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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주는 서명을 이상하게 해석한다 일러스트

마탑주는 서명을 이상하게 해석한다

“내일 새벽, 나와 단둘이 만나자.”

레오나의 말은 짧았다.

그래서 더 도망칠 틈이 없었다.

루카스는 잠깐 말을 잃었다. 무도회장 한쪽에서는 아직 박수가 남아 있었고, 기사단원들은 레오나의 명령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얼굴이었다. 세라피나는 즐겁게 웃고 있었고, 아이리스는 손수건을 접은 채 입을 다물었다. 릴리아는 마들렌 봉투를 품에 안고 있었다.

장미일보 기자는 이미 펜을 들고 있었다.

새벽.

단둘.

만나자.

세 단어가 너무 위험했다.

루카스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레오나 경, 혹시 그 말씀은 기사단 훈련 관련 확인이라는 뜻입니까?”

레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다행이다.

루카스는 안도하려 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적어 주십시오.”

그는 장미일보 기자를 향해 말했다.

기자는 아주 밝게 웃었다.

“기사단장과 새벽에 단둘이 훈련 확인. 좋습니다.”

“좋지 않습니다.”

“훈련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니 한층 건전해졌습니다.”

“그 건전함이 아닙니다.”

세라피나가 부채 끝으로 입가를 가렸다.

“루카스 경, 새벽 약속까지 생겼어. 밤은 내 책임이고, 새벽은 레오나 경 차례인가?”

“전하, 제발 시간을 나누지 말아 주십시오.”

아이리스가 차갑게 말했다.

“에버렛 경은 일정 관리가 필요해 보입니다.”

“공녀님, 저는 일정을 늘린 적이 없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늘었습니다.”

반박하기 어려웠다.

릴리아는 부드럽게 웃었다.

“새벽이면 공복이실 텐데요.”

“성녀님, 저는 괜찮습니다.”

“마들렌을 준비해 드릴까요?”

“준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장미일보 기자의 펜이 다시 움직였다.

“성녀, 새벽 마들렌 지원 검토.”

“그것도 쓰지 마십시오.”

루카스는 속으로 두 손을 들었다.

이대로 있으면 내일 새벽 전에 이미 사교계에서 사망한다. 기사단장과 단둘이 만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최소한 검집 끈 관습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디까지가 무례고 어디부터가 서약인지 확인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새벽에 가서 또 다른 끈을 묶게 될 수도 있었다.

그건 막아야 한다.

루카스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내일 아침 일정에 무례가 없도록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레오나가 짧게 물었다.

“도망치나.”

“준비입니다.”

“좋다. 도망보다 낫다.”

세라피나가 웃었다.

“내 신사님, 준비라는 말도 위험해.”

루카스는 못 들은 척했다.

그는 무도회장 가장자리로 물러났다. 뛰지 않았다. 뛰면 또 기사가 된다. 황녀에게서 도망치는 영식, 성녀의 신탁을 부정한 영식, 기사단장과 새벽 약속을 잡은 영식이 도망까지 치면 제목이 완성된다.

걸어야 했다.

천천히.

예의 있게.

최대한 존재감 없이.

물론 장미일보 기자가 세 걸음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기자님.”

“예, 에버렛 경.”

“왜 따라오십니까?”

“사실 확인입니다.”

“제가 어디로 가는지 확인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디로 가시는지가 사실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루카스는 결국 황실 도서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무도회장과 이어진 작은 회랑 끝에 도서관이 있었다. 귀족들이 쉬며 시집이나 가문 연감을 보는 곳이라고 들었다. 지금은 무도회 중이라 사람이 적을 것이다.

조용한 곳.

책이 있는 곳.

그리고 아마도 기사단 예법을 찾을 수 있는 곳.

현대였다면 검색창에 ‘기사단 검집 끈 의미’라고 치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여긴 검색창이 없었다. 대신 두꺼운 책과 장부와, 의미가 너무 많은 예절이 있었다.

도서관 문 앞에 도착하자 노년의 사서가 고개를 들었다.

“열람이십니까?”

“예. 기사단 예식 관습에 관한 자료를 찾고 싶습니다.”

사서의 눈이 아주 잠깐 루카스 뒤쪽으로 향했다.

장미일보 기자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루카스는 고개를 저었다.

“동행은 아닙니다.”

“사실 확인입니다.”

“동행 아닙니다.”

사서는 더 묻지 않았다. 직업인의 품위였다. 그는 장부를 루카스 앞으로 밀었다.

“성함과 가문, 열람 목적을 적어 주십시오.”

드디어 평범한 절차다.

루카스는 안심했다.

방명록.

웨딩홀에도 있었다. 신랑 신부 이름 옆에 축의금 봉투를 내고, 하객 명단에 이름을 적는 그 평범한 절차. 이름, 소속, 목적. 아무 의미도 없다. 아니, 이 세계에서는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장부는 장부다.

그는 펜을 들었다.

검은 잉크병이 옆에 있었다. 루카스는 펜촉을 담갔다.

말라 있었다.

펜촉이 종이를 긁기만 했다.

사서는 다른 책장을 정리하느라 등을 돌리고 있었다. 루카스는 주변을 보았다. 바로 옆에 작은 잉크병이 하나 더 있었다. 붉은색이었다.

붉은 잉크.

잠깐 망설였다.

하지만 장부에는 이미 여러 색의 기록이 있었다. 검은 글씨, 남색 글씨, 갈색 글씨. 붉은 표시도 몇 줄 있었다. 아마 담당자가 표시할 때 쓰는 색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서명은 해야 했다.

루카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방명록에 이름만 적는다.

정확히, 또박또박.

그게 예의다.

그는 붉은 잉크로 이름을 적었다.

루카스 에버렛.

그 순간 예절서의 문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서명은 읽는 사람이 오해하지 않도록 정자로 남길 것.

그래서 더 또박또박 적었다.

가문명도 적었다.

열람 목적에는 최대한 건조하게 썼다.

기사단 예식 관습 확인.

다 쓴 뒤에야 루카스는 숨을 내쉬었다.

평범하다.

이번에는 정말 평범하다.

그때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흥미로워.”

루카스는 펜을 든 채 멈췄다.

도서관 안쪽 그림자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보라색 머리카락이 촛불 아래 어둡게 빛났다. 둥근 안경 뒤의 눈은 졸린 듯 반쯤 감겨 있었지만, 장부를 보는 순간만큼은 아주 선명했다.

여인은 품에 두꺼운 기록지를 안고 있었다. 허리에는 작은 수정구가 매달려 있었고, 손가락에는 잉크 자국이 남아 있었다.

비앙카 아르카디아.

최연소 마탑주.

원작에서는 계약서와 마법진을 들고 등장하는 괴짜 천재였다. 사람의 감정도 실험 결과처럼 적고, 질투도 표본 접근 권한 문제라고 부르는 여자.

루카스는 본능적으로 펜을 내려놓았다.

펜이 위험해 보였다.

비앙카는 장부 위의 붉은 글씨를 내려다보았다.

“루카스 에버렛.”

“예, 마탑주님.”

“붉은 잉크를 썼네.”

“검은 잉크가 말라 있었습니다.”

“그래서 붉은 잉크를 선택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비앙카는 안경을 밀어 올렸다.

“가장 가까운 변수를 선택. 우연으로 보기엔 결과가 좋다.”

불길하다.

루카스는 곧바로 말했다.

“혹시 도서관에서 붉은 잉크를 쓰면 안 되는 규칙이 있습니까?”

“도서관에서는 큰 문제가 아니야.”

다행이다.

“마탑에서는 문제가 되지.”

비앙카가 장부의 붉은 글씨를 손끝으로 짚었다.

“마탑 자료가 섞인 장부에서 붉은 서명은 공동 관찰 기록을 열람하겠다는 표시야. 접근 권한을 열어 달라는 뜻으로도 쓰이고.”

다행이 아니었다.

루카스는 천천히 장부에서 손을 뗐다.

“저는 마탑 장부에 서명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는 황실 도서관이지만, 이 장부는 오늘 마탑 자료 열람자도 함께 기록하는 임시 장부야.”

“그 설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설명문은 저쪽에 있어.”

비앙카가 손가락으로 책상 구석을 가리켰다. 작은 종이가 있었다. 루카스는 그걸 보았다.

너무 작다.

웨딩홀에서도 안내문은 컸다. 화장실 방향, 축의대 위치, 신부 대기실. 잘못 가면 사람이 꼬이니까 큼직하게 붙였다. 그런데 이 세계는 가장 위험한 안내문을 찻잔 받침만 하게 둔다.

루카스는 정중히 말했다.

“제가 미처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필요하다면 다시 작성하겠습니다.”

“이미 작성했어.”

“취소할 수 있습니까?”

“이미 본 걸 못 본 척하긴 어렵지.”

“서명은 취소될 수 있습니다.”

비앙카의 눈이 조금 커졌다.

“흥미로워. 서명 취소부터 확인하는 사람이군.”

“표본이 아닙니다.”

“표본이라고 부르면 싫어함. 기록.”

비앙카는 기록지를 펼쳤다.

사각.

펜이 움직였다.

루카스는 바로 한 걸음 물러났다.

“마탑주님, 저를 기록하지 말아 주십시오.”

“왜?”

“동의한 적이 없습니다.”

비앙카의 펜이 멈췄다.

그녀는 루카스를 보았다.

“동의.”

“예. 연구든 기록이든, 당사자 동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먼저 말하는군.”

“당연한 절차입니다.”

비앙카는 잠깐 조용해졌다.

루카스는 이번엔 통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동의라는 말은 현대나 이 세계나 중요해야 한다. 연구 대상이니 표본이니 하는 말을 들었지만, 절차를 말하면 멈출 수 있을 것이다.

비앙카가 낮게 말했다.

“좋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번엔 동의서부터 꺼낼게.”

아니다.

멈춘 게 아니었다.

순서를 바꾼 것뿐이었다.

루카스는 급히 손을 들었다.

“동의서를 주셔도 서명하지 않을 겁니다.”

“왜?”

“연구 대상이 될 생각이 없습니다.”

“이미 일이 벌어졌어.”

비앙카는 기록지를 한 장 넘겼다.

거기에는 짧은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루카스는 멀리서도 몇 단어를 볼 수 있었다.

황녀.

손수건.

마들렌.

검집.

루카스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건 뭡니까?”

“관찰 기록.”

“언제부터 기록하셨습니까?”

“황녀 전하가 네게 책임을 요구한 순간부터.”

“처음부터군요.”

“처음부터는 아니야. 네가 넘어지는 황녀를 잡기 전까지는 평범한 추방 예정 영식이었어. 그 뒤로 이상해졌지.”

루카스는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는 정말 그 뒤로 이상해졌다. 정확히는 이 세계가 이상했다. 예의를 지킬수록 사건이 커졌다.

비앙카는 손가락으로 기록지의 줄을 짚었다.

“비슷한 행동이 반복돼. 체면을 세워 주고, 위험을 막고, 부담을 덜고, 장비까지 챙겼지.”

“상식적인 행동입니다.”

“결과는 상식적이지 않아.”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황녀의 파트너 선언. 공녀의 손수건 보관. 성녀의 신탁 발언. 기사단장의 새벽 단독 호출. 그리고 붉은 서명.”

장미일보 기자가 문가에서 작게 감탄했다.

“정리력이 좋으십니다.”

기자는 펜 끝을 세웠다.

“황녀의 밤, 공녀의 손수건, 성녀의 마들렌, 기사단장의 검집, 마탑주의 붉은 서명…… 다섯 번째 구도 완성입니다.”

루카스는 돌아보았다.

“아직 계셨습니까?”

“사실 확인 중입니다.”

비앙카가 기자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외부 변수는 조용히.”

기자는 입을 다물었다.

루카스는 처음으로 비앙카가 조금 고마웠다.

아주 조금.

비앙카는 다시 루카스를 보았다.

“같은 행동에 반응이 다섯 개나 붙었어. 기록할 만하지.”

“다섯 번째는 반응이 아닙니다. 제가 실수로 붉은 잉크를 쓴 겁니다.”

“실수도 변수야.”

“마탑주님.”

루카스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저는 도서관 장부에 열람자 이름을 적었습니다. 공동연구 계약도 아니고, 접근 권한 동의도 아니고, 어떤 마법적 약속도 아닙니다.”

비앙카는 잠깐 생각했다.

“그럼 네 의도는 열람.”

“맞습니다.”

“열람 목적은 기사단 예식 관습 확인.”

“맞습니다.”

“이유는 레오나 발렌이 내일 새벽 단독 만남을 요구했기 때문.”

“그 표현은 조금 조심해 주십시오.”

“사실이야.”

“사실도 조심해야 합니다.”

비앙카가 눈을 가늘게 떴다.

“흥미로워. 같은 사실도 말투에 따라 난리가 난다는 걸 알고 있군.”

“오늘 밤 충분히 배웠습니다.”

“학습 속도도 빠르군.”

“칭찬으로 받기 어렵습니다.”

비앙카는 기록지에 다시 무언가 적었다.

루카스는 재빨리 말했다.

“기록하지 말아 주십시오.”

“지금 건 네가 한 말이야.”

“그래도 제 말입니다.”

“그래서 기록 가치가 있어.”

절차가 통하지 않는다.

아니, 절차를 말할수록 더 흥미로워한다.

루카스는 책상 위의 장부를 보았다. 붉은 잉크로 적힌 자신의 이름이 너무 선명했다. 결혼식 방명록에 이름을 적었는데 갑자기 혼인신고서였다고 하는 느낌이었다.

이 세계의 종이는 왜 전부 위험한가.

그때 세라피나가 도서관 문 앞에 도착했다.

“비앙카, 이번에는 계약서야?”

비앙카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아직 계약서는 아니야. 동의서 꺼내기 직전.”

“전 단계라면 더 위험한데?”

아이리스도 뒤따라 들어왔다. 그녀는 도서관 안을 둘러보고, 장부 위의 붉은 이름을 보았다.

눈빛이 더 차가워졌다.

“에버렛 경.”

“공녀님, 이번에는 정말 장부입니다.”

“장부에 붉은 잉크로 서명하셨군요.”

“검은 잉크가 말라 있었습니다.”

“확인하고 쓰셨어야 합니다.”

“맞습니다.”

루카스는 바로 인정했다.

아이리스는 잠깐 멈췄다. 그렇게 순순히 인정할 줄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다음부터는 먼저 물어보십시오.”

“그러겠습니다.”

비앙카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공녀의 반응은 화를 참고 있는 쪽에 가까워. 보호하려는 느낌도 조금 있고.”

아이리스의 눈썹이 움직였다.

“마탑주님.”

“수정할게. 보호하려는 건 아직 확정 아님.”

“그 문제가 아닙니다.”

릴리아는 조심스럽게 들어와 장부를 보았다.

“붉은 글씨가 꽤 선명해요.”

“성녀님, 불길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아니에요. 기도문도 가끔 붉은 잉크로 적어요. 잊지 않으려고요.”

“저는 잊혀지고 싶습니다.”

릴리아는 안타깝다는 듯 웃었다.

“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

레오나는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도서관 문이 조금 좁아 보일 만큼 존재감이 컸다. 그녀는 장부를 한 번 보고, 루카스를 보았다.

“도망이 아니라 준비라더니.”

“준비 중이었습니다.”

“장부까지 남겼군.”

“남기고 싶어서 남긴 건 아닙니다.”

비앙카가 고개를 들었다.

“레오나 발렌. 네 반응도 필요해.”

“필요 없다.”

“경계 반응 확인.”

“비앙카.”

레오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루카스를 위험하게 하지 마라.”

도서관이 조용해졌다.

루카스는 또 깨달았다.

이번에도 말이 위험했다.

루카스를 위험하게 하지 마라.

그건 기사단장답게 안전을 말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이 방에는 세라피나, 아이리스, 릴리아, 비앙카, 장미일보 기자가 있었다.

장미일보 기자의 펜이 떨렸다.

“기사단장의 보호 발언…….”

“아닙니다.”

루카스가 즉시 말했다.

“레오나 경은 안전을 말씀하신 겁니다.”

비앙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전 발언. 보호 쪽으로도 볼 수 있음.”

“분류하지 마십시오.”

“그럼 임시 보류.”

“보류도 하지 마십시오.”

세라피나는 즐겁게 도서관 책장에 기대었다.

“루카스 경, 이쯤 되면 그냥 각자 한 줄씩 적는 게 어때?”

“무엇을 말입니까?”

“루카스 경을 어떻게 오해했는지.”

“전하.”

“비앙카가 좋아하겠네. 표본이 많아지니까.”

비앙카의 눈이 아주 조금 밝아졌다.

“좋은 제안이야.”

“좋은 제안 아닙니다.”

아이리스가 차갑게 말했다.

“그런 장난은 품위에 맞지 않습니다.”

비앙카는 아이리스를 보았다.

“품위 때문에 반대. 하지만 손수건은 아직 가지고 있음.”

아이리스가 손수건을 든 손을 등 뒤로 숨겼다.

너무 늦었다.

릴리아는 마들렌 봉투를 품 안으로 더 넣었다.

그것도 늦었다.

레오나는 검집 끈 쪽으로 손을 내렸다.

그것도 이미 늦었다.

루카스는 이 방의 공기가 점점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도서관은 피난처가 아니었다. 오히려 기록이 남는 곳이었다. 말, 서명, 반응, 시선까지 전부 남는 곳.

비앙카는 장부를 닫지 않았다.

“루카스 에버렛.”

“예.”

“너는 이상해.”

“그 말은 오늘 많이 들었습니다.”

“아니. 대부분은 네 행동을 감정으로 해석해. 나는 결과로 볼게.”

“그 결과도 오해입니다.”

“오해가 반복되면 패턴이야.”

비앙카는 붉은 잉크로 적힌 이름 아래 작은 점을 찍었다.

루카스는 기겁했다.

“지금 뭘 하신 겁니까?”

“표시.”

“지워 주십시오.”

“지울 수 있어. 다만 종이가 좀 지저분해져.”

“그런 말을 하지 말아 주십시오.”

비앙카는 아주 작게 웃었다.

감정이 드러난 웃음이라기보다는, 답을 찾은 사람이 연필을 내려놓을 때의 표정이었다.

“걱정 마. 영혼 계약은 아니야.”

“그 말이 오히려 무섭습니다.”

“머리카락도 안 뽑아. 동의 전에는.”

“동의 후에도 하지 마십시오.”

“그럼 멀리서 관찰부터.”

루카스는 머리를 짚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또 비앙카가 두통 반응이라고 적을 것이다.

그는 손을 내리고 정중히 말했다.

“마탑주님, 저는 관찰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내일 새벽에는 기사단장님 일정이 있고, 그 전에 기사단 관습을 확인해야 하며, 지금은 장부 서명 취소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비앙카는 조용히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일정이 많군.”

“그렇습니다.”

“관찰 가치가 더 높아졌어.”

“왜 그렇게 됩니까?”

“여러 집단이 한 사람에게 동시에 반응하고 있어. 황실, 공작가, 성당, 기사단, 마탑. 일부러 모으려 해도 어려운 조합이야.”

루카스는 주변을 보았다.

세라피나는 재미있어했고, 아이리스는 불쾌해했고, 릴리아는 걱정했고, 레오나는 경계했고, 기자는 행복해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싫었다.

비앙카가 기록지를 접었다.

“정리할게.”

“정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루카스 에버렛은 그냥 예의를 차렸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황실, 공작가, 성당, 기사단, 마탑이 전부 다르게 반응했다. 그리고 본인은 계속 아니라고 한다.”

“그건 정리가 아니라 사건을 키우는 겁니다.”

“그리고 본인은 동의와 절차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 부분만 기억해 주십시오.”

“좋아. 동의와 절차 항목을 추가해서 장기 관찰.”

“아닙니다.”

비앙카는 붉은 잉크병을 닫았다.

딸깍.

작은 소리였다.

그런데 루카스에게는 판결처럼 들렸다.

비앙카는 장부 위의 이름을 한 번 더 보았다. 그리고 루카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오늘부터 당신은 내 연구 대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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