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쓰레기를 주세요
던전 게이트 앞은 얼음장 같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재공략을 준비하는 백호 길드 헌터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최정예로 꾸려진 그들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네 번의 실패.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운영 2팀을 이끄는 박성준 차장은 이번만큼은 실패할 수 없다는 듯 모든 것을 직접 챙겼다.
“무인 탐사기, 최종 점검 보고해.”
“예, 차장님! 모든 센서 정상 작동 확인했습니다!”
“현장 확인조, 5분 뒤 선진입한다. 통신망 다시 한번 체크하고, 조금이라도 이상 신호 잡히면 즉시 보고해.”
“알겠습니다!”
날 선 명령이 오가는 사이, 유찬은 말없이 던전의 어두운 입구를 응시했다. 그의 어깨에 앉은 까악스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까악… 죽은 자들이… 길을 내고 있다….]
죽은 천둥 길드 헌터가 남긴 ‘길잡이 표식’. 그 망령의 손짓이 네 번이나 백호 길드를 함정으로 이끌었다.
박성준이 유찬에게 다가와 물었다.
“강유찬 씨, 준비되셨습니까?”
“예.”
짧은 대답. 박성준은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현장 확인조와 유찬이 어둠 속으로 발을 들였다. 헬멧 라이트가 비추는 동굴은 축축하고 서늘한 공기를 뿜어냈다.
“탐사기, 전방으로.”
박성준의 지시에 따라 거미처럼 다리 여러 개가 달린 탐사기가 금속성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운용팀 요원이 펼친 휴대용 모니터에는 탐사기가 보내오는 실시간 영상과 던전의 입체 지도가 떠 있었다.
지도 위에는 아군을 뜻하는 파란 점들이 깜박였다. 그리고 그들보다 훨씬 깊은 곳, 흐릿한 회색 점 하나가 끈질기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저게 문제의 표식인가?”
“예, 차장님. 천둥 길드 소속, 표식 번호 G-7입니다. 마지막 신호 위치는 보스방 직전으로 추정됩니다.”
“저게 길잡이 표식이군.”
바위에 희미하게 새겨진 글자. 유찬이 화면으로만 보던 것이 눈앞에 있었다. 박성준이 유찬을 돌아보며 물었다.
“강유찬 씨, 맞습니까?”
“예. 표식 번호 G-7. 보스방 직전입니다.”
“좋아.”
박성준의 말투가 부하들을 향해 짧고 단단하게 바뀌었다.
“전원, 자일 확보. 화면 공유하고 감지기 최대치로 올려.”
철컥, 클립 거는 소리가 동굴 안에 낮게 울렸다. 선두에 선 헌터가 한 발, 조심스럽게 안으로 내디뎠다. 그의 헬멧 캠 화면이 유찬의 단말기에도 작게 떴다.
“김 팀장 선두. 내가 뒤따른다. 한 발씩, 바닥 확인하면서 진입.”
박성준이 다시 한번 유찬에게 말했다.
“강유찬 씨. 이제부터입니다.”
유찬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회색 점의 위치였다.
정식 공략 루트는 넓은 광장으로 이어지는 오른쪽 길. 하지만 회색 점은 지도상 막힌 벽 너머, 없는 공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기록상으로는 저쪽은 그냥 암벽인데….”
운용팀 요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순간, 까악스가 유찬의 귓가에 속삭였다.
[저기다… 죽음이… 손짓한다….]
까마귀의 고개가 정확히 회색 점이 가리키는 왼쪽 벽을 향했다.
유찬이 입을 열었다.
“차장님.”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탐사기를 왼쪽으로 보내 보시죠.”
“왼쪽은 아직입니다.”
“표식이 저곳을 가리킵니다. 지난 사고들도 저런 식으로 유인당했을 수 있습니다.”
박성준은 잠시 침묵하다 결단을 내렸다.
“좋다. 탐사기, 좌측으로. 벽면 정밀 스캔.”
탐사기가 방향을 틀어 육중한 돌벽으로 다가갔다. 센서가 붉은빛을 뿜으며 벽을 훑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모니터를 주시했다.
삐빅! 삐비빅!
“신호 반응! 벽 너머에 공간이 있습니다! 위장된 통로입니다!”
운용팀의 외침과 동시에 모니터 지도에 새로운 길이 그려졌다. 죽은 헌터의 표식이 가리키던 바로 그 길이었다.
“이런 미친….”
누군가 낮은 욕설을 뱉었다. 소름 끼치는 사실이었다. 네 번의 사고 모두, 이런 식으로 존재하지 않는 길로 이끌린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탐사기, 그대로 진입시켜.”
박성준의 명령에 탐사기가 위장 통로 안으로 들어섰다. 좁고 가파른 내리막길이었다. 탐사기에 연결된 와이어가 팽팽하게 풀려 나갔다.
그런데 유찬은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품에 안겨 있던 냥믹이 불안한 듯 꼬리로 그의 팔을 탁탁 쳤다. 발톱이 전투복을 파고들었다. 균형 감각이 예민한 냥믹은 아주 미세한 진동이나 균열을 귀신같이 감지했다.
[길이… 운다…. 땅이… 신음한다….]
까악스의 경고가 뒤따랐다.
탐사기가 통로 안으로 10미터쯤 들어갔을 때였다.
“차장님, 센서에 노이즈가… 어?”
모니터 화면이 순간 지지직거렸다. 동시에 탐사기에 연결된 와이어가 미세하게 한번 튕겼다.
“위험합니다.”
유찬이 나직하게 말했다.
“뭔가….”
박성준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유찬의 시선이 확인조 조장의 발밑으로 향했다. 그는 다음 안전 확보 지점에 로프를 고정하기 위해 바닥에 굵은 피톤을 박으려 하고 있었다.
“잠깐!”
유찬의 외침에 조장의 망치질이 멈칫했다.
“거기 박지 마십시오!”
“무슨 소린가, 여긴….”
“그 바닥, 밟는 순간 무너집니다!”
유찬의 단호한 목소리에 확인조의 움직임이 얼어붙었다.
박성준이 다급하게 물었다. “강유찬 씨, 그게 무슨….”
“함정입니다! 탐사기 무게 때문에 이미 함정은 작동 직전이에요! 와이어를 당기거나 멈추면 그대로 무너질 겁니다! 그리고 저 바닥이 연쇄 함정의 스위치고요!”
유찬의 외침에 모두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가 아니었다면, 조장은 망설임 없이 피톤을 박았을 터였다. 만약 그랬다면.
“젠장!”
박성준의 눈이 모니터와 유찬, 그리고 확인조 조장을 번갈아 훑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확인조! 탐사기 와이어, 수동으로 잡아! 절대 장력 놓치지 마!”
“예, 옛!”
헌터 두 명이 달려들어 와이어를 단단히 붙잡았다. 팔 근육이 터질 듯 솟아올랐다.
“김 조장!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내가 신호 주면 오른쪽으로 몸 날려!”
박성준이 외쳤다.
그러나 유찬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조장이 아닌, 그의 뒤에 서 있던 다른 대원을 가리켰다.
“아닙니다! 조장님 말고, 그 뒤에 계신 분! 지금 당장 오른쪽으로 두 걸음 뛰십시오!”
지목당한 대원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유찬의 기세에 눌려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가 발을 떼는 순간.
콰르르르르릉!
그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의 천장에서 집채만 한 바위가 떨어져 내렸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바닥이 박살 났다. 1초만 늦었어도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크헉!”
“조심해!”
자욱한 먼지 구름 속에서 모두가 경악했다. 죽음이 턱밑을 스치고 지나갔다.
“연쇄 함정이었어….”
박성준이 이를 갈았다. 죽은 헌터의 표식은 미끼였다. 그 미끼를 물고 들어서는 순간, 첫 번째 함정이 선두를 붙들고, 뒤따라오는 동료들을 덮치는 두 번째, 세 번째 함정이 차례로 작동하는 지옥 같은 구조였다.
만약 유찬이 없었다면.
만약 그의 경고를 무시했다면.
이 자리에 있는 확인조 전원, 어쩌면 입구에서 대기하던 재공략팀 일부까지 휘말렸을 끔찍한 연쇄 붕괴. 다섯 번째 전멸로 이어졌을 것이다.
박성준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유찬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 단순한 감사를 넘어선 경외심이 떠올랐다.
“강유찬 씨… 당신이 아니었으면… 우리 다 죽었습니다.”
던전 입구로 복귀한 백호 길드 헌터들의 얼굴에는 안도와 경외감이 뒤섞여 있었다.
먼지투성이가 된 확인조 대원들은 말없이 유찬을 쳐다볼 뿐이었다. 특히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두 명은 거의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함정의 실체는 파악됐다. 이제 백호 길드는 안전한 루트를 확보하고 재공략에 나설 수 있을 터였다. 그 모든 길을 연 것은 유찬 한 사람이었다.
박성준이 유찬에게 다가와 깊이 고개를 숙였다. 팀의 책임자가 허리를 꺾자, 뒤에 있던 모든 팀원이 일제히 따라 고개를 숙였다.
“강유찬 씨,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팀원들을, 아니, 저희 팀 전체를 구해 주셨습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유찬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박성준은 고개를 저으며 진심으로 말했다. 그의 눈에는 무거운 빚을 졌다는 감정이 역력했다.
“이건 단순한 감사의 말로 끝낼 일이 아닙니다. 이 자리에 있던 모두를 살리신 겁니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합니까? 원하는 것이 있다면 뭐든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 팀과 길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의 보상을 약속하겠습니다.”
길드원들의 시선이 유찬에게 쏠렸다. 그가 한 일은 그 어떤 보상으로도 부족했다.
하지만 유찬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던전 입구 한쪽에 산처럼 쌓인 폐기물 더미. 지난 네 번의 공략에서 파손되거나 오염되어 버려진 장비들이었다. 부서진 갑옷 조각, 이가 나간 무기, 마력을 잃은 아티팩트 부스러기들이 뒤섞여 있었다.
누가 봐도 돈 안 되는 고철 덩어리. 오히려 처리 비용을 들여야 하는 골칫거리였다.
유찬은 그 폐기물 더미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이 던전에서 나오는 폐기품 처리를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순간, 박성준을 제외한 다른 길드원들 사이에서 의아한 수군거림이 터져 나왔다.
“폐기품 처리? 저 쓰레기들을 말하는 건가?”
“아니, 그건 보상이 아니라 잡일이잖아. 돈 들고 귀찮기만 한 일인데….”
목숨을 구해 준 은인에게 쓰레기 치우는 일을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박성준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거야말로 저희가 부탁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이 제안이 미안하다는 듯 덧붙였다.
“하지만 그걸로 은혜를 갚았다고 하기엔 너무 부족합니다. 다른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
박성준의 태도에 길드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유찬은 그들을 향해 담담히 말했다.
“다른 사람에겐 그렇지만, 저한텐 수익이 됩니다.”
그 한마디에 모든 소음이 멎었다.
유찬은 다시 박성준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뭐든지.”
“이번 현장 정리 기록에 제 이름을 남겨 주십시오. 이 던전에서 나온 폐기품 정리와 위험물 확인을 제가 맡았다는 기록이면 충분합니다.”
박성준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목숨을 구한 대가로 고작 보고서에 이름 한 줄 넣어달라는 요구는 너무나 사소했다. 하지만 그는 곧 유찬의 의도를 짐작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공식적인 협력 실적. 이 바닥에서 경력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 정도야 어렵지 않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 드려야죠.”
박성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폐기품들은 그냥 버릴 수도 없는 골칫거리다. 사망자 유품이 섞여 있을지 몰라 일일이 확인해야 하고, 마물 오염도 검사해서 협회에 정식 보고까지 마쳐야 비로소 폐기 절차가 끝난다. 그 모든 인력과 비용을 유찬이 대신 떠맡겠다는 제안은 길드 입장에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걸 지켜보던 길드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의 눈에는 시커먼 폐기물 더미가 그저 처치 곤란한 쓰레기로만 보일 뿐이었다.
‘왜 굳이 저런 고물을….’
‘차라리 현금으로 받지.’
그들의 의아한 시선이 느껴졌는지, 유찬이 못을 박았다.
“처리 비용은 전부 제가 부담합니다. 대신 거기서 나오는 건 뭐든 제 소유로 하는 조건입니다.”
지금은 보고서의 부록에 남는 이름 한 줄에 불과하다.
하지만 유찬은 알고 있었다. 버려진 던전에도 주인이 필요해지는 날이 온다. 그때 가장 먼저 이름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은, 기록에 남은 사람이다.
“그럼 계약은 그걸로 하죠.”
유찬이 폐기물 더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품에서 작은 머리가 쏙 튀어나왔다. 포포였다.
포포는 폐기물 더미를 보자마자 몸을 뽀글, 하고 떨었다. 마치 산해진미를 앞에 둔 것처럼.
저 오염된 고철 덩어리들 속에서 포포는 정제 결정을 뽑아낼 수 있었다. 유찬이 버려진 장비 더미를 훑어보던 그때였다.
[까악… 저기… 낯선… 냄새가….]
까악스가 속삭이며 한쪽을 가리켰다. 까마귀의 시선이 닿은 곳은 다른 고철들 사이에 처박힌 부서진 단검 한 자루였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손잡이 끝에, 희미하게 천둥 길드의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폐기품이었다.
하지만 유찬의 시선이 단검에 닿는 순간, 그의 품에 안겨 있던 포포가 유독 그 단검을 향해 격렬하게 몸을 떨었다.
뽀글, 뽀글뽀글!
단순한 마력 찌꺼기에 대한 반응이 아니었다. 무언가 특별하고 순도 높은 것이 저 안에 잠들어 있다는 신호였다.
유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의 손이 망설임 없이 부서진 단검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