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뒤에 서라
다음 날 새벽도 훈련장이었다.
나는 이제 알았다.
이 세계에서 ‘내일 새벽도 나와라’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정말 나온다.
정말 새벽이다.
그리고 정말 훈련장이다.
나는 문 앞에서 깊게 숨을 들이켰다.
오늘은 결투 신청도 없겠지.
어제 레오나가 전부 대신 받아줬고, 영식들도 물러났다. 마지막에는 ‘단장이 인정한 남자’라는 말까지 남기고 갔다.
그 말은 위험했지만, 적어도 결투는 끝났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왔군.”
레오나 발크리아가 훈련장 안쪽에서 말했다.
오늘도 은빛 갑주였다. 짧은 망토. 단정한 검집 끈. 그리고 사람을 안심시키기에는 너무 곧은 자세.
“좋은 새벽입니다, 기사단장님.”
“좋은 새벽이다.”
“저는 아직 판단 중입니다.”
“오늘은 더 좋아질 거다.”
“그 말이 무섭습니다.”
레오나는 잠깐 나를 보았다.
“오늘은 널 앞에 세우지 않는다.”
오.
희망.
“정말입니까?”
“내 뒤에 서라.”
희망이 이상한 방향으로 열렸다.
나는 훈련장 중앙을 봤다.
기사들이 줄지어 있었고, 목검 몇 개가 준비되어 있었다. 어제 결투 신청자들보다는 분위기가 차분했지만, 기사들의 눈빛은 오히려 더 진지했다.
내 뒤에 서라.
아니, 레오나 뒤에 서라.
그건 솔직히 안전해 보였다.
매우 안전해 보였다.
이 훈련장에서 가장 안전한 위치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아마 레오나 뒤일 것이다. 검도 빠르고, 판단도 빠르고, 위협도 빠르게 없앤다.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너무 빨랐나.
기사들이 술렁였다.
왜.
나는 그냥 안전한 곳을 골랐다.
레오나도 잠깐 멈췄다.
“바로 받아들이는군.”
“예. 위험한 상황에서는 안전한 위치가 중요합니다.”
“내 뒤가 안전하다고 보나?”
“예.”
훈련장 전체가 조용해졌다.
아.
또 뭔가 밟았다.
나는 급히 덧붙였다.
“물리적으로요. 기사단장님이 워낙 강하시니까요. 그리고 저는 방해가 되면 안 되니까 뒤에 있는 게 낫습니다.”
레오나의 손가락이 검 손잡이 위에서 한 번 움직였다.
“방해가 아니다.”
“그래도 앞은 위험합니다.”
“그래서 뒤다.”
“네. 그래서 좋습니다.”
기사 한 명이 작게 숨을 삼켰다.
카르덴이 옆에서 진지하게 말했다.
“상대의 등을 믿는다고 공개적으로 말씀하셨군요.”
“안전하다고 했습니다.”
“전장에서 같은 말입니다.”
왜 전장에서는 모든 말이 같은 말이 되지.
레오나가 짧게 말했다.
“정렬.”
기사들이 움직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레오나 뒤에 섰다.
그리고 바로 깨달았다.
여기 좋다.
진짜 좋다.
앞에서 오는 시선이 절반으로 줄었다. 목검도 레오나가 가렸다. 기사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도 은빛 망토 하나에 막혔다.
나는 살짝 숨을 놓았다.
살았다.
레오나가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편해 보인다.”
“아닙니다.”
“숨을 길게 쉬었다.”
“호흡 훈련입니다.”
“어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그런 걸 기억하십니까.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기사단장님 뒤가 예상보다 안정적입니다.”
기사들이 다시 술렁였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안정적이라는 말도 위험한가.
첫 번째 기사가 아주 낮게 말했다.
“등을 맡겼다.”
“아닙니다.”
두 번째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물러난 게 아니라, 단장님 뒤를 선택했다.”
“안전해서요.”
“전우가 등을 맡기는 이유도 안전해서입니다.”
나는 레오나의 망토 뒤에서 하늘을 봤다.
망토가 가려서 하늘도 잘 안 보였다.
그래도 안전했다.
그게 더 문제였다.
오늘 훈련은 대열 훈련이라고 했다.
말은 단순했다.
레오나가 앞에서 움직이고, 나는 한 걸음 뒤에서 따라간다. 기사들이 양옆에서 움직이며 가상의 위협을 만든다.
가상.
좋은 단어다.
실제가 아니라는 뜻이니까.
하지만 기사단의 가상 위협은 너무 실감났다.
왼쪽에서 목검이 튀어나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레오나 뒤로 더 숨었다.
“아.”
내 입에서 소리가 나왔다.
레오나가 목검을 가볍게 밀어냈다.
“좋다.”
“뭐가 좋습니까?”
“움직임이 빨랐다.”
“숨는 움직임이요?”
“내 뒤로 들어왔다.”
“그게 안전하니까요.”
“그래.”
레오나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 판단이 맞다.”
기사들이 또 조용해졌다.
나는 이제 조용해질 때마다 두렵다.
가장 앞줄의 기사가 말했다.
“전장에서 뒤를 맡기는 사람은 두 종류입니다.”
“설명 안 하셔도 됩니다.”
“하나는 약해서 숨는 사람.”
그건 나다.
“다른 하나는 앞 사람을 믿고 움직임을 맞추는 사람.”
그건 아니다.
“에버렛 경은 둘 다로 보입니다.”
“앞부분만 맞습니다.”
“겸손하십니다.”
“정확합니다.”
레오나는 짧게 말했다.
“계속.”
훈련이 다시 시작됐다.
오른쪽에서 목검이 들어왔다.
이번엔 카르덴이 옆에서 나를 보며 말했다.
“스승님, 뒤로 한 걸음.”
“스승님 아닙니다.”
말하면서도 나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레오나가 바로 그 빈틈을 막았다.
목검이 레오나의 검에 밀려났다.
“좋다.”
레오나가 말했다.
“또 좋습니까?”
“내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건 제가 살려고 피한 겁니다.”
“그래서 맞다.”
이 사람은 내 생존 본능을 계속 전술로 승격시킨다.
나는 숨이 찼다.
뛰지도 않았는데 정신이 지쳤다.
훈련장 가장자리로 물러나려 하자, 레오나가 손을 들었다.
“멈춰.”
기사들이 멈췄다.
나도 멈췄다.
레오나는 내 쪽으로 반쯤 돌아섰다.
“괜찮나?”
“예. 아직 살아 있습니다.”
“그럼 됐다.”
“살아 있는 게 기준입니까?”
“첫날은.”
오늘도 첫날인가.
내 인생에는 첫날이 너무 많다.
잠깐 쉬는 동안, 기사들이 나를 둘러싸지는 않았다.
다만 둘러싸지 않은 채로 관심을 보였다.
그게 더 무섭다.
한 기사가 물병을 내밀었다.
“에버렛 경.”
“감사합니다.”
“단장님 뒤는 어떠셨습니까?”
나는 물을 마시다 멈췄다.
질문이 위험하다.
“안전했습니다.”
기사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차.
“그러나 그건 기사단장님의 실력이 뛰어나서입니다.”
“그걸 믿고 뒤에 서신 거군요.”
“살려고 선 겁니다.”
“전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믿어야 합니다.”
나는 물병을 내려놓았다.
정말 대화가 안 된다.
카르덴이 진지하게 끼어들었다.
“그럼 결투 신청을 피할 때도 상대 뒤에 서면 됩니까?”
“카르덴 경, 그건 비겁해 보입니다.”
“스승님은 방금 하셨습니다.”
“저는 훈련이었습니다.”
“실전처럼 보였습니다.”
“실전이면 저는 도망갑니다.”
레오나가 말했다.
“도망가지 마라.”
“그럼 어디로 갑니까?”
“내 뒤.”
기사들이 술렁였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정말 이 사람은 문장이 짧아서 더 세다.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했다.
“기사단장님, 그 말씀은 보호 선언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맞다.”
“맞다고 하지 마십시오.”
“보호다.”
훈련장 공기가 또 조용해졌다.
나는 이제 조용함이 싫다.
레오나는 물병을 들어 내게 다시 내밀었다.
“마셔라.”
“이미 마셨습니다.”
“더 마셔라. 얼굴이 하얗다.”
그 말은 평범한 배려였다.
정말 평범한 배려였다.
그런데 기사들은 왜 또 감동한 얼굴인가.
첫 번째 기사가 낮게 말했다.
“단장님이 전우의 안색을 보셨다.”
“전우 아닙니다.”
두 번째 기사가 말했다.
“그럼 보호 대상.”
“그것도 조금…….”
레오나가 짧게 말했다.
“보호 대상 맞다.”
나는 물을 마셨다.
반박할 힘이 필요했다.
하지만 물은 반박력을 주지 않았다.
그냥 목만 축여 줬다.
다음 훈련은 더 이상했다.
기사 하나가 나무 방패를 들고 내 앞에 섰다.
“이번엔 에버렛 경이 먼저 반응합니다.”
“제가요?”
“예. 위협을 보면 단장님 뒤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건 제가 제일 잘할 수 있습니다.”
너무 자신 있게 말했다.
또 조용해졌다.
나는 바로 덧붙였다.
“겁이 많아서요.”
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겁이 많은 사람은 위협을 빨리 봅니다.”
이 기사단은 겁을 너무 좋게 해석한다.
훈련이 시작됐다.
왼쪽.
나는 레오나 뒤로 갔다.
오른쪽.
또 뒤로 갔다.
앞.
이번엔 진짜 무서워서 망토 뒤에 거의 붙었다.
레오나가 목검을 밀어내고 짧게 말했다.
“좋다.”
“이번 건 좀 창피합니다.”
“왜.”
“너무 숨은 것 같아서요.”
“살았다.”
“그건 맞습니다.”
“그럼 됐다.”
단순하다.
그리고 이상하게 설득된다.
나는 숨을 골랐다.
레오나 뒤에서는 정말 살 것 같았다. 앞에서는 목검이 오고, 옆에서는 시선이 오고, 뒤에서는 기사들이 해석을 한다.
그래도 레오나 뒤만큼은 안전했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또 위험한 말을 하게 될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카르덴은 놓치지 않았다.
“스승님.”
“아닙니다.”
“지금 아무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그게 제일 안전해서요.”
“침묵도 답이 되는군요.”
“아닙니다.”
“단장님 뒤에서 침묵. 전장 신뢰의 고급 단계로 보입니다.”
“제발 고급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레오나가 카르덴을 봤다.
“말 줄여라.”
카르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고맙습니다.
레오나가 나를 봤다.
“너도.”
“저도요?”
“숨 고르라.”
아.
그건 배려였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들이 또 아주 작게 술렁였다.
이제는 술렁임이 배경음 같다.
기사단은 한 번 더 나를 시험했다.
시험이라고 해도 검을 들게 하진 않았다.
그건 다행이었다.
대신 훈련장 바닥에 짧은 선 세 개가 그어졌다. 흙 위에 발끝으로 그은 선이었다.
문서도 아니고 표도 아니고 그냥 선.
그 정도는 괜찮다.
“첫 번째 선은 너무 멀다.”
레오나가 말했다.
“두 번째 선은?”
“방해된다.”
“세 번째 선은요?”
“내 뒤.”
나는 세 번째 선을 보았다.
레오나 바로 뒤, 망토가 닿지는 않지만 목검이 들어오면 가려지는 거리.
정말 안전해 보였다.
“저는 세 번째가 좋습니다.”
말하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기사들이 또 술렁였기 때문이다.
“에버렛 경이 직접 골랐다.”
“단장님 뒤.”
“망설임이 없었다.”
“아니요. 안전해 보여서요.”
첫 번째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장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는 등은 흔하지 않습니다.”
“등 이야기를 그만하면 안 됩니까?”
“오늘 훈련 주제입니다.”
그렇다.
오늘 훈련 주제가 내 퇴로를 막고 있었다.
레오나는 세 번째 선 앞에 섰다.
“여기.”
나는 얌전히 섰다.
그녀의 뒤였다.
정말 편했다.
앞에서 기사들이 움직여도 레오나가 먼저 보였다. 목검 끝도, 발소리도, 시선도 그녀가 한 번 걸러 줬다.
나는 너무 솔직하게 말했다.
“확실히 여기가 제일 낫습니다.”
레오나가 반쯤 돌아봤다.
“낫나?”
“예. 덜 죽을 것 같습니다.”
카르덴이 감탄했다.
“죽음 앞에서도 선택이 분명하시군요.”
“그냥 겁먹은 겁니다.”
“전장에서 겁먹고도 올바른 위치를 고르는 건 어렵습니다.”
“전장 아닙니다.”
“기사단 훈련장입니다.”
더 반박하기 애매했다.
레오나가 아주 짧게 말했다.
“좋은 위치다.”
“그러니까요.”
“계속 기억해라.”
“안전 위치로요?”
“내 뒤로.”
문장이 너무 직접적이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게 제일 안전했다.
훈련은 그 상태로 한 번 더 이어졌다. 이번에는 기사 둘이 양쪽에서 동시에 들어왔다.
나는 생각보다 빨리 움직였다.
왼쪽 발을 뒤로 빼고, 레오나의 망토 뒤로 들어갔다. 겁이 나면 몸이 알아서 산다.
레오나는 왼쪽 목검을 막고, 오른쪽 목검은 검집으로 밀어냈다.
소리가 짧게 울렸다.
탁.
끝.
기사들이 멈췄다.
레오나는 내 쪽을 보지 않고 말했다.
“방금은 좋았다.”
“저요?”
“그래.”
“저는 숨었습니다.”
“내 움직임을 막지 않았다.”
“숨는 데도 기술이 있습니까?”
“있다.”
그런 게 있구나.
나는 오늘도 이상한 걸 배웠다.
첫 번째 기사가 진지하게 설명했다.
“전장에서 뒤에 선 사람이 당황해서 앞사람 망토를 잡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밀면 둘 다 위험합니다.”
“저는 망토를 안 잡았습니다.”
“그래서 신뢰입니다.”
“그래서가 너무 빠릅니다.”
“그리고 말로 왼쪽을 알려 주셨습니다.”
“무서워서 보인 겁니다.”
“무서워도 말한 겁니다.”
나는 반박하려다 멈췄다.
그건 사실이었다.
무서웠고, 그래도 말은 했다.
레오나가 낮게 말했다.
“그거면 된다.”
또 그 말.
그녀에게는 늘 그거면 됐다.
나에게는 그게 점점 문제가 됐다.
훈련장 밖에서 작은 소란이 들린 건 그때였다.
어제 결투 신청을 했던 영식들 중 둘이 다시 왔다.
나는 몸이 굳었다.
“또 결투입니까?”
내 말에 두 영식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
“아닙니다.”
“그럼 왜 오셨습니까?”
금발 영식이 어색하게 목을 가다듬었다.
“어제는 무례했습니다.”
“아닙니다. 서로 다치지 않았으니 됐습니다.”
그는 레오나를 힐끗 봤다.
레오나는 내 앞에 서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그녀 뒤에 있었다.
영식들의 시선이 그 배치를 보았다.
아.
이건 또 위험하다.
금발 영식이 낮게 말했다.
“정말 뒤에 계시는군.”
“안전해서요.”
“그걸 공개적으로 인정하시다니.”
“물리적으로요.”
“전장에서 물리적인 위치는 마음의 위치와 다르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누가 자꾸 그런 걸 가르치냐.
레오나가 짧게 말했다.
“용건.”
영식이 자세를 바로 했다.
“사과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에버렛 경에게 결투를 청하지 않겠습니다.”
드디어.
나는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단장님이 인정한 분에게 무례했습니다.”
“그 부분은 아직 정정하고 싶습니다.”
“정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도 봤습니다.”
“무엇을요?”
영식이 레오나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단장님이 앞에 서고, 에버렛 경이 뒤에 선 모습입니다.”
“훈련입니다.”
“전장 신뢰 선언이라고 들었습니다.”
“누구에게요?”
기사들이 동시에 시선을 피했다.
역시 내부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저는 진짜 안전해서 뒤에 선 겁니다.”
금발 영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로 믿는다는 뜻이군요.”
“아닙니다.”
“믿지 않으면 뒤에 서지 못합니다.”
왜 또 맞는 말이지.
나는 입을 다물었다.
레오나가 영식들을 향해 말했다.
“물러나라.”
“예, 단장님.”
그들은 순순히 물러났다.
훈련장 입구에서 한 명이 작게 말했다.
“건드리면 안 된다.”
다른 한 명이 대답했다.
“단장이 앞에 서는 남자다.”
나는 눈을 감았다.
문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훈련은 마지막 대열 확인으로 이어졌다.
레오나는 훈련장 중앙에 섰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 뒤에 섰다.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게 문제였다.
레오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위치.”
“예?”
“편한가?”
“……예.”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진짜 편했다.
“그럼 됐다.”
“기사단장님, 그 말도 위험합니다.”
“위험하면 내가 본다.”
또 보호.
또 앞.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기사들이 대열을 맞췄다. 목검이 들어오고, 레오나는 막았다. 나는 뒤에서 피했다. 레오나는 또 막았다.
이상하게 리듬이 맞았다.
나는 숨고, 그녀는 막는다.
나는 뒤로 물러나고, 그녀는 한 걸음 앞으로 간다.
생존 본능과 기사단장의 검술이 이상한 방식으로 맞물렸다.
그걸 내가 인정하면 안 된다.
인정하는 순간 또 서약이 된다.
마지막 목검이 들어왔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말했다.
“왼쪽입니다.”
말이 먼저 나갔다.
내가 생각해서 말한 게 아니었다. 목검 끝이 조금 낮아졌고, 왼쪽 기사 발끝이 먼저 틀어졌다. 무서우면 별게 다 보인다.
레오나가 즉시 움직였다.
목검이 빗나갔다.
훈련장이 멈췄다.
나는 뒤늦게 입을 막았다.
왜 말했지.
그냥 보였다.
무서워서 봤고, 보여서 말했을 뿐이다.
레오나가 천천히 뒤돌아봤다.
“봤나?”
“예. 무서워서요.”
“말했다.”
“죄송합니다. 방해가 됐다면…….”
“아니다.”
레오나의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정말 아주 조금.
하지만 훈련장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기사들이 숨을 삼켰다.
카르덴도 눈을 크게 떴다.
나는 굳었다.
레오나가 웃었다.
드물게.
정말 드물게.
그녀는 짧게 말했다.
“좋다.”
“뭐가요?”
“내 뒤를 봤다.”
“살려고 본 겁니다.”
“그래.”
그녀의 웃음이 아주 조금 더 선명해졌다.
“그래서 좋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훈련장 밖에서 아까 물러나던 영식들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정말 건드리지 마라.”
“단장이 웃었다.”
“그 남자는 뒤에 서도 인정받는다.”
나는 레오나의 뒤에서 조용히 하늘을 봤다.
오늘도 살아남았다.
그런데 살아남을수록 더 깊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레오나는 앞을 보며 말했다.
“내일도 그 위치다.”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위치는 없습니까?”
“있다.”
“어디입니까?”
레오나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내 뒤.”
선택지가 하나면 선택이 아니다.
그래도 이상하게, 그 하나가 제일 안전해 보였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안전한 곳이 생겼다.
문제는, 그 안전한 곳이 제일 위험한 오해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