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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로그 까악스 일러스트

사망로그 까악스

사망로그 까악스

정제된 금속성 부산물이 담긴 표본 트레이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저 폐기물일 뿐인 검은 가루가 한쪽으로 쏠렸다. 마치 저 너머에 자석이라도 있는 것처럼.

백호 길드 안전팀의 베테랑 헌터가 트레이를 꽉 붙들었다.

“부단장님, 이거…….”

“끌리고 있군.”

박성준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은 던전 입구 너머, 어둠이 시작되는 통로 깊은 곳을 향했다. 유찬이 포포를 시켜 분리해 낸 금속성 부산물. 그것이 오염 던전의 특정 지점과 반응하고 있었다.

“죽은 길! 죽은 길이야!”

그때였다. 유찬의 어깨에 앉아 있던 까마귀, 까악스가 비명처럼 울부짖었다. 녀석의 새까만 부리가 정확히 부산물이 끌려가는 통로를 가리켰다.

“까악! 죽은 길! 가면 죽어!”

평범한 위험 경고와는 결이 달랐다. 이미 결과를 본 것처럼, 수없이 반복된 죽음을 목격한 것처럼 절규했다. 온몸의 깃털을 곤두세운 채 파드득거리는 통에 유찬의 어깨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강유찬 씨, 저 까마귀는…….”

“원래 저럽니다. 위험한 곳에선.”

유찬은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속은 타들어 갔다. 돈이 될 줄 알았다. 폐기물 처리 비용을 아끼고, 부산물까지 팔아치우면 통 하나당 백만이 넘는 이익이 남는다. 남은 폐기물 전부를 처리하면, 월세와 병원비를 해결하고도 남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는 거기까지였다.

‘돈이 문제가 아니구나.’

까악스가 가리키는 저 길 끝에 돈이 있더라도, 그 길 자체가 죽음으로 이어진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길드 입장에선 당연히 통제하고 봉쇄할 뿐이다. 수익성보다 안전이 우선이다. 폐기물 처리로 몇 푼 아끼자고 길드원의 목숨을 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안전팀장이 박성준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부단장님, 저 중앙 통로로 들어간 세 차례의 탐사는 모두 실패했습니다. 생존자는 없습니다.”

“결국 원점인가.”

박성준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였다. 오염 정화의 실마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더 근본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전체 던전 영구 폐쇄를 상부에 건의하겠습니다. 내부 미확인 유인 요인이 존재하는 이상, 운영은 불가합니다.”

안전팀장의 단호한 말에 주변 공기가 얼어붙었다. 그렇게 닫히면 이 던전은 다시 열릴 일이 없다. 유찬의 돈줄도 그 자리에서 끊긴다.

‘아니, 아직.’

유찬은 고개를 저었다.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부산물 트레이를 노려보는 안전팀과 심각한 얼굴로 대화하는 박성준을 뒤로하고, 까악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죽은 길! 죽은 길!”

어깨 위에서 까악스는 여전히 같은 말만 반복하며 울고 있었다. 유찬은 까악스를 조심스럽게 팔 위로 옮겼다. 가까이서 본 녀석의 상태는 평소와 확연히 달랐다.

까악, 까악!

울음소리 사이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섞여 들리는 듯했다.

자세히 보니 까악스의 한쪽 날개 끝에 처음 보는 흰 줄이 하나 생겨 있었다. 염색이라도 한 것처럼 선명한 흰 깃이었다.

눈동자도 이상했다.

새까만 구슬 같던 눈동자가 마치 금이 간 시계 문자판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깨진 유리 조각들이 위태롭게 박혀 있는 것만 같았다. 그 갈라진 눈동자가 맹렬하게 한쪽 통로를 향해 있었다.

“까악! 죽어! 들어가면, 죽어!”

순간, 유찬의 눈에 기이한 잔상이 스쳤다. 울부짖는 까악스의 갈라진 눈동자 위로, 아주 짧게 어떤 장면이 겹쳐 보였다. 방패를 든 탱커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모습. 섬광과 함께 마법사의 지팡이가 부러지는 모습.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 잔상은 너무 흐릿해서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었다.

실패의 기록.

유찬은 까악스의 눈동자에 비친 것을 이해했다. 녀석은 저 길에서 벌어졌던 실패의 순간들을 보고 있었다.

‘누가, 혹은 무엇이 저 팀들을 죽였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지만, 유찬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질문이 틀렸다. 까악스는 고작 F급 펫이다. 범인의 정체나 공략법 같은 고차원적인 정보를 알 리가 없다. 녀석이 기억하는 건 오직 하나, 결과뿐이다.

죽음이라는 결과.

“부단장님, 잠시만요.”

유찬이 박성준과 안전팀장 사이를 파고들었다. 안전팀장의 표정이 노골적으로 굳었다. 외부인, 그것도 고작 E급 헌터가 길드의 공식적인 판단에 끼어드는 것이 불쾌하다는 기색이었다.

“강유찬 씨, 이건 저희 길드의 안전 절차에 관한 문제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녀석은 그냥 우는 게 아닙니다.”

유찬은 까악스를 들어 보였다.

“저 녀석은 ‘죽은 길’을 보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안전팀장이 인상을 썼지만, 박성준은 달랐다. 그는 유찬의 눈에서 무언가를 읽어내려는 듯 침착하게 물었다.

“강유찬 씨,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유찬은 까악스를 고쳐 안으며 말했다.

“‘누가 죽였나’가 아닙니다. ‘어떻게 들어갔기에 죽었나’입니다. 저 녀석은 실패한 순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유찬은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까악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이전과는 다른, 명확한 질문을.

“까악아.”

“까악?”

“저 길 말고. 저 길로 들어가지 않은 팀은 어떻게 됐어?”

까악스의 울음이 순간 멎었다. 갈라진 눈동자가 유찬을 향했다.

“아무도 안 죽고 나온 길. 살아서 돌아온 길은 어디야?”

까악!

까악스의 부리가 다른 방향을 향했다. 부산물이 끌려가던 통로에서 살짝 빗나간 곳이었다. 입구에서 갈라지는 세 갈래 길 중, 가장 비좁고 어두운 왼쪽 길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유찬의 눈에 잔상이 스쳤다.

이번에는 헌터들이 쓰러지지 않았다. 중무장한 헌터 한 명이 무언가에 쫓기듯 뛰쳐나왔다. 그는 방패 일부가 깨지고 갑옷이 찌그러졌지만, 분명 두 발로 서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살아 있었다.

“……차이가 있군.”

박성준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의 눈은 까악스가 가리킨 왼쪽 길과, 부산물이 반응하던 중앙 길을 번갈아 훑고 있었다.

안전팀장은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부단장님, 까마귀의 반응일 뿐입니다. 이걸 근거로 삼을 순 없습니다.”

“물론이지.”

박성준은 동의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은 듯한 미묘한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그는 유찬에게 시선을 돌렸다.

“강유찬 씨. 그 반응, 공식적인 증거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심장이 내려앉았다. 까악스의 실패 기억은 증거가 아니다. 사적인 감각일 뿐이다. 길드 기록에 올리려면, 단말기에 남은 숫자와 화면으로 맞춰 봐야 했다.

“……기존 탐사 기록이 필요합니다.”

유찬은 마른 입술을 축이며 대답했다.

“실패한 팀과, 생환한 팀의 진입 경로, 교전 기록, 모든 데이터와 대조해 봐야 합니다.”

박성준이 즉시 안전팀에게 지시했다.

“기존 탐사 기록, 전부 디스플레이 해주십시오. CCTV, 진입 경로, 바이탈 사인 로그까지 전부.”

“부단장님, 하지만…….”

“일단 띄우십시오. 강유찬 씨의 주장을 검증해 봐야 하니까.”

안전팀원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휴대용 단말기를 조작했다. 허공에 여러 개의 반투명 스크린이 떠올랐다. 각 스크린에는 던전 내부의 3D 지도와 함께 복잡한 데이터가 어지럽게 표시되었다.

사망한 1차, 2차, 3차 탐사대의 이동 경로가 붉은색 선으로 그어졌다. 유일한 생존자가 나온 4차 탐사대의 경로는 녹색 선으로 표시되었다.

유찬은 그 앞으로 다가가, 까악스의 부리가 가리키는 왼쪽 길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까악스는 여전히 그 길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하는 듯했다.

“이쪽입니다. 4차 탐사대가 진입했던 경로.”

유찬이 녹색 선을 손으로 가리켰다. 스크린의 데이터가 그의 손짓에 반응해 확대되었다. 4차 탐사대의 CCTV 기록이 작은 창으로 재생되었다. 비록 화질이 좋지 않았지만, 헌터가 필사적으로 뛰쳐나오던 모습이 분명히 담겨 있었다.

“까악스, 죽은 길은?”

유찬이 묻자, 까악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날개를 퍼덕이며 중앙 통로를 향해 부리를 돌렸다. 정확히 붉은색 선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곳이었다.

“1, 2, 3차 탐사대의 진입 경로와 일치합니다.”

안전팀원 중 한 명이 읊조렸다. 목소리에는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외부 폐기물 처리 업체와 연락을 주고받던 담당자가 끼어들었다.

“우연의 일치일 수 있습니다. 까마귀가 뭘 안다고 경로를 지정합니까? 저희가 제안한 외부 반출 루트가 안전하고 빠른 동선입니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자신들이 설계한 폐기물 처리 동선을 스크린에 띄웠다. 푸른색의 선이 기존 지도 위에 겹쳐졌다.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숨이 멎었다.

푸른색 선은, 정확하게 붉은색 선, 즉 세 개 팀이 전멸했던 ‘죽은 길’과 완전히 겹쳐 있었다.

담당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 이럴 리가…….”

“그쪽에서 제안한 루트가 가장 위험한 길이었다는 뜻이군요.”

박성준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는 외부 담당자를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

“만약 우리가 강유찬 씨의 검증 없이 이 루트를 승인했다면, 백호는 길드원들을 사지로 내몰 뻔했습니다.”

“그, 그건 저희도 몰랐습니다! 기존 데이터에는 이런 위험 요소가…….”

“몰랐다는 말로 책임이 사라지진 않습니다. 이 건은 다시 검토하겠습니다.”

박성준은 담당자를 일축하고 유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그의 눈에는 의심이 아닌, 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유찬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구상을 펼쳐 보였다. 그는 3D 지도 위에 손을 뻗어 선을 긋기 시작했다.

“이 던전 전체를 봉쇄할 필요는 없습니다.”

유찬은 까악스가 가리킨 중앙 통로, 즉 ‘죽은 길’을 붉은색으로 덧칠했다.

“여기는 ‘운영 금지선’입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진입해서는 안 됩니다.”

다음으로, 그는 생존자가 나왔던 왼쪽 길 주변에 노란색 선을 그었다.

“이쪽은 ‘회수 가능선’. 숙련된 헌터의 호위 하에 이미 드랍된 아이템이나 자원을 회수할 수 있는 구역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입구 근처의 넓은 공간과 오염 물질이 쌓여 있는 구역 일부를 녹색으로 표시했다. 포포가 부산물을 분리하며 안전을 확인했던 곳이었다.

“그리고 여기가 ‘처리 가능선’입니다. 제 펫인 포포가 오염 물질을 정제할 수 있는 구역이죠. 이 안에서 폐기물을 처리하면, 위험한 외부 반출 없이 비용을 절감하고 추가 수익까지 창출할 수 있습니다.”

운영 금지선, 회수 가능선, 처리 가능선.

유찬이 제시한 세 가지 구역 구분은 명확했다. 전체 폐쇄라는 극단적인 선택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안전하며, 경제적이기까지 했다. 기존의 외부 폐기 루트가 죽음의 길과 겹친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안전팀도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유찬의 눈앞에, 그에게만 보이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까악스가 실패 경로 기록을 각성했습니다: 사망로그(Deathlog)]`

역시나. 까악스는 위험 냄새만 맡는 게 아니라, 실패한 경로의 흔적을 읽어내고 있었다.

박성준은 유찬이 만든 지도를 잠시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드디어 옅은 미소가 번졌다.

“훌륭합니다, 강유찬 씨.”

그는 안전팀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강유찬 씨가 작성한 이 지도를 백호 길드의 공식 탐사 기록으로 업데이트하십시오. 각 구역별 안전 수칙도 이 지침을 기준으로 재정비합니다.”

“알겠습니다, 부단장님.”

안전팀장의 대답에는 이제 군말이 없었다. 그는 유찬을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박성준은 다시 유찬을 향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명백한 존중이 담겨 있었다.

“이번 결과는 보상보다 기록으로 먼저 남겨야겠습니다. 강유찬 씨가 그은 안전선이 있어야 상부도 움직입니다.”

돈이 아니라는 말에 순간 실망할 뻔했지만, 이어지는 말은 유찬의 심장을 뛰게 했다.

“우선, 강유찬 씨를 이 던전의 ‘현장 처리 설계자’로 공식 기록하겠습니다. 처리 가능선 내에서의 모든 오염 물질 처리에 대한 설계와 감독 권한을 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이 ‘처리 가능선’ 구역에 한해, 강유찬 씨에게 ‘조건부 임시 관리권’을 부여하는 안건을 길드 상부에 정식으로 상정하겠습니다.”

조건부 관리권. 던전의 일부 구역에 대한 운영 권한을 논의하겠다는 의미였다. 길드의 정식 파트너가 될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기회였다.

“감사합니다.”

유찬은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내 대답했다.

그날 저녁, 유찬은 자신의 옥탑방으로 돌아와 휴대 단말기를 확인했다. 백호 길드 법무팀에서 보낸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조건부 임시 관리권 계약서 초안’

유찬이 파일을 열자, 빼곡한 조항들이 화면을 채웠다. 그의 무릎에 앉아 있던 냥믹이 화면을 빤히 들여다보더니, 특정 조항에서 갑자기 온몸의 털을 곤두세웠다.

“캬르릉!”

날카로운 경계심이 가득한 울음소리였다. 냥믹의 발톱이 가리킨 곳은 ‘책임 소재’에 관한 조항이었다.

‘독소 조항이군.’

유찬의 눈이 가늘어졌다.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기회의 문이 열렸지만, 그 문턱에는 날카로운 덫이 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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