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리정제 포포
분리정제 포포
“잠깐. 지금 그걸 슬라임에게 먹이시려는 겁니까?”
날카로운 목소리가 임시 처리 부스의 공기를 갈랐다. 대호환경 소속의 김동수였다. 방호복과 고글 너머로도 경멸감이 선명했다.
“저건 원본 대조를 위해 남겨 둔 오염원 샘플입니다. 증거 인멸 행위라고요.”
CCTV의 빨간 램프가 깜빡였다. 안전팀과 연구팀 직원 몇몇이 유리벽 너머에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기록되는 현장. 김동수의 지적은 절차상 완벽한 태클이었다.
박성준이 입을 열었다. 그는 유찬이 아닌 김동수 쪽을 먼저 보았다.
“김동수 책임님. 이 처리 과정은 제가 허가한 사안입니다.”
“부단장님, 허가 여부를 따지는 게 아닙니다. 저 슬라임이 오염물질을 먹고 무슨 반응을 보일지, 원본 성분이 어떻게 변질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먹여서 없애 버리면, 나중에 문제 발생 시 원인을 규명할 증거 자체가 사라지는 겁니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박성준도 더는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유찬을 바라봤다. ‘강유찬 씨, 이 상황을 해결할 논리가 있습니까?’ 눈빛이 그렇게 묻고 있었다.
유찬은 기다렸다는 듯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먹이는 게 아닙니다.”
“그럼 뭡니까? 슬라임 앞으로 오염물질을 밀어주고 있으면서.”
김동수가 코웃음을 쳤다. 유찬은 그를 무시하고 박성준에게 설명했다.
“정확히는 세 가지로 나누는 겁니다.”
유찬은 작업대 위에 놓인 슬러지 샘플 용기를 가리켰다. 검고 탁한 액체. 보기만 해도 불길한 기운이 흘렀다.
“이 샘플은 원본 증거로서의 가치가 있습니다. 김동수 책임님 말씀대로입니다. 그러니 첫째, 원본 성분과 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 ‘보존핵’을 따로 분리하겠습니다. 이건 어떤 처리도 하지 않고 밀봉해서 백호 측에 증거물로 제출할 겁니다.”
유찬은 작은 스포이트와 샘플병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둘째, 포포가 직접 처리할 ‘분리 대상’을 나눌 겁니다. 마지막으로, 오염 농도가 극히 미미해 섭취해도 안전한 ‘잔여물’을 구분할 겁니다. 포포에게 줄 것은 이 마지막 잔여물뿐입니다.”
“…….”
“‘증거 훼손’ 프레임은 피하고 싶으니까요. 그래서 먹이기 전에, 제 손으로 먼저 나누겠습니다.”
김동수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증거를 없앤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절차였다. 박성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좋습니다. 강유찬 씨의 판단을 믿어보죠. 제안하신 대로 세 가지로 분리해서 진행해 주십시오.”
허락이 떨어지자 유찬은 곧바로 움직였다. 그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홀로 작업대 앞에 섰다. 마치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사제처럼, 조심스럽게 슬러지를 다루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보존핵’. 유찬은 슬러지에서도 가장 오염 농도가 짙어 보이는 중심부를 스포이트로 조심스럽게 빨아들였다. 그것을 작은 샘플병에 옮겨 담고 즉시 밀봉했다. 라벨까지 붙여 카메라 앞에 명확히 보여주었다.
‘증거물 1호.’
다음은 ‘분리 대상’. 보존핵을 제외한 나머지 슬러지 대부분이었다. 유찬은 그것을 따로 격리 용기에 옮겼다. 이물질이 섞이지 않도록 숨조차 조심스럽게 쉬었다.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유찬의 발치에 있던 포포의 몸이 미세하게 반응했다.
뽀글…….
회색 푸딩 같던 몸체 안에 떠다니던 은색 입자들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던 것들이 하나의 구심점을 향해 모여들었다. 느리지만 분명한 원형의 흐름.
유찬의 눈에만 보이는 변화였다.
‘반응한다.’
포포는 오염물질을 향해 몸을 던지지 않았다. 유찬이 ‘보존핵’과 ‘분리 대상’을 나누는 손길에 맞춰 은색 입자를 회전시켰다.
작은 몸이 작업 순서를 따라 숨을 고르는 것처럼 보였다. 유찬은 그 반응에서 포포가 풀어야 할 과제를 알아듣고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마지막, ‘잔여물’입니다.”
유찬은 빈 용기에 남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싹싹 긁어모았다. 전체 슬러지의 1%도 되지 않는 양. 하지만 유찬의 눈에는 그 잔여물조차 다르게 보였다. 위험한 오염원이 아닌, 포포의 능력을 깨울 ‘열쇠’로.
그가 잔여물 처리를 끝마치자, 포포의 몸에서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났다.
연녹빛.
흐릿하던 몸의 색이 맑은 연둣빛을 띠기 시작했다. 불투명한 젤리 덩어리의 가장자리가 유리처럼 투명해지는 전조 현상.
유찬은 속으로 확신했다.
‘먹이는 게 아니라, 나누는 것이다.’
그것이 진화의 조건이었다.
“자, 이제 비교 분석을 시작하겠습니다.”
유찬은 박성준과 카메라를 향해 선언했다. 그는 ‘분리 대상’으로 분류한 격리 용기를 포포 앞으로 조심스럽게 밀어주었다.
김동수가 다시 소리쳤다.
“결국 먹이는 것 아닙니까! 저렇게 위험한 걸 그대로 주다니, 만약 슬라임이 처리하지 못하고 터지기라도 하면……!”
“그래서 나눴습니다.”
유찬이 김동수의 말을 잘랐다.
“포포가 처리할 것은 오염물질의 ‘본체’입니다. 보존해야 할 증거도 아니고, 단순 섭취할 잔여물도 아닌, 정제가 필요한 핵심. 이 과정을 통해 오염물에서 돈이 되는 자원을 분리할 수 있는지 없는지 증명될 겁니다.”
그는 다시 포포에게 시선을 돌렸다.
“만약 실패하면요? 모든 책임은 제가 집니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백호는 폐기물 더미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게 될 겁니다.”
팽팽한 긴장감이 부스를 가득 메웠다. 박성준도, 안전팀도, 비웃던 김동수마저도 숨을 죽이고 포포를 지켜보았다.
포포는 격리 용기 앞에 멈춰 섰다. 회색 푸딩 같던 몸은 이미 낯선 형태로 바뀌어 있었다. 몸 안에서는 은색 입자들이 고리를 이뤄 회전하고, 표면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유리 공예품처럼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유찬이 나직이 속삭였다.
“보여줘, 포포. 네가 뭘 할 수 있는지.”
토독.
포포가 대답하듯 몸을 한번 떨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분리 대상’을 향해 몸을 뻗기 시작했다.
포포의 몸이 검은 슬러지에 닿는 순간, 감시 장비에서 경고음이 터져 나왔다.
삐- 삐- 삐-!
“오염 수치 급등! 기준치 초과!”
유리벽 너머 안전팀 직원의 다급한 외침. 그의 손이 제어판의 붉은색 ‘강제 중단’ 버튼 위를 초조하게 맴돌았다.
“거 보십시오, 부단장님! 제가 뭐랬습니까!”
김동수의 목소리에는 ‘거 봐라’ 하는 듯한 희열마저 섞여 있었다.
“슬라임이 감당 못 하고 터지기 직전입니다! 당장 중단시키고 강유찬 씨의 책임을……!”
“아직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유찬의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차분했다.
“이건 오염 확산이 아닙니다. 분리를 위해 에너지가 집중되면서 일어나는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유찬은 포포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포포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격리 용기를 넘어, 작업대 위에 남은 다른 샘플들까지 삼킬 듯 부풀어 오르는 순간이었다.
유찬이 나직하게 명령했다.
“포포. 거기까지. 그 안에서만.”
꿀렁.
명령과 함께 유찬의 손가락이 정확히 격리 용기의 경계선을 가리켰다. 더 먹고 싶다는 듯 몸을 떨던 포포가 이내 얌전해지며 용기 안의 슬러지에만 집중했다. 김동수의 얼굴이 어이없다는 듯 구겨졌다. 슬라임을 개처럼 다루는 저 모습이 사기극의 일부처럼 보일 터였다.
바로 그때였다.
“어……?”
안전팀 직원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포포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 때문이었다.
경고음을 울리던 오염 수치가 거짓말처럼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시커먼 슬러지를 빨아들인 포포의 회색 몸이 안쪽부터 맑게 개기 시작했다.
연녹빛.
탁한 푸딩 같던 몸체가 맑은 숲의 이끼를 닮은 색으로 변했다. 몸의 가장자리는 유리처럼 투명해져, 그 너머의 풍경이 왜곡되어 보일 정도였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몸 안에 있었다.
소용돌이치던 은색 입자들이 완벽한 고리 하나를 이뤘다. 그리고 그 은빛 고리는 포포의 몸 안이 아닌, 마치 토성의 고리처럼 몸 바깥으로 스며 나오듯 얇은 테를 형성했다. 신성한 후광처럼 보이는 그 현상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뽀글…….
포포의 몸 안에서 검은 슬러지가 세 갈래로 나뉘었다. 어떤 물리적 힘도, 화학 약품도 없었다. 그저 포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물질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광경.
토독.
포포가 가볍게 몸을 떨자, 세 가지 물질이 바닥에 차례로 분리되어 떨어졌다.
하나는 슬러지의 오염원만 농축된 듯한 작고 검은 ‘코어’.
다른 하나는 어떤 독성도 느껴지지 않는 맑은 ‘액체’.
마지막은 금속 가루처럼 반짝이는 소량의 ‘부산물’.
결과는 완벽했다. 원본 증거(보존핵)는 따로 보관했고, 처리 대상(분리 대상)은 세 가지로 완벽하게 분리되었다. 증거 훼손이라는 김동수의 주장은 설 자리를 잃었다.
그때, 유찬의 눈앞에 선명한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포포’가 새로운 처리 형태를 획득했습니다: 분리정제]`
`[분류: 특수 정화 계열]`
`[등급: 레어 (Rare)]`
`[설명: 오염된 물질을 흡수하여 유해 성분, 무해한 액체, 특수 부산물로 분리합니다. 처리 범위는 숙련도에 따라 넓어집니다.]`
“……이게, 어떻게…….”
김동수가 넋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박성준은 말없이 다가와 분리된 세 가지 물질을 확인했다. 연구팀 직원이 재빨리 간이 키트로 검사를 마친 뒤,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부단장님…… 코어는 오염 농도가 극도로 농축되었지만 안정 상태입니다. 액체는…… 그냥 물입니다. 그냥 보통 물이라고요! 그리고 이 가루는…… 미지의 광물 성분이지만, 오염 반응은 전혀 없습니다!”
침묵.
부스 안을 채운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닌 침묵이었다. 폐기물 처리 방식이 눈앞에서 뒤집히는 걸 본 충격.
박성준이 유찬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는 더 이상 시험이나 의심이 아닌, 경외감에 가까운 존중이 담겨 있었다.
“강유찬 씨. 기존 오염 슬러지 처리 비용이…… 통당 240만 원이었습니다.”
폐기물 처리에는 그만큼의 위험 부담과 정화 비용이 붙었다. 박성준이 꺼낸 것은 백호 길드의 공식 단가표였다.
유찬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제 방식으로는 기본 처리비 60만 원이면 충분합니다.”
“60만 원이라고요? 하지만 이 부산물은…….”
“네. 부산물에서 회수 가능한 예상 가치는 최소 110만 원으로 추정됩니다.”
직원 하나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소리쳤다.
“잠깐, 그럼 돈을 내고 버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돈을 버는 거라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역전됐다. 돈을 내고 버리던 폐기물이, 통당 50만 원을 남길 수 있는 자원으로 바뀌었다. 김동수는 박성준의 손에 들린 단가표를 보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어떤 반박도, 어떤 트집도 잡을 수 없었다.
박성준은 단가표를 조용히 접었다. 그는 유찬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강유찬 씨. 이 결과로 즉시 보고서를 작성해 주십시오. 백호 길드 공식 기록으로 남겨야겠습니다.”
현금 정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유찬은 알았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손에 넣었다는 것을.
“‘분리정제 샘플 보고서’와, 이 처리 방식에 따른 ‘오염 부산물 신규 단가표’ 초안이 필요합니다. 오늘 자로 길드에 공식 제출하겠습니다.”
부관의 단말기에 새 기록이 박혔다.
`[분리정제 샘플 보고서 - 공식 등록 대기]`
`[오염 부산물 분리 처리 단가표 - 임시 승인 검토]`
`[제한 샘플 처리 기록 - 백호 길드 내부 감사 보존]`
공식 기록, 그리고 새로운 단가표. 그것은 유찬의 능력이 백호 길드의 시스템에 정식으로 편입된다는 의미였다. 폐기물 처리의 권한이 자신에게 넘어오는 첫 단추였다.
유찬이 막 입을 열어 대답하려던 순간이었다.
파르르…….
바닥에 놓여 있던 금속성 부산물이 미세하게 떨렸다. 자석에 끌리는 쇳가루처럼, 일정한 방향을 향해 움직이려는 듯한 반응.
그 방향은 다름 아닌, 던전의 깊은 어둠이 시작되는 입구 쪽이었다.
까악.
유찬의 어깨에 앉아 있던 까악스가 나직하게 울었다. 평소보다 낮고 거친 울음이었다. 까악스의 검은 눈동자는 부산물이 아닌, 던전 입구를 꿰뚫을 듯 응시하고 있었다.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이미 본 눈빛이었다.
유찬의 눈이 가늘어졌다.
‘죽은 길 너머에…… 뭐가 있는 거지?’
분리된 부산물은 던전 공략의 새로운 ‘나침반’이 될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