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망치려 했는데 공식 일정표가 생겼다
황실의 봉투는 무거웠다.
루카스는 한동안 그것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흰 봉투.
붉은 밀랍.
황실 문장.
그리고 종이 여러 장이 들어 있는 두께.
초대장 하나라면 괜찮았다.
초대장은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도 한 번만 가면 끝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일정 통지서라는 말은 달랐다.
일정은 하나가 아니었다.
루카스는 봉투를 열었다.
칼로 밀랍 가장자리를 조심스럽게 떼어 냈다. 쓸데없이 정중한 손놀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밀랍을 찢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첫 장은 초대장이었다.
황실 주최 주말 사교회.
두 번째 장은 참석자 명단이었다.
세라피나 황녀의 이름이 있었다.
그 밑에 아이리스 공녀의 이름이 있었다.
그 아래로 릴리아 성녀, 레오나 기사단장, 비앙카 마탑주의 이름이 줄줄이 이어졌다.
루카스는 세 번째 장을 보기도 전에 이마를 짚었다.
“왜 다 계십니까.”
누가 대답해 주지는 않았다.
세 번째 장에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공식 일정표.
루카스는 그 글자를 보자마자 등 뒤가 서늘해졌다.
일정표는 사람을 붙잡는 가장 예의 바른 밧줄이었다.
월요일.
황실 초대장 수령 확인 및 참석 의사 회신.
화요일.
황녀 전하 측 사전 차담.
수요일.
윈터벨 공작가 예절 확인 방문.
목요일.
성당 자선 예배 동석.
금요일.
기사단 호위 동선 점검.
토요일.
마탑 협조 문서 확인.
일요일.
황실 주말 사교회 본행사.
루카스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집어 들었다.
눈이 잘못됐을 가능성을 확인해야 했다.
월화수목금토일.
전부 있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현대에서라면 이건 아르바이트 매니저가 사람을 갈아 넣을 때 쓰는 근무표였다.
“주말이…… 없습니다.”
루카스는 아주 작게 말했다.
주말 도망 계획은 어젯밤에 세웠다.
수도 밖 별채로 가는 마차는 새벽에 잡으면 됐다. 짐은 작게 싸면 됐다. 핑계는 몸살이면 충분했다. 누가 봐도 얌전하고 비겁하지만, 살아남기에는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다.
그 계획이 황실 문장 찍힌 종이 세 장에 깔끔하게 접혔다.
루카스는 일정표를 다시 훑었다.
그래도 빈틈은 있을 것이다.
사람이 만든 일정표였다.
사람이 만든 일정표에는 반드시 허점이 있었다.
그는 펜을 들었다.
월요일 회신.
오전 중 보낼 수 있다.
오후는 비워진다.
루카스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하인이 문을 두드렸다.
“에버렛 경. 황실 연락관이 회신을 직접 받겠다고 왔습니다.”
“직접이요?”
“예. 회신 문구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루카스는 펜을 떨어뜨릴 뻔했다.
회신 문구.
그 단어만으로도 위험했다.
어제 장미일보 편집부에서 배운 게 있었다.
문장은 짧을수록 더 크게 오해받았다.
길면 잘라서 오해받았다.
정중하면 수상하게 오해받았다.
무례하면 그건 그냥 끝이었다.
루카스는 회신장을 앞에 두고 한참 고민했다.
참석하겠습니다.
너무 적극적이었다.
부득이하게 참석하겠습니다.
황실 초대에 부득이라니 목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
건강상의 이유로 어렵습니다.
그럼 황실 의사가 올 것 같았다.
루카스는 결국 가장 평범한 문장을 골랐다.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늦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연락관은 그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황녀 전하께서 좋아하시겠습니다.”
“왜요?”
루카스의 목소리가 새었다.
연락관은 의아하다는 듯 대답했다.
“전하를 기다리시게 하지 않겠다는 뜻이니까요.”
아니었다.
그냥 늦으면 죽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루카스는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그는 웃었다.
살기 위해 웃었다.
월요일 오후도 사라졌다.
화요일은 황녀 전하 측 사전 차담이었다.
루카스는 세라피나가 보낸 쪽지를 받았다.
글씨는 우아했다.
내용은 우아하지 않았다.
루카스 경, 도망칠 생각이라면 미리 말해. 세 걸음은 봐줄게.
루카스는 쪽지를 두 번 읽었다.
세 걸음.
황녀가 세 걸음 봐준다는 건 결국 네 걸음째에 잡힌다는 뜻이었다.
그는 답장을 써야 했다.
전하, 도망칠 생각은 없습니다.
거짓말이었다.
전하, 몸이 좋지 않아 차담을 미루고 싶습니다.
그럼 황실 의사가 올 것이다.
전하, 기다리시게 할 수 없습니다.
루카스는 그 문장을 쓰고 멈췄다.
위험했다.
너무 위험했다.
하지만 다른 문장보다 덜 위험해 보였다.
그는 결국 쪽지에 적었다.
“전하를 기다리시게 할 수 없습니다. 제가 먼저 응접실에 가 있겠습니다.”
잠시 뒤 답장이 왔다.
세라피나의 글씨는 아까보다 더 부드러웠다.
그렇게까지 내 시간을 생각해 주는구나. 좋아. 나도 늦지 않을게.
루카스는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방 안에는 그 말을 들어 줄 사람이 없었다.
화요일도 사라졌다.
수요일은 아이리스 공녀의 예절 확인 방문이었다.
처음에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리스는 차갑고 정확했다.
불필요한 말을 싫어했다.
그러니 간단히 일정 조정만 요청하면 될 것 같았다.
루카스는 정중하게 말했다.
“공녀님, 혹시 수요일 방문 시간을 조금 앞당길 수 있겠습니까?”
아이리스는 그를 보았다.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오래 기다리시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요. 제가 먼저 준비해 두겠습니다.”
말하고 나서 깨달았다.
또 그 문장이었다.
기다리시게 할 수 없습니다.
아이리스의 눈빛이 살짝 움직였다.
정말 아주 조금이었다.
하지만 루카스는 이제 그 작은 변화도 무서웠다.
아이리스가 차분히 말했다.
“에버렛 경은 그런 부분까지 고려하시는군요.”
“예?”
“상대가 기다리는 시간까지 명예의 일부로 보신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아니었다.
그냥 기다리게 하면 민원이 들어올 것 같아서였다.
아이리스는 손에 든 작은 수첩을 닫았다.
“그렇다면 저도 늦지 않겠습니다. 아니, 조금 일찍 도착하겠습니다.”
루카스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일찍 오면 더 기다리게 된다.
그래서 다시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먼저 가 있겠습니다.”
아이리스의 표정이 더 단정해졌다.
“그 배려는 기억하겠습니다.”
배려가 아니었다.
방어였다.
수요일도 사라졌다.
목요일은 성당 자선 예배였다.
루카스는 성당이면 조용할 거라고 믿었다.
기도하는 곳에서 스캔들이 더 커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믿음은 릴리아 성녀가 작은 바구니를 들고 찾아오면서 깨졌다.
바구니 안에는 마들렌이 있었다.
“루카스 님.”
릴리아가 부드럽게 웃었다.
“목요일에 같이 가 주신다고 들었어요.”
“예. 공식 일정에 적혀 있어서요.”
“저를 기다리게 하지 않으려고 시간을 확인하셨다면서요.”
루카스는 눈을 감았다.
누가 퍼뜨렸는지 모르겠지만, 사교계는 소문을 옮기는 속도가 물보다 빨랐다.
“그건 예의상…….”
“네. 예의요.”
릴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지 않는 마음은 작은 기도와 닮았어요.”
“기도까지는 아닙니다.”
“그럼 취향일까요?”
“취향도 아닙니다.”
릴리아는 바구니를 내밀었다.
“그럼 마들렌 드실래요?”
루카스는 잠깐 멈췄다.
이 상황에서 마들렌은 죄가 없었다.
그는 하나를 받았다.
릴리아가 환하게 웃었다.
“역시 오늘도 작은 기적이 있네요.”
“마들렌을 받은 것뿐입니다.”
“저는 그게 좋아요.”
목요일도 사라졌다.
금요일은 기사단 호위 동선 점검이었다.
루카스는 처음부터 긴장했다.
레오나는 말이 짧았다.
말이 짧으면 오해도 짧게 끝날 가능성이 있었다.
그는 그 가능성에 매달렸다.
훈련장 앞에서 레오나가 팔짱을 끼고 기다리고 있었다.
“늦지 않았군.”
“기다리시게 할 수는 없어서요.”
말이 입 밖으로 나온 뒤, 루카스는 스스로의 혀를 원망했다.
레오나는 잠깐 그를 보았다.
“좋은 자세다.”
“아닙니다. 그런 의미는…….”
“전장에서 전우를 기다리게 하지 않는 건 기본이다.”
“전장이 아닙니다.”
“사교장은 전장과 비슷하다.”
틀린 말이 아니라서 더 괴로웠다.
레오나는 짧게 말했다.
“금요일 새벽 훈련도 비워 둬라.”
“새벽이요?”
“도망칠 틈을 찾는 눈이다.”
루카스는 굳었다.
“제가 그렇게 티가 납니까?”
“난 도망치는 사람의 등을 많이 봤다.”
레오나의 말투는 담담했다.
위협은 아니었다.
그게 더 무서웠다.
전문가였다.
“도망치지 마라. 다치기 쉽다.”
“저는 다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럼 내 옆에 서라.”
금요일 새벽도 사라졌다.
토요일은 마탑 협조 문서 확인이었다.
루카스는 마탑 일정만큼은 문서로 끝낼 수 있기를 바랐다.
문서라면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
사인을 하고 돌려보내면 된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동의서가 세 장 있었다.
첫 장은 방문 동의서.
둘째 장은 마력 반응 기록 열람 동의서.
셋째 장은 일정 중복 시 우선 협의 동의서.
루카스는 셋째 장에서 손을 멈췄다.
비앙카는 이미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
언제 들어왔는지 몰랐다.
“놀랐어?”
“조금요.”
“문은 열려 있었어.”
“그렇다고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노크했어. 네가 일정표를 보고 죽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못 들은 거야.”
비앙카는 종이를 가리켰다.
“토요일 오후. 내 시간.”
“마탑주님, 토요일은 황실 사교회 전날입니다.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전으로 옮겼어.”
“그럼 제가 준비할 시간이 더 줄어듭니다.”
“대신 나를 기다리게 하지 않아도 돼.”
루카스는 입을 다물었다.
비앙카는 무표정하게 덧붙였다.
“이건 감정 문제가 아니야. 일정 중복 변수야.”
“그 변수에서 저를 빼 주시면 안 됩니까?”
“불가능해. 네가 중심값이야.”
중심값.
사람에게 쓰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이전처럼 불길한 연구실 냄새는 아니었다.
비앙카는 동의서를 내밀었다.
“싫으면 거절해. 기록만 남길게.”
“거절하면 어떻게 됩니까?”
“일요일 황실 일정에서 다시 물어볼 거야.”
거절권은 있었다.
탈출권은 없었다.
토요일도 사라졌다.
루카스는 책상 위에 일정표를 펼쳐 놓았다.
월요일 회신.
화요일 황녀.
수요일 공녀.
목요일 성녀.
금요일 기사단.
토요일 마탑.
일요일 황실 사교회.
깔끔했다.
너무 깔끔했다.
사람을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면 이렇게 깔끔하면 안 됐다.
루카스는 마지막 희망을 찾았다.
새벽.
밤.
이동 시간.
식사 시간.
사람은 빈칸에 산다.
일정표가 아무리 빽빽해도 빈칸은 있을 것이다.
그때 카르덴이 찾아왔다.
루카스는 그를 보자마자 불길함을 느꼈다.
“에버렛 경.”
카르덴은 진지했다.
진지하면 보통 좋은 일이 아니었다.
“스승님이라고 부르지 말아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에버렛 경.”
카르덴은 잠깐 멈춘 뒤 고개를 숙였다.
“다만 오늘은 가르침을 청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오셨습니까?”
“일정표를 받았습니다.”
루카스는 손에 든 펜을 내려놓았다.
“경도 받으셨습니까?”
“예. 남성 귀족 대표 참관 명목입니다.”
그런 명목도 있단 말인가.
카르덴은 진지하게 말했다.
“저는 처음엔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의 일주일을 모두에게 나누는 것은 지나치게 무모합니다.”
“정상적인 판단입니다.”
“하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깨닫지 마십시오.”
“기다림을 나누는 방식이군요.”
루카스는 눈을 감았다.
또 시작이었다.
카르덴은 계속했다.
“누구도 기다리게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먼저 기다리는 사람. 그래서 모두의 시간을 공평하게 세우는 사람. 이것이 에버렛 경의 방식입니까?”
“아닙니다.”
“부정까지 일관되십니다.”
“그건 일관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카르덴은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이번 주에는 늦지 않겠습니다. 에버렛 경의 시간을 흐트러뜨리지 않겠습니다.”
“제 시간은 이미 흐트러졌습니다.”
“겸손까지.”
루카스는 카르덴에게 차를 권하지 않았다.
권하면 차담 일정이 하나 더 생길 것 같았다.
하지만 카르덴은 스스로 찻잔을 보며 말했다.
“차는 괜찮습니다. 경의 빈칸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 말은 아주 정상적이었다.
그래서 루카스는 잠깐 안도했다.
카르덴이 덧붙였다.
“빈칸까지 배려로 남겨 두는군요.”
안도는 짧았다.
카르덴이 돌아간 뒤, 루카스는 다시 일정표를 붙잡았다.
이제 남은 건 각 일정의 앞뒤에 붙은 짧은 시간뿐이었다.
그는 그것들을 하나씩 계산했다.
화요일 차담 전 한 시간.
수요일 방문 뒤 반 시간.
목요일 예배 전 마차 이동 시간.
금요일 새벽 훈련 뒤 아침 식사 전.
토요일 마탑 문서 확인 뒤 저녁 준비 전.
전부 합치면 꽤 길어 보였다.
문제는 그 시간이 모두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다는 점이었다.
도망은 출발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마차를 부르고, 짐을 싣고, 문을 지나고, 누가 봐도 수상하지 않은 표정을 지어야 했다.
지금 루카스에게 가장 부족한 건 시간보다 수상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는 시종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이번 주에 외출용 마차를 조용히 준비할 수 있습니까?”
시종은 잠깐 생각하더니 물었다.
“황실 사교회용 예비 마차 말씀이십니까?”
“아닙니다. 그냥…… 바람을 쐬러 갈 수 있는 마차입니다.”
“바람을 쐬신다면 호위가 필요합니다.”
“호위는 괜찮습니다.”
“요즘 에버렛 경의 평판을 생각하면 괜찮지 않습니다.”
평판.
그 단어가 마차보다 무거웠다.
시종은 악의 없이 덧붙였다.
“혼자 나가시면 또 기사가 날 겁니다.”
“어떤 기사요?”
“아마…… 기다리는 숙녀들을 두고 어디로 향했나, 같은 제목이 되지 않을까요.”
루카스는 입을 다물었다.
마차도 막혔다.
그는 다음 방법을 떠올렸다.
걸어서 나가기.
수도는 넓었다. 골목도 많았다. 평범한 외투를 입고 낮은 모자를 쓰면 잠깐쯤은 숨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거울 앞에 선 순간 알았다.
귀족 영식이 평범한 외투를 입는다고 평범해지지는 않았다.
수상한 귀족 영식이 될 뿐이었다.
그때 문밖에서 하녀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에버렛 경께서 이번 주에는 누구를 먼저 만나실까?”
“먼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늦지 않는 게 중요하대.”
“그럼 전부 특별한 거네.”
루카스는 조용히 외투를 벗었다.
평범한 외투도 막혔다.
마지막은 병이었다.
몸살.
귀족 사회에서도 몸이 아프면 쉬게 해 줄 것이다.
루카스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미열은 없었다.
억울하게도 몸은 멀쩡했다.
그는 잠깐 진지하게 찬물 앞에 섰다가 물러났다.
감기에 걸리려고 감기에 걸리는 건 스스로 함정을 파는 짓이었다.
그리고 이 세계는 사람을 아프게 하면 더 큰 예절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었다.
문병.
위문.
간호.
다섯 명이 동시에 찾아오는 그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루카스는 즉시 건강하기로 했다.
저녁이 되자 장미일보 호외가 또 왔다.
루카스는 받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하인은 이미 문틈으로 밀어 넣고 도망쳤다.
호외 제목은 분홍색이었다.
「에버렛 경의 일주일, 누구도 기다리게 하지 않는 남자의 공식 시간표」
그 아래에는 작은 해설 문장이 붙어 있었다.
시간을 나누는 남자는 마음도 가볍게 나누지 않는다.
루카스는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읽을수록 더 모르겠고, 모를수록 더 위험했다.
루카스는 종이를 접었다.
다시 펼쳤다.
혹시 잘못 봤을까 봐였다.
잘못 보지 않았다.
작은 제목도 있었다.
「월요일은 황실에 예를, 화요일은 황녀에게 시간을, 수요일은 공녀에게 품위를」
루카스는 조용히 호외를 뒤집었다.
뒤에도 기사가 있었다.
「토요일까지 비워 둔 남자, 일요일 황실에서 무엇을 고백할까」
비워 두지 않았다.
일정표에 들어갔다.
그러나 종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루카스는 마지막으로 일정표의 가장자리를 보았다.
일요일 밤.
본행사 종료 후 귀가.
그 아래에 아주 작은 글씨가 있었다.
귀가 인사 및 후속 초대 응답.
그리고 그 옆에는 더 작은 칸이 하나 붙어 있었다.
무도회 첫 곡 파트너 요청 회신.
“후속 초대?”
그 순간 예절서의 글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늘 그렇듯 짧고 건조했다.
공식 초대를 받은 뒤 후속 인사를 미루면 상대를 기다리게 하는 결례가 된다.
루카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잠깐만요.”
글귀는 멈추지 않았다.
숙녀를 기다리게 하는 것은 최악의 무례.
그 문장은 너무 짧았다.
짧아서 반박할 구멍도 없었다.
루카스는 잠깐 모든 이름을 지우고 싶었다.
하지만 이름을 지우면 일정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무례가 남았다.
황녀를 기다리게 했다.
공녀를 기다리게 했다.
성녀를 기다리게 했다.
기사단장을 기다리게 했다.
마탑주를 기다리게 했다.
문장으로 적어 놓으니 죄목처럼 보였다.
루카스는 펜 끝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사람을 피하려고 일정을 비우는 일에도 예의가 필요했다.
그게 이 세계의 가장 무서운 점이었다.
도망도 무례하게 하면 안 됐다.
루카스는 일정표를 내려다보았다.
월화수목금토일.
도망칠 빈칸은 없었다.
빈칸처럼 보이는 곳에는 예의가 앉아 있었다.
루카스는 펜을 들었다.
그리고 가장자리의 빈 공간에 작게 적었다.
도망 실패.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썼다.
출석이 덜 위험함.
쓰기 전에는 비극 같았다.
쓰고 나니 근무표 같았다.
그게 더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