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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 합류는 벌칙이 아니었나요 일러스트

기사단 합류는 벌칙이 아니었나요

예절서는 말했다.

[숙녀를 기다리게 하지 마십시오.]

나는 그 문장을 보고 굳었다.

다섯 명의 숙녀.

황녀, 공녀, 성녀, 기사단장, 마탑주.

장미일보 특별호가 그 다섯 사람을 한 장에 묶어버린 직후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 예절서는 나에게 숙녀를 기다리게 하지 말라고 했다.

기다리게 하지 말라는 말은 보통 좋은 말이다.

문제는 이 세계에서 좋은 말은 대체로 내 목을 조른다는 점이다.

“루카스 경.”

공작부인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들렸다.

“잠시 쉬어도 괜찮아요. 다만 문 앞에 손님이 하나 더 왔군요.”

하나 더.

나는 그 표현에서 불길함을 느꼈다.

문이 열렸다.

은빛 갑주가 먼저 보였다. 짧은 망토. 허리의 검. 그리고 사람을 만나러 온 표정이라기보다 전투 전에 병력을 점검하러 온 표정.

레오나 발크리아였다.

그녀가 나를 봤다.

“에버렛 경.”

“예, 기사단장님.”

“나와라.”

첫마디부터 용건이 너무 선명했다.

“어디로 말입니까?”

“훈련장.”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한 걸음 물러났다.

훈련장.

그 단어는 나에게 데이트 장소가 아니었다. 벌 받는 장소였다. 군대 다녀온 사람은 안다. 운동장으로 나오라는 말은 대개 좋은 뜻이 아니다.

아, 나는 군대도 안 갔다.

그런데 왜 이미 혼나는 기분이지.

세라피나 황녀가 부채를 접으며 웃었다.

“어머. 레오나 경은 특별호를 보고 바로 움직였군요.”

레오나는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기사단은 느리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데이트 신청도요?”

“훈련 신청입니다.”

“비슷하네요.”

“다릅니다.”

레오나의 대답은 단호했다.

나는 그 단호함이 조금 반가웠다. 그래, 훈련이다. 데이트가 아니다. 이건 로맨스가 아니라 벌이다.

벌도 싫지만 로맨스 오해보다는 낫다.

그때 릴리아 성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루카스 님, 너무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훈련 전에는 무언가 드셔야 해요.”

성녀님.

왜 자연스럽게 보내시는 겁니까.

아이리스 공녀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훈련장이라면 안전 인원이 필요하겠군요.”

“예?”

“루카스 경이 다치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 말은 고마웠다.

정말 고마웠다.

그런데 왜 다들 내가 끌려가는 것을 막지는 않는가.

비앙카 마탑주는 눈을 반짝였다.

“기사단식 접근. 흥미롭네. 성녀제, 다과회, 특별호 다음은 신체 반응 관찰인가.”

“관찰하지 마십시오.”

“이미 시작했어.”

나를 둘러싼 세계는 너무 빠르게 나를 실험대에 올렸다.

레오나는 내 앞으로 다가왔다.

“에버렛 경.”

“예.”

“어제 특별호를 봤다.”

아.

기사단장님도 보셨구나.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 기사에는 과장이 많았습니다. 저는 아무 의도도 없었습니다.”

“알고 있다.”

오.

이해자가 있었다.

레오나는 잠시 내 허리께를 봤다. 정확히는 내가 예전에 그녀의 검집 끈을 묶어줬던 쪽을 보는 것 같았다.

“너는 대체로 의도 없이 움직인다.”

“그건 조금 슬픈 평가입니다만.”

“그래서 확인이 필요하다.”

“무엇을요?”

“네가 내 옆에 설 수 있는지.”

공작부인이 작게 웃었다.

세라피나 황녀는 부채 뒤에서 눈을 반짝였다.

아이리스 공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찻잔 손잡이를 한 번 더 고쳐 잡았다.

릴리아 성녀는 두 손을 모았다.

비앙카 마탑주는 작은 종이에 뭔가를 적었다.

나는 주변 반응을 보고 깨달았다.

방금 말은 망했다.

“기사단장님. 혹시 그 ‘옆’이라는 게 물리적인 옆입니까?”

“그렇다.”

다행이다.

“훈련장 대열 기준입니까?”

“그렇다.”

좋다. 살아났다.

“그럼 제가 옆에 서는 건 안전상 위험하지 않을까요? 저는 검술을 모릅니다.”

레오나가 잠깐 멈췄다.

“그래서 데려가는 거다.”

왜 결론이 그렇게 나옵니까.

나는 바로 해명했다.

“저는 기사단의 훈련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방해하지 않게 가르친다.”

“체력이 부족합니다.”

“기른다.”

“검을 못 듭니다.”

“처음부터 검을 들게 하진 않는다.”

“그럼 뭘 합니까?”

“서라.”

서기.

좋다. 그 정도면 가능하다.

나는 희망을 느꼈다.

“그냥 서 있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처음에는.”

희망이 반으로 줄었다.

기사단 훈련장은 공작가 회랑보다 훨씬 시끄러웠다.

목검이 부딪히는 소리, 발을 구르는 소리, 누군가의 짧은 구령. 햇빛 아래 갑주와 검집 끈이 번쩍였다.

나는 문턱에서 멈췄다.

여기는 사람이 예의 바르게 죽는 장소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레오나는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정렬.”

기사들이 일제히 멈췄다.

저게 가능한가.

식당 알바 때도 사장님이 ‘잠깐만요’라고 해도 손님 세 명은 계속 부르던데.

기사들은 한 줄로 섰고, 나는 자연스럽게 가장 뒤에 숨으려 했다.

레오나가 보지도 않고 말했다.

“에버렛 경. 내 옆이다.”

들켰다.

나는 얌전히 걸어갔다.

기사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꽂혔다.

아니, 나는 오늘 처음 왔다.

입단한 적 없다.

계약서도 안 썼다.

이 세계는 왜 자꾸 나를 소속시켜.

한 기사 청년이 눈을 빛냈다.

“단장님, 이분이 그 검집 끈의…….”

“입 다물어라.”

레오나가 짧게 끊었다.

“예!”

입은 닫혔지만 눈은 전혀 닫히지 않았다.

다들 너무 궁금해하고 있었다.

나는 살기 위해 웃었다.

“저는 잠시 견학하러 온 것뿐입니다.”

기사 하나가 작게 중얼거렸다.

“견학이라고 하셨다.”

다른 기사가 더 작게 말했다.

“처음부터 대열 옆에 서는데?”

“단장님 옆 견학이면 사실상 입단 시험 아닌가?”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레오나는 목검 하나를 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양손을 들었다.

“기사단장님, 저는 무기를 잡으면 주변 분들이 위험합니다.”

“네가?”

“제가 놓칠 수 있습니다.”

“그건 위험하다.”

드디어 통했다.

레오나는 목검을 다시 내려놓았다.

“오늘은 검을 들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대신 내 옆에서 보폭을 맞춘다.”

“보폭이요?”

“전장에서는 옆 사람이 갑자기 멈추면 죽는다.”

그건 맞다.

매우 맞다.

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방해되지 않게 한 걸음 뒤에 서겠습니다.”

레오나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뒤가 아니라 옆이다.”

“하지만 옆은 방해될 수 있습니다.”

“옆에 서야 보인다.”

“무엇이 보입니까?”

“내가 다치는지.”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건 좀 반칙이었다.

레오나가 짧게 덧붙였다.

“네가 예전에 그랬다. 느슨한 검집 끈은 위험하다고.”

아.

그 사건.

나는 정말 검집 끈이 풀릴까 봐 묶어줬을 뿐이었다. 누가 봐도 안전 문제였다. 그러나 기사단 문화에서는 그게 무슨 전장 반려 서약처럼 번져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부정하면 더 이상했다.

“그건 기사단장님이 다치시면 안 되니까요.”

훈련장이 조용해졌다.

왜.

나는 아주 상식적인 말을 했다.

레오나는 나를 봤다.

검 손잡이 위에 놓인 그녀의 손가락이 한 번 움직였다.

“그 말을 훈련장 한가운데서 하는군.”

“하면 안 됩니까?”

“아니다.”

레오나는 고개를 돌렸다.

귀 끝이 아주 조금 붉어졌다.

“좋다.”

무엇이 좋은데요.

기사들 사이에서 숨 삼키는 소리가 났다.

한 기사가 거의 울먹이는 얼굴로 말했다.

“전우의 생존을 공개적으로 선언하셨다.”

나는 그쪽을 봤다.

“선언 아닙니다.”

“겸손하시다.”

“겸손도 아닙니다.”

“그럼 진심이십니까?”

끝났다.

선택지가 왜 다 죽음이지.

레오나가 손을 들었다.

“잡담 끝. 첫 번째. 보폭.”

살았다.

아니, 훈련이 시작됐으니 안 살았다.

보폭 훈련은 단순했다.

레오나가 걷고, 나는 옆에서 걸었다.

처음에는 그랬다.

그러나 기사단의 ‘걷는다’는 내 기준의 걷기와 달랐다. 그들은 거의 바닥을 찢듯이 움직였다. 나는 세 걸음 만에 숨이 찼다.

“호흡.”

레오나가 말했다.

“하고 있습니다.”

“짧다.”

“제 인생도 짧아질 것 같습니다.”

옆의 기사 하나가 감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을 각오한 농담.”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나는 땀이 나기 시작했다. 예복은 훈련복이 아니다. 신발도 아니다. 마음도 아니다.

레오나는 내 속도를 늦췄다.

“무리하지 마라.”

“예.”

“쓰러지면 곤란하다.”

“제가요?”

“내가.”

“예?”

레오나는 앞을 보며 말했다.

“옆에 세운 사람을 쓰러뜨리는 건 지휘 실패다.”

그건 기사단장다운 말이었다.

나는 그제야 조금 안심했다.

“그럼 저는 안전하게 천천히 걷겠습니다.”

“좋다.”

레오나가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속도에 맞추려 하지 말고, 네가 버틸 수 있는 속도를 말해라.”

기사들이 또 술렁였다.

나는 이제 안다.

이 사람들은 무엇을 들어도 술렁인다.

“왜 또 그러십니까?”

내가 묻자, 가장 가까운 기사가 진지하게 답했다.

“단장님이 본인 속도를 늦추셨습니다.”

“배려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좋은 일 아닙니까?”

“전우에게만 합니다.”

나는 입을 닫았다.

이 세계는 단어 하나가 너무 위험하다.

레오나는 내 쪽을 보지 않고 말했다.

“듣지 마라.”

“예.”

“기사들은 쓸데없는 말을 한다.”

기사들이 일제히 허리를 폈다.

“죄송합니다!”

대단하다.

이렇게 바로 사과하는 사람들은 처음 봤다.

레오나는 다시 걸었다.

나는 옆에서 최대한 덜 죽는 표정으로 따라갔다.

훈련장 가장자리에는 장미일보 기자 둘이 서 있었다.

왜 여기도 있냐.

나는 눈을 의심했다.

한 기자가 수첩을 들고 있었다.

다른 기자는 이미 제목을 쓰고 있는 얼굴이었다.

레오나가 그쪽을 흘끗 봤다.

“장미일보.”

“쫓아낼까요?”

내가 묻자 레오나는 짧게 답했다.

“놔둬라.”

“괜찮습니까?”

“숨긴다고 사라질 사람들이 아니다.”

맞는 말이다.

신문은 문틈과 꽃병 뒤와 다과 접시 아래에서 자란다.

나는 기자들을 향해 최대한 정중하게 말했다.

“훈련 장면을 과하게 쓰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기사단 소속이 아닙니다.”

기자가 눈을 빛냈다.

“아직은, 이라고 쓰면 될까요?”

“아니요.”

“정식 절차 전, 이라고 쓰겠습니다.”

“그것도 아닙니다.”

“단장 옆 예비석?”

“석을 만들지 마십시오.”

레오나가 아주 낮게 말했다.

“기사단에는 예비석이 없다.”

다행이다.

“옆자리만 있다.”

안 다행이다.

기자가 적었다.

나는 그 손을 봤다.

너무 빨랐다.

“적지 마십시오.”

“이미 늦었습니다.”

신문은 칼보다 빠르다.

두 번째 훈련은 방향 전환이었다.

레오나가 말했다.

“내가 왼쪽으로 돌면 넌 오른쪽 시야를 봐라.”

“오른쪽에 뭐가 있습니까?”

“적.”

“없는데요.”

“있다고 생각해라.”

나는 오른쪽을 봤다.

기사 한 명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바로 자세를 고쳤다.

적은 아니고 너무 성실한 사람 같았다.

“봤습니다.”

“뭘 봤지?”

“성실한 기사님을 봤습니다.”

훈련장에 웃음이 터졌다.

레오나는 입가를 아주 조금 움직였다.

웃은 건가.

확실하진 않았다.

“그럼 통과다.”

“예?”

“적을 적으로만 보면 늦다. 사람으로 봐야 움직임이 보인다.”

갑자기 좋은 말 하지 마십시오.

내가 반응을 못 하잖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레오나가 나를 봤다.

“너는 그런 걸 잘 본다.”

“제가요?”

“검집 끈도 그랬다. 남들이 장식으로 본 걸 넌 위험으로 봤다.”

아.

그건 그냥 끈이 풀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훈련장에서는 그 설명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저는 겁이 많아서 위험한 걸 먼저 봅니다.”

레오나가 짧게 답했다.

“좋은 재능이다.”

기사들이 또 술렁였다.

나는 손을 들었다.

“재능 아닙니다. 생존 본능입니다.”

“전장에서는 같은 말이다.”

이 사람은 모든 걸 전장으로 가져간다.

그게 레오나답긴 했다.

세 번째 훈련은 더 이상했다.

레오나는 내게 훈련장 가장자리의 깃발 끈을 묶으라고 했다.

“왜 제가 묶습니까?”

“네 매듭을 보고 싶다.”

“제 매듭이요?”

“검집 끈 때처럼.”

기사들의 눈이 번쩍였다.

나는 깃발대 앞에 섰다.

그냥 끈이었다. 바람에 풀리지 않게 두 번 감고, 끝을 안쪽으로 넣으면 된다.

나는 묶었다.

정말 평범하게 묶었다.

레오나가 옆에서 봤다.

“단단하군.”

“풀리면 위험하니까요.”

“또 위험을 먼저 보는군.”

“깃발이 떨어지면 맞을 수 있으니까요.”

“좋다.”

좋다는 말이 또 나왔다.

그때 기사 하나가 작게 말했다.

“전우의 깃발을 묶었다.”

나는 바로 돌아봤다.

“깃발대입니다.”

“상징입니다.”

“시설물입니다.”

“단장님의 훈련장 시설물입니다.”

그만.

나는 그만하고 싶다.

레오나는 깃발 끈을 손가락으로 한 번 확인했다. 그러고는 내 쪽을 보았다.

“나쁘지 않다.”

“감사합니다.”

“내 검집 끈도 다시 봐라.”

“지금요?”

“지금.”

나는 숨을 삼켰다.

검집 끈.

그건 이미 한 번 일을 키운 물건이다.

“기사단장님, 그건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미 생겼다.”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 없었다.

레오나는 허리에 찬 검집을 살짝 돌렸다.

“풀렸는지만 봐라.”

나는 최대한 멀리서 봤다.

거리 유지.

시선 예절.

손대지 않기.

이 정도면 안전하다.

“괜찮아 보입니다.”

“가까이서 확인해라.”

“멀리서도 괜찮습니다.”

“전장에서는 멀리서 본 괜찮음이 사람을 죽인다.”

왜 설득력이 있지.

나는 결국 한 걸음 다가갔다.

손은 대지 않았다. 허리를 조금 숙여 끈의 끝을 확인했다.

정말 괜찮았다.

“단단합니다.”

레오나의 귀가 다시 아주 조금 붉어졌다.

“그렇군.”

기사들이 숨을 죽였다.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이 세계에서 ‘검집 끈이 단단하다’는 말도 혹시 이상한 뜻인가?

제발 아니라고 해줘.

기자가 수첩을 들었다.

나는 바로 말했다.

“시설 점검입니다.”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장님의 검집 끈 시설 점검.”

“아니요.”

“전우가 직접 확인한 단단한 끈.”

“정말 아니요.”

레오나가 기자를 봤다.

“과장하지 마라.”

기자가 자세를 바로 했다.

“예, 단장님.”

좋다.

레오나가 막아줬다.

“있는 그대로 써라.”

안 좋다.

있는 그대로가 제일 위험하다.

훈련이 끝났을 때, 나는 살아 있었다.

그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나는 목검도 들지 않았고, 뛰지도 않았고, 검집 끈을 멀리서 확인했을 뿐이다. 그런데 정신은 결투 세 번을 치른 것 같았다.

레오나는 물병을 내밀었다.

“마셔라.”

“감사합니다.”

나는 물을 마셨다.

살았다.

물은 신성하다.

릴리아 성녀가 알면 축복할지도 모른다.

레오나는 옆에 섰다.

“어땠지?”

“훈련 말입니까?”

“그래.”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무서웠습니다.”

레오나가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도망치지 않았다.”

“도망치면 더 혼날 것 같아서요.”

“그것도 용기다.”

아닙니다.

그건 직장인의 생존 전략입니다.

나는 물병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제가 방해가 되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됐다.”

“방해가 됐습니까?”

“옆에 섰다.”

“그게 방해였습니까?”

“아니.”

레오나는 잠시 말을 골랐다.

그녀에게는 긴 침묵이었다. 다른 사람 기준으로는 두 박자였지만.

“든든했다.”

훈련장이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물병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 말은 너무 직접적이었다.

“기사단장님.”

“왜.”

“그런 말씀은 오해를 부릅니다.”

“오해가 아니다.”

더 위험한 답이 나왔다.

나는 공손하게 정정하려 했다.

“저는 기사도 아니고, 전우라고 하기에도 부족합니다.”

레오나가 나를 정면으로 봤다.

“부족하면 단련하면 된다.”

“저는 그 단련이 무섭습니다.”

“그래서 내 옆에 세운다.”

“왜 결론이 계속 거기로 옵니까?”

레오나는 대답 대신 손을 들었다.

훈련장 끝에서 기사 하나가 두 개의 목검을 들고 오다가, 내 표정을 보고 멈췄다.

레오나가 말했다.

“오늘 검은 들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감사 취소.

그때 장미일보 기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레오나 경, 오늘 장면을 기사단 공식 훈련으로 보아도 되겠습니까?”

레오나는 짧게 답했다.

“비공식이다.”

기자가 나를 봤다.

“그럼 사적인 훈련입니까?”

나는 바로 말했다.

“견학입니다.”

기자는 레오나를 봤다.

레오나는 잠시 생각했다.

“단련이다.”

“데이트 겸 단련입니까?”

기자가 미친 질문을 했다.

나는 숨을 삼켰다.

레오나는 말없이 검 손잡이를 만졌다.

기자가 한 걸음 물러났다.

“질문을 정정하겠습니다. 단련 겸…….”

“겸은 빼라.”

레오나가 말했다.

좋다.

“데이트도 빼십시오.”

내가 덧붙였다.

레오나가 나를 봤다.

왜 보십니까.

“데이트가 싫은가?”

훈련장 전체가 멈췄다.

나는 머릿속으로 답을 골랐다.

싫다고 하면 실례다.

좋다고 하면 죽는다.

훈련이라고 하면 다시 끌려온다.

정답이 없다.

예절서가 떠오르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예절서는 언제나 최악의 타이밍에 성실했다.

[숙녀의 초대를 공개적으로 모욕하지 마십시오.]

너는 빠져.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싫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제가 감당할 체력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레오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체력을 기르면 된다.”

큰일 났다.

기자가 적었다.

기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 모든 사람이 같은 결론에 도착했다.

나만 빠지고 싶었다.

레오나는 한 걸음 가까이 왔다.

“에버렛 경.”

“예.”

“내일도 와라.”

“내일도요?”

“오늘은 첫날이다.”

첫날.

그 단어가 너무 무서웠다.

나는 마지막 힘을 모아 말했다.

“혹시 거절할 수 있는 예법은 없습니까?”

레오나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 진지함이 오히려 무서웠다.

“있다.”

“정말입니까?”

“상대가 위험할 때.”

“제가 위험합니다.”

“그래서 내 옆에 세우는 거다.”

다시 원점.

완벽한 원형 논리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

훈련장 바깥에서 장미일보 기자가 제목을 중얼거렸다.

“다섯 장미와 한 신사, 오늘은 은빛 장미의 훈련장으로…….”

“쓰지 마십시오.”

“그럼 은빛 사자의 옆자리?”

“자리 만들지 마십시오.”

레오나가 기자에게 말했다.

“제목은 짧게 써라.”

아니, 도와주지 마십시오.

기자가 눈을 빛냈다.

레오나는 나를 보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내일 새벽.”

“새벽은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전장은 기다리지 않는다.”

“저는 전장에 가지 않습니다.”

“그럼 더 배워야 한다.”

나는 졌다.

레오나는 훈련장 중앙으로 걸어갔다. 햇빛이 갑주 끝에 걸렸다.

그녀가 돌아서서 나를 불렀다.

“루카스.”

처음으로 이름이었다.

기사들이 숨을 삼켰다.

나는 얼어붙었다.

레오나는 짧게 말했다.

“살고 싶으면 내 옆에 서라.”

나는 하늘을 봤다.

살고 싶다.

그런데 왜 살려면 더 위험한 곳으로 가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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