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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새는 길을 막았다 일러스트

돈 새는 길을 막았다

`공동 운영 수익 배분: 정산 기준은 추후 협의.`

어젯밤 서랍 위에 올려둔 두 번째 제안서의 가장 밑바닥에 적혀 있던 문구다.

화려한 수식어로 치장된 공동 운영 제안서였지만, 마지막 줄에 적힌 문장은 족쇄나 다름없었다. 정산 기준을 나중에 협의하겠다는 말은, 결국 단물이 다 빠진 뒤에 자기들 멋대로 정산 비율을 후려치겠다는 소리였다. 어젯밤 냥믹이 그 문구 위에 검은 꼬리를 바짝 세우고 낮게 으르렁거렸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영악한 고양이가 보기에도 그 줄은 덫이었다.

유찬은 침묵 속에서 제안서를 서랍 깊숙이 밀어 넣었다. 아무리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처럼 보여도, 기준이 불투명한 계약은 덥석 물지 않는 게 유찬의 철칙이었다. 발을 담그기 전에 먼저 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확실한 먹이부터 챙겨야 했다.

그리하여 다음 날 오전, 유찬이 향한 곳은 정상 길드인 한서 길드가 의뢰한 폐쇄 던전, 한서 E-12 현장이었다.

경기도 외곽의 한적한 산자락 아래.

잡초가 무성하게 우거진 콘크리트 방벽 앞에 한 남자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서 있었다. 한서 길드의 현장 담당자인 최민규였다. 초췌한 얼굴에 짙게 내려앉은 다크서클, 그리고 연신 피워대는 담배 연기가 그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는 상황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었다. 현장의 골치 아픈 사정을 너무 잘 알아서, 더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강유찬 씨."

최민규가 담배꽁초를 바닥에 짓이기며 유찬을 맞이했다. 그의 손에는 두툼한 서류철이 들려 있었다. 누렇게 바랜 종이 위로 매달 지출된 비용들이 빽빽한 숫자로 찍혀 있었다.

"던전 한서 E-12입니다. 석 달 전에 공식적으로 폐쇄 승인을 받았고 내부의 위험 요소도 전부 제거한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매달 돈이 계속 빠져나갑니다. 지반 침하를 막기 위한 약품 투입비, 마력 오염 차단막 보수 비용에 필터 교체비까지……. 매달 1,800만 원씩 나갑니다. 이 속도라면 1년만 지나도 2억 원이 넘는 예산이 공중으로 날아가는 셈입니다."

최민규의 목소리에는 짙은 피로와 억울함이 배어 있었다.

"길드 윗선에서는 폐쇄된 던전에서 왜 자꾸 돈이 새어 나가느냐며 당장 비용을 줄이라고 난리입니다. 하지만 법적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당장 길드 면허가 정지되거나 무거운 과태료를 물어야 합니다. 저희로서도 환장할 노릇이지요. 기존 방식대로라면 바닥에서 스며 나오는 미세한 마력을 잡기 위해 계속 정화 장비를 돌리고 약품을 쏟아부어야만 하는 구조니까요."

유찬은 최민규가 건넨 서류철을 천천히 넘겼다. 그 안에는 던전 폐쇄 전에 작성된 점검 기록과 함께 현장 상태를 담은 사진들이 첨부되어 있었다.

유찬의 품 안에서 꼬물거리던 슬라임, 포포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포포는 투명한 푸른빛의 몸통을 젤리처럼 파르르 떨며 최민규의 손에 들린 서류 사진을 쳐다보았다.

사진 속에는 던전 내부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결정 조각이 찍혀 있었다.

뽀글.

포포의 둥근 몸통 안에서 맑은 물방울 같은 기포가 뽀글거리며 솟아올랐다. 사진 속 조각의 미세한 마력 흔적에 반응한 모양이었다. 젤리처럼 토독토독 떨리는 가벼운 진동이 유찬의 가슴팍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하지만 유찬이 시선을 돌려 육중한 방벽 너머, 어둡고 습한 한서 E-12 던전의 입구 안쪽을 가리키자 포포의 반응이 돌변했다.

포포의 말랑하던 몸이 일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맑고 투명하던 푸른 몸체가 어둡게 가라앉으며, 겁에 질린 듯 유찬의 옷소매를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다. 바닥 깊은 곳에서 풍겨 나오는 기괴한 기운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이 분명했다.

"……."

유찬의 오른쪽 어깨 위에서 날개를 다듬던 까악스 역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까악스는 무리해서 깊이 들어갈 생각이 없다는 듯, 날개를 늘어뜨린 채 부리로 입구 바로 앞의 가장자리 흙바닥만을 툭툭 쪼았다.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는 얕은 경계선까지만 길을 안내하겠다는 뜻이었다.

그 곁에서 냥믹은 벽에 달라붙은 낡은 표식 하나를 흘깃 쳐다보았다. 길드가 철수할 때 바닥에 대충 그어놓은 붉은색 페인트 경계선이었다. 냥믹은 검은 꼬리를 바닥에 툭 툭 치며 귀찮다는 듯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위험을 경고하기보다는, 저들이 그어놓은 경계선 자체가 엉터리라는 듯 비웃는 몸짓이었다.

"포포가 이 정도로 굳을 줄은 몰랐군."

유찬은 입구 안쪽의 어둠을 가만히 응시했다.

축축한 습기 사이로 불쾌한 쇠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밀려왔다. 지하에서는 축축한 마력보다 더 질척한 냄새가 올라왔다. 끈적끈적하게 뭉쳐진 오염 물질이 지반 틈새로 끊임없이 스며들고 있었다.

"보통 폐쇄 던전을 관리할 때는 지반 정화 약품을 바닥 전체에 골고루 분사합니다."

최민규가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저희도 이미 1억 원어치의 약품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런데도 보름만 지나면 다시 바닥 밑에서 검붉은 마력이 배어 나와 차단 장비 경보를 울려 댑니다. 윗사람들은 우리가 현장 관리를 대충 해서 약품이 다 날아간 줄 압니다. 하지만 저희는 정해진 규정대로 꼼꼼히 살포했습니다. 뿌려도 뿌려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전부 쓸려 내려가는 기분입니다."

"바닥 면적 전체에서 마력이 새어 나오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유찬의 덤덤한 목소리에 최민규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규정상 전체 정화를 해야 오염을 막을 수 있는데요."

"실제로는 어딘가 깊은 틈새 한 곳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지하수 흐름을 타고 넓게 퍼지는 구조입니다. 원천이 되는 구멍을 놔두고 바닥 전체를 약품으로 덮으려고 하니, 정화제도 필터도 버티지 못하고 씻겨 나가는 겁니다. 결국 매달 1,800만 원씩 나가는 건 이 넓은 면적을 전부 막으려 들어서 그렇습니다. 원인이 되는 딱 한 지점만 잡으면 끝납니다."

유찬은 천천히 허리를 숙여 바닥의 콘크리트 미세 균열 부분을 짚었다.

품 안에 움츠러들어 있던 포포가 바들바들 떨면서도 유찬의 손가락 끝을 향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포포의 맑은 몸통 중앙에서 아주 작고 희미한 빛이 깜빡였다. 단단한 씨앗 같은 작은 결정핵의 전조가 생겨나고 있었다. 아직 형태가 완전히 잡히기 전이었지만, 포포는 두려움을 억누르며 바닥 밑바닥에서 요동치는 오염의 물줄기를 필사적으로 감지해 내고 있었다.

바닥 전체가 고르게 오염된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단 하나의 미세한 균열을 통해 오염의 흐름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흐름이 아까운 정화 장비와 폐쇄 예산을 갉아먹는 진짜 범인이었다.

이것이 바로 이 던전의 돈 새는 길이었다.

유찬은 허리춤에서 노란색 마킹 테이프를 꺼냈다. 그리고 거칠게 찢어 바닥의 균열 지점에 단단히 고정해 붙였다. 콘크리트의 가장 좁고 어두운 틈새, 검붉은 기운이 가장 끈적하게 뿜어져 나오는 바로 그 자리였다.

"바닥 전체를 갈아엎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염의 줄기는 여기 하나뿐이니까요."

유찬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차가운 눈빛으로 최민규를 바라보았다.

"여기부터 보겠습니다."

유찬은 한 걸음 물러서며 품 안에서 바들바들 굳어 있던 포포를 가만히 들어 올렸다.

포포는 여전히 바닥 깊은 틈바구니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붉은 마력의 오염에 잔뜩 겁을 먹은 채 유찬의 옷소매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말랑한 푸른 몸체가 젤리처럼 파르르 떨리며 잔뜩 위축된 모습이었다. 유찬은 녀석의 둥근 등을 손끝으로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전부 다 삼키려고 욕심낼 것 없다. 굳이 무리해서 배탈을 낼 필요는 없으니까."

포포의 둥근 몸통 안에서 맑은 기포가 뽀글거리며 솟아올랐다.

지하 깊은 곳의 거대한 오염 흐름을 슬라임 한 마리가 전부 삼키는 짓은 너무 위험했다. 유찬은 던전 전체를 정화하라는 식의 터무니없는 지시를 내릴 생각이 없었다. 큰 흐름은 붙잡고, 그 옆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조각만 먹이면 됐다.

"먹을 수 있는 것만 골라내서 삼켜라. 뼈대가 되는 큰 흐름은 그냥 꽉 쥐고 버티기만 하면 된다."

유찬의 나직한 목소리가 어두운 입구 안쪽에 무겁게 퍼졌다.

지시가 내려지자마자, 포포의 몸통 내부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포포의 투명한 푸른 몸통 중앙에서 희미하게 깜빡이던 씨앗 같은 빛이 일순간 강렬하게 뭉쳐졌다. 맑고 단단한 얼음 결정과도 같은 작은 결정핵이 몸 한가운데에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젤리처럼 말랑하던 몸체가 사방으로 무섭게 부풀어 올랐다. 평소의 작고 말랑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거대한 철갑 탱크를 연상시키는 단단하고 묵직한 질감이 몸체 표면을 덮었다. 포포는 유찬이 노란색 마킹 테이프를 붙여둔 좁은 균열 지점을 향해 그대로 몸을 던져 밀착했다.

쿵.

가벼운 액체가 쏟아지는 소리를 넘어서는, 쇳덩이가 바닥에 강하게 내리꽂히는 듯한 둔탁한 소음이 일었다. 포포의 단단해진 몸뚱이가 콘크리트 미세 균열의 틈새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단단히 틀어막았다.

동시에, 몸 중앙에 자리 잡은 결정핵 주변으로 얇고 선명한 초록색 선이 톱니바퀴처럼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초록빛 선이 회전을 거듭할 때마다 지하 깊은 곳에서 거세게 역류하던 오염의 본류가 눈에 띄게 힘을 잃고 둔화되었다. 초록색 마력 선은 균열의 가장자리를 옭아매듯 팽팽하게 당겨지며, 요동치던 흐름을 한곳으로 묶어 세웠다.

회수핵 포포.

세 번째 진화를 마쳤음을 알리는 포포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포포는 던전 전체를 단숨에 정화하는 황당한 재주를 부리지 않았다. 녀석이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했다. 지하에서 끊임없이 새어 나오는 오염의 흐름을 꽉 붙잡아 그 방출 속도를 늦추고, 그 압력에 휩쓸려 쓸려나갈 뻔했던 주변의 자잘하고 회수 가능한 작은 부산물들을 바닥 겉면으로 안전하게 분리하여 단단하게 굳혀내는 것이 전부였다.

그 순간, 벽면에 기대어 하품을 하던 냥믹이 노란 눈동자를 빛내며 꼬리를 슬쩍 흔들었다. 귀찮다는 듯 누워 있던 녀석조차 포포가 기어코 틈새를 억누르는 모습을 보자 흥미를 보이는 듯했다. 어깨 위에서 날개를 늘어뜨리고 있던 까악스 역시 고개를 번쩍 치켜들며 얕은 가장자리 흙바닥 위로 날아가 앉았다. 그러고는 맑게 정제되어 바닥에 굳은 하얀 광석 파편을 부리로 툭툭 치며 영리하게 짹짹거렸다. 굳어버린 결정들이 이제는 안전하게 주워 담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신호였다.

"……예?"

뒤편에서 두툼한 서류철과 장비를 들고 서 있던 최민규의 입에서 어이없는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는 흙먼지 묻은 손으로 삐딱해진 안경을 연신 치켜올리며 눈을 비볐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광경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눈치였다. 하찮은 슬라임 한 마리가 지반 균열에 몸을 처박고 오염을 제어하는 모습은 그의 상식 밖이었다.

"강유찬 씨, 지금 대체 뭘 하신 겁니까? 슬라임을 구멍에 끼워 넣는다고 오염이 막힌다고요? 법적으로 지정된 차단 필터와 지반 정화 약품을 골고루 살포해야……."

"잔말 말고 장비 수치나 확인해 보십시오."

유찬은 최민규의 말을 자르며 그의 손에 들린 오염 측정 장비의 화면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최민규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구시렁거리며 장비의 액정 화면을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그의 동공이 찢어질 것처럼 넓어졌다.

위이이잉—!

그동안 던전 입구를 가득 채우며 쉴 새 없이 시끄러운 경보음을 울려대던 차단 장비의 소음이 거짓말처럼 잦아들고 있었다. 화면 곳곳에 붉은색으로 점멸하며 위험을 알리던 오염 지표 수치들이 수직으로 꺾이며 안전 기준선 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무엇보다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화면 하단에 표시된 예상 소모품 수명이었다.

[정화 필터 예상 잔여 수명: 36시간 -> 1,280시간]

"이,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필터 수명이 늘어났다고? 보름에 한 번씩 통째로 갈아치워야 해서 예산을 매달 쏟아부었던 장비인데?"

최민규의 거친 숨소리가 공터에 울려 퍼졌다. 그는 매달 길드 본사에서 내려오는 예산 삭감 압박과 매뉴얼대로 관리해도 녹아내리는 장비 사이에서 지독한 피로감을 느끼던 베테랑 실무자였다. 화면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리 약품을 들이부어도 밑 빠진 독처럼 전부 씻겨 내려가던 최악의 지출 통로에, 마침내 확실한 마개가 박힌 셈이었다.

유찬은 주머니에 가볍게 손을 넣은 채 발밑의 굳어가는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포포가 오염의 본류를 단단히 붙잡고 버텨주는 동안, 균열의 거친 가장자리를 따라 흩어져 있던 자잘한 돌멩이와 고대 광석 조각들이 검푸른 때를 벗고 하얗게 굳어가고 있었다. 오염에 찌들어 쓸모없이 흩어져 있던 마력 결정 조각들이 맑고 굳건한 빛을 내며 회수할 수 있는 형태로 알알이 맺혔다.

"복잡한 숫자를 굴릴 필요는 없습니다."

유찬이 얼이 빠져 있는 최민규를 향해 덤덤하게 말을 건넸다.

"버리면 계속 나가는 관리비가 보입니다. 막으면 줄어드는 폐쇄 비용도 바로 보이고요. 그 사이에서 회수 가능한 작은 부산물을 챙기면, 이 던전의 계산은 처음으로 남습니다."

"이 던전을 이대로 버려두면 계속 나가는 관리비가 매달 1,800만 원입니다. 장비를 쉴 새 없이 돌려도 바닥 밑바닥에서 오염물질이 계속 배어 나왔으니, 정화 필터 보수비와 약품값으로 매달 고스란히 날아가던 돈이지요."

최민규는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그 빌어먹을 비용 때문에 윗선에서 실무자들을 밤낮으로 쪼아댔지요."

"하지만 이렇게 오염이 새어 나오는 진짜 길목을 막아두면 폐쇄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습니다. 당장 필터 교체 예상 수명이 수십 배로 늘어났으니, 교체 주기가 늘어난 만큼 유지비가 대폭 굳는 셈입니다. 게다가 그 틈새 주변을 보십시오. 끈적한 기운이 굳어지면서 생긴 회수 가능한 작은 부산물들이 널려 있습니다. 현장에서 이것들을 꼼꼼히 골라내어 처분하면 길드 입장에서도 돈을 더 아낄 수 있습니다."

유찬의 설명에는 불필요한 과장이나 수식어가 없었다. 눈앞의 장비 숫자와 실제로 빠져나가던 돈만 보여줄 뿐이었다.

대단한 횡재를 했다는 식의 환상은 필요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던 매달 1,800만 원이라는 무지막지한 고정 지출을 바로 그 자리에서 틀어막고 새던 돈을 막았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확실한 결과물이었다.

최민규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가방 속에서 누렇게 바랜 서류철을 꺼냈다. 매번 붉은색 지출 적자 항목만이 빽빽하게 인쇄되어 있던 한서 E-12 던전의 비용 계산서였다. 그는 볼펜을 꽉 쥐고 매번 지출과 손실을 메우느라 여백조차 없던 종이의 우측 하단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매번 빽빽한 숫자로 가득 차 있던 계산서의 오른쪽 귀퉁이에, 마침내 비용 절감액과 부산물 회수 금액을 적어 넣을 수 있는 하얗고 남는 칸이 널찍하게 자리를 잡았다. 지금까지 늘어만 가던 손실의 수렁에서, 처음으로 숨통을 틔워주는 파란색 절감 수치가 계산서의 여백에 또렷하게 기록되었다.

"이 계산서대로 보고서를 올리면…… 윗선에서도 더는 토를 달지 못할 겁니다. 오히려 매달 새어나가던 예산을 이만큼이나 아꼈으니, 현장 관리부 전체가 더는 낭비 부서라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겠군요. 매달 길드 자금을 잡아먹던 던전이, 이제는 관리비를 크게 줄인 사례가 되었습니다."

최민규는 감격에 젖은 얼굴로 유찬의 손을 덥석 쥐려 했다. 유찬은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그의 손길을 피하며, 포포가 붙어 있는 바닥의 좁은 틈새로 시선을 고정했다.

"아직 상황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포포가 강력한 압력을 버티며 검붉은 오염의 줄기를 꽉 움켜쥐고 있는 콘크리트 균열의 아주 깊숙한 틈바구니.

그 끈적한 어둠의 끝자락에서, 바닥에 칠해져 있던 낡은 표식 하나가 서서히 그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단순히 이전 파티가 철수하며 그어둔 붉은 페인트 선인 줄 알았으나, 포포가 오염을 억제하며 주변의 흐름이 정돈되자 숨겨져 있던 낯익은 문양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흙먼지가 닦이자 평범한 페인트 선 아래에 숨어 있던 다른 무늬가 드러났다.

유찬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어 내렸다.

그 기묘하고 거친 붉은 문양은, 한서 길드의 평가 요청과는 별개로 들어왔던 두 번째 공동 운영 제안서 모퉁이에 정교하게 인쇄되어 있던 미끼 인장과 거의 같은 모양이었다.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정교하고 소름 돋는 일치였다. 아직 증거라고 부르기에는 이르렀지만, 누군가 폐쇄 던전의 손실을 계약서의 빈칸으로 넘기려 한다는 냄새만큼은 분명했다.

유찬은 머릿속으로 어젯밤 제안서의 맨 아랫줄에 선명하게 적혀 있던 조항을 다시금 떠올렸다.

`정산 기준은 추후 협의.`

그 한 줄의 계약 조항은 평범한 문구처럼 보이지 않았다. 저들이 던전 깊숙한 곳에서 감당하지 못한 막대한 오염과 손실을 이쪽으로 통째로 넘겨버리기 위해 교묘하게 파놓은 시커먼 입구처럼 강렬하게 다가왔다.

유찬의 입꼬리가 차가운 호선을 그리며 소리 없이 비틀려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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