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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 신청이 너무 많다 일러스트

결투 신청이 너무 많다

훈련장 한가운데에서 나는 잠깐 침묵했다.

지금 문제는 목숨이다.

그리고 그 목숨은 내 것이다.

레오나 발크리아가 물었다.

“후회하나?”

훈련장 전체가 조용했다.

기사들은 숨을 죽였고, 카르덴은 눈만 빛내고 있었다. 나는 대답 하나로 인생이 어디로 굴러갈지 계산했다.

후회한다고 하면 레오나가 위험했어도 모른 척했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면 전장 반려 서약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정답이 없다.

나는 결국 가장 안전해 보이는 말을 골랐다.

“다치시는 것보다야 낫다고 생각합니다.”

말하고 나서 깨달았다.

안전해 보이는 말은 대체로 안전하지 않다.

훈련장에 낮은 숨소리가 번졌다.

레오나는 잠깐 나를 보았다. 검 손잡이 위에 올려진 손가락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럼 됐다.”

“아니요, 된 게 아닙니다.”

“내게는 됐다.”

저 짧은 문장이 제일 무섭다.

나는 바로 덧붙였다.

“기사단장님, 저는 문화적 의미를 몰랐고, 앞으로도 검집 끈에는 손대지 않겠습니다.”

“필요하면 손대라.”

“필요하지 않게 노력하겠습니다.”

“필요한 순간은 노력으로 피하지 못한다.”

왜 맞는 말만 해서 더 어렵게 만들지.

그때 훈련장 입구 쪽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말, 확실히 들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귀족 영식들이 서 있었다.

셋.

아니, 뒤에 둘 더.

총 다섯.

새벽 훈련장에 귀족 영식 다섯 명이 갑자기 나타나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니다. 특히 그중 셋이 장갑을 끼고 있고, 한 명이 지나치게 깨끗한 흰 손수건을 들고 있다면 더더욱.

나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레오나가 말했다.

“뒤가 아니다.”

“습관입니다.”

“옆.”

“예.”

나는 그녀 옆으로 갔다.

왜 이게 더 자연스러워지고 있지.

가장 앞의 금발 영식이 턱을 들었다.

“루카스 에버렛 경.”

“예.”

“그대가 단장님의 검집 끈을 묶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안전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문장이 많이 줄었습니다.”

“핵심만 들었습니다.”

그 핵심이 문제다.

나는 정중하게 말했다.

“오해입니다. 저는 결투나 서약과 관련된 의도가 없었습니다.”

금발 영식이 장갑 낀 손을 들었다.

“그렇다면 증명하십시오.”

“어떻게요?”

“결투로.”

아.

그쪽으로 가는구나.

나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죄송합니다. 저는 결투를 할 줄 모릅니다.”

“그럼 왜 검집 끈을 묶었습니까?”

“끈이 풀려 있어서요.”

“그 대답으로 단장님의 명예를 독점하겠다는 겁니까?”

“명예를 독점한 적 없습니다.”

“그럼 겨루십시오.”

“저는 겨룰 수 없습니다.”

“겁이 납니까?”

“예.”

훈련장에 침묵이 떨어졌다.

금발 영식도 잠깐 멈췄다.

나는 솔직했다.

이 세계에서 가끔 솔직함은 상대를 더 당황하게 만든다.

영식이 입술을 굳혔다.

“그래도 물러설 수 없습니다.”

“저는 물러서고 싶습니다.”

“결투 신청을 받아들이십시오.”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귀족의 결투 신청을 그렇게 가볍게 거절할 수는 없습니다.”

왜 안 되지.

나는 상식적으로 물었다.

“그럼 무겁게 거절하면 됩니까?”

기사 몇 명이 웃음을 참다가 어깨를 떨었다.

레오나는 웃지 않았다.

대신 한 걸음 앞으로 섰다.

“그 결투.”

훈련장이 차가워졌다.

레오나의 목소리는 짧았다.

“내가 받는다.”

금발 영식의 얼굴이 굳었다.

“레오나 경. 저는 에버렛 경에게 신청했습니다.”

“들었다.”

“그런데 왜 단장님께서…….”

“내 훈련장이다.”

“예?”

“내 옆에 선 사람에게 들어온 검은, 먼저 내가 본다.”

기사들이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나는 머리를 감싸고 싶었다.

보호해 주는 건 고맙다.

정말 고맙다.

그런데 문장이 너무 세다.

금발 영식이 이를 악물었다.

“그건 보호자처럼 들립니다.”

레오나는 바로 답했다.

“맞다.”

맞다고 하지 마십시오.

나는 재빨리 끼어들었다.

“기사단장님은 훈련장 질서를 말씀하신 겁니다.”

레오나가 나를 봤다.

“질서도 맞다.”

왜 ‘도’를 붙이십니까.

두 번째 영식이 앞으로 나왔다.

“그럼 저도 신청하겠습니다. 에버렛 경에게.”

레오나가 말했다.

“내가 받는다.”

세 번째 영식이 입을 열었다.

“저 또한…….”

“내가 받는다.”

네 번째가 손을 들었다.

“저는 아직 말하지 않았습니다.”

“표정이 그랬다. 내가 받는다.”

다섯 번째 영식은 손을 내렸다.

현명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기사단장님, 전부 받으시면 안 됩니다. 다치실 수 있습니다.”

레오나가 나를 보았다.

“걱정하나?”

아.

또.

“상식적으로 다섯 명은 많습니다.”

“많지 않다.”

“제 기준에서는 많습니다.”

“네 기준이 낮다.”

“그건 맞지만요.”

기사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작게 터뜨렸다.

레오나는 검 손잡이를 가볍게 눌렀다.

“걱정하지 마라.”

“걱정됩니다.”

“그 말이면 충분하다.”

충분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막 또 뭔가를 헌납한 기분이다.

결투 신청은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훈련장 바깥에서 또 다른 영식 둘이 들어왔다. 그들은 이미 소문을 듣고 온 얼굴이었다.

이 세계의 소문은 말을 안 타도 기병보다 빠르다.

“루카스 에버렛 경!”

“예.”

“단장님의 옆자리를 두고 공개 결투를 청합니다.”

“자리 없습니다.”

“있다고 들었습니다.”

“누가요?”

영식이 훈련장 기사들을 봤다.

기사들이 동시에 시선을 피했다.

범인은 내부에 있다.

나는 한숨을 삼켰다.

“제발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기사단장님의 옆자리를 가진 적 없습니다.”

레오나가 말했다.

“어제 섰다.”

“물리적으로요.”

“오늘도 섰다.”

“물리적으로요.”

“내일도 설 거다.”

“예?”

레오나는 너무 자연스럽게 말했다.

“훈련이니까.”

영식들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손을 들었다.

“훈련입니다. 정말 훈련입니다.”

한 영식이 낮게 말했다.

“단장님과 매일 새벽 훈련.”

다른 영식이 이를 악물었다.

“그건 사실상 인정 아닌가.”

인정 아닙니다.

새벽 노동입니다.

카르덴이 옆에서 진지하게 끼어들었다.

“결투 신청자는 순서를 정해야 합니다.”

“카르덴 경, 왜 도와주시는 방향이 그겁니까?”

“혼란을 줄여야 합니다.”

“결투를 줄여야 합니다.”

“그 방법은 단장님이 더 빠릅니다.”

빠르긴 하겠지.

문제는 너무 빠를 것 같다는 점이다.

레오나는 영식들을 한 번 훑어보았다.

“전부 목검.”

금발 영식이 발끈했다.

“저희는 진검 결투를…….”

“내 훈련장이다.”

“하지만 명예가 걸렸습니다.”

“명예는 목검으로도 다친다.”

그 말에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생각했다.

명예만 다치고 사람은 안 다치면 그나마 낫다.

레오나는 이어 말했다.

“한 명씩 나와라.”

“기사단장님.”

내가 낮게 불렀다.

레오나가 나를 봤다.

“왜.”

“정말 괜찮습니까?”

“너는 뒤에 있어라.”

“뒤에요?”

“오늘은 뒤다.”

어제는 옆이라며.

내가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자 레오나가 짧게 덧붙였다.

“네게 들어온 검이다. 내가 앞에서 본다.”

훈련장 기사들이 다시 술렁였다.

나는 그 술렁임을 들으며 깨달았다.

이건 보호자다.

완전히 보호자다.

그리고 나는 보호받는 사람이 됐다.

기분은 고마운데, 상황은 끝났다.

첫 번째 결투는 결투라기보다 교육에 가까웠다.

금발 영식이 목검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레오나는 목검 하나를 받았다.

“준비.”

영식이 자세를 잡았다.

나는 뒤에서 손을 모았다.

제발 다치지 마라.

둘 다.

“시작!”

기사 하나가 외쳤다.

그리고 큰일 났다.

정말 큰일 났다.

레오나는 한 걸음 움직였고, 금발 영식의 목검은 바닥에 떨어졌다. 그의 손목에는 레오나의 목검 끝이 가볍게 닿아 있었다.

“다시.”

레오나가 말했다.

“예?”

“네가 명예를 걸었다. 한 번으로는 가볍다.”

금발 영식의 얼굴이 하얘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기사단장님, 가볍게 끝내는 것도 예의일 수 있습니다.”

레오나가 나를 봤다.

“네가 말하면 그렇게 하지.”

훈련장이 조용해졌다.

아.

또 내가 결정권자가 됐다.

“아니, 제 말은…….”

금발 영식이 나를 보았다.

그의 표정은 분했다기보다 놀란 쪽에 가까웠다.

“에버렛 경의 말 한마디에 단장님이 검을 거두신다고?”

“그런 뜻이 아닙니다.”

레오나는 목검을 내렸다.

“첫 번째는 끝.”

기사 하나가 낮게 말했다.

“단장님이 인정한 사람의 중재.”

“중재 아닙니다.”

“그럼 명령입니까?”

“아닙니다.”

“부탁?”

나는 입을 닫았다.

이 세계에서는 부탁도 위험하다.

두 번째 영식은 조금 더 오래 버텼다.

세 걸음.

세 번째는 두 걸음.

네 번째는 시작 전에 목검 잡는 법을 교정받았다. 레오나가 직접 알려줬다.

“손목 힘 빼라.”

“예, 단장님.”

“에버렛 경에게 결투를 청할 정도면 최소한 검은 제대로 잡아라.”

“……예.”

나는 옆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저한테 청하지 않으면 더 좋습니다.”

카르덴이 진지하게 말했다.

“스승님, 그것도 회피술입니까?”

“생존술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명심하지 마십시오.”

다섯 번째 영식은 아예 손을 들었다.

“저는 철회하겠습니다.”

나는 속으로 박수를 쳤다.

현명한 사람이다.

하지만 레오나는 그를 그냥 보내지 않았다.

“이유.”

“단장님의 실력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아니다.”

“예?”

“네가 확인해야 할 건 내 실력이 아니다.”

레오나가 나를 가리켰다.

“저 사람이 왜 내 옆에 서는지다.”

제발 가리키지 마십시오.

영식들이 나를 보았다.

나는 아주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레오나는 짧게 말했다.

“위험을 본다.”

“겁이 많아서요.”

“도망치지 않는다.”

“못 도망친 겁니다.”

“걱정한다.”

“사람이 다치면 안 되니까요.”

레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다.”

그래서가 뭔데요.

영식들의 표정이 조금씩 바뀌었다.

질투에서 당황으로.

당황에서 납득하고 싶지 않은 납득으로.

금발 영식이 낮게 말했다.

“단장님께서 직접 인정하신 겁니까?”

레오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다.”

내 심장이 내려앉았다.

인정.

그 단어가 너무 컸다.

“무엇을 인정하신 겁니까?”

내가 물었다.

레오나는 나를 봤다.

“내 옆에 설 자격.”

아찔했다.

오늘 내 도망갈 길은 완전히 막혔다.

나는 양손을 들었다.

“기사단장님, 그 표현은 매우 위험합니다.”

“위험하면 지킨다.”

“제가 아니라 표현이요.”

“표현도 지킨다.”

아니요.

표현을 지키지 말고 줄여 주세요.

그때 훈련장 문 밖에서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레오나 뒤로 숨으려 했다.

이번에는 정말 본능이었다.

레오나가 보지도 않고 말했다.

“옆.”

“뒤가 더 안전합니다.”

“그래서 옆이다.”

왜 안전한 곳을 계속 위험한 곳으로 부르십니까.

문 앞에 선 것은 마지막으로 남은 영식 둘이었다. 조금 전 물러났던 무리와 달리, 그들은 결투장갑을 이미 벗고 있었다.

좋은 신호인가?

아니었다.

그중 한 명이 아주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에버렛 경. 결투 신청은 철회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심이었다.

“대신 확인만 하겠습니다.”

확인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무서울 줄 몰랐다.

“무엇을요?”

“단장님께서 정말 에버렛 경을 인정하셨는지.”

나는 레오나를 봤다.

제발 아니라고 해주세요.

레오나는 짧게 답했다.

“인정했다.”

너무 빠르다.

나는 바로 끼어들었다.

“훈련장 출입 허가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아니다.”

레오나가 잘랐다.

“옆에 설 자격이다.”

영식 둘의 얼굴이 더 진지해졌다.

나는 속으로 무너졌다.

제발 허가증 같은 단어로 줄여주세요.

첫 번째 영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다면 저희가 결투를 철회하는 것은 비겁한 일입니까?”

레오나가 대답했다.

“아니다.”

살았다.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걸 알면 물러나는 것도 판단이다.”

영식들이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 말이 조금 의외였다.

레오나는 무조건 밀어붙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물러날 줄 아는 것도 판단이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기사단장 같았다.

그리고 그래서 더 무서웠다.

그녀가 나를 보면 같은 기준을 적용할 테니까.

두 번째 영식이 내게 말했다.

“에버렛 경. 실례했습니다.”

“아닙니다. 결투를 하지 않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눈을 깜빡였다.

“감사까지 하십니까?”

“예. 저는 평화가 좋습니다.”

기사들 몇 명이 작게 웃었다.

레오나도 아주 희미하게 입가를 움직였다.

웃은 건가.

확실하진 않았다.

영식은 그 짧은 반응을 보고 더 굳었다.

“단장님이 웃으셨다.”

“저 때문 아닙니다.”

“에버렛 경 앞에서.”

“장소를 붙이지 마십시오.”

첫 번째 영식이 낮게 말했다.

“단장이 인정한 남자라더니…….”

그 말이 훈련장 안에서 작게 퍼졌다.

나는 손을 들었다.

“그 표현도 정정하고 싶습니다.”

레오나가 물었다.

“왜.”

“너무 큽니다.”

“줄이면?”

“훈련장에 임시로 서 있는 사람 정도가 어떻습니까?”

레오나는 잠시 생각했다.

“약하다.”

“약해야 안전합니다.”

“네가 약하면 내가 앞에 선다.”

영식들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도망로가 줄었다.

내가 표현을 줄이려 할수록 레오나가 직접 키운다.

카르덴이 뒤에서 조용히 감탄했다.

“회피하려 할수록 보호 선언이 강해지는군요.”

“카르덴 경, 제발 감탄하지 마십시오.”

“배울 점이 많습니다.”

“배우면 안 됩니다.”

레오나는 영식 둘에게 말했다.

“돌아가라. 다음부터는 검보다 먼저 말로 와라.”

“예, 단장님.”

영식들은 물러났다.

그들의 뒷모습은 처음보다 훨씬 얌전했다.

그건 좋은 일이었다.

아마도.

결투 신청자들은 하나둘 물러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분한 얼굴만은 아니었다.

처음엔 나를 노려보던 영식들이, 이제는 레오나와 나를 번갈아 보며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금발 영식이 장갑을 벗었다.

“루카스 에버렛 경.”

“예.”

“오늘은 물러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겨루겠습니다.”

감사 취소.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가능하면 차로 해결하면 안 되겠습니까?”

영식이 멈칫했다.

“차?”

“예. 대화로.”

그는 레오나를 힐끗 보았다.

레오나는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차 후에 훈련이면 가능하다.”

“기사단장님.”

“차만 마시면 몸이 굳는다.”

영식들이 다시 겁먹은 얼굴이 됐다.

그래도 그들은 더 이상 결투를 청하지 않았다.

한 명이 낮게 말했다.

“단장이 인정한 남자에게 함부로 신청했다가는, 단장이 먼저 나온다.”

다른 영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결투가 아니라 선별이다.”

“단장이 직접 지키는 사람이라면…….”

나는 바로 끼어들었다.

“지키는 것이 아니라 훈련장 질서입니다.”

금발 영식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렇게 말씀하실수록 더 그렇게 들립니다.”

왜.

나는 이제 해명도 못 믿겠다.

영식들은 물러났다.

그중 둘은 장갑을 품 안에 넣었다. 다시 던지지 않겠다는 뜻처럼 보였다.

훈련장 입구에서 마지막으로 금발 영식이 돌아보았다.

“에버렛 경.”

“예.”

“단장이 인정한 남자라면, 적어도 도망치지는 않겠지요.”

나는 대답하려 했다.

도망치고 싶다고.

매우 도망치고 싶다고.

그러나 레오나가 옆에서 짧게 말했다.

“도망치지 않는다.”

영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아니.

내 의사는 어디 갔습니까.

그들이 모두 물러난 뒤, 훈련장에는 기사단 사람들만 남았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기사단장님.”

“왜.”

“감사합니다. 다만 앞으로 제 결투 신청은 제가 정중히 거절해 보겠습니다.”

“안 된다.”

“왜요?”

“느리다.”

“거절이요?”

“네 거절은 상대를 더 자극한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방금 사례가 너무 많았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레오나는 목검을 내려놓고 내 앞에 섰다.

“결투 신청이 오면 내게 말해라.”

“매번요?”

“전부.”

“너무 많으면요?”

“전부.”

짧다.

강하다.

무섭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기사단장님이 계속 힘드실 겁니다.”

레오나의 귀가 조금 붉어졌다.

“상관없다.”

“저 때문에요?”

그녀가 검 손잡이를 만졌다.

“내가 인정한 사람이다.”

나는 하늘을 봤다.

도망갈 길이 또 하나 사라졌다.

그때 카르덴이 아주 진지하게 물었다.

“스승님, 그럼 다음 수업은 결투 신청 회피입니까?”

“수업 아닙니다.”

“그럼 실전입니까?”

“제 인생입니다.”

레오나가 짧게 말했다.

“내일 새벽도 나와라.”

나는 눈을 감았다.

영식들은 물러났다.

결투는 끝났지만 상황은 더 커졌다.

그런데 왜 나는 더 위험해졌지.

훈련장 바깥에서 물러나던 영식들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건드리지 마라.”

“단장이 인정한 남자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깨달았다.

오늘도 해명은 실패했다.

다만 살아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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