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화. 실패한 공략대의 장비는 말이 많았다
회색 밀폐 상자의 투명 아크릴 덮개 너머로, 실패의 잔해가 잠들어 있었다.
라벨에 찍힌 글씨가 서늘했다.
`실패 공략대 회수품 / 생존자 없음 / 폐기 보류`
찢어진 방어복 안감에 박힌 `검은 깃털` 하나가 유독 시선을 잡아끌었다. 새의 것이라고 하기엔 기묘하게 매끄럽고, 인공물이라고 하기엔 불길할 정도로 유기적이었다.
냥믹이 유찬의 발치에서 작게 울었다. 다른 사람에겐 그저 고양이 소리였지만, 유찬의 머릿속에는 선명한 문장이 울렸다.
`[안에 새가 없어. 근데 날개 소리가 나.]`
모순된 감각. 박성준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2주 전 실패한 C급 게이트 공략대입니다. 생존자는 없었고, 회수한 장비는 이게 전부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회의실의 공기만큼이나 건조했다.
“이상한 점은 두 군데입니다. 게이트 내부에서 명확한 보스 몬스터의 사체나 흔적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회수된 장비의 손상 패턴도 제각각입니다. 마치 서로 다른 장소에서, 다른 적에게 당한 것처럼.”
유찬의 시선은 잿더미 같은 장비 조각들을 훑었다. 녹아내린 마력섬유, 찌그러진 합금 버클, 산산조각 난 저급 마석 파편들.
돈 냄새가 났다.
저것들만 잘 분류해서 포포에게 먹이면, 상당한 양의 정제 결정을 뽑아낼 수 있다. F급 짐꾼 시절에는 만져보지도 못할 가치였다. 순간,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돌아갔다.
하지만 고개를 들자 검은 깃털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냥믹이 전해준 섬뜩한 경고가 뇌리를 스쳤다.
새가 없는데, 날개 소리가 난다.
유찬은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계산기처럼 돌아가던 머릿속 숫자들이, 라벨의 `생존자 없음` 앞에서 하나씩 꺼졌다. 저 안에 있는 건 고철값만 남은 장비가 아니었다.
“팀장님.”
유찬이 박성준을 불렀다.
“이거 처리부터 하면, 나중에 왜 이렇게 찢겼는지 못 봅니다.”
***
박성준의 시선이 유찬에게 꽂혔다. 증거라니. 이미 협회 감식팀과 길드 연구원들이 1차 조사를 마친 물건들이었다. 그들의 결론은 ‘패턴 불일치로 인한 원인 불명, 폐기 처분 권고’였다.
“강유찬 씨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박성준은 재촉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렸다.
유찬은 자신의 발밑을 내려다봤다. 포포가 차폐 케이스 밖에서 몸을 뽀글거리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아크릴 덮개 너머인데도, 녀석의 본능은 오염되고 부서진 마력 잔해를 향하고 있었다.
포포는 녹아내린 금속 조각이 보이는 쪽 앞에서 몸을 한껏 부풀렸다. 명백한 먹이 반응이었다. 저런 것들은 절차가 끝난 뒤 보존 제외 판정을 받으면, 정제해 순도 높은 금속 결정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검은 깃털이 박힌 방어복 안감이 보이는 칸 앞에 섰을 때였다.
움찔.
젤리 같은 몸이 순간적으로 경직되며 뒤로 물러섰다. 먹으려던 게 아니었다. 닿지도 않았는데 뜨거운 것을 본 듯한 거부 반응.
본능적인 기피.
유찬은 그 미세한 차이를 놓치지 않았다.
“팀장님, 제안할 게 있습니다.”
유찬은 포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슬라임은 오염된 물질에만 반응합니다. 하지만 지금 저 검은 깃털 근처에서는 반응이 다릅니다. 이걸 기준으로 삼는 건 어떻겠습니까?”
“기준이라니?”
“포포가 먹이로 인식하는 쪽은 전투나 마력 폭주로 오염된 잔해일 겁니다. 처리 대상으로 따로 묶을 수 있죠. 그런데 저렇게 피하는 쪽은 다릅니다. 그냥 오염된 폐부품이 아니라, 원인 쪽에 더 가까운 흔적일 수 있습니다.”
유찬의 논리는 간단했다. 포포는 실패의 원인을 읽지 못한다. 하지만 원인이 남긴 ‘물질’에는 반응한다.
“전량 촬영하고 목록화한 뒤, 처리 가능한 폐부품과 원인 규명을 위해 보존해야 하는 이상 흔적을 나누자는 겁니다. 협회 입회 기록이 끝나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이면 안 됩니다.”
포포는 만능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는, 그 누구보다 정확한 감식 장비였다.
***
그때였다. 유찬의 다리에 몸을 비비던 냥믹이 갑자기 등을 곧추세우고 하악질을 했다. 날카로운 소리에 연구원들의 시선이 잠시 쏠렸다.
“고양이가 왜 저러지?”
“원래 동물들은 마력 잔해에 민감하니까.”
그들의 눈에는 그저 예민한 고양이일 뿐이었다. 하지만 유찬의 귀에는 다른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길이 거짓말해.]`
길? 유찬은 상자 옆에 놓인 서류철로 시선을 돌렸다. 공략대의 탐사 경로가 기록된 지도 로그였다.
`[앞에서 죽은 척하는데, 뒤에서 접혔어.]`
유찬은 상자 안을 다시 들여다봤다. 냥믹의 말은 수수께끼 같았지만, 눈앞의 증거와 맞춰보니 소름 끼치는 그림이 그려졌다.
깨진 타워 실드 조각. 전면부는 몬스터의 발톱 자국처럼 깊게 파여 있었다. 앞에서 막다가 부서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바로 그 옆, 대원의 것으로 추정되는 방어복은 등 쪽이 예리하게 찢겨 있었다. 앞에서 공격을 막는 동안, 등 뒤에서 무언가에 당했다는 뜻이다.
`[새가 없는데 날개가 먼저 지나갔어.]`
그 말과 함께 검은 깃털이 눈에 들어왔다.
유찬은 박성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팀장님, 기록과 증거가 맞지 않습니다.”
유찬은 상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짚어 나갔다.
“공식 기록에는 ‘보스전 중 손상’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저 방패는 정면에서, 이 방어복은 배후에서 공격받았습니다. 함께 있던 로프는 겉이 아니라 내부 섬유부터 삭아 있고요. 대열이 온전한 상태에서 보스와 싸운 피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결정적으로, 지도 단말기는 보스방에 진입하기 직전의 통로에서 마지막 신호가 끊겨 있었다. 그런데 폐기 분류는 `보스전 손상`이었다.
길이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공략대의 마지막 위치와 장비의 손상 기록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
회의실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박성준의 날카로운 눈이 유찬과 상자, 그리고 서류를 번갈아 훑었다. 그의 옆에 있던 김 연구원이 미심쩍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건… 저희도 확인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뚜렷한 연관성을 찾지 못해서….”
말끝을 흐리는 연구원과 달리, 박성준은 핵심을 찔렀다.
“강유찬 씨. 지금 그 말, 반응 기록 기반입니까, 추정입니까?”
단순히 펫의 반응을 옮기는 것과, 그 반응을 근거로 논리적인 가설을 세우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박성준은 유찬의 자격을 시험하고 있었다.
“추정입니다.”
유찬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래서 원본을 건드리면 안 됩니다. 파편과 기록만 대조해야 합니다.”
그 대답에 박성준의 눈빛이 미세하게 변했다.
상자 안에는 당장 돈이 될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그런데 유찬의 시선은 값나가는 금속보다, 방어복 등판의 찢어진 방향과 지도 로그의 끊긴 지점에 더 오래 머물러 있었다.
박성준은 그 차이를 놓치지 않았다.
박성준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대신, 뒤를 돌아보며 명령을 내렸다. 목소리가 짧아졌다.
“김 연구원, 지도 로그 원본은 봉인 유지해. 해시 확인하고 읽기 전용 사본 열어봐. 마지막 신호 위치 전후 10분간의 환경 마력 수치 변동 기록, 지금 당장 대조해.”
“예, 팀장님!”
“보안팀, 촬영 각도 고정해. 상자 내부 3번, 7번, 11번 증거물 클로즈업 촬영 시작하고 시간 기록 남겨.”
“알겠습니다!”
CCTV의 붉은 램프가 깜빡였다. 협회에서 파견된 입회자가 조용히 자신의 단말기에 무언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공식적인 절차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박성준의 마지막 명령이 회의실에 울렸다.
“검은 깃털 근처는 누구도 손대지 마. 차폐 케이스 현재 상태 그대로 유지해.”
***
분석은 유찬의 추정을 따라가는 방향으로 빠르게 진행됐다.
지도 로그와 장비 손상 기록을 대조하자, 불일치는 더욱 명확해졌다. 공략대는 보스방에 진입하기 직전, 좁고 긴 우회 통로에서 대열이 끊겼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방패는 앞에서, 방어복은 뒤에서. 로프는 내부에서.
“대열의 선두와 후미가 거의 동시에 공격받고, 중간에 있던 인원은 로프 오작동으로 고립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찬이 내놓은 가설이었다.
“그리고 검은 깃털… 이건 실제 비행 몬스터의 흔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소리나 환각, 혹은 대열을 분리시키기 위한 유도형 공격의 잔해일 가능성을 검토해야 합니다.”
김 연구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급하게 기존 재공략 계획안을 스크린에 띄웠다. 거기에는 ‘보스방 정면 돌파를 위한 화력 장비 증강’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기존 감식 결과만 놓고 보면 보스방 화력 증강은 합리적인 1차 대응이었다. 문제는, 유찬의 관찰로 그 계획에 빠진 위험 시나리오가 하나 더 생겼다는 점이었다.
박성준은 스크린과 유찬을 번갈아 보더니, 깊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억누른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이대로 보스방 화력 장비만 넣었으면 최소 1억은 더 태웠습니다.”
1억. 그 돈도 돈이지만, 더 큰 건 다음 공략대가 같은 통로에서 다시 끊길 가능성을 줄였다는 점이었다.
박성준은 자신의 단말기를 들어 비서실에 연결했다.
“나 박성준이다. C급 게이트 실패 공략대 회수품 관련, 추가 분석 협력비 항목으로 강유찬 씨에게 120만원 즉시 지급 결재 올려.”
기존에 받기로 한 130만원에 더해, 새로운 보상이 책정됐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보상이 있었다.
“김 연구원.”
“예, 팀장님.”
“오늘자 회의록과 분석 보고서에 공식적으로 기록 추가해. `실패 공략 회수품 위험도 예비 분석 기록자`, 강유찬.”
단순한 제보자나 보조가 아니었다. 유찬의 이름이, 백호 길드의 공식 기록에 처음으로 올랐다.
***
모든 정리가 끝나고, 사람들이 잠시 숨을 돌리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유찬의 눈앞에 푸른 시스템 창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미확인 테이블 반응]
[죽은 기억 잔여가치 감지]
처음 보는 문구였다. 죽은 기억?
[계약 가능 계열: 까악스]
[조건: 실패 원인 1건을 ‘폐기’하지 않고 기록할 것]
[진행률: 0% → 23%]
까악스. 생소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조건을 보는 순간, 유찬은 자신이 방금 무슨 일을 했는지 깨달았다. 그는 돈이 될 폐기물을 눈앞에 두고, 그것을 묻혀 있던 실패의 ‘기록’으로 바꾸었다.
그때였다.
까악.
너무나도 작고 마른 소리.
회의실에 있던 모두가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소리는 분명, 검은 깃털이 박힌 방어복 안감 쪽에서 들려왔다.
유찬의 발치에서 냥믹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녀석의 목소리가 유찬의 머릿속에 다시 한번 울렸다.
`[저건 새가 아니야.]`
`[죽은 길이 우는 거야.]`
유찬은 깨달았다. 실패한 공략대가 남긴 것은 고철값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음에 올 사람들이 자신들과 같은 죽음을 맞이하지 않도록, 들어달라고 외치는 실패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