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 있는 길 끝의 보스
17화: 살아 있는 길 끝의 보스
박성준 차장의 명령이 던전 전체에 울렸다.
“2차 공격대, 전원 장비 최종 확인! 목표는 보스방! 지금부터 진입한다!”
묵직한 방패를 든 선발대가 먼저 움직였다. 육중한 전투화가 바닥을 긁는 소음 속에서, 강유찬은 펫들을 품에 안고 탱커들의 바로 뒤에 자리했다. 선두에 설 필요는 없었다.
박성준이 그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유찬 씨. 무리하지 말고, 보이는 것만 말씀해 주십시오.”
방금 전까지 철문으로 막혀 있던 진입로 너머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오염 지대였다.
코를 찌르는 비릿한 악취와 함께, 검고 질척한 오염 물질이 벽과 바닥을 뒤덮고 있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밑에서 푹, 푹 하고 기분 나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젠장, 농도가 장난 아니군.”
“전원, 방호 장비 출력 올려! 피복 손상 즉시 보고해!”
공격대의 무전이 다급하게 오갔다.
그리고 그 공간의 중심.
가장 오염이 심한 곳에, 보스가 있었다.
거대한 곤충과 연체동물을 섞어 놓은 듯한 끔찍한 형상. 몸체 곳곳이 부서지고 찢겨 있었지만, 그것은 분명히 살아 있었다.
꾸득, 꾸드득.
보스의 상처 부위로 주변 바닥에 널린 검은 찌꺼기들이 달라붙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찌꺼기들은 상처를 메우고 보스의 육체를 재구성했다.
선발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마법사들이 쏘아 올린 화염구가 보스의 몸체에 작렬하고, 검사들의 칼날이 외피를 갈랐다.
“재생 속도가 너무 빨라!”
“공격이 먹히질 않아! 저 검은 액체가 상처를 막는다!”
외침대로였다. 검사가 외피를 베어내면, 그 즉시 검은 찌꺼기가 상처에 달라붙어 도로 살점을 만들었다. 공격대의 강력한 화력이 그대로 낭비되고 있었다. 이대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심지어 보스의 움직임에는 기묘한 위화감마저 느껴졌다. 마치 일부러 공격대의 시선을 끌려는 듯, 놈은 특정 부위를 일부러 노출했다. 공격대가 그곳에 화력을 집중하면, 잠시 압도적인 피해를 입는 척하다가 이내 더 빠른 속도로 재생을 마쳤다. 교묘하게 공격대의 마나와 체력만 소모시키는 움직임이었다.
백호 길드에서 지급한 최신형 스카우터도 무용지물이었다. 대원들의 바이저에는 위험 수치를 알리는 붉은 경고만 번쩍일 뿐, 저 재생의 핵심을 끊어 낼 활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압도적인 정보량 속에서 진짜 단서는 파묻혀 보이지 않았다.
박성준의 얼굴이 굳어 갔다. 상황을 타개할 한 수가 절실했다. 그는 강유찬에게 다급히 시선을 돌렸다.
“강유찬 씨.”
낮고 진중한 목소리였다.
“뭔가 보이는 게 있습니까? 아주 작은 것이라도 좋습니다. 평소와 다른 점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의 눈에는 초조함이 가득했지만, 유찬을 다그치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리하지 말라는 배려가 담겨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박성준이 기댈 곳은 정체불명의 펫들과 함께 전장에 선 강유찬뿐이었다. 유찬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앞의 혼돈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때, 유찬의 품에서 포포가 작게 떨었다.
[주인, 저기 까만 거. 맛없는 거랑 맛있는 게 섞여 있어.]
단순한 오염 덩어리가 아니었다. 포포는 본능적으로 먹을 수 있는 찌꺼기와 먹으면 안 되는 검은 덩어리를 구분하고 있었다. 저 검은 찌꺼기는 상처를 붙이는 회복 줄이자, 동시에 포포가 정제할 수 있는 마정석의 원료이기도 했다.
유찬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보스를 보지 않았다. 대신, 오염된 방 전체의 기운을 살폈다.
머릿속에서 까악스가 외쳤다.
[길이 살아 있다! 끊어지지 않았다!]
까악스의 능력은 보스에게 힘을 보내는 ‘길’을 보여주었다. 검은 웅덩이들은 단순한 찌꺼기가 아니었다. 방 전체의 벽과 천장, 바닥에 거대한 혈관처럼 퍼져 보스와 연결되어 있었다.
동시에, 냥믹이 날카롭게 발톱을 세우며 유찬의 품에서 버둥거렸다. 시선은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보스의 거대한 머리나 꿈틀거리는 촉수가 아니었다. 공격대의 시선이 전혀 닿지 않는 방의 구석, 시커먼 얼룩이 전부인 곳을 향해 하악질했다.
‘미끼….’
보스는 일부러 자신의 거대한 몸체로 시선을 끌며 공격을 유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핵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유찬은 박성준을 향해 소리쳤다.
“차장님! 공격을 멈춰 주십시오!”
박성준이 즉시 돌아보았다. 혼란스러운 전장 속에서도 그의 눈은 침착했다.
“강유찬 씨,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보스를 직접 때리면 안 됩니다. 저놈은 방 전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회복을 시켜주는 길부터 끊어야 합니다!”
유찬의 손가락이 한쪽 벽을 가리켰다.
“7시 방향 벽, 바닥에서 3미터 지점! 저길 먼저 파괴해야 합니다!”
박성준은 유찬이 가리킨 곳을 확인했다. 그곳은 다른 벽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암석 벽이었다. 하지만 그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전원 공격 중지! 목표 변경!”
그의 목소리는 모든 소음을 뚫고 전장에 울렸다.
“7시 방향 벽면! 좌표 확인 즉시 집중 포화!”
공격대의 마법사들과 궁수들이 재빨리 방향을 틀었다. 수십 개의 마법과 화살이 한 점에 꽂혔다.
콰콰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벽면이 부서져 내렸다.
그러자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크샤아아아악!
지금까지 묵묵히 공격을 맞던 보스가 처음으로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벽과 연결되어 있던 검은 회복 줄의 흐름이 끊기자, 보스의 재생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효과가 있다!”
공격대원 하나가 외치자 박성준이 곧바로 소리쳤다.
“강유찬 씨, 다음 지점을.”
“11시 방향 천장입니다! 그리고 산성 계열 마법은 쓰지 마십시오. 저 검은 줄을 더 활성화시킬 뿐입니다!”
“전원, 들었나! 11시 천장 타격! 산성 마법 사용 금지!”
유찬의 짧은 말 한마디가 백호 길드 정예 공격대의 다음 움직임을 결정했다.
포포가 맛없는 검은 덩어리의 위치를 알리고, 까악스가 살아 있는 ‘길’을 지목했다. 냥믹은 보스가 숨기려는 ‘진짜 급소’의 방향을 감지했다.
유찬의 지시에 따라 공격대는 보스에게 연결된 혈관을 하나씩 끊어 나갔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던 보스는 이제 고통에 몸부림쳤다. 재생 속도는 처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느려졌다.
두 번째 지점이 파괴되자, 천장에서 돌가루가 비처럼 쏟아졌다.
거체가 비틀리는 순간에도, 강유찬은 마지막 남은 연결점을 찾기 위해 감각을 곤두세웠다.
포포는 보스의 몸뚱이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역겹다는 듯 몸을 떨었다. 녀석의 시선은 아래로, 보스가 딛고 선 바닥의 검은 웅덩이로 향했다. 그 주변에 흐르는 탁한 찌꺼기. 정제할 수 있는 조각은 저기뿐이었다.
냥믹 역시 마찬가지였다. 놈이 성가시게 흔들어 대는 거대한 촉수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고양이의 증오는 오직 한곳, 교활하게 시선을 끄는 미끼 아래의 발치에 꽂혀 있었다.
그때, 까악스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찔렀다.
[아직. 하나. 아래.]
벽, 천장, 그리고 바닥.
마지막 연결점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놈이 제 다리로 비겁하게 가리고 선 바로 그 위치였다.
“차장님!”
유찬이 외쳤다.
“바닥입니다! 놈이 딛고 있는 땅, 그 아래입니다!”
박성준은 더 묻지 않았다. 그는 돌격조를 향해 악을 썼다.
“들었나! 전부 놈의 발밑을 노려! 바닥을 갈라 버려!”
탱커들이 방패로 보스의 하체를 밀어붙이는 사이, 마법사들의 화력이 바닥에 쏟아졌다.
우지끈, 콰드득!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보스가 딛고 선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그 틈으로 땅속에 숨겨져 있던 마지막 검은 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드의 맹공에 그것은 맥없이 끊어져 나갔다.
크아아아…!
보스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회복 길이 끊긴 순간, 놈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박성준은 승리를 직감했다.
“이제 끝이다. 총공격!”
모든 화력이 보스에게 쏟아졌다. 더 이상 회복하지 못하는 보스는 백호 길드의 막강한 화력을 감당할 수 없었다.
거대한 몸체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외피가 찢어지고, 검은 살점이 흘러내렸다. 마침내, 보스는 움직임을 멈추고 거대한 오염 덩어리로 변해 버렸다.
한재문이 그토록 막으려 했던 공략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공격대원들 사이에서 안도의 한숨과 함께 낮은 환호가 터져 나왔다.
“끝났다….”
“겨우 잡았네.”
“냄새 하고는. 이걸 다 어떻게 치운담.”
전투가 끝나자 긴장이 풀린 대원들이 코를 막으며 투덜거렸다. 보스가 남긴 검은 찌꺼기와 폐기물들은 처리 비용이 막대하게 들어가는 골칫거리였다. 정화하고, 분석하고, 안전 기준에 맞춰 폐기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전부 돈이었다.
“아… 이걸 어느 세월에 다 치우나.”
“전문 처리반 부르면 빨라야 이틀 뒤에나 올 겁니다. 그전까지 여기 계속 통제해야 합니까?”
전투가 끝난 자리에 남은 것은 귀찮은 뒤처리뿐이었다. 대원들은 바닥에 널린 보스의 파편과 검은 오염 물질을 보며 질색했다. 평범한 사냥터의 전리품과 달리, 저것들은 만지는 것만으로도 위험했다.
하지만 강유찬의 눈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보였다.
그의 시선 속에서, 포포는 작게 부르르 떨며 바닥에 흩어진 파편 몇 개를 콕콕 찍고 있었다. 먹을 수 있는 것, 영양이 되는 것.
냥믹은 특정 오염 지대를 피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닿으면 위험한 것, 처리 비용이 많이 드는 진짜 폐기물.
까악스는 이미 힘을 잃고 스러진 ‘길’의 흔적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그저 무해한 잔해일 뿐이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검고 위험한 오염 지대일 뿐이지만, 유찬에게는 달랐다. 돈이 되는 것과, 돈을 잡아먹는 것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보였다. 후처리에 들어갈 막대한 비용을 아낄 기회이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곳에서 이득을 챙길 틈이었다. 유찬은 박성준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결심을 굳혔다.
박성준 역시 복잡한 심경으로 유찬에게 다가갔다.
“강유찬 씨.”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감사가 배어 있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길드를 대표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유찬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시선은 방 전체를 천천히 훑었다.
“차장님, 이 던전에서 나오는 오염 폐기품 정리와 위험물 확인을 제가 맡고 싶습니다. 후속 처리 담당 기록에 제 이름을 올려주시면 됩니다.”
박성준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엄청난 금액의 공략 기여금이나 지분을 요구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남들이 다 기피하는 폐기물 처리를 자처하다니.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의 얼굴에 이내 안도와 감탄이 어렸다.
“그 일을… 직접 맡아 주시겠습니까? 사실 저희가 부탁드려야 할 일입니다.”
백호 길드 입장에서도 오염 폐기물 처리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전문 인력을 부르고 장비를 대여하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만약 강유찬이 그 일을 맡아준다면, 길드로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박성준은 즉시 허리에 찬 단말기를 꺼내 무언가를 기록했다.
“물론입니다. 지금 바로 기록에 올리겠습니다. 강유찬 씨를 ‘오염 폐기품 후속 처리 담당’이자 ‘오염 던전 임시 관리 후보’로 기재하겠습니다. 이 구역의 위험물 확인과 정리는 강유찬 씨 담당 기록으로 남깁니다.”
공식적인 절차였다. 아직 완전한 던전 소유권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값진 첫걸음이었다. 적어도 오염 폐기품과 위험물 확인 과정에는 강유찬 이름이 공식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공격대원들이 보스방의 증거를 수집하고 안전 구역을 확보하는 동안, 유찬은 조용히 보스가 쓰러진 자리로 다가갔다.
그의 발치에서, 포포가 뽀글거리며 몸을 떨었다.
시커먼 폐액과 쓸모없는 오염 덩어리 사이.
아주 작은 결정 조각 하나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보스가 무너지면서 미처 오염시키지 못한, 순도 높은 마정석의 파편이었다.
유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이게 시작이다.’
버려질 것들 사이에서, 돈이 될 건 얼마든지 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