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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놈 냄새다 일러스트

# 그놈 냄새다

던전 입구에 임시 정리 구역이 세워졌다.

백호 길드 직원들이 질긴 방호포를 바닥에 넓게 펼쳤다. 그 위로 오염 폐기물이 담긴 수납 상자들이 쏟아졌다. 와르르, 둔탁한 소리와 함께 퀴퀴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깨진 금속, 찢어진 가죽, 정체 모를 장비 조각들이 작은 산을 이뤘다. 부서진 장비의 날카로운 파편이 바닥에 깔린 방호포를 찍, 하고 찢었다. 틈새로 스며 나온 오염 물질이 역한 냄새를 풍겼다.

“아, 냄새하고는….”

“저걸 맨정신에 어떻게 다 골라내냐.”

직원 몇몇이 코를 막으며 수군거렸다. 목숨 구해준 대가가 고작 쓰레기 청소라니. 그들의 동정 어린 시선 끝에 강유찬이 서 있었다. 유찬은 두꺼운 방호 장갑을 두 겹으로 끼며 묵묵히 폐기물 더미를 살폈다.

박성준 차장이 부하 직원들에게 낮고 빠르게 지시했다.

“사진 찍어. 각도별로 전부 남겨.”

“번호표 준비하고 목록 작성 시작해.”

“입구 CCTV, 우리 쪽 녹화분이랑 각도 확인하고.”

“협회에 현장 보존 입회 요청 넣어. 지금 바로.”

명령은 짧고 단호했다. 하지만 그는 유찬에게 고개를 돌리자 정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강유찬 씨. 준비되시면 부탁드립니다. 처리 가능한 것과 보존이 필요한 것을 나눠 주시겠습니까.”

유찬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포포.”

유찬의 어깨에서 뽀글, 하고 작은 슬라임이 솟아났다. 포포는 폐기물 더미를 보자마자 몸을 젤리처럼 떨었다. 탐색하듯 몸을 부풀리던 포포가 한곳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천둥 길드의 표식이 희미하게 새겨진 부서진 단검이었다.

포포가 그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먹고 싶다는 의사가 명확했다. 하지만 유찬은 손바닥을 들어 막았다.

“안 돼.”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포포가 의아한 듯 몸을 부풀렸다.

유찬은 박성준을 향해 말했다.

“이건 먹이면 안 됩니다. 먼저 기록해야 합니다.”

박성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즉시 유찬의 판단을 따랐다.

“알겠습니다. 저 단검, 따로 분리해. 절대 맨손으로 만지지 마.”

직원들이 재빨리 움직였다. 찰칵, 찰칵. 사진이 찍히고 번호표가 붙었다. 단검은 곧바로 투명한 케이스에 들어갔다. 봉인 스티커가 붙는 동안 CCTV 불빛이 테이블 위를 차갑게 비췄다.

박성준이 나직이 지시했다.

“협회 감식관 입회 전까지 절대 개봉 금지. 그대로 옮겨.”

“예, 차장님.”

직원이 케이스를 들고 이동하자, 포포가 뽀글거리며 그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유찬은 슬라임의 앞을 가로막으며 가볍게 뒤로 밀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백호 길드는 빠르게 움직였다. 다만 어디를 먼저 봐야 하는지 몰랐을 뿐이다.

유찬은 그걸 알고 있었다.

“자, 시작하자.”

유찬의 말에 포포가 폐기물 더미로 토독, 하고 뛰어내렸다. 단검에 대한 미련을 버린 듯, 다른 쇠붙이에 달라붙었다.

부서진 방패의 테두리였다. 포포가 금속 조각을 감싸자, 꿀꺽 소리와 함께 조각이 몸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포포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작은 결정 하나를 톡, 하고 뱉었다.

탁한 마력이 빠진, 맑은 결정이었다.

유찬은 다음 폐기물을 가리켰다. ‘처리 가능’ 구역으로 분류한 더미였다.

포포는 부서진 갑옷의 고리, 창날의 이 빠진 부분, 마력의 흐름이 완전히 끊긴 마석 파편을 차례로 삼켰다. 그리고 작은 결정들을 연이어 뱉어냈다.

하지만 모든 걸 먹지는 않았다. 유찬이 ‘위험’ 구역으로 따로 빼놓은 검붉은 오염 물질이 엉겨 붙은 덩어리 앞에서는 스스로 멈췄다. 포포가 그중 한 조각을 실수로 삼키려 했을 때였다. 꿀꺽, 반쯤 삼켰던 포포의 몸이 경련하듯 떨리더니 그대로 뱉어냈다.

유찬은 즉시 집게로 그 조각을 집어 ‘위험’ 구역 맨 끝으로 옮겼다. 포포도 아무거나 삼킬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유찬이 옮긴 파편에서 시큼한 악취가 피어올랐다. 근처에 있던 직원이 저도 모르게 코를 막고 두어 걸음 물러섰다. 유찬은 더미 밑에 깔린 방호포가 미세하게 찢어진 것을 발견했다. 오염 물질이 바닥으로 스며들기 직전이었다.

그는 끼고 있던 방호 장갑을 벗어 폐기물 통에 던져 넣고 새 장갑을 꺼내 꼈다.

이제는 말로만 할 수 없었다.

유찬이 직접 더미 속으로 손을 넣었다. 깨진 갑옷, 금 간 창날, 이상한 살점 같은 조각들이 차례로 밖으로 나왔다.

“이건 먹여도 돼.”

“이건 빼.”

“이건 건드리지 마.”

포포는 유찬이 건네주는 것만 받아먹고, 맑은 결정을 토독, 뱉어냈다. 슬라임은 지친 듯 느릿하게 움직이며 결정들을 한쪽에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그때, 유찬의 품에서 웅크리고 있던 냥믹이 고개를 들었다.

고양이의 날카로운 눈이 폐기물 더미 한쪽을 향했다. 곧이어 목을 낮추고 ‘하악-!’ 하는 소리를 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경계심을 드러내는 소리로 들렸다. 하지만 유찬의 귀에는 다른 의미가 전달됐다.

[저기. 천 쪼가리. 뭔가 급하게 쑤셔 넣은 냄새.]

냥믹이 가리킨 곳은 무기나 방어구가 아니었다. 전투 중에 찢어진 듯한 작은 가죽 주머니와 더러운 천 조각들이 뭉친 곳이었다. 유찬은 집게를 이용해 그 뭉치를 조심스럽게 헤쳤다.

안에서 나온 것은 작은 봉투였다. 누군가 급하게 무언가를 숨기려 한 흔적이 역력했다.

유찬의 어깨 위, 까악스가 낮게 울었다.

“냄새. 죽은 표식 냄새.”

그의 말은 언제나처럼 짧았다. 하지만 유찬은 그 의미를 알아들었다. 죽은 헌터의 냄새가 아니었다. 누군가 남기고 간, 그 표식 자체가 죽어 있다는 뜻이었다.

유찬은 봉투와 그 주변의 천 조각 역시 따로 분류했다.

“이것도 보존 대상입니다.”

박성준은 이유를 묻지 않고 지시했다.

“따로 번호 매기고, 사진 찍어.”

그 뒤로는 속도가 붙었다.

포포가 꿀꺽 삼키고, 톡 하고 뱉었다. 냥믹은 수상한 냄새가 날 때마다 꼬리를 빳빳하게 세웠다. 까악스는 말없이 고개만 돌렸다. 그럴 때마다 유찬의 손도 방향을 바꿨다.

백호 길드원 하나가 보기엔 멀쩡한 팔 보호대를 옮기려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유찬의 발치에 있던 냥믹이 ‘하악!’ 소리를 내며 등을 세웠다. 동시에 포포의 몸이 파르르 떨리며 위험 신호를 보냈다. 직원의 손이 허공에서 굳었다.

유찬은 하던 일을 멈추지 않은 채 툭 던졌다.

“손대지 마세요.”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박성준이 즉시 팀원들에게 명령했다.

“강유찬 씨 확인 없이는 폐기물에 손대지 마. 처리 목록 초안 나오면 전부 강유찬 씨한테 먼저 올려.”

곧 현장 관리자가 들고 있던 폐기 목록 클립보드가 유찬 앞 작업대에 놓였다.

처음 유찬을 ‘쓰레기 청소부’ 정도로 여겼던 직원들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비웃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들의 눈에 유찬의 작업은 더 이상 잡일로만 보이지 않았다. 옆에서 보기만 해서는 흉내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어디까지 먹이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필요했다.

한 직원이 무심코 유찬을 부르려다 말을 삼켰다.

“어이, 거기 짐… 아니, 강유찬 씨. 이 목록 한번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박성준이 그 직원을 날카롭게 쳐다봤지만, 직원이 스스로 말을 고치자 시선을 거뒀다. 어느새 현장의 분위기는 유찬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박성준은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지금부터 저 폐기물 더미는 강유찬 씨 허락 없이는 아무도 손대지 마.”

몇 시간 후, 1차 정리가 끝났다.

한 직원이 처리 목록을 들고 박성준에게 보고했다.

“차장님, 1차 분류된 폐기물 총량 97kg입니다. 기존 외주 업체에 맡겼을 경우, 예상 처리 비용은 약 420만 원입니다.”

박성준이 고개를 끄덕이고 유찬에게 말했다.

“강유찬 씨, 약속대로 선급 처리비 300만 원을 먼저 지급하겠습니다. 길드 회계팀에 바로 연락하죠.”

“감사합니다.”

유찬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박성준의 시선이 포포가 뱉어낸 결정들이 담긴 상자로 향했다. 크기는 제각각이었지만, 제법 양이 쌓여 있었다.

“저 결정들의 가치는 어느 정도로 예상하십니까?”

“아직 정밀 감정 전입니다만….”

유찬은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대략 870만 원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주변이 조용해졌다.

직원들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계산이 돌아갔다.

420만 원짜리 일을 300만 원에 끝냈다.

백호 길드는 돈을 아꼈고, 증거까지 챙겼다. 유찬 쪽도 마찬가지였다.

선급금 300만 원. 거기에 포포가 뱉어낸 결정만 870만 원어치. 방금 전까지 쓰레기였던 더미가, 순식간에 천만 원짜리 밥그릇으로 바뀌었다.

박성준은 유찬을 완전히 다른 눈으로 바라봤다. 그는 목록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공개적으로 말했다.

“천둥 길드 표식 단검과 주변 증거물. 이건 강유찬 씨 발견으로 기록하겠습니다.”

그는 부하 직원에게 지시했다.

“앞으로 던전에서 회수품 정리할 일 생기면, 다른 업체보다 강유찬 씨 일정부터 확인해.”

“예, 알겠습니다!”

박성준은 길게 칭찬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 일감을 먼저 물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모든 정리가 끝나고, 협회 조사관이 현장에 도착했다. 봉인된 증거물들이 인계되었다. 단검 케이스를 넘기기 전, 유찬은 그것을 마지막으로 살폈다.

천둥 길드의 표식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들이 범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손잡이 안쪽, 무언가를 끼워 넣었을 법한 작은 홈이 비어 있었다. 무언가 중요한 조각이 빠져나간 자리처럼 보였다.

단검과 함께 발견된 천 조각의 검붉은 얼룩에서는, 까악스가 경계하던 것과 비슷한 불길한 냄새가 났다.

유찬은 조사관에게 말했다.

“발견자는 제 이름으로 적어 주세요.”

협회 조사관이 케이스와 유찬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이 단검, 강유찬 헌터께서 최초 발견하고 보존 요청하신 게 맞습니까? 나중에 이 물건에서 나온 몫도 주장하실 겁니까?”

유찬은 대답 대신 포포를 자기 등 뒤로 물렸다. 그리고는 케이스를 가리켰다.

“일단 봉인부터요. 저거, 아직 위험합니다.”

협회 조사관이 서류를 넘기다 유찬을 다시 봤다.

“이 구역, 당장 다시 들어갈 곳은 아니겠군요. 버려진 구역으로 묶어 관리해야겠습니다.”

조사관이 유찬의 이름을 적었다.

“버려진 구역 임시 관리 후보. 여기에 강유찬 헌터 이름도 올려 두죠.”

옆에 있던 백호 직원 하나가 눈을 크게 떴다. 아까까지 그가 들고 있던 건 폐기물 목록이었다. 냄새나고, 찢기고, 손대기 싫은 물건들. 그런데 같은 종이에 이름이 한 줄 더 붙는 순간, 그 더미는 아무나 만질 수 없는 현장이 됐다.

조사관이 펜 끝으로 케이스를 가리켰다.

“다음 확인만 통과하면, 이 구역에 먼저 손댈 자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물론 오늘 당장 결정나는 건 아닙니다. 한 번 더 들어가서 확인해야 합니다.”

아직 확정된 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기록은 남았다. 유찬은 그 한 줄을 눈으로 확인했다. 종이 위의 이름이, 방금 맡은 더러운 일의 값을 바꾸고 있었다.

그때였다.

조사관이 박성준에게서 임시 봉인된 투명 케이스를 넘겨받았다. 그는 케이스를 작업대의 밝은 조명 아래 내려놓았다.

“증거물 D-13-04. 임시 봉인 상태, 이상 없음.”

조사관은 케이스와 임시 봉인 스티커를 확인한 뒤, 디지털카메라를 들었다. 여러 각도에서 증거 사진을 남겼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투명 케이스 안의 단검이 번뜩였다. 사진 속 단검은 깨끗했다.

촬영을 마친 조사관은 카메라를 내려놓고 협회 공식 기록 카드를 집어 들었다. 임시 번호를 정식 증거물 번호로 옮겨 적고, 현장 상황을 기입하기 시작했다. 모든 시선이 그의 펜 끝으로 쏠리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유찬의 눈에 이질적인 움직임이 포착됐다.

방금 전까지 멀쩡했던 단검. 그 칼날 끝에 아주 미세한 검은 점 몇 개가 맺혀 있었다.

‘……뭐지?’

눈을 깜빡이고 다시 봤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검은 점들은 마치 자석에 이끌린 쇳가루처럼, 봉인 스티커가 붙은 쪽을 향해 희미한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케이스 안에서 벌어진 기이한 현상. 조사관이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저런 건 없었다.

유찬의 귓가에 까악스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저건 죽은 놈의 냄새가 아니다.]

‘그럼 뭔데.’

[표식이 남긴 냄새다. 아직 길이 죽지 않았어.]

길이 죽지 않았다고?

조사관은 케이스 안의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기록에 열중했다. 박성준 역시 서류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을 확인하며 유찬에게 다음 절차를 안내하려 입을 열었다.

하지만 유찬은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은 오직 봉인 케이스 안, 외부 세계와 연결되려는 듯 꿈틀거리는 검은 흔적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대로라면 협회는 이걸 단순한 저주 유물로 분류하고 끝낼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건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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