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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화. 숨긴 놈 냄새 일러스트

# 8화. 숨긴 놈 냄새

“하악-!”

갑자기 터져 나온 날카로운 소리에 재감정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고양이과 펫의 가장 원초적인 경계심이 담긴 울음이었다.

회의적인 표정으로 유찬을 지켜보던 김 연구원과 박성준 차장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가 난 쪽으로 향했다. 유찬의 품에 안긴 냥믹이었다. 녀석은 온몸의 검은 털을 빳빳하게 세운 채, 재감정실과 복도를 가르는 차폐벽을 향해 낮게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저쪽, 냄새난다.’

‘숨긴 놈 냄새.’

단순한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날카로운 분노가 담긴 문장이 유찬의 머릿속에 직접 박혔다.

하지만 다른 두 사람의 반응은 달랐다.

“강유찬 씨, 고양이가 갑자기 왜 저럽니까?”

김 연구원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박성준 역시 미간을 짚은 채 냥믹의 기이한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유찬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되물었다.

“방금… 뭐라고 말한 것 아닙니까?”

박성준이 고개를 저었다.

“고양이가 운 건 들었습니다. 아주 기분 나쁜 소리였습니다. 하지만 말로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랬다. 모두가 냥믹의 ‘하악’ 소리는 들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숨긴 놈 냄새’라는 문장의 뜻은 오직 계약자인 유찬에게만 전달된 것이다.

유찬은 잠시 숨을 골랐다. 펫의 능력을 또 하나 파악했다.

‘나한테만 들리는구나.’

그렇다면 더 조심해야 했다. 고양이가 말을 한다고 광고해서 좋을 것 하나 없었다.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긴 ‘의도’였다.

유찬은 냥믹을 고쳐 안고 녀석이 노려보는 벽 쪽을 가리켰다.

“말로 들린 건 저뿐인 것 같습니다.”

그는 냥믹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대신, 자신의 해석을 덧붙였다.

“냥믹이 저 너머에 무언가 ‘숨기려는 의도’가 있다고 합니다. 아까 미끼 상자를 찾아냈을 때와 비슷한 반응입니다.”

“숨긴 의도라니…….” 김 연구원이 난처한 표정으로 벽 너머를 돌아보았다. “저 너머는 ‘반납 대기 창고’입니다.”

“반납 대기 창고?”

“다른 길드에서 감정 의뢰했다가 찾아가지 않은 물건이나, 소유권 분쟁 중인 아이템들을 임시로 보관하는 곳입니다. 당연히 보안 구역이라 출입이 엄격히 통제됩니다.”

박성준이 팔짱을 끼며 상황을 정리했다.

“고양이가 울었다는 이유만으로 열어볼 수는 없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의 눈빛은 복잡했다. 불과 몇 분 전, 저 고양이 덕분에 2천8백만원짜리 코어를 찾아낸 참이었다. 펫의 단순한 변덕이라고 치부하기엔 그 성과가 너무나도 컸다.

박성준이 유찬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강유찬 씨 생각은 어떻습니까.”

“냥믹은 그냥 ‘물건’이 아니라, 물건에 담긴 ‘숨겨진 의도’ 그 자체에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흠….”

박성준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김 연구원은 여전히 회의적인 표정이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거대 길드의 공식적인 절차를 고양이의 감에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침묵 끝에 박성준이 결단을 내렸다.

“좋습니다.”

그가 말했다.

“정식 조사는 아닙니다. 방금 확인한 성과가 있으니, 저와 김 연구원 입회하에 제한적으로만 보겠습니다.”

백호 길드다운 합리적이고 신속한 결정이었다. 박성준은 조건을 명확히 했다.

“전 과정은 카메라로 남깁니다. 허가 없이 반출도 안 됩니다. 발견된 물건은 백호 보관품으로 묶고, 강유찬 씨는 소유권 주장 없이 발견 보조만 하는 조건입니다. 이걸로 되겠습니까?”

“충분합니다.”

유찬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성준이 즉시 보안팀을 호출했다.

“이쪽으로. 지금부터 강유찬 헌터의 창고 출입을 임시 허가한다. 출입 기록 남기고, 내부 카메라 전부 녹화 시작해. 모든 물품은 확인 후 반드시 원위치다.”

일사불란하게 절차가 진행됐다.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유찬은 긴장으로 마른입술을 축였다. 이건 보물찾기 같은 낭만적인 일이 아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잘못하면 고양이와 대화한다고 주장하는 수상한 F급으로 낙인찍힐 터였다. 반대로, 여기서 능력을 제대로 증명하면 공식적인 기록이 된다.

‘성공 보수 280만원. 선지급 심사 중인 150만원.’

여기서 보여줘야만 그 돈을 손에 쥘 수 있다. 단순한 심부름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이 돈이 되는 첫걸음이었다. 유찬이 결심을 굳히는 동안, 냥믹이 박성준을 쓱 훑어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인간치고는 제법이군.」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고양이의 나른한 ‘야옹’ 소리로 들렸을 뿐이다.

***

김 연구원이 보안 카드를 여러 번 태그하고 나서야 묵직한 강철 문이 열렸다.

‘반납 대기 창고’는 재감정실보다 훨씬 서늘하고 건조한 공기로 가득했다.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관리되는 공간에는 규격화된 보관 상자들이 거대한 선반을 따라 끝없이 줄지어 있었다. 상자마다 각기 다른 길드의 인장이 찍혀 있었고, 위험 물질임을 알리는 노란색 격리 테이프가 붙은 것들도 보였다.

유찬의 품에서 내려온 냥믹이 사뿐사뿐 창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녀석은 마력이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화려한 보관함이나 단단히 봉인된 궤짝들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코와 감각에만 의지한 채 움직였다.

냥믹은 비싼 장비가 담긴 밀봉된 대형 크레이트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훌쩍 지나쳤다. 그 모습을 의아하게 지켜보던 김 연구원이 유찬에게 물었다.

“강유찬 씨, 저쪽 상자는 왜 그냥 지나치죠? 이쪽 잡동사니들보다 훨씬 가치 있어 보입니다.”

“가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숨긴 의도가 느껴지지 않아서요.”

유찬의 대답에 김 연구원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때, 냥믹이 먼지 쌓인 선반 아래쪽의 낡은 상자 두 개를 앞발로 툭툭 건드렸다. 하지만 이내 흥미를 잃고 고개를 돌렸다.

「아니야. 이건 거짓 냄새가 난다. 이건 겁먹은 냄새. 진짜가 아니야.」

“냥믹은 이쪽이 아니라고 합니다.”

유찬은 냥믹의 말을 적당히 순화해서 옮겼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저 변덕스러운 고양이가 이것저것 찔러보는 모습일 뿐이었다.

냥믹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창고 가장 구석진 곳에 쌓인, 칙칙한 검은색 상자들 앞이었다. 상자 표면에는 선명하게 ‘흑철(黑鐵)’ 길드의 마크가 찍혀 있었다.

“야옹.”

냥믹이 코를 킁킁거리며 상자들 사이를 맴돌았다. 그러다 한 상자 앞에서 발톱으로 바닥을 긁으며 신경질적인 소리를 냈다.

“이건가?”

유찬이 상자를 가리키자, 냥믹은 고개를 저으며 다른 상자로 향했다.

‘거짓 냄새.’

머릿속에 들려오는 냥믹의 목소리에 유찬은 다시 한번 확신했다. 녀석은 단순히 비싼 물건을 찾는 게 아니었다. ‘숨기려는 의도’ 그 자체를 추적하고 있었다.

유찬은 박성준에게 조심스럽게 자신의 해석을 전달했다.

“이쪽 상자들은 전부 미끼인 것 같습니다. 진짜를 숨기려고 일부러 비슷한 냄새를 묻혀 섞어둔 듯합니다.”

“미끼라….”

박성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김 연구원에게 턱짓했다.

“김 연구원, 저 흑철 길드 물품들, 폐기 전 기록 좀 확인해.”

“예, 차장님.”

김 연구원이 휴대용 단말기를 꺼내 빠르게 조작했다.

“기록을 확인해 보니, 저급 오염 물질 처리 불가 판정을 받고 폐기 대기 중인 물품들입니다. 운송비 문제로 흑철 길드에서 인수를 포기해서 저희 쪽에서 일괄 처리하기로 한 거고요.”

말 그대로 버려진 쓰레기였다. 하지만 냥믹의 반응은 그 기록이 거짓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버린 척.’

‘가린 냄새.’

냥믹이 마침내 한 상자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앞발로 상자 옆면을 툭툭 쳤다. 다른 상자들과 똑같이 생긴 평범한 파일 박스였다.

유찬은 혹시 몰라 포포를 불렀다. 뽀글거리는 슬라임이 유찬의 손바닥 위로 솟아났다.

“포포, 저기 한번 봐줄래?”

유찬은 냥믹이 ‘미끼’라고 지목했던 상자 표면에 묻은 희미한 얼룩을 가리켰다. 포포는 잠시 망설이더니, 통통 튀어 다가가 얼룩을 할짝였다.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냥 평범한 저급 오염 물질이었다.

다음은 냥믹이 고른 상자였다. 그 상자에도 비슷한 얼룩이 있었다. 하지만 포포는 그쪽으로 다가가자마자 몸을 젤리처럼 떨며 뒤로 물러났다. 명백한 거부 반응이었다.

“오염 물질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숨기기 위한 위장 약품인 것 같습니다.”

유찬의 말에 박성준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김 연구원에게 고갯짓했다.

“김 연구원. 저 상자, 열어봐. 조심해서.”

“예, 차장님.”

김 연구원이 라텍스 장갑을 낀 손으로 조심스럽게 상자의 봉인을 뜯었다. 보안 카메라의 렌즈가 상자 내부를 빠짐없이 비췄다.

상자 안은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낡은 서류 뭉치, 망가진 저급 마력석 조각, 잉크가 번진 양피지 따위였다. 누가 봐도 폐기 직전의 쓰레기 더미였다.

“겉으로는 별거 없어 보입니다.”

김 연구원이 낮게 말했다.

하지만 냥믹은 여전히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상자 바닥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유찬은 냥믹의 시선을 따라 상자 안을 살폈다.

“잠시만요. 바닥 쪽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유찬은 손을 뻗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섰다. 여기서 직접 뒤지기 시작하면 방금 세운 절차가 무너진다. 그는 냥믹이 노려보는 지점만 손가락으로 짚었다.

“저 부분입니다. 밑판 소리가 다를 겁니다.”

김 연구원이 새 장갑으로 갈아 끼고, 상자 안의 잡동사니를 하나씩 증거 봉투 옆에 옮겨 놓았다. 그는 작은 고무 망치로 바닥을 가볍게 두드렸다. 유찬이 가리킨 곳에서만 미세하게 빈 소리가 났다.

“……확실히 다릅니다.”

김 연구원이 얇은 분리 칼을 이음새에 넣었다. 힘을 주자 덧댄 판자가 조용히 들리며, 얕은 숨겨진 공간이 드러났다.

공간 안에는 단 하나의 물건이 들어 있었다. 비닐로 밀봉된, 반으로 접힌 서류 한 장.

김 연구원이 조심스럽게 서류를 꺼내 펼쳤다. 그것은 폐기된 게이트 루트가 표시된 지도와 물품 처리 목록이 적힌 장부였다.

그리고 장부의 가장 아랫부분에, 붉은 잉크로 찍힌 두 개의 도장이 선명했다.

[회수하지 말 것]

[폐기 처리로 넘길 것]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 정보를 영원히 묻어버리려 했던 것이다. 박성준이 장부를 건네받아 훑어보았다.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루트 코드….”

그는 무언가 아는 눈치였다. 그리고 장부 한 귀퉁이에 찍힌 희미한 검은색 얼룩을 유심히 살폈다. 마치 작은 ‘검은 깃털’ 같은 모양의 얼룩이었다.

그것을 본 순간, 유찬의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의 파편이 있었다. 과거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실패한 게이트 공략. 그 현장에서 본 것과 기묘하게 닮아 있었다.

박성준은 장부를 조심스럽게 다시 비닐에 넣었다.

“김 연구원, 이건 정식 증거물로 확보하고, 흑철 길드 쪽에 공식적으로 협조 요청 보내. 보안팀에도 알려.”

“알겠습니다, 차장님.”

박성준은 발견된 서류 봉투에서 눈을 떼지 않고 명령했다.

“김 연구원, 즉시 다각도로 사진 촬영하고 증거물 봉투에 밀봉해. 여기 있는 전원도 발견 경위서에 증인으로 서명시켜.”

모든 절차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박성준은 서류 작업이 진행되는 것을 확인한 후 유찬을 돌아보았다.

“이번 건은 강유찬 헌터의 도움으로 찾은 것으로 기록하겠습니다. 대신 물건 소유권과는 별개입니다. 그 선은 확실히 긋겠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유찬은 깨달았다. 당장의 돈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기록’이었다. 단순 용역 F급이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특수 능력을 가진 계약자로 인정받는 첫 단추. 앞으로의 계약 단가와 조건이 달라질 것이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도 무시할 순 없었다.

‘그래도 특별 수당 50만원은 당장 숨통을 트여주겠지.’

사건은 단순한 폐기물 처리 문제를 넘어, 길드 간의 신뢰와 내부 비리가 얽힌 문제로 번지고 있었다.

박성준은 유찬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는 놀라움과 감탄, 그리고 약간의 경계심이 뒤섞여 있었다.

“강유찬 씨. 이번에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우선 조사 협력비로 50만원을 선지급하겠습니다. 이 건의 중요도에 따라 추가 보상도 따로 검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돈도 돈이지만, 더 중요한 것을 얻었다. 백호 길드의 신뢰. 그리고 자신의 능력이 단순한 ‘폐기물 정제’를 넘어선다는 증명.

박성준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 일이 마무리되면, 강유찬 씨와의 계약 조건도 다시 보겠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건 단순한 폐기물 처리업자가 아니라, 이런 ‘숨겨진 위험’을 미리 걸러낼 파트너입니다.”

그의 제안은 파격적이었다. F급 짐꾼에서 길드의 정식 파트너로. 불과 며칠 만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였다.

유찬은 그 모든 변화의 시작점에 있는 작은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냥믹은 이제 모든 관심이 끝났다는 듯, 태연하게 앞발을 핥고 있었다.

그때, 유찬의 머릿속으로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새 냄새. 죽은 길 냄새.’

창고 안의 다른 사람들은 그저 고양이가 만족스럽게 ‘야옹’ 하고 우는 소리밖에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알아들은 유찬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검은 깃털, 그리고 죽은 길.

잊으려 했던 과거의 악몽이 다시 그의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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