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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만 빌리면 되는 줄 알았다 일러스트

펫만 빌리면 되는 줄 알았다

삐이이이―!

찢어지는 경보음이 복도를 울렸다. 박성준 팀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이쪽입니다, 강유찬 씨!”

유찬은 훈련용 단검을 회수하던 손을 멈추고 그의 뒤를 따랐다. 임시 관리구역으로 지정된 GE-771 구역 바로 옆, 백호 길드가 임대한 창고의 육중한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역한 오염 증기가 확 풍겨 나왔다. 일반적인 게이트 오염보다 훨씬 독했다. 정제 실패 시에만 발생하는, 미세 마력 입자가 뒤섞인 폐기물 특유의 악취.

“무슨 일입니까?”

“저희도 막 보고를 받았습니다. 협력업체인 한빛리커버리에서… 자체적으로 테스트를 진행하다가 사고가 난 모양입니다.”

둘은 굳은 얼굴로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바닥은 엉망이었다.

끈적한 오염 찌꺼기와 회수 가능한 균열석 파편, 못쓰게 된 장비 부품이 구분 없이 한데 뒤엉켜 있었다. 마치 거대한 폐기물 통을 그대로 엎어놓은 것 같았다.

한빛리커버리 소속 완장을 찬 직원이 당황한 얼굴로 허리를 숙였다.

“아, 박성준 팀장. 이건… 저희가 새로운 분리정제 방식을 시험해 보려던 것뿐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찬의 발치에서 포포가 통, 하고 튀어 나갔다.

평소 같았으면 저 오염물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들었을 터였다. 맛있는 ‘밥’ 냄새가 났으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포포는 오염된 웅덩이 앞에서 급정거하듯 멈춰 섰다. 연녹빛 몸체가 부르르 떨렸다. 원심분리기처럼 맹렬히 돌던 몸속 은색 입자들이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이내 회전을 멈췄다.

몸 전체가 ‘못 먹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포포?”

유찬이 나직이 불렀다.

그때였다. 유찬의 어깨 위에서 까악스가 짧고 날카롭게 울었다.

까악-!

깨진 시계 같은 동공이 바닥의 오염물을 향했다. 그 위로, 아주 잠깐 실패의 잔상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누군가 서로 다른 통에 담긴 물질을 한곳에 부어버리는 장면, 그리고 그 결과물이 검게 변질되어 부글거리는 이미지. 순서가 뒤섞인 채 끊어지는 영상이었다.

유찬은 즉시 상황을 파악했다.

“잠깐.”

한빛리커버리 담당자가 상황을 수습하려 허둥대는 것을 유찬이 막았다.

“그 상태로 두십시오. 지금 더 섞으면 안 됩니다.”

유찬이 저지하자 한빛리커버리 담당자가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아니, 저희는 강유찬 씨가 하는 방식을 참고했을 뿐입니다.”

그의 시선은 유찬의 발치에서 여전히 망설이는 포포에게 향해 있었다.

“저 슬라임이 특별한 개체인 건 압니다. 저희는 최대한 비슷한 효과를 내보려고… 돈 될 만한 부산물과 폐기물을 함께 처리하는 시험을….”

그의 말이 길어질수록 유찬의 표정은 차갑게 식어갔다.

‘따라 하다가 망쳐놓은 거겠지.’

포포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그 모습이 조금 전과는 달랐다.

연녹빛 몸체가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갈아 기우뚱거렸다. 마치 두 개의 자석이 서로 다른 극에서 당기는 것처럼, 몸을 반으로 찢으려는 듯 위태롭게 떨렸다.

웅덩이 안에 섞인 ‘먹을 수 있는’ 균열석 파편을 향해 몸을 기울이다가도, 그것을 감싼 ‘치명적인’ 오염막 때문에 급히 뒤로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먹고는 싶은데, 독이 발라져 있어 먹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까악스.”

유찬이 어깨 위를 보자, 까악스의 눈동자에서 다시 한번 짧은 잔상이 스쳤다.

이번엔 좀 더 선명했다.

한 연구원이 오염 폐기물 통과 값나가는 부산물이 담긴 통을 하나로 합친다. 그 직후, 합쳐진 물질의 원본 기록을 태블릿으로 찾으려 하지만 화면에는 `[경고: 원본 묶음 대조 불가]`이라는 붉은 경고창만 깜빡인다. 기록도 남기기 전에 폐기물부터 섞은 셈이었다.

유찬은 대충 그림이 잡혔다.

유찬의 시선은 포포보다 바닥에 남은 섞인 흔적과 끊긴 기록으로 향했다.

“이 안에 섞인 것들, 원래 어디에 있었습니까? 각 재료에 대한 소유권 기록은 확보해 둔 상태고요?”

“네? 그건… 지금 확인해 봐야…….”

담당자가 말끝을 흐렸다. 이미 늦었다는 뜻이었다.

원본 증거, 회수 가능한 부산물, 그리고 순수한 오염 폐기물.

권리와 책임 소재가 명확히 나뉘어 있어야 할 세 가지가 한 통에 뒤섞여 버렸다. 이제 저 안에서 나오는 모든 건 누구의 것인지, 저것을 처리하는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지 증명할 방법이 사라졌다.

‘포포를 지금 투입하면 돈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저걸 먹는 순간, 이 사고의 책임은 전부 나한테 넘어온다.’

한빛리커버리 담당자가 바로 그 점을 파고들었다.

“강유찬 씨가 하던 걸 따라 한 것뿐입니다. 저 슬라임이라면 처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유찬은 그를 똑바로 보며 대답했다.

“저는 먼저 나눈 뒤에 먹였습니다.”

“가치, 위험, 책임을 먼저 나눴고, 포포는 그중 위험만 먹었습니다. 당신들은 그걸 전부 섞어버렸고요.”

담당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박성준이 곧바로 앞으로 나섰다.

“한빛 담당자분, 일단 모든 작업 중지하고 현장에서 물러나 주십시오. 보안팀은 여기 접근을 전부 통제하세요!”

박성준은 유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의 말투는 여전히 정중했다.

“강유찬 씨, 판단을 듣고 싶습니다. 이게… 수습이 가능한 상황입니까?”

담당자가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만약 저 슬라임으로 수습이 된다면, 이건 저희 실험 중의 작은 실수일 뿐입니다. 하지만 능력이 있는데도 나서지 않는다면, 그럼 강유찬 씨도 그냥 손 놓고 있었다는 말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사고의 책임을 유찬에게 떠넘기려는 속셈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유찬은 한 치의 동요도 없이 대꾸했다.

“책임 소재부터 명확히 해야 합니다.”

그는 바닥에 뒤엉킨 폐기물을 턱으로 가리켰다.

“지금 저걸 포포에게 먹이면, 여기 섞인 모든 물질의 처리 책임이 저에게 넘어옵니다. 한빛리커버리의 실수를 제가 돈 내고 뒤처리해 주는 꼴이 되죠.”

“실수라니요! 이건 정당한 연구 개발 과정에서…….”

“그럼 그 과정을 증명해 보시죠.”

유찬의 서늘한 한마디에 담당자는 입을 다물었다. 증명할 기록. 그걸 섞기 전에 확보했어야 했다. 이제 와서는 불가능했다.

몇몇 백호 길드원들이 “일단 먹여서 해결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고 수군거렸다. 당장 눈앞의 문제를 치우고 싶다는 조급함이 묻어났다.

유찬은 그 분위기를 끊어내듯 움직였다. 그는 창고 구석에서 바닥 표시용 분필을 집어 들었다.

“박성준 팀장, 현장 보존 라인을 설정하겠습니다.”

슥.

거친 분필이 시멘트 바닥에 흰 선을 그었다. 유찬은 시큼한 폐액 냄새와 먼지가 뒤섞인 폐기물 더미 주위로 커다랗게 원을 그렸다. 그러고는 그 원 안을 세 구역으로 나눴다.

“여기는 ‘보존’ 구역입니다.”

그가 가리킨 곳은 한가운데, 가장 오염이 심한 부분이었다. 정체 모를 액체로 검게 그을리고 녹아내려, 원래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물질들이 끈적하게 뭉쳐 있었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원본 증거로 남겨야 할 물질들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특수 처리’ 후보 구역.”

두 번째 구역에는 오염 물질이 묻어 있긴 해도, 칼이나 파편의 형태는 유지하고 있는 것들이 모여 있었다. 보존 구역만큼은 아니지만, 불쾌한 화학 약품 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왔다.

“포포가 반응을 확인한 뒤, 안전한 것만 골라 처리할 후보군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가장자리에 흩어진, 누가 봐도 가치가 없는 찌꺼기들을 가리켰다.

“나머지는 ‘폐기’입니다. 이건 한빛리커버리에서 책임지고 수거해야 할 거고요.”

한빛 담당자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저건 펫 주인의 움직임과 거리가 멀었다.

유찬은 포포를 향해 나직이 말했다.

“포포. 할 수 있지?”

포포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특수 처리’라고 이름 붙은 구역 가장자리로 통, 하고 튀어 갔다.

하지만 곧장 먹지는 않았다.

포포는 그 안에서 가장 탐스러워 보이는 균열석 파편 바로 앞에서 멈췄다. 그러자 조금 전 멈췄던 몸속 은색 입자들이 다시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몸 전체가 하나의 분리정제 기계처럼 미세하게 떨렸다. 눈앞의 것은 먹을 수 있다는 명확한 신호. 그러나 그 옆의 다른 오염석을 보자 입자의 회전이 거짓말처럼 둔해졌다. 미세한 독성이 감지된다는 뜻이었다. 모든 걸 함부로 먹을 수는 없었다.

그때, 까악스가 다시 한번 짧게 울었다.

까악!

깨진 시계 같은 눈동자가 허공을 향했다.

순간, 짧은 잔상이 스쳤다.

한빛리커버리 직원이 오염 폐액 통을 기울인다. 그는 그것을 값비싼 재료 위에 붓기 직전, 잠시 망설인다. ‘이걸 먼저 기록해야 하나?’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는 폐액을 쏟아붓는다.

순서와 책임을 무시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제 유찬도 확신했다.

한빛리커버리는 기록과 권리, 책임을 먼저 나누는 절차를 건너뛰었다. 그 결과가 지금 바닥에 엉켜 있었다.

유찬은 분필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선언했다.

“수습은 가능합니다. 다만 이 건은 ‘사고 수습’으로 봐야 합니다. 처리 비용과 책임 소재는 별도로 산정해야 할 겁니다.”

박성준이 그 차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옆에 있던 부하 직원에게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지시했다.

“기록해 주세요. 강유찬 씨의 발언 그대로. 본 건은 ‘사고 수습’이라고.”

박성준은 이어 단말 화면을 켰다.

“그리고 이 건은 구두 협력으로 넘길 일이 아닙니다. 강유찬 씨 기준을 넣은 표준 계약서부터 다시 만들겠습니다.”

유찬의 말이 떨어지자 수군거리던 길드원들도 입을 다물었다. 포포를 부르기 전, 누가 무엇을 맡고 어디까지 책임지는지부터 정해야 했다.

“증명해 보이죠.”

유찬은 ‘특수 처리’ 구역 안에서도 가장 작고 오염도가 낮은 파편 하나를 가리켰다.

“포포, 저것만.”

포포는 기다렸다는 듯 파편을 한입에 삼켰다. 연녹빛 몸 안에서 은색 입자들이 빠르게 돌며 파편을 감싼 오염막을 녹여냈다. 잠시 후, 오염이 말끔히 씻겨 나간 순수한 균열석 조각이 바닥에 토독, 하고 떨어졌다.

감정 단말기의 오염도 수치가 붉은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옆에 있던 백호 길드원이 숨을 삼켰다. 폐기물 더미에서 회수 가능한 자산이 나온 순간이었다.

결과물은 작았다. 대신 모두가 봤다.

아무거나 먹여 치우기 전에, 건질 것과 버릴 것을 가를 수 있다는 증거였다.

한빛리커버리 담당자는 ‘따라 했을 뿐’이라는 자신의 말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을 깨달았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포포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 말 뒤로 한빛 담당자는 더 변명하지 못했다.

박성준은 더 이상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한빛리커버리는 오늘부로 GE-771 관련 작업을 전부 중지합니다. 사고 책임 감사가 끝날 때까지 접근 권한도 회수하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서면으로 통보하겠습니다.”

그는 즉시 단말기를 꺼내 현장 기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박성준의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였다.

`[GE-771 임시 창고 사고 기록]`

`1. 강유찬 씨 처리 기준을 배제한 분리정제 모방 시도 금지.`

`2. ‘사고 수습’과 ‘정상 처리’의 개념을 명확히 구분할 것. 본 건은 사고 수습으로 규정함.`

`3. 향후 강유찬 씨 협력 건에 대한 표준 계약 절차 수립 긴급 요청.`

백호 길드는 비싼 수업료를 치르는 중이었다. 다음부터는 펫을 부르기 전에 강유찬의 기준부터 계약서에 박아야 했다.

유찬은 마지막으로 원칙을 못 박았다.

“분리하기 전에, 소유권과 증거, 그리고 폐기 책임을 먼저 나눠야 합니다. 그게 제1원칙입니다.”

그때였다.

박성준이 막 보고서를 전송하려던 단말기에 새로운 메시지 알림이 도착했다.

[대산 길드 이시훈 팀장: 강유찬 씨의 슬라임과 유사한 개체의 ‘단기 대여’ 가능 여부 및 조건 문의]

순간, 유찬의 품에 안겨 있던 냥믹이 미세하게 움찔했다. 까만 털로 뒤덮인 목 아래, 희미한 방울 무늬가 아지랑이처럼 잠깐 흔들렸다 사라졌다.

박성준의 표정이 굳었다. 방금 눈앞에서 사고를 본 사람이면 쉽게 넘길 수 없는 문장이었다.

유찬은 그 메시지를 곁눈질로 훑어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펫만 빌리겠다는 사람치고는 조건이 너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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