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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던 공녀가 웃었다 일러스트

차갑던 공녀가 웃었다

“아주 정석적인 수락입니다.”

올덴 백작은 친절하게 말했다.

친절하지 않았다.

루카스는 봉투를 든 손에 힘을 뺐다.

구겨지면 또 다른 예법이 나올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는 오늘, 그런 예감이 대체로 맞는다는 걸 너무 많이 배웠다.

정말 아주 충분히.

그런데 예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올덴 백작은 초대장을 바라보며 문서를 한 장 더 꺼냈다.

루카스는 본능적으로 뒤로 반걸음 물러났다.

“위원장님.”

“예, 에버렛 경.”

“혹시 지금 꺼내신 것도 예절 관련입니까?”

“물론입니다.”

루카스는 봉투를 더 조심히 들었다.

이제는 종이도 무기였다.

올덴 백작은 아주 점잖게 말했다.

“초대장 수락 예법은 단순히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수락 후 첫 답례, 방문 전 확인, 가문 문장에 대한 예우까지 이어집니다.”

“그렇습니까.”

“예. 특히 공작가의 초대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시험장 안의 공기가 다시 정리됐다.

방금 전까지 끝난 줄 알았던 검증이, 초대장 하나로 새 장을 펼쳤다.

루카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예절위원회는 접이식 칼 같다.

끝난 줄 알면 칼날이 하나 더 나온다.

아이리스는 조용히 서 있었다. 그녀는 초대장을 보지 않고 루카스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는 미안함이 아주 조금 섞인 것 같았다.

루카스는 곧장 고개를 숙였다.

“공녀님, 괜찮습니다.”

아이리스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제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표정이셨습니다.”

말하고 나서 루카스는 바로 후회했다.

얼굴 변화는 말하지 않는다.

귀도 말하지 않는다.

미소도 말하지 않는다.

표정도 말하지 않는다.

왜 배운 것을 이렇게 빨리 잊는가.

아이리스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아주 낮게 말했다.

“그런 표정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방금은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잘못 봤습니다.”

세라피나가 참관석에서 웃었다.

“루카스 경, 변명 실력이 조금 늘었네. 여전히 늦지만.”

미라벨의 펜이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루카스는 볼 용기가 없었다.

올덴 백작은 문서를 들었다.

“그럼 이어서 확인하겠습니다. 에버렛 경께서는 공작가의 초대장을 정석적으로 수락하셨습니다. 따라서 오늘의 검증 기록은 공작가 방문 전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그 단어가 문제였다.

루카스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참고 자료라는 건, 오늘 있었던 일들이 모두 남는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아이리스의 손끝이 아주 조금 굳었다.

그녀가 보관하던 손수건 케이스 위로 장갑 낀 손이 내려갔다.

루카스는 그 작은 움직임을 봤다.

그리고 이해했다.

아이리스는 기록을 싫어한다.

정확히는, 자신의 작은 실수가 크게 남는 것을 싫어한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작은 장갑 주름이 공녀의 흠이 되고, 작은 시선 회피가 사교계의 제목이 되고, 작은 웃음조차 기록이 된다.

그건 누구라도 피곤하다.

루카스는 봉투를 내려다봤다.

공작가 문장은 반듯했다.

기록은 반듯한 종이에 잘 남는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반듯하지 않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위원장님.”

“말씀하십시오.”

“확인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루카스는 최대한 조심했다.

공격처럼 들리면 안 된다.

따지는 말처럼 들려도 안 된다.

그는 예절을 잘 몰랐다. 하지만 서비스직에서 하나는 배웠다.

불만을 말할 때도 상대 체면을 남겨야 일이 커지지 않는다.

“예법은 사람을 난처하게 하려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시험장이 조용해졌다.

이번 정적은 조금 달랐다.

비웃음도 아니고, 놀람만도 아니었다.

올덴 백작의 눈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계속 말씀해 보십시오.”

루카스는 침을 삼켰다.

이미 시작했다.

돌아갈 수 없다.

“제가 잘 몰라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장갑 예법도, 찻잔 교대도, 걸음의 간격도, 초대장 수락 예법도 결국 상대가 불편하지 않게 하려는 것 아닙니까.”

위원 한 명이 펜을 멈췄다.

“손을 함부로 잡지 않는 것도, 뜨거운 잔을 억지로 들게 하지 않는 것도, 통로를 먼저 치우는 것도. 전부 같은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루카스는 아이리스를 보지 않았다.

보면 말이 흔들릴 것 같았다.

“공녀님의 체면은 소란 없이 지켜져야 합니다.”

아이리스의 손끝이 멈췄다.

루카스는 이어 말했다.

“그런데 기록이 공녀님의 작은 실수를 더 크게 남긴다면, 그건 예법의 목적과 조금 다르지 않을까요.”

위원회 전체가 잠잠해졌다.

미라벨도 펜을 멈췄다.

세라피나는 부채를 천천히 접었다.

카르덴은 숨도 크게 쉬지 않았다.

루카스는 속으로 외쳤다.

제발.

제발 무례하게 들리지 않았기를.

올덴 백작이 물었다.

“에버렛 경께서는 기록을 남기지 말자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루카스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위원회의 기록도 중요합니다. 다만 기록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배웠습니다.”

“누구에게 배우셨습니까?”

“일하는 곳에서요.”

“일하는 곳.”

또 이상한 기록이 될 것 같았다.

루카스는 급히 설명했다.

“손님이 넘어졌을 때 보고서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합니다. 잔이 깨졌을 때도 기록은 나중이고, 유리 조각부터 치웁니다. 실수가 있었다면 이유를 남기되, 손님이 부끄럽지 않게 정리합니다.”

그는 말하다가 깨달았다.

이건 또 웨딩홀 알바 교육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지금 예법위원회를 상대로 말하고 있었다.

인생이 왜 이렇게 됐는가.

올덴 백작은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대신 옆에 있던 위원이 두꺼운 예절서를 펼쳤다.

책등에는 금박으로 글자가 박혀 있었다.

`제국 고등 사교 예법 총람`.

루카스는 제목만 보고도 어깨가 무거워졌다.

저런 책은 보통 사람을 살리려고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을 천천히 말려 죽이려고 있는 물건처럼 보였다.

위원은 책장을 넘겼다.

“총람 제12권, 숙녀의 곤란과 신사의 조치.”

12권.

루카스는 속으로 멈췄다.

예법이 12권까지 있다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위원은 조용히 읽었다.

“신사는 숙녀의 작은 흐트러짐을 공개석상에서 지적하지 않는다. 다만 기록관은 그 흐트러짐의 원인을 남겨 후일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게 한다.”

“기록관이 너무 열심히 일하시는 것 같습니다.”

루카스는 거의 반사적으로 말했다.

말하고 바로 후회했다.

다행히 위원은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책장을 한 장 더 넘겼다.

“이어지는 조항이 있습니다.”

“예?”

“단, 그 기록이 숙녀의 명예를 해칠 우려가 있을 경우, 원인을 환경 또는 절차의 문제로 돌려 수정할 수 있다.”

시험장 안의 공기가 다시 움직였다.

루카스도 눈을 깜빡였다.

그런 조항이 있었다.

정말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방금 한 말은 완전히 헛소리가 아니었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통로 정리 미비로 남기는 것도 가능한 겁니까?”

위원은 예절서를 내려다봤다.

“가능합니다.”

루카스는 속으로 주먹을 쥐었다.

살았다.

그런데 올덴 백작이 덧붙였다.

“다만 그 조항은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역시 안 살았다.

“왜입니까?”

“대개는 누구도 자신의 책임을 늘리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루카스는 침묵했다.

그 말은 이해됐다.

그도 늘리고 싶지 않았다.

다만 누군가의 작은 실수가 공개 기록으로 남는 것보다는, 통로 정리 미비가 나았다.

통로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융단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받침대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사람만 부끄러워한다.

루카스는 고개를 들었다.

“그럼 그렇게 해 주십시오.”

올덴 백작이 그를 보았다.

“에버렛 경의 책임으로 남습니다.”

“예.”

“공작가 방문 전 기록에도 들어갑니다.”

“예.”

“혹시 그 의미를 알고 계십니까?”

모른다.

정말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모른다고 하면 더 길어진다.

루카스는 최대한 안전하게 답했다.

“제가 확인해야 할 부분이 늘어난다는 뜻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세라피나가 작게 웃었다.

“오, 이번 대답은 꽤 괜찮았어.”

“감사합니다.”

“귀족식으로는 더 위험하지만.”

“감사를 철회해도 됩니까?”

“늦었어.”

미라벨이 펜을 들었다.

“통로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루카스가 고개를 돌렸다.

“그건 쓰지 마십시오.”

“좋은 문장입니다.”

“그래서 더 쓰면 안 됩니다.”

“에버렛 경은 좋은 문장을 너무 자주 버리십니다.”

“제발 같이 버려 주십시오.”

카르덴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대신 통로가 부끄러움을 맡는다. 무위연애술의 공간 운용…….”

“공간 운용도 아닙니다.”

루카스는 점점 지쳐 갔다.

예절서 한 줄이 그를 살렸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 한 줄로 새 종교를 만들 기세였다.

올덴 백작은 예절서를 덮었다.

“흥미롭습니다.”

“가능하면 흥미롭지 않았으면 합니다.”

“예절은 흥미롭지 않으면 오래 남지 않습니다.”

루카스는 대답을 포기했다.

그때 아이리스가 조용히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아이리스가 조용히 말했다.

“위원장님.”

올덴 백작이 그녀를 보았다.

“말씀하십시오, 공녀님.”

아이리스는 루카스를 보지 않고 말했다.

“에버렛 경의 설명에 이의 없습니다.”

루카스는 순간 숨을 멈췄다.

아이리스는 이어 말했다.

“제 체면은 지켜졌습니다.”

그 한마디에 시험장 분위기가 바뀌었다.

위원들은 서로를 보았다.

공녀 본인이 말했다.

체면은 지켜졌다고.

그러면 더 기록할 것도, 더 캐물을 것도 줄어든다.

올덴 백작은 천천히 문서를 접었다.

“그렇다면 공식 기록은 이렇게 정리하겠습니다.”

루카스는 긴장했다.

올덴 백작은 또박또박 말했다.

“아이리스 공녀의 장갑과 걸음에는 예법상 문제가 없었으며, 에버렛 경은 초대장 수락 예법을 정석적으로 이행했다. 추가 비고. 공녀의 체면은 당사자의 확인에 따라 지켜진 것으로 본다.”

루카스는 눈을 깜빡였다.

괜찮다.

이건 괜찮다.

이번에는 정말 괜찮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위험한 비고는 없습니까?”

올덴 백작이 살짝 미소 지었다.

“비고는 늘 위험합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이번 비고는 공녀님의 말입니다.”

루카스는 아이리스를 보았다.

아이리스는 여전히 차분했다.

하지만 그 차분함이 조금 달라 보였다.

세라피나가 부채를 톡톡 두드렸다.

“예절위원회를 예의로 설득했네.”

“설득이라기보다는 확인이었습니다.”

“루카스 경은 늘 그렇게 말하지.”

미라벨이 펜을 들었다.

“제목이 나왔습니다.”

루카스는 몸을 굳혔다.

“또요?”

“예법위원회, 예의로 반박당하다.”

“반박은 아닙니다.”

“그럼 `예의로 정리당하다`.”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더 좋은 제목이 있습니다.”

루카스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미라벨은 이미 말했다.

“차갑던 공녀가 웃었다.”

루카스는 반사적으로 아이리스를 보았다.

그리고 정말 봤다.

아이리스가 웃고 있었다.

크게 웃은 것은 아니었다.

입가가 아주 짧게,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움직였을 뿐이다.

하지만 웃음이었다.

시험장 안이 멈췄다.

미라벨의 펜도 멈췄다.

카르덴의 수첩도 멈췄다.

세라피나의 부채도 멈췄다.

루카스도 멈췄다.

아이리스가 천천히 말했다.

“보셨습니까?”

루카스는 지금까지 배운 모든 생존 규칙을 떠올렸다.

귀는 말하지 않는다.

미소도 말하지 않는다.

표정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물어봤다.

직접 물어봤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아이리스의 입가가 다시 아주 조금 움직였다.

이번에는 모두가 봤다.

그리고 아무도 바로 말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장미일보마저 잠깐 조용했다.

그 짧은 침묵을 아이리스가 깼다.

“그럼 기록하십시오.”

올덴 백작이 물었다.

“무엇을 말입니까?”

아이리스는 손수건 케이스를 한 번 눌렀다.

“제 체면은 지켜졌습니다.”

그 말은 방금과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루카스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냥 알았다.

이번에는 아이리스가 방어하려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인정하려고 말한 것이다.

올덴 백작은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기록하겠습니다.”

카르덴이 낮게 중얼거렸다.

“상대를 웃게 하면서 체면을 지킨다. 신사술의 종착지…….”

“종착하지 마십시오.”

루카스가 바로 말했다.

“저는 아무 데도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카르덴은 진지했다.

“오늘 스승님께서는 세 가지를 보이셨습니다. 첫째, 상대의 실수를 자신의 절차 문제로 바꾼다. 둘째, 기록관의 펜을 꺾지 않고 방향을 돌린다. 셋째, 웃음을 강요하지 않고 기다린다.”

“그렇게 정리하지 마십시오.”

“정리해야 잊지 않습니다.”

“잊어 주셔도 됩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미라벨이 조용히 끼어들었다.

“저도 불가능합니다.”

루카스가 그녀를 보았다.

“미라벨 양은 왜 불가능합니까?”

“이미 손이 기억했습니다.”

“손에게 잊으라고 해 주십시오.”

“손은 언론의 자유를 누립니다.”

“손이요?”

미라벨은 펜을 들었다가, 아이리스의 눈치를 보고 다시 내렸다.

“하지만 오늘은 아주 조금만 누리겠습니다.”

그 정도면 큰 발전이었다.

루카스는 감사해야 할지 말려야 할지 판단하지 못했다.

세라피나가 부채를 턱 아래에 댔다.

“그래도 오늘은 루카스 경이 이겼네.”

“이긴 적 없습니다.”

“예절위원회가 물었고, 네가 예절로 답했잖아.”

“살려고 답했습니다.”

“그게 제일 재밌어.”

세라피나는 잠깐 아이리스를 보았다.

“공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이리스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손수건 케이스를 한 번 내려다보고, 다시 루카스를 보았다.

“재미있었다고 말하기에는 품위가 없습니다.”

“그럼?”

세라피나가 물었다.

아이리스는 아주 짧게 답했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루카스는 그 말이 칭찬인지 아닌지 몰랐다.

하지만 세라피나는 웃었다.

미라벨은 입을 막았다.

카르덴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를 보니 칭찬인 것 같았다.

루카스는 최대한 안전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이리스가 그를 보았다.

“감사받을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요.”

“불필요한 감사입니다.”

“그럼 취소하겠습니다.”

“그건 또 무례합니다.”

루카스는 멈췄다.

어렵다.

공녀님의 대화는 초대장보다 어렵다.

아이리스의 입가가 다시 아주 조금 움직였다.

이번에는 루카스도 바로 알아차렸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 것이 오늘 그의 가장 큰 성장일지도 몰랐다.

세라피나가 웃었다.

“이제 공작가로 가야지.”

루카스는 초대장을 다시 보았다.

기분 좋은 장면이 끝나자마자 현실이 돌아왔다.

공작가.

가문 내빈용 봉인.

초대장 수락 예법.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조금 나았다.

아이리스가 웃었다.

그게 이상하게 큰 위안이 됐다.

물론 말하지는 않았다.

말하면 또 제목이 된다.

검증은 그걸로 끝났다.

정말로.

적어도 예절위원회 안에서는 그랬다.

루카스는 복도로 나와서야 긴 숨을 내쉬었다.

“살았다.”

아주 작게 말했는데, 뒤에서 세라피나가 대답했다.

“아직 아니야.”

루카스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

복도 끝에서 햇빛이 들어왔다. 긴장이 풀리자 배가 조금 고팠다. 아침부터 예절위원회에 끌려와 제대로 먹지 못했다.

루카스는 무심코 안쪽 주머니를 확인했다.

작은 종이봉투가 만져졌다.

마들렌 두 개.

어제 밤, 혹시 몰라 챙겨 둔 간식이었다.

서비스직 출신의 습관이었다.

바쁠 때는 밥을 못 먹을 수 있다.

그러니 작은 간식은 생존 도구다.

오늘은 특히 그랬다.

예절위원회는 사람을 굶기려는 기관은 아니었지만, 사람을 먹을 타이밍을 잊게 만드는 능력은 충분했다.

루카스는 종이봉투를 보며 아주 작게 안도했다.

적어도 마들렌에는 예법이 없을 것이다.

아마도.

없어야 한다.

이것까지 예법으로 바뀌면 그는 정말 굶어야 했다.

사람은 체면으로만 살 수 없다.

당분도 필요하다.

매우 절실하게.

아침부터 그가 삼킨 것은 차 향과 정중한 위협뿐이었다.

빈속에는 둘 다 오래 남았다.

특히 정중한 위협은 소화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작은 마들렌 두 개가 갑자기 구원처럼 느껴졌다.

물론 구원에도 예법이 붙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아직 몰랐다.

그가 봉투를 다시 넣으려던 순간, 복도 반대편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루카스 님?”

루카스는 고개를 들었다.

흰 베일과 은빛 성표.

릴리아 성녀가 서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루카스의 얼굴이 아니라, 주머니에서 반쯤 보인 작은 종이봉투에 닿아 있었다.

루카스는 얼른 봉투를 숨기려 했다.

늦었다.

릴리아는 아주 조용히 다가왔다.

“그건…….”

그녀는 잠깐 멈췄다.

성녀다운 차분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눈빛은 아주 조금 달랐다.

굶주림은 아니었다.

기대였다.

릴리아가 부드럽게 물었다.

“신탁일까요, 제 취향일까요?”

루카스는 봉투를 든 채 멈췄다.

예절위원회는 끝났다.

하지만 다른 의식이 시작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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