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물건에 나쁜 줄
한서 E-12 게이트 현장은 정리가 거의 끝나 가고 있었다. 게이트 외곽을 둘러싼 임시 철망 너머로 대형 운송 트럭들이 엔진 소리를 우렁차게 내뿜으며 흙먼지를 피워 올렸다. 수거용 포댓자루를 짊어진 헌터들이 바쁘게 오가는 길목 한가운데, 엉성한 컨테이너 임시 회의실이 서 있었다. 눅눅한 흙먼지 냄새와 자판기에서 뽑은 미지근한 캔커피의 단내가 비좁은 실내 공기 중에 뒤섞여 풍겼다.
삐걱거리는 플라스틱 의자에 깊숙이 기댄 미끼 길드의 담당자, 서기태가 손에 들고 있던 최신형 태블릿 화면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강유찬 씨, 이것 좀 보십시오. 이번에 아주 운 좋게 풀린 귀한 기회입니다.”
서기태가 내민 태블릿 화면에는 환한 야외 조명을 받아 번쩍이는 현장 사진들이 몇 장 떠 있었다.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은빛 강철제 무기와 방어구 더미가 마수들의 체액을 씻어내고 가지런히 쌓인 모습이었다. 정돈된 군용 보급 상자들이 줄을 지어 늘어선 사진 옆으로는, 밝은 초록빛 글씨로 적힌 예상 수익 분석표가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눈길을 사로잡았다.
[공동 운영 손실 구간 전담 시 예상 수익: 4,800만 원]
유찬의 어깨에 걸쳐진 낡은 캔버스 배낭 지퍼 틈새에서 미세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앞서 회수핵을 연속해서 무리하게 사용한 탓에, 포포는 배낭 안쪽에 온몸을 단단히 웅크린 채 깊은 잠에 잠겨 있었다. 몸 전체가 젤리처럼 투명하고 부드럽게 떨렸지만, 더는 새로운 힘을 쓸 여력 자체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포포는 태블릿 화면에 비친 은빛 장비 사진을 얼핏 인지한 듯, 몽글몽글한 살결을 토독 털며 아주 조그마한 기포 하나를 뽀글 쏘아 올렸다. 물을 가득 머금은 풍선처럼 팽창했다가 이내 잦아드는 귀여운 반응이었다.
‘포포가 미세하게나마 반응하는군.’
포포가 저렇게라도 반응한다면 화면 속 회수품들은 진짜 돈이 될 물건이었다.
동시에 유찬의 오른쪽 어깨 위에서 눈을 껌벅이던 까악스는 부리로 날개깃만 쓸어내렸다. 붉은 실패선도, 급한 울음도 없었다. 적어도 물건 자체는 멀쩡하다는 뜻이었다.
서기태가 슬며시 의자를 앞으로 당겨 앉으며, 유찬을 향해 은근하게 목소리를 낮췄다.
“E-12 현장에서 긁어모은 부산물들이라 보존 상태가 대단히 훌륭합니다. 다른 위험 구역에서 발생한 손실을 덮고도 남을 수준이지요. 유찬 씨가 이 손실 구간을 도맡아 정제 작업을 깔끔하게 진행해 주신다면, 우리가 보장할 수 있는 예상 수익금만 최소 4,800만 원입니다. 초보 헌터가 단숨에 쥐기에는 꽤 큰 액수지요.”
화면 속에 크게 인쇄된 숫자는 확실히 강력한 위압감을 뿜어냈다. 4,800만 원. 그것은 밀린 월세와 병원비, 그리고 펫들을 관리하는 데 들어갈 비용을 해결하고도 남을 금액이었다. 일반적인 헌터였다면 당장 거금에 마음을 빼앗겨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을 법했다.
하지만 유찬은 들뜨는 기색 없이 차갑게 식은 눈동자로 태블릿 화면을 아래로 천천히 쓸어내렸다.
“물건은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사진보다 계약서 마지막 줄부터 보겠습니다.”
유찬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똑부러지게 말했다. 서기태의 눈썹 한쪽이 찰나 파르르 떨렸다.
유찬이 태블릿의 스크롤을 맨 아래로 거침없이 당기자, 유찬의 발치에 드리워진 짙은 그림자 속에서 대기하던 냥믹이 독특한 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아직 온전한 진화 단계를 거치기 전이었지만, 주변 기운의 미묘한 흐름을 읽는 능력만큼은 탁월했다.
냥믹의 꼬리 끝자락이 영롱한 황금빛으로 번쩍이며 화면 속의 값비싼 장비들을 향해 빳빳하게 섰다. 사진 속 물건은 분명 돈 냄새가 났다.
그러나 유찬의 손가락이 계약서 최하단의 좁은 여백에 적힌 특약 사항을 건드리는 바로 그 순간, 흐름이 반전되었다.
냥믹의 꼬리가 삽시간에 먹빛처럼 깊고 어두운 검은색으로 빠르게 물들며 날카롭게 솟구쳐 올랐다. 녀석의 등 털이 부풀어 오르며 꼬리털이 굳어졌고, 딱딱한 컨테이너 바닥을 탁, 탁, 탁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내리쳤다. 냥믹이 싫어하는 냄새를 맡았을 때 나오는 몸짓이었다.
[공동 운영 수익 배분: 정산 기준은 추후 협의]
유찬의 눈매가 예리하게 가늘어졌다.
포포의 기포 반응과 까악스의 얌전한 태도로 미루어 보아, 창고에 쌓인 강철 무기들은 진짜 돈이 될 물건이 맞았다.
진짜 장난질은 엉뚱한 빈칸에 아주 은밀하게 숨겨져 있었다. 돈을 실제로 가르는 가장 중요한 대목이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돈을 나눌 기준이 비어 있었다. 이 상태로 들어가면 유찬이 몸을 굴려 이익을 뽑아내도, 정산 때 길드가 말을 바꾸면 끝이었다.
“정산 기준이 추후 협의라 적혀 있군요.”
유찬이 태블릿 화면을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톡 치며 서기태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서기태의 손끝이 멈출 만큼 차가웠다.
서기태는 멋쩍은 듯 헛기침을 세 차례 터뜨리며 아무렇지 않게 서류를 흔들었다.
“아, 그 조항은 계약이 성사된 다음에 서로 좋은 분위기 속에서 차차 맞춰 나가면 되는 아주 단순한 문구입니다. 대형 길드인 우리 미끼 길드가 설마 유찬 씨처럼 재능 있는 헌터를 데려다 놓고 푼돈 몇 푼으로 신용을 잃겠습니까? 일단 굵직한 물꼬부터 트고 시작하자는 의미로 보시면 됩니다.”
서기태는 말을 번드르르하게 포장했다. 유찬이 보고 있는 건 딱 하나였다. 돈을 나눌 기준이 비어 있다는 점.
“돈이 나면 같이 나누고, 손해가 나면 저한테 떠넘기겠다는 뜻이네요.”
서기태의 얼굴에 잔뜩 머물러 있던 영업용 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기름진 턱 주변의 살덩어리가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강유찬 씨, 초보 헌터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나오는군.”
서기태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낮아지며 컨테이너 안의 공기를 눌렀다.
“미끼 길드 이름값이 정산 기준입니다. 신인이 그걸 못 믿겠다는 겁니까? 선지급금도 맞춰 드린다 했고, 우리 간판으로 첫 계약을 따는 것만 해도 강유찬 씨한테는 큰 경력입니다. 겨우 문구 한 줄로 판을 엎겠다는 겁니까?”
서기태는 노골적인 짜증과 위압감을 섞어 유찬의 심리를 흔들려 했다. 대형 길드라는 커다란 배경과 당장 주어질 선지급금의 유혹이 공기 중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러나 유찬은 전혀 주눅 들지 않은 채 서기태의 매서운 시선을 꼿꼿이 마주했다. 유찬은 아직 자신의 조건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주도권을 가로채기 위한 두 남자의 팽팽한 신경전이 좁은 컨테이너 안에 가득 들어찼다.
서기태는 삐걱거리는 의자가 비명을 지를 정도로 몸을 앞으로 불쑥 들이밀었다.
“강유찬 씨, 제안을 너무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신인이 선지급 1,000만 원을 바로 쥐는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예상 수익 4,800만 원도 대충 부른 숫자와 거리가 멉니다. 월세에 병원비에 펫들 관리비까지 돈 들어갈 데가 많을 텐데, 세부 조항 하나로 이 판을 놓치겠다는 겁니까? 쉽게 가야 서로 좋습니다.”
서기태가 태블릿 속 녹색 숫자들을 톡톡 두드렸다. 대형 길드의 간판과 구체적인 금액이 좁은 방안을 무겁게 짓눌렀다. 웬만한 신인이라면 이 지점에서 덥석 도장을 찍었을 터였다.
그러나 유찬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그는 서기태의 다그침을 흘려보내고 탁자 위 누런 메모지와 볼펜을 손으로 끌어당겼다.
사각, 사각.
펜촉이 종이를 긁는 소리만 방 안에 울렸다. 서기태가 어이없다는 듯 노려보는 사이, 유찬의 발밑 그림자 속에서 냥믹의 먹빛 꼬리가 다시 바닥을 두드렸다.
유찬은 냥믹의 경고를 온몸으로 느끼며 종이 위에 네 가지 조건을 또박또박 적어 내려갔다.
1. 버리기 전 기록 전부 확인.
2. 건진 물건의 주인부터 먼저 정하기.
3. 내가 안 건드릴 물건은 내가 고르기.
4. 들어가기 전에 정산 비율 확정.
종이 위에 선명하게 드러난 네 가지 조건을 바라보는 서기태의 얼굴이 급격하게 흙빛으로 변했다. 기름진 목덜미가 뻣뻣하게 굳어 들어갔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조건부터 새로 쓰겠다는 겁니까?”
서기태가 목소리를 높이며 불쾌감을 터뜨렸다.
유찬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서기태를 똑바로 보았다. 차분한 표정 아래 칼날 같은 서늘함이 감돌았다.
“천만 원이든 사천팔백만 원이든, 종이에 적힌 숫자는 됐습니다. 중요한 건 나중에 그 돈을 진짜 받을 수 있느냐죠.”
유찬이 펜촉으로 종이의 첫 번째 줄을 툭툭 건드렸다.
“버리기 전 기록부터 보여주셔야 합니다. 뭐가 버려졌고 뭐가 남았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그리고 정산 기준이 정해지기 전엔 현장에 안 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제가 단검 하나를 건졌는데, 나중에 그게 파티 소유라고 우기면요? 그때는 제가 할 말이 없어지잖습니까.”
서기태의 붉은 눈동자가 갈피를 못 잡고 심하게 흔들렸다. 유찬은 쐐기를 박듯 말을 이어갔다.
“나중에 정제비니 검사비니 붙이기 시작하면, 저는 오염만 뒤집어쓰고 돈은 못 받습니다. 그런 계약엔 도장 못 찍습니다. 돈을 벌 생각이면, 나누는 기준부터 먼저 정하시죠.”
컨테이너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서기태가 내민 미끼는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
서기태는 턱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어색하게 웃어 보이려 애썼지만, 일그러진 입매는 감춰지지 않았다.
“강유찬 씨, 너무 예민합니다. 미끼 길드가 이런 부산물 정제 작업 하나로 유찬 씨를 속이겠습니까? 이 조건들은 내부 규칙상 현장 진입 전에 결재받기 어렵습니다. 특히 버리기 전 기록은 길드 기밀이라 외부인에게 열어 줄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신인의 기세를 꺾어 보려는 얄팍한 수작이었다.
유찬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펜을 내려놓으며 서기태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쳐 냈다.
“조건 못 쓰면 현장도 안 봅니다.”
짧은 말이 회의실 안에 툭 떨어졌다.
그 순간,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던 낯선 실무자 하나가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는 서기태의 거친 숨소리와 유찬의 매서운 눈빛 사이에서 눈치를 살피며 잔뜩 얼어붙어 있었다.
냥믹의 꼬리가 서기태의 굳은 손끝을 향했다가, 이내 그 낯선 실무자의 초조하게 흔들리는 구두 앞에서 멈췄다. 먹빛 꼬리털이 더 빳빳하게 섰다.
유찬은 그 움직임을 조용히 눈에 담았다. 계약서 밖에도 아직 보지 못한 빈칸이 있었다.
낯선 실무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구두 앞코로 바닥만 문질렀다. 그 작은 동작 하나가 서기태의 긴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숨기고 있었다.
서기태가 얼굴을 붉히며 태블릿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정말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미끼 길드와 척을 지고 이 바닥에서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현장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정제 헌터들은 널렸습니다. 진짜 다급한 쪽이 누구인지 아직 모르는군요.”
유찬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배낭줄을 고쳐 쥐었다. 깊은 잠에 빠진 포포의 가벼운 숨결이 어깨에 느껴졌다.
“예, 널려 있겠지요. 하지만 이 오염된 장비더미에서 진짜 결정을 건져 낼 수 있는 사람은 널려 있지 않을 겁니다.”
유찬의 말에 서기태의 입술이 굳었다.
서기태는 입술만 파르르 떨 뿐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대형 길드의 이름을 앞세워 초보의 노동력을 헐값에 부리고 실패 비용을 떠넘기려던 체면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예상 수익 4,800만 원의 화려한 미끼는 서면 위에서 허무하게 보류되었다.
유찬이 서기태와 구석의 담당자를 번갈아 훑으며 마지막 경고를 던졌다.
“도장을 찍고 싶다면 제 조건부터 채워 오십시오. 계약은 그 뒤에 다시 보겠습니다.”
컨테이너 문을 열자 바깥의 매캐한 흙먼지와 대형 트럭들의 우렁찬 엔진 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문이 닫히기 직전, 서기태의 멍한 얼굴과 구석에서 여전히 고개를 숙인 담당자의 길쭉한 그림자가 유찬의 눈에 스쳤다.
유찬은 배낭을 고쳐 메며 한서 E-12 현장의 먼지 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당장의 모든 빚을 해결해 줄 것만 같았던 화려한 제안서. 그러나 유찬의 냉철한 이성과 펫들의 날카로운 감각이 끄집어낸 실체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
계약서는 돈 냄새를 풍겼다. 하지만 한 장만 넘기면, 목줄이 숨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