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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던전의 첫 장 일러스트

마이너스 던전의 첫 장

묵직한 차단음과 함께 현장 지휘 차량의 문이 닫혔다. 외부의 소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최고급 방음재로 마감된 실내는 온전히 세 사람만의 공간이 되었다.

테이블 한쪽, 조금 전 D-3 현장에서 확인한 결정 조각의 감정서가 얌전히 놓여 있었다.

`[예상 가치: 870,000원]`

단 하나의 폐기품에서 뽑아낸 가치였다. 하지만 그 소박한 성공을 비웃듯, 테이블 중앙의 거대한 단말 화면은 현실의 무게를 담은 숫자를 띄우고 있었다.

`[D-7 던전 폐기 보고서]`

`[예상 총가치: -2,800,000,000원]`

백호 길드의 박성준이 유찬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강유찬 씨, 자료 열람 권한을 백호 기록 보관소와 연동해 열어두겠습니다. 필요한 건 뭐든 찾아보십시오. 필터링 없이 원본 그대로입니다."

"재평가 가능성만 보면 됩니다. 던전 전체를 책임지라는 게 아니니까."

윤도겸이 부드럽게 덧붙였다. 유찬의 부담을 덜어주는 척하면서도, 그의 시선은 ‘가능성’이라는 단어에만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유찬은 그들의 말을 듣는 대신, 거대한 마이너스 숫자 아래,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작은 글씨부터 확인했다.

`[본 평가는 D-7 던전의 2차 처리 권한 양도를 전제로 함]`

`[평가 참여 즉시, 평가자는 관련 책임 일괄 승계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

`[잔여 비용 및 사후 관리 책임 포함]`

역시나.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었다. 유찬이 고개를 들고 건조하게 말했다.

"자료 전부 보겠습니다."

그 한마디에 윤도겸의 입가에 걸려 있던 희미한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멍청한 물고기가 미끼를 덥석 물었다고 확신하는 눈빛이었다. 박성준이 곧장 단말을 조작하자, 테이블 위로 수십 개의 데이터 창이 푸른 빛을 내뿜으며 홀로그램으로 펼쳐졌다.

유찬은 대답 대신 테이블 위 단말 화면으로 손을 뻗었다. 윤도겸이 띄워 준 자료 목록이었다. 유찬의 손가락이 화면을 빠르게 쓸어내리자, 수십 개의 항목이 스쳐 지나갔다. 그의 시선은 그중 몇몇 파일에 붙은 꼬리표에 잠시 머물렀다.

[요약본 제출]

[관련 첨부 일부 누락]

[내부 검토 후 게이트 폐쇄 완료]

체크, 체크, 체크. 형식상으로는 빈틈없이 종결된 서류들이었다.

유찬의 어깨 위에서 얌전히 상황을 지켜보던 냥믹의 꼬리 끝이 가늘게 움찔거렸다. 본격적인 감정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신호였다.

그때, 박성준이 정중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버전의 자료는 모두 확보해 원본과 요약본을 별도로 보존하겠습니다.”

윤도겸의 입가가 미세하게 굳었다. 요약본부터 보여주며 유리한 쪽으로 대화를 끌고 가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박성준이 백호 길드의 공식 절차인 ‘원본 보존’을 언급한 이상, 그 흐름을 막을 명분이 없었다.

그 찰나의 정적을 가른 것은 유찬의 목소리였다. 그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도 않은 채 말했다.

“원본부터요.”

유찬의 펫들이 자료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포포, 까악스, 그리고 냥믹까지.

“포포.”

유찬이 부르자, 포포가 젤리 같은 몸을 움직여 사진 위를 기어갔다. 몬스터 사체에서 나온 부산물 사진이었다. 포포는 그 위에서 몸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먹을 수 있다는 신호였다.

하지만 다음 사진으로 넘어가자 반응이 달라졌다. 시커먼 오염 지대가 찍힌 사진이었다. 포포의 몸이 순식간에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위험하다는 뜻이었다.

이번엔 까악스가 나섰다. 까악스는 D-7의 평면도 위를 아장아장 걸었다. 그러더니 특정 통로들을 지날 때마다 부리로 바닥을 콕, 콕 찍었다. 아주 희미한 검은 실패선이 그 경로를 따라 나타났다. 전부 막다른 길이거나 함정이 있는 곳이었다.

특히 `B2 구역: 폐쇄 완료`라고 적힌 곳 주변에서는 어쩔 줄 모르고 날개만 푸드덕거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것처럼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마지막은 냥믹이었다. 황금 꼬리와 검은 꼬리를 가진 고양이는 권리 및 계약 관계를 판독하는 펫이었다. 냥믹은 보고서의 한 줄에 코를 박았다.

`[희귀 부산물 ‘마석 심장’ 발견 가능성 존재]`

그 위에서 냥믹의 황금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돈이 된다는 표시다.

하지만 바로 다음 줄로 넘어가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단, 발견 시 발생하는 사후 오염 책임은 인수자에게 일괄 승계됨]`

냥믹의 검은 꼬리가 꼿꼿하게 서버렸다. 돈처럼 보이는 줄 바로 아래, 독처럼 달라붙은 책임의 줄이 있다는 경고였다.

펫들의 반응을 종합한 유찬의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먹을 건 있다. 하지만 섣불리 집어 들었다간 그릇째로 독을 마시게 된다. 대산이 통째로 넘기려는 이 던전은, 살릴 구역과 버릴 구역을 나누지 않으면 그저 돈 먹는 구멍일 뿐이었다.

“어떻습니까? 전체적인 가치 평가만 우선 부탁드립니다. 세부적인 건 그 이후에….”

윤도겸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그는 유찬이 펫들의 반응만 보고 무언가 대단한 가치를 찾아냈으리라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유찬은 대답 대신 박성준을 바라봤다. 박성준은 유찬의 의도를 읽고 단호하게 말했다.

“강유찬 씨의 판단을 전적으로 따르겠습니다. 저희는 그 기준 외에 다른 건 보지 않습니다.”

든든한 방패였다. 유찬은 다시 자료로 고개를 돌렸다. 펫들의 반응은 명확했다.

이건 던전이 아니다.

빚더미다. 이걸 통째로 받으라는 건, 28억짜리 빚을 그대로 떠안으라는 말과 같았다.

윤도겸이 입을 열었다. 조급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우선 전체적인 가치 평가만 먼저 해주시면 됩니다. 세부적인 조건은 그 후에 조율해도 늦지 않으니.”

유찬은 대답 대신 테이블 위에 펼쳐진 보고서의 한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평가자는 해당 던전의 모든 책임 및 권리를 일괄 승계하는 조건으로 협의 가능]`

하필 그 문장 위에서 냥믹의 검은 꼬리가 파리 쫓듯 툭툭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거기에 독이라도 발라져 있다는 듯이.

“‘평가’와 ‘승계’가 한 묶음입니다. 이대로 평가에 참여하면, 제가 마이너스 28억짜리 빚을 떠안겠다는 동의서에 사인하는 꼴이 될 수 있습니다.”

“그건 너무 앞서나간 해석입니다. 어디까지나 예비 평가일 뿐이고….”

윤도겸이 말을 흐렸다. 평면도 위, ‘B2 구역: 폐쇄 완료’라고 적힌 부분에서 까악스가 좀처럼 날개를 접지 못하고 파닥거렸기 때문이다. 그 불안한 날갯짓이 예비 평가라는 단어의 무게를 한없이 가볍게 만들었다.

포포는 유찬의 눈치만 살폈다. 던전 부산물 사진 앞에서는 군침 돌듯 몸이 앞으로 쏠렸다가도, 유찬이 책임 승계 조항이 적힌 서류 쪽으로 손을 뻗으면 질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펫들의 반응이 노골적으로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유찬은 더는 끌려다니지 않기로 했다.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이게 안 지켜지면, 저는 어떤 숫자도 입에 올리지 않을 겁니다.”

윤도겸의 얼굴이 굳었다.

“첫째, D-7의 최초 폐쇄 결정 당시 작성된 원본 기록을 모두 열람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산이 편집한 요약본 말고요.”

“둘째, 여기 평면도에 나온 구역별로, 제가 지정하는 지점의 샘플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지금 진행하는 건 어디까지나 ‘예비 평가’라는 걸 명확히 해야 합니다. 실제 계약은 예비 평가 결과를 보고 우리가 다시 결정할 문제입니다. 이 둘을 분리해서 기록으로 남겨주십시오.”

윤도겸은 “그 정도까지 필요한 일인지…”라며 난색을 보였지만, 더는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했다. 펫들이 보이는 명백한 거부 반응 앞에서 섣불리 우겼다간 판이 엎어질 수도 있다고 판단한 듯했다.

유찬이 조건을 내걸자, 침묵을 지키던 박성준이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단말기를 꺼내 새로운 기록 양식을 열었다.

“강유찬 씨의 제안이 합리적입니다. 백호 길드 공식 양식으로 ‘D-7 예비 평가’와 ‘실제 계약’ 항목을 분리해서 잠가두겠습니다. 평가 결과가 계약으로 자동 승계되지 않도록 명시하겠습니다.”

박성준이 말을 마치자마자 태블릿 화면의 계약서 항목이 실시간으로 바뀌었다. 백호 길드 보안 마크와 함께 ‘D-7 예비 평가’와 ‘실제 계약’이 별도 항목으로 분리되고, 그 사이에는 굵은 자물쇠 아이콘이 박혔다.

윤도겸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원본 폐쇄 기록은 양이 많아 정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우선 저희가 정리한 요약본으로 검토하시죠. 대표 샘플도 세 박스 가져왔고요.”

말과 함께 윤도겸 쪽 태블릿에서 대표 샘플 사진 몇 장이 떠올랐다. 뿌연 오염물에 잠긴 단검, 방패, 반지 따위였다.

유찬의 어깨 위에서 포포가 움찔거리며 그중 단검 사진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정제하고 싶은 본능이 솟구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유찬은 포포의 머리를 꾹 눌러 진정시켰다.

“안 돼. 아직.”

그는 윤도겸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요약본은 윤도겸 씨가 고른 기록입니다. 대표 샘플은 윤도겸 씨가 고른 조각이고요. 저는 원본 전체를 봐야겠습니다.”

유찬의 허리춤에서 뻗어 나온 냥믹의 검은 꼬리가 윤도겸의 태블릿 화면을 툭, 툭 쳤다. ‘요약본’, ‘대표 샘플’이라는 단어를 정확히 찍어냈다. 이어서 백호 길드 태블릿으로 옮겨가 잠긴 ‘일괄 승계’ 조항을 쿡 찔렀다. 안 된다는 뜻이었다.

허공의 구역 지도 위에서는 까악스가 B2 구역 주변의 검은 실패선을 부리로 쪼아 더욱 진하게 만들었다. 요약본만 보고 들어갔다가는 큰일 난다는 경고처럼.

“이 단검이 어느 구역에서 나왔는지, 그 주변엔 뭐가 있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유찬이 포포가 반응했던 사진을 가리키며 못을 박았다.

박성준이 곧바로 받았다.

“알겠습니다. 대산 측에서 원본 폐쇄 기록을 제출하기 전까지, 이 계약은 ‘예비 평가 착수’ 상태로만 유지됩니다.”

윤도겸의 입술이 바싹 말랐다. 전체를 통째로 떠넘기려던 계획이 첫발부터 막힌 셈이었다.

바로 그때, 윤도겸의 개인 단말기 화면에 날카로운 알림이 깜빡였다.

`[전략 1팀] 진행상황 보고 바랍니다.`

대산 상부에서 쏘아붙이는 재촉이었다. 윤도겸은 마른침을 삼키며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지만, 단 한 글자도 입력하지 못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단말기 화면을 꺼버렸다.

옆에 앉은 박성준이 조용히 자신의 단말기 화면을 유찬 쪽으로 기울였다.

`[D-7 예비 평가 / 실제 계약 분리 기록: 잠금 완료]`

선명한 녹색 문구였다. 유찬은 그것을 확인하고는 말없이 시선을 들었다.

유찬은 더 이상 윤도겸의 표정을 살피지 않았다. 그는 거대한 평면도 위로 손을 뻗었다. 최종 평가를 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전체 평가서에 넣을 내용은 없습니다. 위험 신호만 먼저 나누겠습니다. 샘플 확인 전 임시 분류입니다.”

그는 각 구역을 손가락으로 나누며 중얼거렸다.

“먹을 것, 버릴 것, 건드리면 터질 것.”

간결한 세 마디에 윤도겸의 낯빛이 변했다. 박성준이 정중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강유찬 씨, 지금 분류는 예비 평가서에 넣지 않겠습니다. 추후 오해가 없도록, 샘플 요청을 위한 참고용 표기로만 기록해 두겠습니다.”

말은 정중했지만, 대산이 멋대로 평가의 주도권을 쥐지 못하게 막는 경고였다. 유찬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바라던 바였다.

윤도겸은 한시름 놓았다는 얼굴로 B2 구역을 가리켰다.

“그럼 B2는 샘플 대상에서 제외해도 되겠군요. 이미 폐쇄 완료된 곳이라 확인할 것도 없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유찬의 품에서 포포가 파르르 몸을 떨었다. 윤도겸이 가리킨 B2 구역의 대표 샘플 사진. 흐릿한 단검 부산물 이미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먹을 거, 저기 있어.’ 명백한 신호였다.

냥믹은 황금 꼬리와 검은 꼬리를 동시에 빳빳하게 세웠다. 엄청난 돈이 될 기회와 그만큼 거대한 책임이 한곳에 묶여 있다는 뜻이었다.

결정타는 까악스였다. 녀석의 실패선은 B2 구역 안쪽으로 뻗어 나가지 않았다. 되레 B2 구역의 입구를 가로막듯, 굵고 진한 검은 금을 그어 버렸다. 들어가다 실패하는 길보다 더 나빴다. 입구 자체가 막혀 있거나, 누군가 막아 뒀다는 경고였다.

유찬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대산은 B2를 폐쇄된 곳이라 했다. 펫들은 감춰진 곳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위험해서 닫은 척, 무언가 숨기려고 봉한 흔적에 가까웠다.

윤도겸의 눈동자가 아주 짧게 흔들렸다. 그 반응만으로도 충분했다. B2에는 평범한 폐쇄 구역보다 훨씬 무거운 기록이 묶여 있었다.

유찬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B2 원본 기록부터 가져오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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