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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펫 평가표 일러스트

세 펫 평가표

백호 길드 현장 지휘 차량은 웬만한 원룸보다 넓었다. 그 앞에서 대산 측 직원들이 육중한 샘플 박스 세 개를 내려놓았다. 쿵, 쿵, 쿵. 상자마다 D-7 구역별 코드와 봉인 딱지가 붙어 있었다.

“자, 요청하신 샘플이오. A1 구역 폐기 직전 부산물, C3 구역 오염석, 그리고 기타 잡동사니까지. 이만하면 우리도 성의를 보인 것 같은데.”

윤도겸은 팔짱을 끼며 유찬을 압박했다. 이 정도 자료를 줬으니, 어서 ‘진짜’ 평가를 내놓으라는 무언의 시위였다.

하지만 유찬은 샘플 박스로 손을 뻗지 않았다. 대신 옆에 선 박성준에게 고개를 돌렸다.

“박성준 팀장, 샘플 원본 위치표부터 화면에 띄워 주시죠.”

“위치표는 왜?”

옆에 서 있던 윤도겸이 끼어들었다. 그는 대표성을 띤 샘플이니 믿고 검토하라는 투였다.

“대략 어느 구역에서 나왔는지만 알면 되지 않습니까? 핵심은 저 안에 든 물건의 가치입니다.”

“어느 구역 ‘어디’에서 나왔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유찬이 잘라 말했다.

“가져온 샘플이 벽 근처에서 나왔는지, 통로 한가운데서 나왔는지에 따라 접근 위험도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샘플 봉인 번호와 현장 기록이 일치하는지도 확인해야 하고요.”

박성준이 즉시 움직였다. 그는 개인 단말을 조작해 백호 길드의 내부 기록을 불러냈다. 지휘 차량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D-7 구역 평면도와 함께 빼곡한 데이터시트가 펼쳐졌다.

“샘플 A1-22, 좌표 A-1-7 지점. 확인됐습니다.”

박성준이 첫 번째 샘플 박스의 봉인 번호를 확인하며 말했다.

“샘플 C3-09, 좌표 C-3-2 지점. 기록과 일치합니다.”

유찬은 스크린에 뜬 좌표와 박스가 놓인 위치를 번갈아 보았다. 그의 시선은 마지막 세 번째 박스에서 멈췄다. 다른 박스와 달리, 거기에는 B 구역 표식이 없었다.

“B2 구역 샘플은 어디 있습니까?”

“B2는 폐쇄 완료된 곳이라 특이사항이 없어 제출 보류….”

윤도겸이 말을 흐렸다. 어제는 분명 폐쇄 완료라 단언했다. 하지만 포포와 냥믹, 까악스는 모두 그곳을 향해 이상 반응을 보였다.

스크린의 데이터시트에도 B2 관련 제출 기록은 공란이었다. 그 공백이 유찬의 눈에 박혔다.

“알겠습니다. 그럼 있는 것부터 시작하죠.”

유찬이 허공에 손짓하자, 그의 앞에 반투명한 평가표 창이 떠올랐다.

`D-7 구역별 예비 가치·위험 판정표(작성 중)`

표는 크게 세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 첫 번째 칸은 포포, 두 번째는 까악스, 세 번째는 냥믹의 몫이었다.

유찬은 먼저 A1 구역의 작은 부산물이 담긴 박스를 열었다. 그러자 포포가 기다렸다는 듯 몸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젤리 같은 몸이 희미하게 뽀글거렸다.

평가표의 A1 행, 포포의 칸에 글자가 새겨졌다.

`[포포: 정제 가능]`

다음은 C3 구역의 검은 오염석이었다. 박스 틈새로 불길한 기운이 새어 나오자, 포포는 돌처럼 굳어 버렸다. 미세한 떨림조차 없었다.

`[포포: 즉시 격리]`

이제 까악스의 차례였다. 까악스는 평면도 위를 날았다. 녀석이 지나간 자리에는 위험을 가리키는 검은 선이 남았다. A1 구역 위에서는 평온하게 선회했다.

`[까악스: 안전 접근]`

하지만 C3 구역으로 접근하자, 까악스는 구역 전체를 크게 우회하는 실패선을 그렸다. 마치 독이 퍼진 땅을 피하는 듯했다.

`[까악스: 우회 필요]`

마지막은 냥믹이었다. 녀석은 샘플 박스와 데이터시트를 번갈아 보며 꼬리를 움직였다. A1 부산물 앞에서는 황금 꼬리가 쫑긋 섰다. 예상치 못한 희귀 물질이 섞여 있다는 신호였다.

`[냥믹: 희귀 부산물 예상]`

반면, C3 오염석 앞에서는 검은 꼬리가 바닥을 쓸 듯 내려앉았다. 저것을 잘못 건드렸다간 막대한 사후 처리 비용과 책임 문제가 터질 수 있다는 경고였다.

`[냥믹: 사후 오염 책임]`

윤도겸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입 벌리고 지켜봤다. 펫들의 반응은 장난처럼 보이지 않았다. 각기 다른 세 종류의 신호가 D-7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실시간으로 쪼개고 있었다.

유찬이 평가표를 가리키며 말했다.

“정제할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도, 접근하다 죽으면 의미 없습니다. 접근이 가능해도, 나중에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 위험이 있다면 함부로 손댈 수 없죠.”

그의 말이 끝나자, 평가표의 각 행이 하나의 정보로 합쳐졌다.

- A1 구역: `정제 가능` / `안전 접근` / `희귀 부산물 예상`

- C3 구역: `즉시 격리` / `우회 필요` / `사후 오염 책임`

유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산이 뭐라고 하든, 모니터 속 글자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는 평가용 샘플이 놓인 테이블로 걸어갔다. 실제 펫들의 반응을 직접 대조하며 기준을 세워야 했다.

가장 먼저 A1 봉인 상자를 열었다. 그러자 유찬의 발치에서 포포가 뽀글거리며 다가왔다. 상자 안에서 희미하게 마력을 풍기는 파편 조각을 향해 몸을 늘렸다. 한입 핥아보려는 기세였다.

“잠깐.”

유찬이 손으로 막았다. 포포가 멈칫했다. 유찬은 태블릿을 들어 파편의 봉인 번호와 현장 위치표를 대조했다. A1 구역, A-1-7 지점. 모니터에 뜬 정보와 일치했다. 그제야 유찬이 포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이 떨어지자 포포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파편 끝을 살짝 핥았다. 파르르. 젤리 같은 몸이 떨리며 파편 표면을 덮은 불순물이 걷혔다. 아주 옅게, 본래의 광택이 비쳤다. 딱 그뿐인 작은 변화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냥믹의 황금 꼬리가 스르륵 움직였다. 모니터 화면의 A1 항목에서 [권리 확보 가능]이라는 줄을 정확히 가리켰다. 하지만 동시에, 검은 꼬리는 [소유권 미확인]이라는 글자 근처에서 망설이듯 멈칫거렸다.

유찬이 나직하게 말했다.

“정제할 수 있는 물건과, 우리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물건은 구분해야 합니다.”

다음은 C3 오염석이었다. 유찬이 붉은 경고 딱지가 붙은 상자에 다가서자, 펫들의 반응이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포포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굳었다. 더는 다가오지 않겠다는 명백한 의사 표시였다. 어깨 위 까악스는 푸드덕 날개를 쳤다. 상자 위를 넘어가지 않고, 멀찍이 주변을 빙 돌아 우회했다.

그 순간, 냥믹의 검은 꼬리가 모니터 화면을 꾹 눌렀다. C3 항목의 [사후 처리비] 줄이 섬광처럼 붉게 물들었다. 만지는 순간부터 돈이 줄줄 샌다는 표식이었다.

화면의 글자와 펫들의 실제 반응이 빈틈없이 맞물렸다. 윤도겸이 그 광경을 보고 입을 열었다.

“그럼 A1은 평가 가능하다는 뜻입니까?”

“샘플 위치가 맞으면 후보입니다.”

유찬은 선을 그었다.

“확정은 현장에서 봅니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 박성준이 끼어들었다. 그는 유찬의 방식을 존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희 백호 양식에도 세 가지 색으로 구분해서 넣겠습니다. ‘후보’, ‘보류’, ‘격리’. 이렇게 분류하면 되겠습니까?”

유찬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현장 작업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된 셈이었다.

단 한 줄만 비어 있었다.

- B2 구역: `샘플 없음` / `까악스 반응 지속` / `기록 확인 필요`

세 펫의 각기 다른 반응이 하나의 표 안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B2 행을 볼 때마다 포포의 몸이 미세하게 끓고, 냥믹의 황금 꼬리와 검은 꼬리가 동시에 흔들렸다. 까악스는 그 위에 검은 선을 지우지 못했다.

빈칸이 가장 시끄러웠다.

윤도겸이 먼저 치고 나왔다. 그는 유찬이 띄운 임시 판정표를 손가락으로 거칠게 가리켰다.

“이것만으로는 상부를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결국은 강유찬 씨 펫들의 반응을 정리한 것일 뿐이지 않습니까.”

유찬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노트북을 자기 쪽으로 조금 더 당겨 앉았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이 문서는 상부 설득용 보고서로 쓰면 안 됩니다.”

윤도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럼 뭡니까?”

“방패입니다. 현장에 들어가기 전, 우리와 대산 양쪽의 책임을 가르는 기준선이죠.”

유찬의 손끝에서 판정표의 내용이 실시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대산 측이 제출한 문서의 ‘A1 희귀 부산물 회수 예상’ 항목을 클릭했다. 잠시 뒤, 그 녹색으로 빛나던 칸이 회색으로 변하며 글자가 수정되었다.

[A1 희귀 부산물 → 기록 확인 필요]

“잠깐만요! 그건 왜 바꿉니까?”

윤도겸이 버럭 소리쳤지만, 유찬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냥믹의 반응 때문입니다.”

유찬이 문서를 스크롤했다. ‘회수 예상’ 항목 바로 아래, 아주 작은 글씨로 적힌 줄이 나타났다.

`※ 희귀 자원 발견 시, 해당 구역에서 발생하는 사후 오염 책임은 백호 길드가 일괄 승계함.`

“냥믹의 검은 꼬리가 이 줄을 정확히 찍었습니다. 권리만 가져오고 책임을 버리는 식으로는 못 갑니다.”

윤도겸의 얼굴이 굳었다. 유찬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판정표에 새로운 조건을 추가했다.

[A1 작은 부산물: 권리 확보 후보]

- 조건 1: 대산 제출 샘플의 위치표와 현장 위치 일치.

- 조건 2: 사후 오염 책임에 대한 대산 측의 면책 조항 없음 확인.

포포가 유난히 좋아했던 그 부산물은 이제 ‘조건부 후보’로 내려갔다. 녹색 칸이 회색 보류 칸으로 바뀌는 것을 본 윤도겸의 입술이 바싹 말랐다.

다음은 C3 오염석이었다. 유찬은 그 항목을 통째로 붉은색으로 칠해버렸다.

[C3 오염석: 즉시 격리]

- 처리 주체: 대산 중공업.

- 백호 길드 처리 절대 금지.

- 현장 접근 시 해당 구역 우회.

“이건 또 무슨……!”

“포포의 격리 반응과 냥믹의 책임 반응이 겹쳤습니다. 저 돌은 우리가 건드리는 순간, 모든 후속 책임을 뒤집어씁니다. 원 소유주인 대산 중공업이 직접 회수하고 처리하게 둬야 합니다.”

대산 중공업이 떠넘기려던 책임 폭탄이 도로 그들의 칸으로 돌아갔다. 화면 위에서, 윤도겸이 속한 팀의 예상 수익 그래프가 뚝 떨어졌다. 반면 유찬과 박성준이 공유하는 위험 관리 차트에는 붉은 경고등 하나가 꺼졌다.

B2 한 줄만 남았다.

그때까지 조용히 지켜보던 박성준이 나섰다. 그는 자신의 단말기를 유찬의 노트북에 연결했다. 화면에 백호 길드의 공식 문서 양식이 덧씌워졌다.

찰칵.

임시 표였던 `D-7 구역별 예비 가치·위험 판정표(작성 중)`의 제목에서 ‘작성 중’이라는 꼬리표가 사라졌다. 그 자리에 길드의 워터마크와 함께 자물쇠 아이콘이 박혔다.

박성준이 존댓말로 상황을 정리했다.

“강유찬 씨, 이 문서는 현장 진입 전 확인 기준으로만 잠그겠습니다. 최종 계약 효력은 없습니다. 의견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유찬이 짧게 답했다. 이제 이 판정표는 단순 메모보다 무거워졌다. 백호 길드와 대산 중공업 양측의 실무자가 동의한 ‘예비’ 기준 문서가 되었다. 최종 인수 확정도, 관리권 이전도 없었다. 다만 현장으로 들어가는 모두가 따라야 할 첫 번째 규칙이 생겼다.

표의 마지막 줄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B2 폐쇄 통로 — 접근 경로 불명 / 샘플 없음 / 까악스 반응 지속]

“박성준 팀장, B2 구역은 샘플도 없고 정보도 불확실합니다. 이번 확인에서는 제외하는 편이…….”

윤도겸이 다급하게 말을 꺼냈지만, 박성준은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까악스의 반응이 저기에 걸려 있는 이상, 임의로 뺄 수 없습니다.”

자물쇠가 박힌 문서는 윤도겸의 수정 권한을 차단했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 순간, 유찬의 어깨 위에서 까악스가 작게 푸드덕거렸다. 녀석은 판정표의 마지막 줄, B2 항목 위에서 좀처럼 날개를 접지 못했다. 유찬은 까악스의 검은 깃털 사이로 아주 얇은 흰 줄 하나가 번개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기존에 보았던 검은 위험선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유찬은 노트북을 덮었다. 화면이 꺼지고, 회의실의 무거운 공기만 남았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제 장부 말고, 현장에서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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