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쇄 통로 앞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눅눅한 습기와 매캐한 먼지로 가득 차 있었다.
천장에 달린 마석등은 수명이 다했는지 희미한 불빛을 간헐적으로 깜빡이며 웅웅거리는 기분 나쁜 소음을 뱉어냈다.
사선으로 대충 쳐진 노란색 봉인줄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채 바닥으로 축 처져 있었다.
벽면에 걸린 낡은 대산 안전 표지판은 붉은 페인트가 죄다 일어나 글자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여기가 D-7 구역 입구입니다."
대산 측 현장 책임자인 윤도겸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턱짓했다.
그의 뒤에 늘어선 대산 현장 직원들은 먼지투성이 장비를 대충 바닥에 내려놓으며 연신 하품을 해댔다.
"보시다시피 이미 오래전에 폐쇄가 끝난 구역입니다."
"안쪽에 위험한 마수나 이상 현상은 진작에 다 정리했으니, 가볍게 훑어보고 서명만 하시면 평가 절차는 바로 끝납니다."
"이렇게 좁고 먼지 나는 구역에 오래 머물러 봐야 서로 좋을 게 없지 않습니까?"
유찬은 대답 대신 품 안에서 두툼하게 접힌 서류 뭉치를 꺼냈다.
전날 백호 길드에서 정식으로 암호화하여 잠금 처리한 가치 평가서였다.
대산이 숨기고 싶어 하던 모든 수치와 공란이 빽빽하게 담긴 장부이기도 했다.
유찬은 입구 옆, 낡은 콘크리트 벽면에 박힌 금속판의 코드와 서류에 적힌 식별 번호를 대조했다.
`[D-7-A1: 진입로 및 외곽 폐기 구역]`
장부에 적힌 첫 번째 구역의 식별 번호가 현장 입구의 금속 표지판과 정확히 일치했다.
"강유찬 씨, 백호 길드 공식 기록 장비 가동했습니다."
유찬 바로 옆에서 박성준이 소형 마력 기록기를 들어 올리며 조용히 속삭였다.
대산 측 직원들이 보내는 삐딱하고 노골적인 시선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태도였다.
박성준은 유찬의 다음 지시만을 묵묵히 기다리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쪽 구역 코드부터 기록을 대조하며 들어가면 되겠습니까?"
"예."
"입구 근처에 쌓여 있는 폐기 더미부터 하나씩 확인하고 들어가죠."
유찬의 묵직한 목소리가 컴컴한 통로에 나지막하게 울렸다.
그 말에 윤도겸이 이마를 찌푸리며 한 걸음 다가왔다.
"잠깐, 강유찬 씨."
"굳이 입구에 쌓인 저런 쓰레기 더미까지 뒤져야 합니까?"
"저건 벌써 삼 년 전에 대산 측에서 쓸 만한 자원을 전부 수거해 가고 남은 찌꺼기입니다."
"쓸모없는 고철 더미에 불과해요."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바로 본부 구역으로 가시죠."
"장부에 적힌 모든 구역을 내 눈으로 직접 검증하기로 계약서에 서명했습니다."
유찬은 단호하게 윤도겸의 말을 잘랐다.
그의 발끝이 어둠 속에 잠긴 첫 번째 폐기 더미를 향했다.
"구역 하나라도 검증을 건너뛰면, 난 최종 평가서에 서명 안 합니다."
윤도겸이 거칠게 혀를 찼지만, 유찬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D-7 구역은 겉모습만 보고 덥석 인수할 수 있는 만만한 던전처럼 보이지 않았다.
조용한 통로 곳곳에 숨겨진 위험과 뒤탈이 덫처럼 깔려 있을 수 있었다.
특히 전날 밤 확인했던 장부의 맨 아랫줄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B2 폐쇄 통로 — 접근 경로 불명 / 샘플 없음 / 까악스 반응 지속]`
그 기이한 빈칸의 실체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서둘러 평가를 마칠 생각이 없었다.
안쪽으로 몇 걸음 더 들어가자 썩은 가죽 냄새와 눅눅한 녹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다.
사방에 부서진 목재 궤짝과 구부러진 철망, 출처를 알 수 없는 마수의 뼈 조각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탑을 이루고 있었다.
대산 측에서 값어치가 없다고 보고 구석에 쓸어 담아둔 진짜 폐기 더미였다.
"뽀글."
유찬의 주머니 안쪽에서 젤리처럼 부드러운 감각이 조용히 흔들렸다.
슬라임 포포가 파란 몸체를 꼬물거리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포포의 투명한 몸 안에서 미세한 기포가 뽀글거리며 연신 솟아올랐다.
포포는 주머니에서 부드럽게 빠져나와 바닥의 녹슨 철판 아래로 미끄러지듯 기어갔다.
"토독, 토독."
포포의 말랑한 촉수가 부서진 철판 틈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자 그 아래 파묻혀 있던 희미한 금속 조각 하나가 바깥으로 굴러 나왔다.
날끝이 완전히 뭉개지고 자루마저 삭아버린 헌터용 단검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고철상도 거들떠보지 않을 쇳덩어리였지만, 포포는 젤리 같은 몸을 미세하게 떨며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유찬은 허리를 숙여 그 단검을 집어 들었다.
포포는 그것을 넙죽 삼켜 정제하고 싶다는 듯 몸을 부풀리며 유찬의 손가락에 매달렸다.
그러나 유찬은 조급하게 포포에게 단검을 넘겨주지 않았다.
그는 단검의 칼날 부분에 새겨진 희미한 문양을 살핀 뒤, 곁을 지키고 있는 냥믹을 바라보았다.
유인선 냥믹이 부드러운 걸음으로 다가와 단검 주변의 냄새를 킁킁 맡았다.
녀석의 긴 꼬리 끝이 가늘게 떨렸다.
냥믹의 황금빛 꼬리가 왼쪽으로 살짝 기우는가 싶더니, 이내 검은색 꼬리가 하늘을 향해 곧추섰다.
녀석은 유찬의 서류 뭉치를 빤히 쳐다보며 작게 소리를 냈다.
유찬은 대산 측이 들고 있는 단말기의 폐기 전 기록 화면을 확인했다.
냥믹이 가리킨 곳은 대산의 기록 칸 중에서도 붉은색 경고등이 깜빡이는 빈칸이었다.
`[수거품 식별번호 미지정 - 회수 권리 없음]`
"역시 빈틈이 있군."
유찬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포포가 삼켜 쓸 만한 결정으로 정제할 수 있어도, 그걸 유찬이 문제없이 가져갈 수 있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했다.
"성준 씨, 현장에서 골라낸 이 단검의 원래 소유주가 누구로 등록되어 있는지 확인해 주십시오."
박성준이 즉시 마력 기록기를 조작했다.
그의 손가락이 화면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예, 바로 대조해 보겠습니다."
"……확인됐습니다."
"4년 전 이 구역에 임시로 진입했던 사설 레이드 파티의 소유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대산 측에서 파티 유실물에 대한 소유권 포기 각서를 공식적으로 받아 두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걸 정제해서 가져가면 어떻게 됩니까?"
"나중에 그 파티원이나 유족 측에서 단검 소유권이 자기들 쪽에 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포포가 처리한 단검에서 나온 결정도 자기들 몫이라고 문제 삼을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 불필요한 송사에 휘말릴 위험이 큽니다."
대산이 왜 이 자원들을 수거하지 않고 먼지 구덩이에 방치해 두었는지 명확히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이 물건들이 먼지 속에 처박혀 있던 이유가 보였다.
오염 검사와 감정 비용도 문제였고, 복잡하게 얽힌 소유권 때문에 보관료와 처리 비용만 계속 붙는 골칫덩이였다.
윤도겸이 뒤편에서 헛기침을 크게 하며 다가왔다.
"거 보십시오, 강유찬 씨."
"그런 부러진 칼날 쪼가리 백날 들여다봐야 다 쓸모없는 쓰레기입니다."
"법적으로 귀찮은 문제만 얽혀 있어요."
"그냥 버려두고 어서 안쪽으로 들어가시죠."
"시간 아깝게 왜 자꾸 멈춰 서는 겁니까?"
"버려 두기 전에 기록과 대조해서 장부에 임시로 표시해 두는 겁니다."
유찬은 단검 조각을 원래 자리에 툭 내려놓았다.
그리고 백호 길드 서류의 비고란에 펜으로 직접 적어 내려갔다.
`[A1 구역 수거 유보 대상: 소유권 분쟁 가능성 있음]`
아무리 좋은 자원이라도 덥석 물었다가는 그 뒤에 따라오는 책임과 리스크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질 수 있었다.
D-7 구역은 눈에 보이는 이익보다, 대산이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려 했던 이런 권리 관계의 빈칸들이 훨씬 더 위험했다.
"까아아악-"
그때, 유찬의 오른쪽 어깨 위에 웅크리고 있던 검은 깃털의 까악스가 날개를 거칠게 퍼덕였다.
녀석의 매서운 눈동자는 발밑의 폐기 더미를 지나 통로 저 멀리 깊은 어둠 속에 꽂혀 있었다.
까악스가 날카로운 부리를 딱딱거리며 노려본 곳은 본부 구역으로 가는 메인 통로를 벗어난 어두운 갈림길이었다.
장부상에 '폐쇄 완료'라고 도장이 찍혀 있는 B2 통로 방향이었다.
까악스의 곧게 뻗은 검은 깃털 사이에 아주 가늘고 미세한 흰색 선이 잠시 나타났다가 안개처럼 스르륵 사라졌다.
아직 진화라고 단정할 단계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만, 녀석의 몸 안에서 무언가 분명한 변화가 소리 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까악!"
"까악!"
까악스는 날개를 완전히 접지 못한 채, 통로 안쪽의 차가운 철문을 향해 당장이라도 날아갈 듯 몸을 들썩였다.
유찬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가라앉았다.
아직 그 구역 근처에 가지도 않았는데 까악스가 이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저 B2 통로 너머에 대산이 억지로 덮어두려 했던 무언가가 있다는 강한 신호였다.
"서두를 것 없습니다."
유찬은 흥분한 까악스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칠흑 같은 통로 안쪽을 바라보았다.
"구역 하나하나를 장부와 비교하며 샅샅이 털어낼 생각이니까."
윤도겸이 결국 유찬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입구 폐기물 더미는 이쯤 확인했으면 됐지 않습니까."
"B2는 폐쇄 완료 구역입니다."
"수거 동선에서도 빠진 곳이고, 들어가 봐야 나올 것도 없습니다."
"이제 서명하시죠."
옆에 서 있던 대산의 직원도 잽싸게 말을 얹었다.
"예, 맞습니다."
"입구에 쳐진 봉인줄이랑 경고 표지판이 그 증거입니다."
"강유찬 씨가 들어가 보셔도 새로 나올 건더기가 전혀 없습니다."
유찬은 천천히 허리를 펴고 윤도겸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손끝에는 방금 임시 표시를 마친 단검 조각의 서늘하고 거친 감촉이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방금 입구에서 발견한 단검 한 자루도 서류상에 기록이 없어서 회수 보류 판정을 내렸습니다."
유찬의 목소리는 낮고 평이했다.
감정을 싣지 않은 건조한 말투였다.
"단검 소유가 파티 쪽으로 되어 있으면 결정은 자기들 몫이라고 문제 삼을 수 있습니다."
"기록 구멍 하나 때문에 소유권이 꼬이는 판국입니다."
"그런데 샘플 데이터도 없고, 접근 경로조차 불분명한 B2 구역을 이대로 덮자고요?"
"대산이 폐쇄 완료라고 적어 놨으니 그냥 믿고 넘어가라?"
"원래 폐쇄 구역은 수거 대상에서 빠지는 게 기본 원칙입니다!"
대산 직원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유찬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B2 구역을 현장에서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관리권이든 회수권이든, 그 어떤 서류에도 서명 안 합니다."
"평가 완료라는 말도 꺼내지 마십시오."
"하, 참나."
"억지도 정도껏 부려야지."
윤도겸이 머리를 쓸어올리며 한 발짝 더 바짝 다가섰다.
"단검 하나 나왔다고 전체 폐쇄 구역까지 다 뜯어보겠다는 겁니까?"
"그렇게 치면 던전 전체를 이 잡듯이 뒤져야 끝날 텐데, 그 비용이랑 시간은 누가 감당합니까?"
"백호가 감당할 겁니까?"
그때 뒤에서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박성준이 품에서 백호의 공식 기록 장비를 꺼냈다.
기기 화면에서 푸른빛이 번지며 허공에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30화 평가표의 마지막 줄이 유찬과 윤도겸의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B2 폐쇄 통로 — 접근 경로 불명 / 샘플 없음 / 까악스 반응 지속]`
박성준이 유찬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정중하게 말했다.
"강유찬 씨 말씀이 맞습니다."
"백호의 공식 평가 절차상, 현장 담당자가 의심 지점을 짚은 구역은 추가 검증 대상입니다."
"기록에도 남아 있으니 저희는 이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윤도겸의 눈썹이 크게 꿈틀했다.
"박성준 팀장, 지금 누구 편을 드는 거야?"
"공식 규정을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윤 팀장."
"강유찬 씨가 서명을 거부하시면 이번 평가 보고서 전체가 반려 처리됩니다."
"그렇게 되면 대산 측에도 전혀 득이 될 게 없을 텐데요."
박성준의 단호한 태도에 대산 직원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땀을 훔쳤다.
유찬의 서명이 없으면 D-7 현장의 정식 평가 절차 자체가 통째로 묶이게 된다.
윤도겸 역시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이를 갈았다.
"……좋습니다."
"가 보면 될 것 아닙니까."
"대신 문 앞까지만 갑니다."
"안으로 들어가는 건 안전 보장도 안 되고 내 권한 밖이니까."
유찬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품 안에서 까악스가 옷자락을 꾹 움켜쥐며 작게 파르르 떨었다.
녀석의 붉은 눈이 B2 통로가 있는 어둠 깊은 곳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일행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이윽고 B2 구역의 거대한 철문 앞에 도착했다.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위에는 낡아 빠진 봉인줄과 함께 '폐쇄 완료'라고 적힌 누런 경고 딱지가 비스듬히 붙어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그야말로 오랫동안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은 듯한 차가운 문이었다.
"보십시오."
"완전히 막혀 있지 않습니까?"
윤도겸이 턱으로 굳게 닫힌 철문을 가리키며 퉁명스럽게 뱉었다.
"먼지 쌓인 꼬락서니만 봐도 답이 나오는데 뭘 더 확인하겠다는 겁니까."
"시간 낭비라는 생각밖에 안 드는군요."
유찬은 대답하지 않고 철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몸을 낮춰 바닥을 살폈다.
흙먼지가 뽀얗게 깔려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유찬의 눈에는 미세한 위화감이 포착되었다.
바닥에 쌓인 먼지층이 아주 미세하게 갈라져 있었다.
두꺼운 먼지 위에 뚜렷한 발자국 형태는 없었지만, 마치 아주 가벼운 짐을 끌고 지나갔거나 표면을 얇게 흩뜨려 놓은 듯한 쓸린 자국이었다.
게다가 문을 가로질러 고정된 봉인줄의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쓸어 보았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썩어 들어간 삼줄의 겉면 가운데 아주 일부분만, 누군가 손을 댔거나 마찰이 일어난 듯 하얗고 깨끗한 실밥이 살짝 삐져나와 있었다.
오래된 흔적 틈새로 교묘하게 섞여 있는 최근의 움직임.
누군가 최근에 이 문을 지나갔다.
유찬은 단정 지어 말하지 않았다.
심증은 확실하지만 지금 당장 대산의 꼼수를 전부 까발릴 필요는 없었다.
기록 장비에 이 의혹을 쐐기처럼 박아 두는 게 먼저였다.
유찬이 박성준을 돌아보았다.
"박성준 팀장, 장비 켜십시오."
"예, 준비되었습니다."
박성준이 기록 장비의 카메라 렌즈를 철문 하단과 봉인줄의 마찰 흔적에 조준했다.
찰칵, 하는 기계음과 함께 고해상도 현장 사진이 장부 시스템에 실시간으로 업로드되었다.
유찬은 평가표를 불러와 B2 항목의 상태 창을 띄웠다.
기존의 '폐쇄 완료' 판정 옆에 보류 표시를 걸고, 새로운 현장 확인 내용을 기입했다.
`[B2 폐쇄 통로 — 현장 확인 필요: 봉인 마찰 흔적 및 바닥면 미세 균열 확인]`
화면의 상태 표시등이 붉은색으로 깜빡이며 단단하게 잠겼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대산 직원이 깜짝 놀라 유찬의 팔을 붙잡으려다, 유찬의 차가운 눈빛에 움츠러들며 슬며시 손을 내렸다.
"B2 구역의 현장 검증이 끝나기 전까지는 이 평가표 전체가 잠깁니다."
"평가 불가로 넘기지 않고 현장 확인 필요 항목으로 공식 이의 제기를 걸었습니다."
유찬은 펜을 주머니에 꽂으며 윤도겸을 쳐다보았다.
"대산이 아무리 폐쇄 완료라고 우겨도, 이제 시스템상 이 구역을 확인하기 전까지 평가 완료 서명을 받을 수 없습니다."
"백호 본사에서도 이 기록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겠지요."
윤도겸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대산 직원들은 이마의 식은땀을 닦으며 다리를 떨었다.
억지로 서명을 받아 내고 일을 대충 덮으려던 현장 책임자들의 계산이 어긋나는 순간이었다.
눈앞의 전리품은 없었다.
대신 유찬은 D-7의 평가 절차를 대산 측 말 대신 백호의 공식 기록 위에 묶어 두었다.
그때 유찬의 품 안에서 까악스가 고개를 쑥 내밀었다.
녀석은 B2 철문의 틈새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검은 부리 끝으로 허공에 가느다란 궤적을 그렸다.
검은 실패선이었다.
녀석이 불안을 느끼거나 위험을 경고할 때 그리는 불길한 선.
하지만 유찬의 눈에는 그 실패선 끝부분에 아주 미세하게 섞여 깜빡이는 하얀 빛줄기가 보였다.
단순한 경고를 넘어서는, 무언가 다른 변화의 전조였다.
유찬은 마음속으로 녀석의 동요를 가만히 억눌렀다.
굳이 지금 녀석에게 섣부른 이름을 붙여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조용히 때를 기다려야 했다.
철문 너머에서 미약한 바람이 새어 나와 볼을 스쳤다.
B2는 막다른 폐기 구역처럼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유찬의 평가표에서는 아직 검증을 거치지 않은 통로였다.
유찬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지금 당장 철문을 억지로 여는 대신 B2 진입 절차를 공식 기록과 안전 동선 위에 올려놓을 생각이었다.
다음 확인 대상은 이미 정해졌다.
B2 폐쇄 통로.
대산 측이 가장 덮고 싶어 하던 문이었다.
"돌아갑시다."
유찬의 짧은 한마디에 윤도겸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앞장서 걸었다.
굳게 닫힌 B2의 철문 뒤로, 차가운 공기만이 조용히 감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