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포가 삼키지 않은 파편
보스가 쓰러진 자리는 검은 찌꺼기로 뒤덮였다. 끈적한 오염층이 바닥을 덮었고, 증발하지 못한 마력 찌꺼기가 웅덩이를 이뤄 불길한 기운을 토해냈다. 백호 길드 2차 공격대는 힘겨운 승리 끝에 숨을 돌리면서도, 눈앞의 광경에 누구 하나 마음을 놓지 못했다.
“오염 수치 최고 단계 유지! 전원, 즉시 필터 교체!”
“폐기물 처리반에 연락 넣어. 특급 차폐 컨테이너 세 개는 있어야겠어.”
“젠장, 저거 처리하는 데 돈이 또 얼마나 깨질까….”
안전팀은 전리품보다 처리 비용부터 계산했다. 잘못 건드리면 길드 재정을 태워 먹을 고독성 오염물. 던전 자체가 거대한 오염원으로 변질된 이상, 정화와 봉쇄 비용은 보스가 남긴 마정석 몇 개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강유찬은 그 중심을 조용히 지켜봤다. 그의 발치에서 포포가 뽀글거리며 몸을 부풀렸다. 다른 헌터들이 오염 덩어리 전체를 보며 인상을 찌푸릴 때, 슬라임의 시선은 오직 한 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검게 굳은 덩어리 한가운데, 미세하게 푸른빛을 깜빡이는 작은 파편이었다.
토독.
포포가 아주 조금, 파편을 향해 몸을 늘렸다. 하지만 파편을 감싼 검은 오염수에 닿기 직전, 뜨거운 것에 덴 것처럼 화들짝 몸을 수축했다. 젤리 같은 몸이 파르르 떨렸다.
다시, 아주 조심스럽게 몸을 뻗었다. 그리고 다시 움츠러들었다.
먹고는 싶은데, 차마 삼킬 수는 없는 모양새. 위험한 독이 든 그릇에 담긴 음식처럼, 파편 주위를 맴돌기만 할 뿐이었다.
유찬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보스의 회복액과 오염수가 마정석 표면에 눌어붙은 오염막. 포포는 안의 파편은 원하지만, 저 탄 껍질 같은 막은 독이라 피하는군.’
전리품을 챙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먹이면 안 되는 독성 폐기물 속에, 돈이 되는 알맹이가 숨어 있었다.
그의 무릎에 앉아 있던 냥믹이 코를 킁킁거렸다. 녀석의 시선은 바닥의 검은 웅덩이를 지나, 안전팀장이 들고 있는 작업표와 폐기 지시서를 향했다. 서류 뭉치에서 뭔가 역한 냄새라도 나는 듯했다.
까악스는 더 이상했다. 녀석은 보스방이 아닌, 던전 입구 쪽을 보며 목을 짧게 떨었다. 그 순간, 유찬의 눈에만 보이는 검은 잔상이 까악스의 그림자 위로 스치듯 나타났다 사라졌다. 마치 누군가 지나간 흔적처럼.
“강유찬 씨.”
박성준 차장이 다가왔다. 그는 유찬의 시선이 검은 덩어리 중심에 머물러 있는 것을 확인하고 물었다.
“뭔가 발견한 거라도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냥, 저걸 어떻게 처리해야 가장 효율적일까 보고 있었습니다.”
유찬은 포포에게서 시선을 떼고 단호하게 말했다. 펫의 반응을 섣불리 증거라고 내세우기엔 아직 이르다.
“그냥 다 밀봉하면 손해가 큽니다. 저 안에 버릴 것만 있는 건 아닐 겁니다.”
유찬은 손가락으로 허공에 칸을 나누듯 그었다. 머릿속 분류는 더 노골적이었다. 남길 것, 벗겨낼 것, 포포에게 먹일 수 있는 것.
입 밖으로 꺼낼 때는 달라야 했다.
“현장 기준으로는 세 가지입니다. 보존, 폐기, 특수처리. 원형을 남겨야 할 건 보존하고, 독성 오염막은 폐기하고, 안쪽에 남은 파편은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그의 말에 안전팀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강유찬 씨. 그건 절차에 없는 내용입니다. 저 오염물은 현재 최고 위험 등급으로 지정됐습니다. 현장에서 분리 작업을 하는 건 교범 위반입니다.”
“그 교범대로라면 저 비싼 걸 전부 돈 내고 버리게 됩니다.”
유찬의 지적은 짧고 명료했다.
“저 안에 건질 게 1%만 있어도, 폐기 비용은 달라집니다. 제 펫들이 그걸 확인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는 ‘포포가 먹고 싶어 하니 저건 비싼 거다’ 같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펫의 반응을 객관적인 ‘확인 기준’으로 바꿨다. 특수처리가 가능한 것과 폐기해야 할 것을 가르는 기준.
하지만 안전팀장은 고개를 저었다.
“위험합니다. 만에 하나라도 저기서 유독성 물질이 외부로 유출되면 책임은 백호 길드가 져야 합니다. 원칙대로 차폐 컨테이너에 밀봉해서 전문 처리 시설로 보내는 게 가장 안전합니다.”
“그 방식은 돈을 내고 위험을 계속 보관하는 구조 아닙니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창고에 쌓아두는 것과 같습니다.”
유찬이 반박하려는 순간이었다.
“거기까지.”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길드 본사에서 파견된 절차 담당자였다. 그는 아무 감정 없는 눈으로 유찬을 보며 말했다.
“강유찬 씨, 당신은 ‘오염 폐기물 후속 처리 담당’입니다. 현장 보존과 기록이 주 업무지, 폐기물 분리 권한은 없습니다.”
그는 폐기 지시서가 든 종이철로 검은 덩어리를 가리켰다.
“저건 이제 백호 길드의 공식 자산 목록에서 폐기물로 전환된 항목입니다. 당신이 저기에 손을 대는 순간,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책임은 당신 개인에게 돌아갑니다. 그래도 하시겠습니까?”
유찬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절차 담당자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 반응은 예상 밖이라는 얼굴이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손대려는 건 저 거대한 오염 덩어리 전체가 아닙니다.”
유찬은 손가락으로 바닥에 떨어진 작은 파편 하나를 가리켰다. 굳어가는 검은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손톱만 한 조각이었다.
“저 파편. 그리고 그 주변의 잔여물. 저것 하나만 확인하게 해주십시오. 원본은 말씀하신 대로 완벽하게 밀봉해서 옮기셔도 좋습니다. 저는 이미 떨어져 나온 저 샘플 하나에 대한 가능성만 보려는 겁니다.”
절차 담당자의 입이 무겁게 열렸다.
“그게 오염원이랑 다르다는 보장은 있습니까? 결국 같은 덩어리에서 나온 거잖습니까.”
“그래서 확인하자는 겁니다. 안 보고 다 버릴 겁니까? 샘플 하나만 확인해도 건질 가능성이 생깁니다. 백호 입장에선 그게 더 낫죠.”
유찬의 시선은 절차 담당자를 넘어, 그 뒤에 서 있는 박성준에게 향했다. 결정권자는 저 사람이었다.
박성준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길드 본사에서 파견된 절차 담당자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원칙, 규정, 책임 소재. 전부 맞는 말이었다. 저 담당자는 자기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현장은 언제나 교범 바깥의 일을 만들어냈다.
“강유찬 씨의 제안, 구체적인 절차를 말해보십시오.”
박성준이 입을 열자, 절차 담당자의 얼굴이 미세하게 굳었다.
“간단합니다.”
유찬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저는 오염물에 직접 손대지 않습니다. 안전팀 집게와 차폐판으로 샘플만 떼어내고, 기록 담당자와 안전팀 입회 아래 전부 촬영해두십시오. 제 펫도 바로 먹이지 않겠습니다. 먼저 반응만 보겠습니다.”
유찬은 작업 이름부터 바꿨다. 분리 작업이 아닌 가치 판별을 위한 제한적 확인. 전면 작업 권한은 없어도, 폐기물의 가치를 확인하는 건 유찬에게 맡겨진 일 안에 있었다.
“그렇게 해서 아무것도 안 나오면?”
절차 담당자가 따지듯 물었다.
“틀리면 그냥 버리면 됩니다. 백호가 손해 보는 건, 제 말 듣느라 쓴 3분뿐이고요.”
정적이 흘렀다. 박성준은 결심을 굳혔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그는 먼저 절차 담당자를 바라봤다.
“이번 건은 현장 책임자인 제 판단에 따라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안전팀장에게 지시했다.
“팀장님. 강유찬 씨가 제안한 안전 조건을 철저하게 지켜주십시오. 기록 담당자는 지금부터 모든 장면을 빠짐없이 영상으로 남기고요. 원본 오염 지대는 봉인 상태로 두고, 추가적인 접근을 모두 차단합니다.”
명령이었다. 절차 담당자는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의 눈빛이 유찬의 등을 날카롭게 찔렀지만, 유찬은 돌아보지 않았다.
안전팀이 박성준의 지시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로봇 팔처럼 생긴 긴 집게가 조심스럽게 파편을 향해 뻗어 나갔다. 한쪽에서는 방어막 생성기가 옅은 푸른빛의 차폐막을 펼쳐,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집게는 파편 자체를 집지 않았다. 파편을 둘러싼 검은 오염 잔여물을 먼저 건드렸다. 찐득하게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잔여물은 바삭하게 부서지며 파편과 분리되었다. 타버린 껍질이 벗겨지듯 검은 조각이 툭툭 떨어졌다.
“어?”
안전팀원 한 명의 입에서 나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염층과 파편 사이에 얇은 틈이 보였다.
집게가 검은 껍데기들을 조심스럽게 걷어내자, 마침내 푸른빛을 내는 파편의 온전한 모습이 드러났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었다. 저 파편 자체가 더 위험한 물질일 수도 있었다.
“강유찬 씨.”
박성준의 부름에 유찬이 포포를 안고 다가갔다. 차폐판 바로 앞, 안전거리 끝에 섰다. 포포는 유찬의 품 안에서 뽀글거리며 몸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유찬이 포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토독.
포포는 망설였다. 파편 주위에 아직 남아있는 검은 잔여물 때문이었다. 녀석은 그것에 닿는 것이 끔찍하게 싫다는 듯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동시에, 파편이 내뿜는 미세한 기운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포포는 한 걸음 다가가다 반 걸음 물러서기를 반복했다.
“역시, 저 검은 부분은 피하는군.”
안전팀장이 숨을 죽인 채 물었다.
“그럼 저 파편은….”
모두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포포가 마침내 결심한 듯 몸을 쭉 늘렸다. 검은 잔여물을 요리조리 피해, 오직 파편의 가장 뾰족한 끝부분에만 젤리 같은 몸의 끝을 살짝 가져다 댔다.
파아앗!
포포의 몸이 닿는 순간, 파편이 머금고 있던 푸른빛이 환하게 터져 나왔다. 위험한 폭발과는 달랐다. 순수한 마력 결정에서만 나오는 맑은 빛이었다. 포포의 몸이 그 빛을 따라 기분 좋게 뽀글거렸다. 위험 반응보다 포식 반응에 가까웠다.
“…….”
절차 담당자는 입을 다물었다. 교범에는 없지만, 현장에서는 돈으로 직결되는 장면이었다.
박성준이 나지막이 말했다.
“분리 가능. 가치 높음. 그렇게 기록해두세요.”
기록 담당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화면에 빠르게 입력했다.
`[항목 분류: 오염 파편 샘플-07. 판정: 오염층과 분리 가능. 가치: 높음(정밀 감정 필요). 현장 확인자: 강유찬.]`
마지막 줄에 박힌 이름을 보고 절차 담당자의 얼굴이 굳었다.
박성준은 만족스러운 눈으로 유찬을 돌아봤다. 그는 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강유찬 씨가 제안했던 3분류 방식. ‘보존’, ‘폐기’, ‘특수처리’. 오늘 자 현장 기록에 추가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제한 샘플 확인’ 항목의 책임자는 강유찬 씨 이름으로 올리십시오.”
말 한마디였지만, 무게가 달랐다. 방금 전까지 유찬은 끼어들 자격이 없는 외부인이었다. 한번 기록에 이름이 남으면, 다음번 비슷한 상황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절차 담당자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즉시 폐기하려던 명령은 보류됐다. 눈앞의 임시직 짐꾼이 만든 분류표가 현장 기록에 올라갔다. 굴욕이었지만, 반박할 말은 남지 않았다.
박성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검은 웅덩이 가장자리, 동굴 벽의 균열로 이어진 작은 배출구를 턱으로 가리켰다. 다른 팀원들은 오염수가 새어 나가는 위험 요소로 보고 즉시 틀어막으려던 곳이었다.
“저쪽 배출구 하나, 강유찬 씨 방식으로 한번 확인해봅시다. 본체는 위험하니, 저렇게 흘러나온 것부터 시작하는 게 안전하겠지요.”
방금 막 만들어진 ‘제한 샘플 확인 책임자’에게 첫 임무가 내려왔다. 저 배출구는 위험 요소에서 두 번째 샘플 후보지로 바뀌었다.
그때 냥믹이 유찬의 발목을 툭 건드렸다. 녀석은 여전히 폐기 지시서가 든 종이철 쪽을 보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 노골적으로 코를 찡그리고 있었다. 검은 웅덩이보다 저 종이에서 더 역한 냄새가 난다는 듯이.
까악스도 조용히 날개를 접었다. 던전 입구 쪽에 스쳤던 검은 잔상은 이미 사라졌지만, 녀석의 시선은 아직 그쪽에 남아 있었다. 유찬은 둘의 반응을 말로 꺼내지 않았다. 지금은 추리보다 눈앞의 배출구 확인이 먼저였다.
포포가 유찬의 신발 옆에서 뽀글거렸다. 방금 파편 끝에 닿았던 몸의 일부가 아직도 희미하게 푸른빛을 머금고 있었다. 먹지는 않았다. 삼키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포포는 알고 있었다. 저 검은 것들 사이에, 버리면 안 되는 게 숨어 있다는 걸.
유찬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금은 한 푼도 없었다.
대신 다음에도 끼어들 자리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