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부 참관인
펫뽑 15화
작업표 맨 아래, 누구도 입력한 적 없는 한 줄이 떠 있었다.
`[외부 참관인 1명 배정 완료]`
`코드: BK-OBS-001`
“나는 이거 승인한 적 없습니다.”
박성준 차장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보안 담당자가 모니터 앞에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삭제하겠습니다. 즉시 차단하고 접근 기록을….”
“아니요.”
강유찬이 그를 막았다.
“지우면 꼬리가 같이 사라집니다.”
모니터를 노려보는 유찬의 눈이 가늘어졌다. 뻔뻔하고 노골적인 침입. 이걸 지우는 순간, 범인은 자신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우고 빠져나갈 것이다.
“들여보내죠. 어떤 인간인지 얼굴이나 보게.”
유찬은 박성준과 시선을 맞췄다. 그냥 들여보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놈의 동선, 시선, 말투 하나하나가 전부 함정의 일부가 되어야 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정문 말고 B-3 구역 임시 게이트로 동선을 유도해 주십시오. 거기 CCTV가 낡아서, 오히려 얼굴 특정하기엔 빛 번짐이 적습니다.”
“그리고?”
“출입 기록은 수기 서명으로. 오른손잡이인지 왼손잡이인지, 장갑을 끼고 쓰는지 벗고 쓰는지 봐야 합니다. 그 사람이 하는 모든 질문과 답변은 ‘강유찬 기록’과 ‘백호 기록’에 이중으로 남겨 주십시오.”
시스템에 침입한 방식, 그리고 굳이 ‘참관인’이라는 명분을 들고 온 자신감. 박성준은 보안팀에 바로 명령을 내렸다.
“들었나. 참관인 코드 BK-OBS-001, 특별 감시 대상으로 지정한다. 강유찬 작업 기록으로 생성되는 모든 내용은 백호 중앙 기록에도 동시 전송해. 사소한 거 하나도 놓치지 마.”
박성준은 더 묻지 않고 곧장 지시를 내렸다.
“보안팀, 들었지? 원본, 수정 전 화면, 접근 계정, 승인 로그 전부 보존해. 지금부터 이 기록에 손대는 놈이 범인이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찬의 폰이 연달아 울렸다. 정적을 깨는 진동음이었다.
`[KB은행 | 입금 2,700,000원 | 백호자산관리]`
`[KB은행 | 입금 3,000,000원 | 백호자산관리]`
1차 감정에서 보류되었던 추가 정산금 270만 원. 그리고 1주일 단기 계약의 착수금 300만 원. 도합 570만 원이 꽂혔다.
동시에 화면 위로 요양병원에서 보낸 정기 결제 안내 문자와 월세 독촉 알림이 스쳐 지나갔다. 잠시 흔들렸던 유찬의 눈빛이 다시 차갑게 식었다. 그는 휴대폰을 뒤집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화면의 한 줄이 더 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약속된 외부인이 도착했다.
“협회에서 위촉된 외부 안전 참관인입니다. 현장 안전 수칙 준수 여부를 확인하러 왔습니다.”
이름과 소속이 적힌 서류는 멀쩡했다. 하지만 백호 시스템이 그에게 부여한 작업 코드는 `BK-OBS-001`, 유찬이 화면에서 봤던 바로 그 코드였다.
참관인은 겉보기엔 그저 평범한 중년 남자였다. 악의를 드러내지도, 수상한 낌새를 풍기지도 않았다. 그는 예의 바르게 웃으며 목례까지 했다.
하지만 동물들의 반응은 정직했다.
까악!
`[저 사람 냄새가 아니다.]`
유찬의 머릿속에 까악스의 경고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종이에 묻은 냄새가 먼저다. 그게 본체다!]`
참관인이 서류를 넘기며 작업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유찬의 발치에 있던 냥믹이 하악, 하고 이를 드러냈다. 녀석의 시선은 남자의 얼굴이 아니라, 그가 낀 검은 장갑 안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허허, 고양이가 낯을 좀 가리는 모양입니다.”
참관인은 부드럽게 웃으며 장갑 낀 손을 등 뒤로 슬쩍 감췄다.
토독.
포포는 그가 들고 온 가방에서 풍기는 미세한 마나 잔류물에 반응했다. 가방 안에는 오염된 장비 샘플이 몇 개 들어 있는 듯했다. 포포가 그쪽으로 한 걸음 다가서다, 이내 뭔가를 깨닫고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유찬의 다리 뒤에 숨어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유찬의 발치에 바싹 붙은 포포가 가방 쪽으로 한 발 다가갔다가 멈췄다. 버려진 마력석 냄새와 비슷했지만 끝맛이 이상했다. 포포는 입을 벌리다 말고, 유찬의 발뒤꿈치 뒤로 몸을 숨겼다.
그 순간, 날카로운 발톱 소리가 들렸다. 하악! 소리와 함께 냥믹이 참관인의 검은 장갑 바로 앞까지 파고들었다. 공격하려는 기세가 아니었다. 장갑 소매 안쪽, 교묘하게 감춰진 맨살을 할퀴려는 듯한 정교한 움직임이었다.
“허허.”
참관인이 놀랍도록 빠른 동작으로 손을 등 뒤로 숨겼다. 고양이의 돌발 행동에 당황한 기색 없이, 그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때 까악스의 목소리가 유찬의 머릿속을 때렸다.
`[종이 냄새가 사람 냄새를 덮었다! 저놈이 들고 온 서류가 본체다! 손은 가짜다!]`
서류에 뭔가가 묻어 있다. 유찬이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이, 참관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참관인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쪽 폐기물부터 확인하겠습니다.”
그는 컨베이어 벨트 끝에 쌓인 보류 상자 더미 중 하나를 정확히 손으로 가리켰다.
“저 상자는 위험도가 낮아 보이니, 일반 폐기물로 빼도 될 것 같습니다.”
“어느 상자 말씀이십니까?”
유찬이 즉시 되물었다.
남자는 아직 상자 더미에서 10미터는 떨어져 있었다. 각도상 개별 번호표가 보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BX-773번입니다.”
침묵이 흘렀다. 유찬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단말기로 작업표를 확인했다. 그리고 박성준과 보안 담당자에게 화면을 공유했다.
`[보류 상자 BX-773: 외부 참관인 확인 완료]`
“아직 번호표도 안 보셨는데요.”
유찬은 말 대신 행동했다. 그는 자신의 단말기 화면을 참관인 쪽으로 돌려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선명하게 떠 있었다.
`[보류 상자 BX-773: 외부 참관인 확인 완료 - 15:42]`
“시스템에는 이미 확인을 마치셨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참관인께서는 아직 제 옆에 계십니다.”
유찬은 손가락으로 화면의 ‘완료’ 문구, 멀리 떨어진 상자 더미, 그리고 참관인의 위치를 차례로 가리켰다. 상자와 화면이 동시에 참관인을 가리켰다.
참관인의 얼굴에서 미소가 희미하게 굳었다. 그는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둘러댔다.
“아, 그건. 외부 안전 점검 절차상, 입장 전에 시스템에서 먼저 안전 등급을 확인하는 사전 확인 절차입니다. 별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성준의 차가운 음성이 통신을 통해 작업장 전체에 울렸다.
“보안팀. 참관인 발언 그대로 기록해. ‘외부 안전 점검 절차상 사전 확인’이라고 했다. 해당 발언을 ‘강유찬 기록’과 ‘백호 기록’에 남겨.”
유찬이 쐐기를 박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공식적인 ‘확인 요청’입니다. 참관인께서는 이 현장에 들어오기 전에, 시스템을 통해 BX-773의 확인을 완료했다는 뜻입니다.”
유찬이 나직이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참관인에게 쏠렸다. 그는 아직 상자 근처에 가지도 않았다. 그런데 시스템은 이미 그가 확인을 마쳤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현장 기록이 스스로 엇갈리고 있었다.
박성준이 이를 갈며 통신 너머로 명령했다.
“그 말 그대로 남겨. 강유찬 기록, 백호 기록 양쪽에 전부. ‘번호표를 보지도 않고 특정했다’고 사실 그대로 남겨.”
참관인은 F급 헌터의 반박 따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스템에 남는 공식 기록은 다른 문제였다. 유찬은 논쟁 대신 행동을 택했다.
“잠깐. 포포, 멈춰.”
그는 BX-773번 상자로 다가가려는 포포를 막았다. 이건 먹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원본 증거물`로 확보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 상자, 사진부터 찍습니다. 여러 각도에서. 번호표가 잘 나오게. CCTV 각도도 지금 위치로 고정하세요.”
유찬은 상자를 함부로 열지 않았다. 대신 봉인 상태부터 꼼꼼히 살폈다. 낡은 포장용 테이프, 손잡이 부분의 틈새, 운반 과정에서 긁힌 자국까지.
바로 그때, 냥믹이 상자 모서리의 닳아빠진 테이프 아래쪽을 향해 다시 한번 으르렁거렸다. 유찬은 냥믹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까악, 까악.
`[죽은 길 위에, 산 사람 손냄새가 덮였다.]`
까악스의 경고가 머릿속을 울렸다.
유찬은 조심스럽게 핀셋을 꺼내 테이프가 살짝 들뜬 부분을 건드렸다. 그리고 찾아냈다.
검은 장갑 안감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보이는, 아주 미세한 섬유 한 올.
참관인이 등 뒤로 감춘 바로 그 `검은 장갑`과 같은 종류처럼 보였다. 곧장 증거물 보존용 소형 투명 봉투를 꺼내 그 안에 섬유를 넣고 완전히 `봉인`했다.
그것을 본 참관인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미소가 사라졌다.
“그 정도로 봉인할 필요까지는 없어 보입니다. 단순한 먼지일 텐데요.”
“그 말도 `확인 요청`으로 남기겠습니다.”
유찬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박성준이 유찬의 말을 즉시 받아쳤다.
“외부 참관인이 보류 상자 봉인에 반대한 사실까지 기록해. 사유는 ‘단순한 먼지’라고 주장한 것까지 전부.”
참관인의 표정이 확연히 굳었다.
유찬은 참관인의 굳은 얼굴을 무시했다. 그는 증거물 봉투를 살짝 들어 올려, 자신의 어깨에 부착된 소형 통신기에 대고 명확히 말했다.
“현장 증거물 확보. 품목명, ‘검은 장갑 안감 섬유’. 발견 위치, 보류 상자 BX-773 외부 포장 테이프 하단. 현 시간부로 공식 증거물로 봉인 처리.”
박성준이 그 말을 즉시 받아서 전체 명령으로 증폭시켰다.
“현장 관리자 명령이다. ‘강유찬 기록’ 및 ‘백호 기록’에 해당 증거물 목록을 추가해. 품목명 ‘검은 장갑 안감 섬유’라고 정확히 기재하고, 발견 시각과 참관인의 ‘단순 먼지’라는 이의 제기 발언을 교차 기록으로 남겨.”
기록이 올라가자 참관인의 입술이 굳었다. 이제 저 섬유 한 올은 현장에서 주운 먼지가 아니었다. 백호 쪽 장비에도 남는 증거물이 됐다.
냥믹이 만족스럽다는 듯 ‘그르릉’ 소리를 내며 유찬의 바짓가랑이에 머리를 비볐다. 포포 역시 더는 경계하지 않고, 유찬의 등 뒤에서 나와 참관인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작은 눈이 참관인의 장갑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참관인은 무어라 반박하려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은 이제 ‘증거물에 대한 이의 제기’로 기록될 뿐이었다.
더 이상의 현장 확인은 무의미했다. 참관인은 형식적인 몇 마디를 더 던지고는 서둘러 철수하려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이만….”
“아직 안 끝났습니다.”
유찬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출입 기록에 서명 안 하셨습니다. 참관 시간, 확인 항목, 그리고 ‘봉인 반대’ 이의 제기 사실까지 전부 확인하고 가셔야죠.”
`강유찬 기록`과 `백호 기록`에 동시 기재된다는 말에, 참관인은 결국 떨리는 손으로 서명을 마쳤다. 그의 손은 처음 들어올 때와 달리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가 막 작업장을 빠져나간 직후였다. 보안 담당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박성준에게 보고했다.
“차장님! 해당 참관인 코드로 된 열람 기록이 뒤늦게 올라왔습니다!”
`[BK-OBS-001 보류 상자 BX-773 열람 완료]`
“시간은?”
박성준이 물었다.
“열람 완료 시각이… 이 사람이 실제로 여기 출입하기 17분 전입니다.”
작업장 소음이 끊긴 것처럼 조용해졌다.
박성준이 싸늘하게 물었다.
“그 시간, 어디서 접속했어.”
보안 담당자가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내부 행정실`입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 한 줄을 더 덧붙였다.
“계약서 별첨 최종안을 송부한 바로 그 자리와 같습니다.”
박성준의 대답은 짧았다.
“다음은 행정실이다. 출입 로그, 좌석, 단말기 사용자를 지금 잠가.”
유찬은 봉인 봉투를 내려다봤다. 참관인보다 먼저 움직인 손. 이제 그 손이 앉았던 자리까지 좁혀졌다.
유찬의 머릿속에서 까악스의 마지막 경고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장갑은 손이 아니다.]`
`[손을 숨긴 껍데기다.]`
오늘 들어온 외부 참관인은 시작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그보다 먼저, 내부 행정실에서 이미 보류 상자 기록에 손을 뻗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