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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지 않고 써먹는 돈 일러스트

팔지 않고 써먹는 돈

“아닙니다. 이건 팔 물건이 아니라 길을 여는 물건입니다.”

유찬이 수거 상자 안쪽에서 묵직한 쇳덩이를 꺼내 올렸다. 16번 소형 제어 코어였다. 겉면에는 시커먼 오염 물질이 찐득하게 눌어붙어 있어서, 거친 표면이 손끝에 닿을 때마다 기분 나쁜 점성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유찬은 코어를 움켜쥔 채 제2구역 안쪽을 가로막은 철제 방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방벽 한가운데에는 낡고 찌그러진 푸른색 라벨이 반쯤 찢어진 채 붙어 있었고, 그 바로 아래에 주먹만 한 사각형 홈이 파여 있었다. 16번 코어가 꼭 맞을 만한 자리였다.

“강유찬 씨, 지금 뭐 하려는 겁니까?”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서기태 부장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벼려졌다. 그의 얼굴은 벌써부터 찌푸려져 있었다.

“그거 당장 수거함에 넣으십시오. 단검하고 링까지 합치면 눈앞에 떨어지는 순수익만 2,400만 원 선인데, 그걸 왜 엄한 벽에 갖다 댑니까?”

서기태는 침을 튀기며 손가락질을 했다. 수거 상자 안에 담겨 있는 12번 보조 단검과 7번 마력 안정화 링은 현장에서 골라낸 단검과 포포가 처리한 장비들 중에서도 가장 값어치가 나가는 것들이었다. 여기에 16번 소형 제어 코어의 가치까지 얹어야 겨우 2,400만 원이라는 잠정 회수 가치가 완성되는 참이었다.

인부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오민석 대리가 마른침을 삼키며 유찬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오 대리는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훔치며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유찬 씨, 코어를 저기 꽂습니까? 저건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저런 구식 제어부 벽은 내부에 잔여 마력이 꼬여 있어서 회로가 한번 타 버리면 끝장입니다. 코어 자체도 오염이 심해서 과전류 흐르면 바로 터집니다.”

“코어를 저기 꽂는다고? 제정신인가.”

“그러게 말입니다. 괜히 건드렸다가 장비만 날리고 적자만 커지는 것 아닙니까?”

인부들의 수군거림이 좁고 축축한 제2구역의 통로 벽면에 부딪쳐 웅성웅성 울렸다. 서기태 부장이 유찬의 앞을 가로막으려 발을 거칠게 내디뎠다.

“강유찬 씨. 우리가 왜 여기를 포기했는지 몰라서 이럽니까? 이전 파티도 운송비, 오염 검사비, 보관료를 따져 보고 손을 뗀 겁니다. 그런데 겨우 건진 코어를 저 녹슨 벽에 쑤셔 넣겠다고요? 실패하면 장비 오염 검사비랑 책임비용까지 우리가 다 뒤집어씁니다!”

서기태의 말에 인부들도 쉽게 반박하지 못했다. 폐기 전 기록만 보면 이 구역의 오염도는 위험했다. 장비가 터지면 손실금은 그대로 현장에 남았다.

하지만 유찬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손안에서 전해지는 16번 코어의 단단한 무게감을 고스란히 느끼며 방벽을 응시했다.

“이대로 그냥 팔면 2,400만 원으로 끝입니다. 하지만 저 벽을 작동시키면 안쪽으로 회수 길이 새로 열립니다.”

유찬은 서기태를 지나쳐 박성준에게 시선을 던졌다. 허락을 구하는 빛은 눈곱만큼도 없는 단호한 요구였다.

“박성준 씨, 작동할 때 스파크가 튈 수 있으니 위험선 밖으로 물러나게 해 주십시오. 최소 3미터는 거리를 둬야 안전합니다.”

박성준의 동공이 작게 흔들렸다. 그는 잠시 유찬의 손에 든 16번 코어와 푸른색 라벨의 철제 방벽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결단을 내린 듯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 3미터 뒤로 물러나십시오. 유찬 씨 말대로 경계선 밖으로 대피합니다. 오 대리님, 인부들 통제해 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모두 뒤로 물러나십시오!”

오민석 대리가 발 빠르게 인부들을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다.

“박성준! 미쳤습니까? 저러다 코어 타 먹으면 어떻게 책임질 건데?”

서기태가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제가 책임집니다. 물러나십시오.”

유찬이 차가운 눈으로 서기태를 쏘아보았다. 그 서늘한 기세에 눌린 서기태가 입술을 물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인부들도 슬금슬금 걸음을 옮겨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사방이 조용해지자 유찬은 주머니를 톡톡 두드렸다.

“포포, 잠깐 나와 봐.”

주머니 안쪽에서 젤리 같은 몸뚱이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포포는 마력을 쥐어짜 내느라 이미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온몸이 평소보다 흐릿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젤리 표면이 힘없이 토독 흔들렸다.

유찬은 녀석에게 무리하게 정화하라고 다그칠 생각이 없었다. 전체를 깨끗하게 정화하는 것은 지금 포포의 체력으로는 불가능했다.

“전부 닦아낼 필요는 없다. 코어 겉면에 낀 얇은 오염막만 살짝 걷어내 줘. 할 수 있겠어?”

포포가 몸을 뽀글 떨며 긍정의 신호를 보냈다. 녀석이 16번 코어 표면으로 미끄러지듯 기어올랐다. 흐릿한 마력이 포포의 몸에서 흘러나와 코어를 한 바퀴 감쌌다. 찌르르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코어 표면에 붙어 있던 시커먼 진액 같은 오염막이 아주 얇게 한 겹 벗겨져 나갔다.

투둑, 바닥으로 검은 가루가 떨어졌다. 포포는 힘이 빠진 듯 다시 유찬의 소매 안쪽으로 쏙 기어들어 가 몸을 움츠렸다.

오염막이 한 겹 걷히자 코어 본래의 은빛 회로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여전히 위험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이대로 철제 방벽 홈에 무작정 꽂는다면 내부에 잔존하는 오염 때문에 오작동을 일으킬 확률이 컸다.

유찬은 심호흡을 하며 방벽에 바짝 다가섰다.

그의 어깨 위에 얌전히 앉아 있던 냥믹이 황금빛 꼬리를 살랑 흔들었다. 녀석의 꼬리 끝은 방벽 홈 아래쪽 얇은 금속 연결부를 가리켰다. 냥믹은 꼬리를 흔들며 그 지점을 톡톡 찍었다. 아래쪽 신호였다.

‘저기부터 맞추라는 뜻이군.’

유찬이 코어를 홈에 밀어 넣으려 손을 뻗은 그 순간이었다.

허공을 조용히 맴돌던 까악스가 날개 깃을 파르르 떨며 유찬의 머리맡으로 조용히 내려앉았다. 녀석은 평소처럼 소란스럽게 울어대지 않았다. 부리를 딱 닫은 채 날개를 잔뜩 움츠리며 유찬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불길한 조짐을 감지한 짐승 특유의 본능적인 경고였다.

유찬은 뻗으려던 손을 멈췄다.

그는 녀석들의 반응만을 믿고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유찬은 눈을 좁히고 사각형 홈 안쪽의 구조를 샅샅이 뜯어보았다.

홈 위쪽 구석에 미세하게 그을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검붉게 타들어 간 흔적, 그리고 마력이 역류해 굳어 버린 찌꺼기가 단단하게 뭉쳐 있었다.

까악스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대로 밀어 넣었다면 위쪽 회로부터 맞닿았을 터였다. 그러면 코어가 타고, 오염된 역류 마력이 유찬의 손을 덮쳤을 가능성이 컸다.

“아래부터다.”

유찬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홈 주변의 그을림과 냥믹이 가리킨 위치를 대조하며 올바른 삽입 순서를 머릿속으로 조립했다. 빠른 삽입을 유도하는 홈의 입구 배치와 달리, 접지핀들의 상태가 오염으로 인해 완전히 뒤틀려 있었다. 대충 밀어 넣으면 위쪽 연결부부터 접촉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그 함정을 피해야 했다.

“늦장 부리지 말고 얼른 꽂으십시오! 시간 끌다가 정산만 늦어집니다!”

뒤에서 서기태가 초조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유찬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유찬은 코어의 위쪽을 비스듬히 눕힌 채, 냥믹이 신호를 보낸 아래쪽 접지핀부터 홈바닥에 맞추었다. 쇠와 쇠가 맞닿는 묵직한 감각이 손가락을 타고 올라왔다. 딱, 하고 아귀가 들어맞는 느낌이 손끝에 전해졌다.

그다음 우측 잠금쇠를 건너뛰고 좌측 잠금쇠부터 부드럽게 밀어 넣었다.

파지직!

유찬이 삽입 순서를 바꾸는 순간, 홈의 위쪽 틈새에서 손가락 굵기만 한 검은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매캐한 탄내가 순식간에 좁은 구역 사방으로 퍼졌다.

“억!”

뒤에서 조마조마하게 구경하던 인부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서기태의 얼굴도 순간적으로 흙빛으로 변했다. 만약 유찬이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코어를 평범하게 위쪽부터 밀어 넣었다면, 저 시커먼 불꽃이 코어의 회로 전체를 산산조각 내며 태워 버렸을 것이다. 유찬이 바꾼 접지 순서 덕분에 역류하려던 오염 전류가 빈 회로를 타고 흘러 바닥으로 무사히 빠져나간 셈이었다.

유찬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코어의 몸체를 단단히 거머쥐었다.

마지막 단계였다. 유찬은 꽂힌 코어를 시계 방향으로 반 바퀴 천천히 돌렸다.

철컥!

무거운 기계음이 방벽 내부에서 둔탁하게 울렸다.

완전히 고정된 코어 내부의 은빛 회로를 따라 푸른색 빛무리가 미세하게 돌기 시작했다. 거대한 철제 방벽 전체가 낮게 웅웅거리며 진동했다. 차가운 쇠벽 너머에서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발밑을 타고 흘러들었다.

방벽이 천천히 흔들리며 가라앉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위험선 유지해요. 뒤로 물러서십시오."

유찬의 경고에 뒤쪽의 박성준이 바로 반응했다. 그는 곧바로 손을 뻗어 인부들의 진입을 가로막았다.

"모두 뒤로! 안전거리 벌려요! 아직 상황 안 끝났습니다!"

쿠구구구!

거대한 철제 방벽은 굉음을 내며 아래로 내려앉는가 싶더니, 이내 둔탁한 비명 같은 마찰음을 토해 냈다. 방벽 전체가 삐딱하게 뒤틀리며 덜컥 멈춰 섰다. 오른쪽 모서리 틈새만 겨우 한 뼘 남짓 어설프게 갈라진 상태였다.

방벽 내부에서는 기어가 어긋나며 거칠게 맞물려 부서지는 금속 소음이 진동을 타고 좁은 구역 전체를 흔들었다.

그 한심한 꼬락서니를 본 서기태 부장의 얼굴에 즉시 비아냥거리는 웃음이 번졌다.

"내 뭐라 그랬습니까! 애초에 무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렇게 다 망가진 구식 장벽에 소형 코어를 무턱대고 쑤셔 넣으니까 저 모양 저 꼴이 나는 겁니다. 아까운 회수품만 통째로 날려 먹은 거 아닙니까? 2,400만 원 공중에 날려 보낸 책임은 확실히 지셔야 할 겁니다, 강유찬 씨!"

서기태는 좁은 통로를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유찬의 실패를 손꼽아 기다렸다는 듯한 어조였다. 돈이 날아갔다는 핑계로 유찬의 목줄을 죌 빌미를 잡은 게 그리도 즐거운 모양이었다.

그의 핀잔에 뒤쪽에 웅크려 있던 인부 하나가 조심스럽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어설프게 갈라진 오른쪽 틈새 안쪽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불빛을 보며 눈독을 들이는 눈빛이었다.

"부장님, 그래도 저 오른쪽은 사람 한 명은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갈 만한 틈이 생긴 것 같은데요? 제가 먼저 안쪽에 귀중한 물건이 있는지 확인해 볼까요……?"

인부가 허리에 차고 있던 손전등을 켜고 방벽의 갈라진 틈으로 고개를 디밀려 했다. 욕심에 눈이 멀어 위험한 틈새로 손부터 뻗는 꼴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유찬의 어깨 위에서 조용히 상황을 살피던 까악스가 날개 깃을 단단히 옥죄며 날개를 파르르 떨었다. 녀석은 평소처럼 요란하게 울부짖지 않았다. 소름 끼칠 정도의 고요함 속에서 부리를 단단히 걸어 잠근 채, 위험한 오른쪽 틈새를 노려보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짐승 특유의 본능적인 위기 신호였다.

유찬은 생각보다 몸을 먼저 움직였다. 틈새로 기어들어가려던 인부의 어깨를 우악스럽게 낚아채 뒤로 밀쳐냈다.

"물러서요!"

"악!"

갑작스럽게 몸이 붕 뜬 인부가 바닥의 축축한 흙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크게 나가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쩍 벌어져 있던 오른쪽 틈새에서 쉭- 하는 격렬한 파열음이 사방의 공기를 찢어발겼다.

치이이익!

시커멓게 타들어 간 끈적한 검은 증기가 틈새를 뚫고 고압으로 뿜어져 나왔다. 증기가 바닥의 돌멩이와 오염된 흙더미에 닿자마자 치지직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검붉은 그을음이 번졌고, 머리가 어질할 정도의 매캐한 독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만약 유찬이 인부를 잡아끌지 않았다면, 녀석의 얼굴과 목덜미는 그 지독한 잔여 마력 독무에 그대로 노출되어 뼈가 드러날 정도로 녹아내렸을 게 뻔했다.

"허, 헉……! 어, 억……!"

바닥에 엎어진 인부가 제 코앞에서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흙을 보며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는 도저히 일어서지 못하고 엉금엉금 뒤로 기어 도망쳤다.

"방벽이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움직이지 마십시오. 저 검은 독무는 몸에 닿기만 해도 살점이 녹아내립니다."

유찬의 목소리는 서늘하리만치 침착했다.

그의 말대로 몇 초가 더 지나자, 뿜어져 나오던 검은 증기가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이윽고 쿵! 하는 묵직한 땅울림과 함께 멈춰 있던 철제 방벽이 바닥 끝까지 매끄럽게 가라앉았다.

거대한 쇠벽이 사라진 자리에 드러난 광경은 모두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통로 안쪽은 축축하지 않았다. 메마른 먼지와 고운 쇳가루가 바닥에 얇게 깔려 있었다.

제2구역 가장 안쪽으로 돌아 들어가는 좁은 안전로였다. 장비를 들고 나올 때도 오염 물질을 피해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었다.

"……열렸네."

오민석 대리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중얼거렸다.

"안쪽이 완전히 말라 있습니다. 오염 전도가 전혀 안 된 안전 구역입니다!"

인부들의 웅성거림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유찬은 조용히 구두 굽 소리를 내며 통로 안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박성준 씨, 오 대리님. 들어오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강유찬 씨."

박성준이 정신을 차리고 유찬의 뒤를 따랐다. 오민석 역시 단말기를 가슴에 꼭 껴안은 채 허겁지겁 뒤를 쫓았다. 서기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짓씹으며 맨 뒤에서 따라붙었다.

좁고 메마른 통로를 따라 손전등 불빛이 길게 뻗어 나갔다. 유찬의 시선이 바닥 구석진 틈새에 흙먼지와 함께 파묻혀 있는 쇳덩이들에 닿았다.

"어…… 저건?"

오민석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유찬이 허리를 숙여 흙먼지 더미 사이에 처박혀 있던 둥근 구체를 집어 올렸다. 묵직하고 차가운 금속과 유리의 감각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추가 회수 가능품 6점입니다."

유찬이 흙을 털어내며 옆으로 비껴섰다.

바닥에는 외관이 아주 깨끗하게 보존된 포탑 렌즈 2개가 맑은 유리빛을 발하며 박혀 있었고, 그 아래쪽으로 붉은 마력 제어선이 손상 없이 살아 있는 두꺼운 마력 배터리 1개가 누워 있었다. 조금 더 안쪽 구석진 틈새에는 튼튼한 금속 장갑판에 둘러싸인 보호판 코어 1개와 누런 절연 테이프가 단단히 감겨 있는 릴레이 박스 2개가 얌전히 얹혀 있었다.

오민석이 거의 슬라이딩하듯 무릎을 꿇고 앉아 단말기를 장비들에 갖다 댔다.

띡, 띡, 띡.

단말기의 초록색 판독선이 6점의 추가 회수품을 빠르게 스캔해 나갔다. 판독이 완료될 때마다 화면 우측 하단의 실시간 정산 액수가 요동치며 치솟기 시작했다.

오민석의 눈동자가 좌우로 거칠게 흔들렸다.

"이, 이건……!"

"액수가 어떻게 됩니까?"

유찬의 덤덤한 물음에 오민석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단말기 화면을 유찬과 박성준 앞에 들이밀었다.

"유찬 씨! 제2구역 예상 회수액이 원래 잘해야 2,700만 원 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추가 장비들…… 특히 마력 배터리랑 보호판 코어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지금 화면에 잡히는 수치만 해도…… 제2구역 예상 회수액 도합 5,800만 원급으로 뜁니다! 5,800만 원요!"

"5,800만 원?"

뒤에서 헐레벌떡 쫓아온 서기태 부장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붉으락푸르락하게 달아올랐다. 그는 오민석의 손에서 단말기를 나꿔채듯 빼앗으며 액정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액정 화면 중앙에는 거짓말처럼 붉은색 숫자가 깜박이고 있었다.

`[추정 정산액: 58,000,000 KRW]`

"이게…… 이게 말이 되나? 어떻게 갑자기 두 배가 넘어?"

서기태는 숨을 몰아쉬며 유찬을 바라보았다. 어떻게든 시비를 걸어보려 했지만, 눈앞의 명확한 숫자 앞에서는 혀가 마비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걸 왜 안 팔아, 라고 소리치시지 않았습니까."

유찬이 서기태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평온한 눈빛이었기에 서기태에게는 더더욱 지독한 굴욕으로 다가왔다.

"16번 코어를 그냥 시장에 던졌다면 고작 2,400만 원이 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코어를 사용해서 이곳 철제 방벽을 열고 건조 통로를 확보하면, 숨겨져 있던 장비 6점이 추가로 나옵니다. 어느 쪽이 더 이득인지는 숫자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서기태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 그건…… 단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저 벽 너머에 장비가 잠자고 있을지 없을지 어떻게 확신했단 말입니까?"

"확신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유찬의 짧은 대꾸에 서기태는 결국 입을 꾹 다물었다.

인부들의 눈빛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단순히 기세를 믿고 까부는 신참 헌터라고 생각했던 시선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거만하고 깐깐한 서기태 부장의 콧대를 단숨에 꺾어버린 진짜 실력자가 자신들의 눈앞에 있었다.

"대단하십니다, 강유찬 씨."

박성준이 유찬에게 다가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속삭였다.

"강유찬 씨 판단 덕분에 안전한 길도 찾고, 추가 물품도 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성준 씨가 인부들을 통제해 주신 덕분입니다."

유찬은 가볍게 목례를 나누고는 건조 통로의 가장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통로의 맨 끝, 메마른 쇳가루가 바람에 쓸려 모여 있는 막다른 곳에 육중한 강철 보관함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유찬은 그 보관함 앞에 멈춰 섰다.

보관함의 걸쇠 부분에는 오래되어 가장자리가 닳아빠진 붉은색과 회색의 이중 라벨 딱지가 붙어 있었다.

그 딱지 위에 찍힌 글자는 지워지지 않고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한서 폐기 완료`

유찬은 보관함에 섣불리 손을 대지 않았다. 내부의 장비가 무엇인지 지금 당장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대신 보관함 바로 앞에 조용히 가라앉아 있던 냥믹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황금빛 신호 대신, 이번에는 묘하게 맑고 투명한 흰빛을 약하게 내뿜으며 보관함의 테두리를 살포시 감싸 안고 있었다. 냥믹의 꼬리 끝이 맑은 흰빛을 머금은 채 보관함 겉면을 톡톡 건드렸다.

금빛과는 달랐다. 유찬은 그 흰빛을 보고 손을 멈췄다. 지금은 열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유찬은 주머니에서 임시 딱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한서 폐기 완료' 딱지 바로 옆에 새로운 라벨을 꾹 눌러 붙였다.

`[보류 후 확인]`

새하얗게 반짝이는 냥믹의 맑은 흰빛이 유찬의 라벨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유찬은 보관함 앞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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