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명 다과회가 더 수상해졌다
“오늘부터 당신은 내 연구 대상이야.”
비앙카의 선언은 도서관에 아주 조용히 떨어졌다.
조용했지만, 루카스에게는 종소리처럼 들렸다.
장례식 종.
그는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마탑주님, 그 말씀은 제 동의를 받은 뒤에 다시 논의하겠다는 뜻입니까?”
비앙카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동의 절차부터 넣었어.”
“그럼 아직 확정은 아닌 겁니다.”
“협조 요청 후보.”
“후보도 부담스럽습니다.”
“그 반응도 참고는 돼.”
루카스는 눈앞이 잠깐 어두워졌다.
비앙카는 악의가 없어 보였다. 그게 문제였다. 악의가 있으면 항의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정말로 새로 발견한 이상한 도서관 분류표를 보는 얼굴이었다.
세라피나는 웃고 있었다.
아이리스는 손수건을 더 꽉 쥐고 있었다.
릴리아는 마들렌 봉투를 품에 안고 있었다.
레오나는 팔짱을 낀 채 루카스를 보고 있었다.
장미일보 기자는 문밖에서 펜을 들고 있었다.
다섯 개.
황녀의 밤.
공녀의 손수건.
성녀의 마들렌.
기사단장의 검집.
마탑주의 붉은 서명.
루카스는 깨달았다.
이건 하나씩 해명하면 안 된다.
하나를 풀러 가면 다른 하나가 생긴다. 장부 하나를 지우려다 연구 대상이 됐다. 검집 끈 하나를 묶었다가 새벽 약속이 생겼다. 손수건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마들렌은 신탁이 됐다. 황녀의 밤은 처음부터 너무 컸다.
한 번에 정리해야 한다.
공개적이고, 공정하고, 예의 있는 자리.
현대 웨딩홀에서도 그랬다. 신랑 친구와 신부 친구가 따로 오해하면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정리했다. 축의대 줄이 꼬이면 안내판을 세웠다. 좌석이 겹치면 명단을 다시 봤다.
행사는 사람을 모아 놓고 정리해야 끝난다.
루카스는 결심했다.
“여러분.”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섯 시선이 동시에 그를 향했다.
그건 생각보다 무서웠다.
루카스는 목을 가다듬었다.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 제가 따로 시간을 마련하겠습니다.”
세라피나의 눈이 가늘게 휘었다.
“따로?”
“예. 조용한 자리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이리스가 물었다.
“정식으로 말입니까?”
“가능하면 예의를 갖추겠습니다.”
릴리아가 부드럽게 웃었다.
“다과가 있으면 좋겠어요. 긴 이야기는 목이 마르니까요.”
“준비하겠습니다.”
레오나가 짧게 말했다.
“새벽 전인가.”
“가능하면 그 전에 끝내고 싶습니다.”
비앙카가 기록지를 펼쳤다.
“동의서 논의 시간.”
“동의서가 아닙니다.”
“그럼 사전 면담.”
“해명입니다.”
장미일보 기자가 문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해명 다과회.”
“기자님은 오시면 안 됩니다.”
“초대장이 오면 가겠습니다.”
“보내지 않겠습니다.”
“그럼 사실 확인은 문밖에서 하겠습니다.”
루카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면 또 기사감이 된다.
그날 밤, 루카스는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편지를 썼다.
다섯 장.
각각 같은 시간, 같은 장소.
황궁 동쪽 작은 다과실.
그는 문구를 몇 번이나 고쳤다.
처음에는 이렇게 썼다.
오늘 일에 대해 해명드리고 싶습니다.
너무 딱딱했다.
다시 썼다.
조용히 말씀드릴 일이 있습니다. 다과실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루카스는 펜을 멈췄다.
조용히.
기다리겠습니다.
위험한 단어처럼 보였다.
그는 다시 고치려 했다. 그때 머릿속에 예절서의 문장이 떠올랐다.
불필요하게 긴 초대장은 상대를 불안하게 하므로, 목적과 장소를 간결히 적을 것.
맞는 말이었다.
언제나 예절서는 맞는 말만 했다.
문제는 그 맞는 말이 그의 인생을 망친다는 점이었다.
루카스는 한 줄을 덧붙였다.
오해를 줄이기 위한 자리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그는 다섯 장을 각각 봉했다. 한 봉투에 다섯 이름을 쓰면 무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초대받는 사람마다 격이 다르고 호칭도 다르다. 황녀 전하와 공녀님과 성녀님과 기사단장과 마탑주를 한 줄에 나란히 쓰는 것도 이상했다.
그래서 따로 보냈다.
그게 첫 번째 실수였다.
다음 날 오후.
황궁 동쪽 작은 다과실은 평화로워 보였다.
햇빛은 부드러웠고, 테이블에는 작은 케이크와 마들렌, 얇게 썬 과일, 따뜻한 차가 놓였다. 루카스는 의자 여섯 개를 정확히 배치했다. 한쪽에 자신, 맞은편에 다섯 자리.
원탁으로 바꿀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원탁은 너무 회의 같았다. 긴 테이블은 너무 심문 같았다. 작은 티테이블 여러 개는 더 위험했다. 둘씩 앉으면 누가 누구 옆인지가 문제가 된다.
결국 그는 타협했다.
긴 테이블이지만 간격은 넉넉하게.
웨딩홀 좌석 배치와 비슷했다. 친척끼리 싸우지 않게 섞고, 전 애인이 같은 테이블에 앉지 않게 조심하고, 주례석과 음향 장비 사이를 막지 않는 그 복잡한 일.
여긴 전 애인이 아니라 황녀, 공녀, 성녀, 기사단장, 마탑주였다.
난이도가 더 높았다.
문이 열렸다.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세라피나였다.
그녀는 은은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호위는 문밖에 세워 두었다. 다과실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의자 여섯 개를 보고 잠깐 멈췄다.
“루카스 경.”
“전하.”
“조용히 말씀드릴 일이 있다고 했지?”
“예. 오해를 줄이고 싶어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세라피나는 테이블을 둘러보았다.
“오해를 줄이기엔 의자가 많네.”
“모두 오실 예정입니다.”
“모두?”
그 짧은 말이 다과실 온도를 조금 낮췄다.
루카스는 바로 설명했다.
“예. 이번 일은 여러분께 각각 연결되어 있으니, 한 자리에서 정리하는 편이 공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세라피나는 웃었다.
웃었지만, 눈은 조금 더 즐거워졌다.
“아. 나만 부른 게 아니었구나.”
“예?”
“괜찮아. 더 재밌어졌어.”
“재미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건 루카스 경 생각이고.”
세라피나는 가장 안쪽 자리에 앉았다. 굳이 상석도 아니고, 가장 눈에 잘 띄는 자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가 앉자 그 자리가 상석처럼 보였다.
잠시 뒤 아이리스가 들어왔다.
그녀는 완벽하게 정돈된 걸음으로 들어오다가 세라피나를 보고 멈췄다.
“전하.”
“아이리스, 너도 초대받았네.”
“에버렛 경께서 조용히 말씀드릴 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리스의 시선이 루카스에게 향했다.
루카스는 고개를 숙였다.
“공녀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손수건에 관한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라피나가 부채를 펼쳤다.
“아직도 가지고 있나 봐?”
아이리스는 아주 조금 굳었다.
“정리 중입니다.”
“손수건을?”
“의미를.”
루카스는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 의미를 포함해서 모두 설명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아이리스가 의자를 보았다.
“모두라면.”
문이 다시 열렸다.
릴리아가 들어왔다.
그녀는 두 손으로 작은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늦지 않았나요?”
“아닙니다, 성녀님.”
루카스는 일어섰다.
릴리아는 방 안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전하와 공녀님도 계셨군요.”
세라피나가 웃었다.
“루카스 경이 모두를 불렀대.”
릴리아는 잠시 바구니를 내려다보았다.
“저는 마들렌 이야기를 하시는 줄 알았어요.”
“그 이야기도 포함됩니다.”
“그럼 잘됐어요. 조금 더 구워 왔거든요.”
루카스는 바구니를 보았다.
마들렌이었다.
아주 예쁘게 포장되어 있었다.
장미일보가 보면 ‘성녀의 답례 마들렌’이라고 쓸 모양이었다.
“성녀님, 이건 너무 감사하지만…….”
“부담 갖지 마세요. 기도 끝에 남은 재료로 만든 거예요.”
세라피나가 중얼거렸다.
“기도 끝에 마들렌이 남는구나.”
릴리아는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은요.”
아이리스는 작게 한숨을 삼켰다.
루카스는 속으로 머리를 짚었다.
문이 네 번째로 열렸다.
레오나가 들어왔다.
그녀는 다과실을 한 번 훑어보고 바로 루카스를 보았다.
“훈련 전 회의라 들었다.”
“회의는 맞지만 훈련은 아닙니다.”
“새벽 전이라면 충분하다.”
“새벽은 아직 확정된 일정이 아닙니다.”
“확정이다.”
짧았다.
너무 짧아서 반박할 틈도 없었다.
레오나는 의자 하나를 잡아당겼다. 앉기 전, 그녀의 시선이 테이블 위 마들렌과 손수건과 세라피나의 부채를 지나갔다.
“인원이 많군.”
“그래서 안전합니다.”
루카스는 빠르게 말했다.
“공개적이고, 공정하고, 오해가 적은 자리입니다.”
레오나는 잠시 생각했다.
“등을 맡길 사람을 여럿 앞에 두는 건 나쁘지 않다.”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럼 무슨 의미지.”
“해명입니다.”
문이 마지막으로 열렸다.
비앙카가 들어왔다.
그녀는 기록지와 얇은 서류철을 들고 있었다. 서류철 위에는 작은 글씨가 보였다.
동의서.
루카스는 즉시 말했다.
“마탑주님, 그 서류는 테이블에 올리지 말아 주십시오.”
비앙카는 멈췄다.
“왜?”
“이 자리는 연구 동의서 작성 자리가 아닙니다.”
“초대장에는 오해를 줄이는 자리라고 쓰여 있었어.”
“맞습니다.”
“연구 범위 오해도 줄여야 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게 더 문제였다.
비앙카는 빈자리에 앉으며 다섯 사람을 차례로 보았다.
“황녀, 공녀, 성녀, 기사단장.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기록하지 마십시오.”
“아직 머릿속이야.”
“그것도 부담스럽습니다.”
세라피나가 부채 너머로 웃었다.
“루카스 경, 초대장은 다 똑같이 보냈어?”
“예.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목적입니다.”
아이리스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같은 목적.”
릴리아는 조용히 말했다.
“모두에게 같은 문장을 보내셨군요.”
레오나는 짧게 덧붙였다.
“전우에게도.”
비앙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변수 통제는 좋네.”
“통제가 아닙니다.”
루카스는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 다섯 개의 시선이 동시에 올라왔다.
찻잔의 김이 얇게 흔들렸다.
루카스는 두 손을 모았다. 행사 진행할 때 하던 자세였다. 너무 앞으로 숙이면 비굴해 보이고, 너무 뻣뻣하면 건방져 보인다. 적당히 정중하게.
“먼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라피나가 턱을 괴었다.
아이리스는 손수건을 무릎 위에 올렸다.
릴리아는 마들렌 바구니를 살짝 밀어 두었다.
레오나는 팔짱을 풀지 않았다.
비앙카는 펜을 들었다가 루카스의 눈치를 보고 내려놓았다.
좋다.
한 명은 막았다.
루카스는 말을 이었다.
“최근 며칠 사이 생긴 오해를 정리하려고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오해.”
아이리스가 낮게 반복했다.
“예. 손수건은 공녀님의 체면을 지켜 드리려던 것이고, 마들렌은 성녀님이 끼니를 놓치신 것 같아서였습니다. 레오나 경의 검집 끈은 정말 안전 문제였고요.”
“그리고 나는?”
세라피나가 물었다.
루카스는 잠깐 멈췄다.
황녀의 밤.
가장 위험한 첫 사건.
“전하께서는…… 넘어지실 뻔했기에 부축해 드렸습니다.”
“오늘 밤을 책임지겠다고도 했지.”
“그건 부상의 책임을 말한 겁니다.”
“내 밤은 꽤 안전했어.”
“그 점은 다행입니다.”
“다행으로 끝낼 거야?”
루카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면 또 들어간다.
비앙카가 작게 말했다.
“회피 반응.”
“마탑주님.”
“기록은 안 했어.”
“말도 기록처럼 들립니다.”
릴리아가 부드럽게 끼어들었다.
“루카스 님, 저는 오해라고만 생각하지 않아요.”
“성녀님.”
“마들렌을 주신 건 정말 평범한 배려였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저는 그 평범함이 좋았습니다.”
그 말은 조용했다.
장난이 아니었다.
루카스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릴리아는 이어 말했다.
“누구나 성녀라고 부르는데, 그날은 그냥 배고픈 사람으로 봐 주셨으니까요.”
다과실의 공기가 잠깐 부드러워졌다.
루카스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받아들여 주셨다면 감사하지만, 신탁이나 특별한 인연으로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필요는 없죠.”
릴리아가 웃었다.
“하지만 기도는 원래 필요보다 조금 더 커요.”
루카스는 다시 막혔다.
아이리스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에버렛 경.”
“예, 공녀님.”
“손수건도 단순한 배려였다고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그렇다면 왜 돌려받으려 서두르지 않으셨습니까?”
“공녀님께서 곤란하실까 봐…….”
아이리스의 시선이 조금 흔들렸다.
“그런 점이 문제입니다.”
“예?”
“체면을 지켜 주고, 돌려받으려 몰아붙이지 않고, 의미를 물어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공개적으로 부정하면 공녀님이 곤란해지실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문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루카스는 이해하지 못했다.
정말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얼굴을 본 세라피나가 작게 웃었다.
“루카스 경은 참 성실하게 위험해.”
레오나가 짧게 말했다.
“위험을 모른다.”
“위험은 알고 있습니다.”
“아니다. 칼날은 보는데 맹세는 못 본다.”
“검집 끈은 맹세가 아니었습니다.”
“내게는 등이다.”
레오나의 말은 짧았다.
그러나 무거웠다.
“전장에서 등은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는다.”
루카스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는 전장에 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도 봤다.”
“무엇을요?”
“끊어지기 전의 끈.”
레오나는 그 한마디만 하고 입을 다물었다.
루카스는 숨을 삼켰다.
비앙카가 펜을 들었다.
“정리하면, 루카스 에버렛은 각자의 빈틈을 정확히 건드렸어.”
“요약하지 마십시오.”
“황녀는 지루함. 공녀는 체면. 성녀는 사람 취급. 기사단장은 등. 나는 설명 불가능한 결과.”
“마탑주님.”
“긴 말 싫어하면 줄일게. 다섯 명이 다르게 반응했다.”
그 말은 맞았다.
맞아서 더 위험했다.
루카스는 손을 들어 모두를 진정시키려 했다.
“그래서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건 하나입니다.”
다섯 명이 그를 보았다.
이번에는 정말 조심해야 했다.
짧고, 오해 없이, 공정하게.
루카스는 천천히 말했다.
“저는 어느 한 분께 특별한 뜻을 품고 행동한 것이 아닙니다.”
세라피나의 웃음이 깊어졌다.
아이리스는 눈을 내리깔았다.
릴리아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레오나는 미간을 좁혔다.
비앙카는 펜을 잡았다.
루카스는 더 빨리 말했다.
“그러니까, 누구를 가볍게 여긴 것도 아니고, 누구를 더 우선한 것도 아닙니다.”
“더.”
비앙카가 중얼거렸다.
“우선.”
“마탑주님, 단어를 줍지 마십시오.”
루카스는 마지막 문장을 꺼냈다.
그가 보기엔 가장 안전한 문장이었다.
가장 공정하고, 가장 예의 있고, 가장 평범한 문장.
“저는 모두를 동등하게 대하고 싶습니다.”
다과실이 멈췄다.
정말로 멈춘 것 같았다.
찻잔의 김만 얇게 올라갔다.
루카스는 그 침묵을 좋은 신호로 착각했다.
드디어 통했나?
세라피나가 먼저 웃었다.
“동등하게.”
아이리스가 낮게 말했다.
“모두를.”
릴리아는 아주 작게 숨을 들이켰다.
“대하고 싶다…….”
레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원 앞에서 말했다.”
비앙카가 펜을 들었다.
“공동 선언. 다섯 명 동시 적용.”
“아닙니다.”
루카스는 바로 말했다.
“정말 아닙니다. 제가 말한 동등함은 예의의 동등함입니다. 차별 없이, 오해 없이, 같은 기준으로…….”
“같은 기준.”
비앙카가 적었다.
“마탑주님!”
세라피나는 부채로 입가를 가렸다.
“루카스 경, 그런 말은 황궁에서도 쉽게 못 해.”
“전하, 저는 모두에게 같은 예의를 지키겠다는 뜻입니다.”
“응. 다섯 명 모두에게 같은 예의를.”
“그렇습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 아직 모르네.”
아이리스가 조용히 말했다.
“에버렛 경. 귀족 사회에서 ‘모두를 동등하게’라는 말은 가볍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정정하겠습니다.”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취소할 수는 없습니까?”
비앙카가 고개를 들었다.
“서명도 아니고 발언이야. 더 어려워.”
“왜 더 어렵습니까?”
“증인이 다섯.”
문밖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사각.
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
루카스는 천천히 문을 보았다.
“기자님.”
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
장미일보 기자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사실 확인 중이었습니다.”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듣지도 말아야 했습니다.”
“문밖은 공공 회랑입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이 세계는 왜 항상 틀린 말이 아닌 말로 사람을 찌르는가.
기자는 들고 있던 수첩을 살짝 보였다.
“제목은 거의 정리됐습니다.”
“정리하지 마십시오.”
“황녀의 밤, 공녀의 손수건, 성녀의 마들렌, 기사단장의 검집, 마탑주의 붉은 서명. 그리고 오늘의 발언.”
기자가 눈을 빛냈다.
“다섯 숙녀를 동등하게 대하고 싶다.”
“예의적으로.”
“예의 깊게.”
“아닙니다.”
“차별 없이.”
“그 단어도 위험합니다.”
“공정하게.”
“그것도 쓰지 마십시오.”
기자는 감탄하듯 말했다.
“부정하실수록 문장이 좋아집니다.”
루카스는 정말로 앉고 싶었다.
하지만 앉으면 패배하는 것 같았다.
세라피나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루카스 경, 차라리 내가 검열해 줄까?”
“전하께서 검열하시면 더 커질 것 같습니다.”
“잘 아네.”
아이리스가 기자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
“장미일보는 무분별한 표현을 삼가야 합니다.”
기자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공녀님의 명예를 지키는 표현으로 쓰겠습니다.”
아이리스의 얼굴이 굳었다.
릴리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무 자극적인 제목은 좋지 않아요.”
“성녀님의 축복처럼 부드럽게 쓰겠습니다.”
“그것도 이상한데요.”
레오나는 짧게 말했다.
“과장하지 마라.”
기자는 펜을 멈췄다.
“기사단장님의 엄정한 경고도 반영하겠습니다.”
“반영하지 마라.”
비앙카가 담담히 말했다.
“기자는 외부 변수야. 제거는 어렵고, 조건을 제한해야 해.”
“마탑주님, 도와주시는 겁니까?”
“아니. 기사 제목이 결과에 영향을 주니까.”
루카스는 결국 의자에 앉았다.
해명 다과회는 해명에 실패했다.
정확히는 다과만 남고 해명은 사라졌다.
그 뒤로도 루카스는 세 번 더 설명했다. 손수건은 체면을 지켜 드리려던 것이고, 마들렌은 배고파 보이셔서였고, 검집은 안전 문제였고, 붉은 서명은 실수였고, 황녀의 밤은 부축이었다.
다섯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들었다.
세라피나는 재미있어했다.
아이리스는 더 조용해졌다.
릴리아는 마들렌을 하나 더 건넸다.
레오나는 새벽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비앙카는 동의서 첫 장의 제목을 바꿨다.
장미일보 기자는 문밖에서 끝까지 기다렸다.
다음 날 아침.
루카스는 방 문 앞에 놓인 조간신문을 보았다.
신문은 너무 깨끗하게 접혀 있었다.
그 깨끗함이 불길했다.
그는 천천히 펼쳤다.
장미일보 1면.
굵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황녀의 밤부터 마탑주의 붉은 서명까지.
추방 예정 영식 루카스 에버렛, 다섯 숙녀 앞에서 선언.
‘저는 모두를 동등하게 대하고 싶습니다.’
제국 사교계, 전례 없는 공정한 애정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