두 기사단어로 번역된다.

지혈은 서약.

손수건은 징표.

풀리지 않게 묶었다는 말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

그럼 나는 앞으로 침묵해야 한다.

침묵은 뭐로 번역될까.

깊은 각오?

안 된다.

그것도 위험하다.

카르덴이 다가왔다.

그는 아직도 눈이 젖어 있었다.

“루카스 경.”

“울지 마십시오.”

“울지 않았습니다.”

“눈이 젖었습니다.”

“전우의 마음을 본 눈입니다.”

“그런 눈은 닦으십시오.”

카르덴은 진심으로 감동한 얼굴이었다.

“저는 늘 강함을 검에서만 찾았습니다. 그런데 경은 오늘, 상처를 보는 눈이 검보다 먼저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피가 보이면 당연히 봅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히 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카르덴 경. 그렇게 말하면 제가 대단한 사람처럼 들립니다.”

“대단하지 않다고 말하는 태도까지 배울 만합니다.”

“배우지 마십시오. 제발.”

“이미 늦었습니다.”

뭐가 늦었는데.

나는 카르덴의 눈빛을 보고 깨달았다.

정말 늦었다.

저 눈은 이미 뭔가를 결심한 눈이었다.

그 말은 조금 맞는 것 같아서 더 싫었다.

나는 반박하려다 말았다.

레오나가 손목을 천천히 돌렸다.

“움직임에 문제없다.”

“그래도 오늘은 무리하지 마십시오.”

“왜지?”

“방금 묶었으니까요.”

“네가 묶었다.”

“그래서요?”

“풀리지 않는다.”

기사들이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저 한마디는 또 오래갈 것이다.

분명 내일쯤이면 기사단 식당에서 ‘루카스 경의 매듭은 단장님의 검도 붙잡는다’ 같은 말이 돌 것이다.

아니, 식당까지 가면 다행이다.

이 사람들은 훈련 구호로 만들 수도 있다.

나는 다급히 말했다.

“그건 제가 세게 묶어서 그런 겁니다. 기술적인 문제입니다.”

“기술도 마음이 따라야 한다.”

카르덴이 말했다.

따르지 마.

마음아, 제발 아무 데도 가지 마.

나는 속으로 내 마음을 붙잡았다.

나는 조용히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도망칠 길을 찾았다.

레오나가 말했다.

“어디 가나.”

“물 좀 마시러…….”

“내 뒤다.”

또 그 위치였다.

나는 레오나 뒤로 돌아갔다.

가장 안전한 자리.

그리고 지금 이 훈련장에서 가장 위험한 오해의 한복판.

하얀 손수건 매듭이 레오나의 손목에서 흔들렸다.

나는 그걸 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다음부터는 손수건을 들고 다니지 말자.

아니, 손수건을 안 들고 다니면 더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

‘왜 준비하지 않았나.’

‘전우의 상처를 외면할 셈인가.’

분명 이런 말이 나올 것이다.

그러면 나는 붕대를 들고 다녀야 하나.

붕대를 들고 다니면 또 그건 전우를 기다렸다는 뜻이 될 것 같다.

답이 없다.

진짜로 없다.

손수건을 가져도 문제고, 안 가져도 문제다.

이 세계에서 천 조각 하나가 인생을 이렇게 흔들 줄은 몰랐다.

그러면 분명 누군가 물을 것이다.

왜 손수건을 버렸냐고.

전우의 징표를 부정하는 거냐고.

나는 눈을 감았다.

답이 없다.

정말 답이 없다.

레오나는 앞을 보며 다시 한 번 말했다.

“이 매듭은 풀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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