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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임무 요청 일러스트

정식 임무 요청

펫뽑 16화

복도 끝, 공격대원들이 대기하는 구획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중무장한 백호 길드의 2차 공격대원들이었지만, 누구 하나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 보스방으로 향하는 진입로를 가리키는 패널의 램프가 시뻘건 경고등을 뿜어내고 있었다.

“젠장, 아직이야?”

“이대로 시간 더 끌면 게이트 안정성 떨어져서 우리 다 튕겨 나간다. 보스는 보스대로 회복할 거고.”

“차장님은 행정실로 가셨다. 곧 결론이 나겠지.”

초조한 목소리들이 오갔다. 보스는 아직 저 너머에 살아 있었다. 이번에 놓치면 던전 공략은 실패였다.

그 긴박한 공기를 등지고, 박성준과 강유찬은 내부 행정실로 향했다.

“다음은 행정실입니다. 출입 로그, 좌석, 단말기 사용자를 지금 잠급니다.”

박성준의 지시는 단호했다. 문이 열리자 싸늘한 관제실 공기가 훅 끼쳐왔다. 수십 개의 모니터가 벽면을 가득 채운 공간, 던전 공략의 모든 상황을 통제하는 중앙 통제실이었다.

유찬의 시선은 중앙 상황판에 못 박혔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한 남자에게.

“한재문 과장님.”

박성준이 남자의 직함을 불렀다. 현장 관리자 중 한 명인 한재문 과장이 돌아보았다.

“박 차장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현장을 비우고.”

“그쪽이야말로.” 박성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한 과장님, 담당은 B구역 아니었습니까.”

“상황이 터졌잖습니까.”

한재문은 턱짓으로 거대한 중앙 상황판을 가리켰다. 시뻘건 경고 문구가 깜빡이고 있었다.

`[긴급] 보스방 진입로, 오염 수치 급상승. 패턴 불명.`

`[권고] 2차 공격대 진입 보류. 즉시 퇴각 준비.`

`[상태] 게이트 안정성 저하 중.`

박성준의 미간이 좁혀졌다. “보고 못 받았는데.”

“방금입니다. 3분 전. 제가 비상 권한으로 통제권을 잡았습니다. 지금 2차대가 진입하면 백호 길드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합니다. 전멸할 수도 있습니다.”

한재문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히려 현장 지휘관인 박성준의 섣부른 판단을 나무라는 듯한 태도였다.

유찬은 그를 지나쳐 상황판 앞으로 다가갔다. 익숙한 코드가 눈에 들어왔다.

`[BX-773: 저위험 폐기물 / 현장 제외 처리 예정]`

`[담당: BK-OBS-001]`

관찰자 코드. 내부 행정실에서 실제 도착보다 먼저 BX-773을 열람했던 그 코드였다.

까악스가 경고했던 바로 그 상자.

그 상자가 이제는 ‘저위험’ 딱지를 달고 공략 현장에서 제외될 예정이었다.

“한 과장님.” 유찬이 입을 열었다.

한재문의 시선이 유찬에게 닿았다. 경멸이 스쳤다. “자네는 여기 왜 따라 들어와? F급 짐꾼은 외부에서 대기해.”

“저 상자, BX-773 말입니다.”

“그건 이제 자네 소관 아니야. 위험 물질로 분류되어 목록에서 제외했으니까.”

“왜 제외했습니까? 아까는 저위험 폐기물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말했잖나. 위험하니까.”

한재문의 간단한 대답. 하지만 그 순간, 유찬의 품에 안긴 냥믹이 코를 킁킁거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상황판의 보스방 길목이 아닌, 엉뚱한 우회로를 향해서였다.

거짓말 냄새. 경로를 속이는 냄새.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건 단순한 폐기물 누락이 아니었다.

“위험해서 막은 게 아닙니다.”

유찬의 목소리에 한재문과 박성준의 시선이 동시에 꽂혔다.

“뭐라고?” 한재문이 코웃음을 쳤다.

“저건 위험 표시가 아니라, 보스를 못 잡게 만드는 표시입니다.”

정적이 흘렀다.

박성준이 먼저 침묵을 깼다. “판단 근거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F급 짐꾼 나부랭이가 지금 작전 통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겁니까?” 한재문이 격앙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박 차장님, 제정신이십니까! 저런 놈 말을 믿고 길드원들을 사지로 몰 셈이십니까?”

박성준은 한재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유찬을 응시했다. 그는 길드원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껏 유찬의 펫이 보여준 능력은 길드의 최첨단 장비로도 잡아내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정밀 스캐너 돌려.” 박성준이 근처의 요원에게 명령했다. “해당 경로, 즉시 오염원 스캔해.”

결과는 금방 나왔다. “차장님, 높은 에너지 반응이 잡힙니다. 하지만… 패턴이 특정되지 않습니다. 보스의 것과도 다르고, 일반적인 오염 반응과도 다릅니다.”

장비로는 ‘위험 신호’가 있다는 것까지만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진짜 위협인지, 조작된 거짓 신호인지는 구별할 수 없었다.

박성준 차장이 다급하게 지시했다.

“2차 공격대, 현장 화면 바로 연결해. 헬멧 캠, 전부.”

직원이 긴급 코드를 입력하자 전면 스크린이 수십 개로 분할되었다.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대기 중인 헌터들의 시점이 나타났다. 그들은 붉은 경고등이 점멸하는 육중한 차단벽 앞에서 멈춰 서 있었다.

“보스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누군가의 헬멧 캠에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보고가 들어왔다. 스크린 너머로도 긴장감이 흘렀다.

상황실 직원이 타임라인을 가리키며 외쳤다.

“차장님, 공략 제한 시간 임박입니다! 지금 못 잡으면 보스 개체가 회복 단계에 들어가거나, 오염 수치가 외부로 확산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때 한재문이 끼어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기묘할 정도로 침착했다.

“박 차장님, 이건 무리한 판단입니다. 현장 대원들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지금은 일단 후퇴시키고 게이트를 완전히 봉쇄하는 게 맞습니다. 사후 처리는 협회와 우리 길드가 공동으로 책임지면 될 일입니다.”

그럴듯한 말이었다. 안전을 중시하고, 책임까지 지겠다는 자세. 하지만 한재문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유찬이 가져온 증거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강유찬 씨가 가져온 그 BX-773 폐기품 말인데. 현장의 ‘위험 신호’와 그걸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이미 폐쇄된 구역에서 나온 오염 의심 물질 아닙니까.”

한재문은 교묘하게 두 흔적을 비교할 기회 자체를 막으려 했다.

유찬은 그들의 언쟁에 끼어드는 대신, 조용히 자신의 펫들을 살폈다.

그는 먼저 일반 폐기물이 담긴 봉투를 포포 앞에 살짝 흔들었다. 포포는 흥미를 보이며 몸을 뽀글거렸다. 하지만 BX-773의 흔적이 묻은 장갑을 내밀자, 포포는 질색하며 뒤로 물러났다. 먹을 것이 아니라는 확실한 의사 표시였다.

고개를 돌리자 냥믹은 스크린의 붉은 위험 표시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녀석은 오히려 공격대 루트맵의 다른 곳, 안전하다고 표시된 우회로 쪽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저쪽이야말로 진짜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때, 머릿속으로 까악스의 서늘한 문장이 날아들었다.

[산 길에 죽은 표시를 붙였다.]

살아 있는 길을, 죽은 길로 위장했다는 뜻.

모든 조각이 맞춰졌다. 유찬은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는 언성을 높이는 한재문을 무시하고 박성준에게 똑바로 다가갔다.

“차장님.”

유찬은 증거물 봉투를 들어 보였다.

“보스를 잡으러 가는 길에 대한 겁니다. 비교만 하게 해주십시오.”

한재문의 얼굴이 굳었다. 유찬은 아랑곳하지 않고 덧붙였다.

“먹이지 않습니다. 이 펫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비교만 합니다.”

박성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유찬과 한재문, 그리고 스크린 속에서 타들어 가는 제한 시간을 번갈아 보았다. 짧은 침묵 끝에 그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단, 봉인된 증거물을 멋대로 개방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 있는 모든 건 CCTV로 녹화되고 있다는 사실, 명심해 주십시오.”

박성준이 턱짓하자, 대기하던 감정팀 직원이 즉시 움직였다. 직원은 테이블 위에 흰 천을 깔고, ‘강유찬 기록’과 ‘백호 기록’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각각 세웠다. 비공식적인 자리였지만, 비교 장면은 CCTV에 그대로 잡혔다. 한재문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단순한 현장 통제로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공식 기록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유찬이 앞으로 나섰다.

“박 차장님. 세 가지만 비교하게 해주십시오.”

유찬은 박성준을 향해 말했다. “BX-773 상자에 붙어 있던 테이프 조각, 저기 상황판에 붙은 ‘진입 금지’ 표식, 마지막으로 실제 보스방 입구 막다른 길에 붙어 있던 경로 마커. 딱 세 개면 됩니다.”

한재문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제정신입니까? 그걸 저 짐꾼의 슬라임에게 먹여 보려고요? 증거물을 훼손할 셈입니까?”

“아뇨. 먹이지 않습니다.” 유찬은 단호했다. “제 펫들은 그냥 반응만 보일 겁니다. 포포는 진짜 위험한 건 먹지 않고 거부합니다. 냥믹은 거짓된 의도를 보면 바로 압니다. 그리고 까악스는… 죽은 길을 봅니다.”

박성준은 잠시 유찬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서 복잡한 계산이 오갔다. 그는 손짓했다.

“가져와.”

짧은 허락에 한재문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박 차장님! F급 말을 믿고 정식 절차를 무시하시겠다니, 제정신이십니까?”

“월권행위는 한 과장이 하고 있는 거지. 여긴 내 현장이다.” 박성준이 싸늘하게 받아쳤다.

보안 요원이 즉시 움직였다. 상황판의 ‘진입 금지’ 표식과 BX-773 상자에서 떼어낸 테이프, 그리고 공격대원이 수거해 온 바닥 마커가 하얀 트레이 위에 나란히 놓였다.

유찬은 먼저 포포를 그 앞에 내려놓았다.

뽀글. 포포는 세 개의 물건을 잠시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먹을 것이 아니라는 듯, 아무런 흥미도 보이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위험해서 피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음식이 아닐 뿐이었다.

다음은 냥믹이었다. 냥믹은 트레이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BX-773 테이프와 바닥 마커에는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상황판에서 떼어낸 ‘진입 금지’ 표식에 코가 닿자마자, ‘캬악!’ 하고 신경질적으로 울며 뒷걸음질 쳤다. 교활한 의도가 숨겨진 표식.

그때, 유찬의 뇌리에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까악스의 목소리였다.

`[가짜 죽음. 진짜 길.]`

`[하나의 손이 길을 지우고, 가짜 표식을 세웠다.]`

까악스는 세 개의 물건 모두에 같은 ‘죽음으로 위장된’ 흔적이 묻어 있다고 보고했다. 하나는 상자를 위장하고, 하나는 길을 속이고, 다른 하나는 상황판을 조작했다.

유찬이 고개를 들었다. “수법이 똑같습니다. 저 상자를 숨기는 데 쓰인 것과, 길을 막고 경보를 울린 수법이 같습니다.”

박성준의 시선이 한재문에게로 향했다. 한재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허리춤의 단말기를 확인하려다 흠칫 멈췄다. 그 짧은 순간, 화면에 스친 메시지를 박성준은 놓치지 않았다.

`[진입 보류 유지. 검은 촉매 회수 일정 차질 없이…]`

“한재문 과장.”

박성준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지금부터 현장 조작 및 작전 방해 혐의자로 분리한다. 긴급 권한을 정지하고 단말기를 압수해. 모든 로그 기록 보존하고.”

“무, 무슨 소리야! 나는 안전 절차를 따른 것뿐이라고!”

한재문이 소리쳤지만, 보안 요원들이 그의 양팔을 붙들었다. 그는 버둥거리며 절박하게 외쳤다.

“아직 들어가면 안 됩니다! 그쪽 준비가…!”

그는 말을 멈췄다. 너무 많은 것을 말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얼굴이었다.

박성준은 더 이상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는 관제실의 통신 장비를 잡았다.

“여기는 중앙 통제실. 현재 경보, 조작 가능성 높다. 보스방 진입 판단에서 한재문 과장 권한 즉시 제외. 강유찬 씨 반응 기록은 작전 메모에 올린다. 오염 경보 해제.”

중앙 상황판의 붉은 경고등이 꺼지고, 녹색 비상등으로 바뀌었다.

`[2차 공격대, 진입 준비]`

박성준 차장은 말없이 유찬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일순 놀라움이 스쳤지만, 곧이어 모든 변수를 책임져야 하는 현장 지휘관의 냉정한 무게감으로 가라앉았다.

그는 즉시 단말기를 조작했다. 유찬이 가져온 ‘살아있는 길’이라는 정보가 새로운 변수로 작전 메모에 기록되었다. 짧은 몇 초 동안, 관제실의 모든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강유찬 씨.”

마침내 박성준 차장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지금부터 2차 공격대 소속으로 임무를 변경합니다. 강유찬 씨가 확인한 길 아닙니까. 직접 선두에서 길을 확인해 주십시오. 이건 정식 임무 요청입니다.”

요청. 하지만 현장에서는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유찬은 짧게 숨을 삼켰다. 단순한 짐꾼에서, 던전 공략의 향방을 가를 핵심 증인이자 안내자가 된 순간이었다. 책임의 무게가 어깨를 눌렀다.

박성준이 덧붙였다.

“이번 루트 확인 및 오염 정화 능력에 대한 공략 기여 기록은 명확히 남기겠습니다. 보스방 공략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게이트 후속 처리 및 관리 논의에서 강유찬 씨의 역할을 정식 안건으로 올리겠습니다.”

유찬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까악스의 마지막 외침이 생생하게 울리고 있었다.

`[죽은 길이 아니다.]`

`[아직 살아 있는 놈이 길 끝에 있다.]`

그래, 길은 살아있다. 그리고 그 끝에 있는 놈을 처리해야 모든 게 끝난다.

바로 그 순간, 결정을 마친 박성준 차장이 관제실 전체를 향해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통신 장비를 타고 공격대 전원에게 퍼져나갔다.

“2차 공격대, 전원 장비 최종 확인! 목표는 보스방! 지금부터 진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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