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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님은 몰래 배고프다 일러스트

성녀님은 몰래 배고프다

“신탁일까요, 제 취향일까요?”

릴리아 성녀는 아주 진지하게 물었다.

나는 손에 든 종이봉투를 내려다봤다.

마들렌 두 개.

정확히는 어젯밤 혹시 몰라 챙겨 둔 생존용 당분 두 개.

그게 방금 성녀님의 입에서 신탁 후보가 됐다.

아니다.

과자는 신탁이 아니다.

과자는 그냥 과자다.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말했다.

“성녀님, 이건 그냥 간식입니다.”

릴리아 성녀가 눈을 깜빡였다.

“그냥 간식이요?”

“예.”

“루카스 님께서 품에 소중히 보관하시던 것을, 제가 발견한 순간 꺼내신 것이요?”

“꺼낸 게 아니라 다시 넣으려던 중이었습니다.”

“그럼 숨기신 건가요?”

“그건 더 아닙니다.”

왜 간식을 숨겼다는 말이 이렇게 죄처럼 들리지.

나는 마들렌 봉투를 슬쩍 주머니 쪽으로 옮겼다.

릴리아 성녀의 시선도 같이 움직였다.

정확했다.

성녀의 눈은 신성한 빛을 본다고 들었다.

아마 설탕도 볼 수 있는 모양이었다.

릴리아 성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베일 아래 얼굴은 평소처럼 부드러웠다.

하지만 시선은 계속 종이봉투에 머물렀다.

“실례가 아니라면 여쭤봐도 될까요?”

“예. 말씀하십시오.”

“그 안에 든 것은…… 달콤한 것인가요?”

질문이 너무 순수했다.

그리고 너무 절박했다.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마들렌이 달콤하냐고 묻는 사람에게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건 과자에 대한 모욕이다.

“조금 달긴 합니다.”

릴리아 성녀의 손끝이 아주 작게 떨렸다.

“조금.”

“예.”

“조금이면, 신께서도 용서하실까요?”

“성녀님.”

“네.”

“혹시 지금 금식 중이십니까?”

릴리아 성녀가 조용히 웃었다.

그 웃음은 성스러웠다.

너무 성스러워서 불길했다.

“성녀제 리허설 전에는 축복문을 읽기 전까지 금식합니다.”

“아.”

망했다.

나는 하필 금식 중인 성녀 앞에서 마들렌을 꺼냈다.

이건 배고픈 사람 앞에서 치킨 박스를 여는 현대인의 죄와 비슷했다.

정중하게 사과해야 한다.

아니, 정중하게 사과하면 또 이상한 뜻이 붙을 수 있다.

하지만 사과는 해야 한다.

“죄송합니다. 제가 몰랐습니다. 바로 넣겠습니다.”

“아니에요.”

릴리아 성녀가 한 걸음 다가왔다.

“넣지 않으셔도 돼요.”

“예?”

“보는 것만으로도 조금 위로가 됩니다.”

그건 위로가 아니다.

그건 고문이다.

나는 봉투를 등 뒤로 숨겼다.

릴리아 성녀가 아주 조용히 물었다.

“루카스 님.”

“예.”

“혹시 제가 지금 많이 불쌍해 보이나요?”

“아닙니다.”

“그럼 조금만 불쌍한가요?”

“그런 뜻도 아닙니다.”

“그럼 배고파 보이나요?”

나는 입을 닫았다.

이건 함정이었다.

배고파 보인다고 하면 성녀의 체면을 건드린다.

배고파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웨딩홀 알바 시절에도 이런 질문은 있었다.

“저 오늘 화장 이상해요?”

“음식 너무 적어 보여요?”

“신랑 쪽 친척들 표정 안 좋죠?”

정답은 늘 하나였다.

상대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고, 문제만 조용히 해결한다.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성녀님께서 불편해 보이십니다.”

릴리아 성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불편.”

“예. 배고프다는 말은 제가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오래 서 계셨고, 리허설 전이면 체력도 필요하실 겁니다.”

“아.”

릴리아 성녀가 베일 끝을 만졌다.

“그렇게 말해주시는군요.”

“제가 틀렸다면 바로 정정하겠습니다.”

“아니요.”

그녀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틀리지 않았어요.”

그때 복도 끝에서 성당 수행원 두 명이 빠르게 다가왔다.

흰 옷.

은빛 성표.

그리고 손에 든 작은 은종.

나는 은종을 보자마자 긴장했다.

종이 울리면 리허설이 시작된다.

리허설이 시작되면 성녀님은 더 못 먹는다.

수행원 하나가 릴리아 성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성녀님. 리허설 준비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네. 곧 갈게요.”

“축복문 1절부터 4절까지 확인하시고, 제단 앞 이동 동선도 다시 맞춰야 합니다.”

릴리아 성녀가 웃었다.

“네.”

배에서 작게 소리가 났다.

꼬르륵.

복도 공기가 아주 잠깐 멈췄다.

아니다.

멈췄다는 표현은 과하다.

그냥 모두가 동시에 못 들은 척하려고 실패했다.

수행원 두 명의 눈동자가 허공을 향했다.

나는 바닥을 봤다.

릴리아 성녀는 두 손을 더 곱게 모았다.

“방금 것은.”

그녀가 아주 침착하게 말했다.

“성당 종소리의 여운입니다.”

성당 종은 아직 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나도 말하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지켜야 할 체면이 있다.

특히 배에서 나는 소리에는 더더욱 그렇다.

수행원 하나가 은종 줄을 더 꼭 쥐었다.

“금식 규칙은 성녀제 축복문의 순결성을 위한 전통입니다. 리허설 중에는 물도 최소한으로…….”

릴리아 성녀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나는 그걸 봤다.

또 봐버렸다.

왜 나는 이런 것만 잘 보는가.

위험한 장식물, 흔들리는 컵, 울 것 같은 하객, 배고픈 성녀.

현대에서는 알바 생존 기술이었다.

여기서는 로맨스 폭탄 감지기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실례가 아니라면 확인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수행원이 나를 보았다.

“에버렛 경께서요?”

“예. 제가 예법은 잘 모르지만, 행사 진행은 조금 압니다.”

조금.

웨딩홀 식순표 삼백 장 넘게 들고 뛰어본 정도다.

수행원은 어딘가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십시오.”

“성녀님께서 리허설 중 쓰러지시면, 그게 더 큰 결례가 되지 않습니까?”

릴리아 성녀가 나를 보았다.

수행원도 멈췄다.

나는 바로 손을 들었다.

“물론 쓰러지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녀님께서 약하시다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행사는 안전하게 끝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말이 길어졌다.

위험하다.

말이 길어지는 건 내 생존 본능이 도망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미 시작했다.

“금식 규칙이 있다면 지켜야 합니다. 대신 리허설 직후에 드실 수 있도록 회복용 간식을 준비해두는 건 규칙 위반이 아닐까요?”

수행원이 눈을 깜빡였다.

“리허설 직후 말씀이십니까?”

“예. 축복문을 읽기 전에는 손대지 않습니다. 하지만 끝난 뒤 바로 드실 수 있게 제가 들고 있겠습니다. 성녀님께서 직접 챙기지 않으셔도 되고요.”

나는 종이봉투를 들어 보였다.

릴리아 성녀의 눈빛이 살짝 밝아졌다.

아니, 많이 밝아졌다.

마들렌에 성스러운 광원이 들어간 줄 알았다.

“이건 제 간식입니다. 성녀님께 드리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릴리아 성녀의 눈빛이 바로 흔들렸다.

아.

말을 잘못 골랐다.

나는 급히 덧붙였다.

“아니, 드리지 않겠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금 드리겠다는 뜻이 아니라, 규칙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필요하시면…….”

“루카스 님.”

릴리아 성녀가 부드럽게 불렀다.

“네.”

“정말 괜찮아요.”

“예?”

“저는 지금 드시라고 하시는 것보다, 지금은 안 된다고 같이 참아주시는 게 더 좋아요.”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

릴리아 성녀는 작게 웃었다.

이번 웃음은 배고픈 사람의 웃음이었다.

조금 약하고, 조금 솔직했다.

“다들 제게 금식하라고만 해요. 성녀니까 참을 수 있다고요.”

그녀는 종이봉투를 보지 않았다.

이번에는 나를 봤다.

“그런데 루카스 님은 제가 힘들 수도 있다고 먼저 생각해주셨잖아요.”

“그건 당연한 겁니다.”

“성녀에게요?”

“사람에게요.”

말하고 나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

이건 또 뭔가 큰 말처럼 들릴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릴리아 성녀의 손이 가슴 앞에서 멈췄다.

수행원 하나는 성표를 더 꼭 쥐었다.

수행원 하나가 은종을 살짝 들어 올렸다.

곧 울리겠다는 뜻이었다.

릴리아 성녀의 시선이 은종으로 갔다가, 다시 내 손의 봉투로 돌아왔다.

그 짧은 왕복이 너무 솔직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끝나면 바로입니다.”

“정말요?”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그 말, 신기하게 든든해요.”

“마들렌 때문입니다.”

“루카스 님 때문일 수도 있어요.”

아니.

마들렌 탓으로 합시다.

그쪽이 훨씬 안전합니다.

수행원은 여전히 은종 줄을 잡고 있었다.

나는 봉투를 내밀었다.

“이건 리허설이 끝날 때까지 제가 들고 있겠습니다. 성녀님께서 축복문을 마치시면, 그때 드리겠습니다.”

“루카스 님께서 직접요?”

릴리아 성녀가 물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드리는 게 빠르니까요.”

또 말이 잘못 나갔다.

가장 가까운 사람.

그 단어가 복도에서 너무 선명하게 울렸다.

릴리아 성녀의 귀 끝이 베일 아래에서 아주 조금 붉어졌다.

수행원 두 명은 서로를 보았다.

나는 재빨리 수정했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위치를 말한 겁니다. 동선상.”

“동선상.”

릴리아 성녀가 따라 말했다.

“네. 동선상.”

“그럼 루카스 님은 제 동선 안에 계시는군요.”

아니다.

이 세계 사람들은 왜 모든 명사를 관계로 바꾸는가.

나는 속으로 머리를 짚었다.

겉으로는 정중하게 웃었다.

서비스직 미소였다.

릴리아 성녀는 그 미소를 보고 더 환하게 웃었다.

아차.

미소도 신탁이 될 수 있다.

그때 성당 안쪽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뎅.

이번에는 진짜였다.

릴리아 성녀가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수행원들이 길을 열었다.

“성녀님. 입장하셔야 합니다.”

“네.”

릴리아 성녀는 한 걸음 걸었다.

그러다 다시 돌아보았다.

“루카스 님.”

“예.”

“마들렌은…… 정말 리허설 뒤에 주시는 거죠?”

“예. 규칙을 지키는 선에서요.”

“그럼 저는 조금 더 힘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가 두 손을 모았다.

성녀다운 자세였다.

하지만 눈은 아주 솔직했다.

마들렌을 기다리는 사람의 눈이었다.

“사실 오늘 아침부터 계속 참았거든요.”

“아침부터요?”

“네. 성스러운 마음으로요.”

꼬르륵.

이번에는 조금 더 선명했다.

릴리아 성녀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성스러운 마음만으로는 부족했나 봐요.”

수행원 하나가 황급히 찬송가 첫 구절을 흥얼거렸다.

소리를 덮으려는 시도였다.

실패했다.

나는 마들렌 봉투를 더 단단히 쥐었다.

“끝나면 바로 드리겠습니다.”

“네.”

릴리아 성녀가 웃었다.

“약속이에요.”

“간식 약속입니다.”

“성스러운 간식 약속이요.”

“성스럽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 따뜻한 간식 약속이요.”

그 정도면 괜찮다.

아마도.

릴리아 성녀는 제단 쪽으로 걸어갔다.

흰 베일이 복도 끝 빛을 받아 부드럽게 흔들렸다.

나는 뒤에서 따라가며 생각했다.

이번에는 크게 사고 치지 않았다.

금식 규칙도 어기지 않았다.

성녀님의 체면도 지켰다.

마들렌도 아직 무사하다.

완벽하다.

완벽하다는 생각을 한 지 세 걸음 만에, 완벽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제단 안쪽에서는 성가대 아이들이 줄을 맞추고 있었다.

작은 악보가 바스락거렸다.

향 냄새가 났다.

그리고 내 손에서는 마들렌 냄새가 났다.

큰일이다.

향보다 버터가 강했다.

가장 앞줄에 선 아이 하나가 코를 살짝 움직였다.

릴리아 성녀도 동시에 고개를 아주 조금 돌렸다.

둘 다 모른 척했다.

훌륭한 예의였다.

하지만 배는 예의가 없었다.

꼬르륵.

이번에는 아주 작았다.

성가대 아이가 악보를 더 높이 들었다.

“성녀님, 지금 시작할까요?”

“네.”

릴리아 성녀는 차분히 답했다.

“시작해요.”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끝이 조금 가늘었다.

나는 봉투를 손바닥 안쪽으로 숨겼다.

수행원 하나가 속삭였다.

“성녀님, 혹시 물을 조금…….”

“금식 전례 중에는 괜찮아요.”

릴리아 성녀가 웃었다.

괜찮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끼어들 수 없었다.

금식 규칙을 어기면 안 된다.

성녀님의 체면도 건드리면 안 된다.

마들렌을 흔들어도 안 된다.

이건 이제 간식이 아니라 폭탄이었다.

버터 향 나는 폭탄.

나는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성녀님.”

릴리아가 나를 보았다.

“예, 루카스 님.”

“끝나면 바로 드리겠습니다.”

아주 작은 말이었다.

수행원도, 성가대도 거의 듣지 못했다.

릴리아 성녀만 들었다.

그녀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정말요?”

“예. 약속드렸으니까요.”

“그럼 저는 지금부터 마들렌이 있는 미래를 향해 걷는 거네요.”

“리허설입니다.”

“네. 마들렌이 있는 리허설이요.”

그 정도면 괜찮다.

아마도.

제단 안쪽에서는 어린 성가대가 줄을 맞추고 있었다.

아이들은 릴리아 성녀를 보자마자 허리를 폈다.

그중 가장 작은 아이가 릴리아의 배 쪽을 힐끗 보았다.

릴리아 성녀가 아주 성스럽게 웃었다.

“아까 들은 건 종소리였어요.”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성녀님.”

믿는 얼굴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의는 있었다.

좋은 아이였다.

나는 속으로 박수를 쳤다.

그때 아이가 나를 보았다.

정확히는 내 손의 종이봉투를 보았다.

“저건 성물인가요?”

아니다.

절대 아니다.

나는 바로 대답했다.

“간식입니다.”

성가대 아이가 작게 속삭였다.

“간식인데 반짝이는 것 같아요.”

“기분 탓입니다.”

“그럼 기분도 축복받은 건가요?”

성가대 아이가 진지하게 물었다.

나는 대답을 포기했다.

어린아이와 성녀님이 같은 방향으로 오해하기 시작하면, 어른 한 명이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릴리아 성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직은요.”

“성녀님까지 그러시면 안 됩니다.”

릴리아 성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웃음을 참는 얼굴이었다.

성녀가 웃음을 참는 이유가 마들렌이라니.

그래도 다행이었다.

아까보다 얼굴빛이 조금 나아졌다.

먹은 건 없는데, 기다릴 것이 생긴 사람의 얼굴이었다.

웨딩홀에서도 그랬다.

식전부터 굶은 신부 친구에게 도시락 위치만 알려줘도 표정이 달라졌다.

“끝나고 바로 드릴게요.”

그 한마디면 사람은 부케도 잡고, 사진도 찍고, 친척 인사도 버텼다.

물론 끝나면 진짜로 줘야 한다.

안 그러면 그건 사기다.

나는 봉투 끈을 손가락에 감았다.

릴리아 성녀의 시선이 거기서 잠깐 멈췄다.

“도망가지 않게 묶어두시는 건가요?”

“마들렌이 도망가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안심돼요.”

“마들렌이요?”

“아니요. 루카스 님이요.”

안심하지 마십시오.

저도 지금 매우 불안합니다.

나는 봉투를 품 안쪽으로 조심히 넣었다.

구겨지지 않게.

부서지지 않게.

제발 그냥 마들렌으로 남아라.

릴리아 성녀는 다시 앞을 보았다.

발걸음은 아까보다 느렸지만, 흔들리지는 않았다.

나는 그 뒤를 두 걸음 떨어져 따라갔다.

딱 두 걸음.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게.

이 세계에서는 그 거리에도 이름이 붙을 것 같아서 불안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넘어지지 않는 게 먼저였다.

제단 계단 앞에 낮은 받침대가 있었다.

릴리아 성녀는 그 앞에서 잠깐 멈췄다.

수행원이 축복문을 펼쳤다.

글자가 빽빽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더 고파질 것 같은 양이었다.

“성녀님, 1절부터 읽으시면 됩니다.”

“네.”

릴리아 성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아주 작게 내 쪽을 보았다.

나는 봉투를 두 손으로 들었다.

흔들지 않았다.

흔들면 냄새가 날 것 같아서였다.

릴리아 성녀의 입가가 조금 올라갔다.

그 표정은 성스럽다기보다, 시험 끝나고 매점 갈 생각을 하는 학생에 가까웠다.

좋다.

그 정도면 버틸 수 있다.

나는 입 모양만으로 말했다.

끝나고.

릴리아 성녀도 입 모양만으로 대답했다.

반쪽만요.

아니요.

한 개 드십시오.

그녀의 눈이 커졌다.

성녀제 리허설 직전, 성녀님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기적을 본 얼굴이 됐다.

그때 은종이 울렸다.

맑은 소리였다.

성가대 아이들이 숨을 모았다.

릴리아 성녀는 축복문 첫 줄을 내려다봤다.

입술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아마 축복문을 외우는 중일 것이다.

아마.

그런데 중간에 내 손 쪽으로 시선이 한 번 더 왔다.

나는 봉투를 가슴 앞에 붙였다.

보여주려던 건 아니었다.

그냥 여기 있다고 알려주는 정도였다.

릴리아 성녀가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한 번으로 충분했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단단해졌다.

“빛은 굶주린 마음에도 내려와…….”

축복문 첫 구절이었다.

성가대 아이 하나가 내 쪽을 보았다.

굶주린 마음.

아무래도 오늘 문장은 너무 정확했다.

나는 눈을 피했다.

릴리아 성녀는 두 번째 구절을 읽었다.

이번에는 배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작은 승리였다.

나는 속으로 박수쳤다.

물론 겉으로 박수치면 리허설이 망한다.

그래서 봉투만 더 조심히 들었다.

수행원 하나가 내 손을 보고 속삭였다.

“에버렛 경, 혹시 그 봉투를 제단 아래 바구니에 두시겠습니까?”

“아니요.”

나는 바로 대답했다.

너무 빨랐다.

수행원이 눈을 깜빡였다.

나는 급히 덧붙였다.

“성녀님께서 끝나고 바로 드셔야 하니까요. 바구니에 두면 다른 물건과 섞일 수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릴리아 성녀의 어깨가 또 아주 작게 흔들렸다.

웃음을 참는 중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웃지 마십시오.

마들렌을 지키는 일도 생각보다 위엄이 필요합니다.

릴리아 성녀가 제단 입구에서 돌아보았다.

“루카스 님.”

“예, 성녀님.”

그녀는 주변 수행원들이 듣지 못할 만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도 신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 손 안의 종이봉투가 갑자기 너무 무거워졌다.

마들렌 두 개.

그냥 간식이어야 했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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