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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 봉인기사 일러스트

북문 봉인기사

종각 결계 예산이 헤일 보좌 예산단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음 날,

아델린은 사무실 창문을 열자마자

찬 공기가 비정상적으로 들어오는 걸 느꼈다.

계절 탓만은 아니었다.

북서 회랑에서 시작된 결계 진동이

밤사이 다른 선으로 번진 흔적이었다.

아주 미세한 변화라

일반 직원은 감지하지 못할 테지만,

계약 결을 읽는 사람에게는

종이 한 장의 틈처럼 분명했다.

아델린은 책상 위에 전날 정리해 둔 자료를

다시 펼쳤다.

GP-001 새벽 종각 감사관,

내정실 제2관리선,

헤일 보좌 예산단.

그리고 그 아래,

도로시가 새벽까지 추가로 가져다 놓은

두 권의 출입 장부.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팀장님, 저 오늘은

자랑할 준비 되어 있어요.”

도로시는 다크서클을 달고도

이상하게 들뜬 얼굴이었다.

손에는 밤새 더 긁어모은 장부와

결계 접근 표 한 묶음이 들려 있었다.

“나쁜 소식일수록

자랑스러워 보이는군요.”

“좋은 소식은 황실에서

멸종했으니까요.”

그녀는 곧장 책상 위에 종이를 펼쳤다.

“종각 유지비 우회선이

북문 결계 접근권이랑 맞물려 있어요.”

아델린이 바로 시선을 내렸다.

“어떤 식으로.”

도로시는 이미 표시해 둔 줄을

손가락으로 따라갔다.

“종각 예산 중 일부가

야간 보수 명목으로 빠지는데,

그 돈이 다시 북문 결계 마석 교체비랑

봉인문 유지비로 넘어가요.

문제는 승인 직위예요.”

그녀는 특정 칸을 탁 쳤다.

황궁 북문 임시 봉인기사

아델린의 눈이 가늘어졌다.

“GP-002.”

“네.

실재 인원은 없는데

접근권은 살아 있는 직위.”

도로시는 조금 신이 난 목소리로 덧붙였다.

“쉽게 말하면,

죽은 유령이 북문 문지기 행세하면서

결계 문을 열고 닫은 거예요.”

“쉽게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비정상이군요.”

창가 쪽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카시안이

한마디 했다.

“북문은 원래 쉽게 안 건드립니다.”

아델린이 고개를 돌렸다.

“왜죠.”

“황궁에서 가장 오래된 봉인선 중

하나니까.”

그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비꼬는 한마디쯤 붙었을 텐데,

이번엔 아니었다.

목소리가 평평했다.

지나치게 평평해서

오히려 거슬릴 정도였다.

도로시도 눈치를 챈 듯

그를 힐끗 봤다.

“저기, 감시관님.”

“예.”

“그 직위 이름, 들어본 적 있어요?”

카시안은 대답 대신

책상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장부 위

황궁 북문 임시 봉인기사라는 문장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아주 짧은 순간,

금빛 눈동자 초점이

어딘가 어긋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곧 시선을 거뒀다.

“현장부터 보죠.”

아델린은 그 말의 형태를 기억해 두었다.

“모른다”도 아니고 “안다”도 아니다.

회피였다.

그리고 카시안은 대개

아주 구체적인 부분에서만 말을 아꼈다.

“좋습니다.”

그녀는 곧장 결론을 내렸다.

“오늘 조사 대상은 북문입니다.

도로시는 장부 원본과 접근 이력 대조.

감시관은 현장 결계선과

봉인문 상태 확인.

저는 직위 승인선과

권한 결을 읽겠습니다.”

도로시가 손을 번쩍 들었다.

“질문.”

“짧게.”

“왜 매번 제일 위험한 곳으로

바로 가세요?”

“위험한 곳에 증거가 있으니까.”

“역시 악의예요.”

카시안이 낮게 웃었다.

“이쯤 되면

업무 철학에 가깝죠.”

“감시관.”

“예.”

“쓸데없는 합의는 줄이세요.”

“알겠습니다.

그래도 맞는 말은 맞죠.”

북문은 황궁 외곽에서도

가장 바람이 센 곳이었다.

회색 성벽과 거대한 철문이 맞붙은 구조라,

겨울엔 칼 같은 공기가 몰리고

여름엔 마른 열기가 갇히는 자리였다.

지금은 아침인데도

돌바닥이 서늘했다.

문 양옆으로 봉인문을 지탱하는

검은 석주가 서 있었고,

그 위에 오래된 룬이

여러 겹 겹쳐져 있었다.

북문 수문위병은

아델린의 인장과 카시안의 얼굴을

번갈아 보고는

아주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인사팀에서 왜 북문까지…….”

“대답보다 기록이 먼저입니다.”

아델린은 간결하게 말했다.

“최근 1년 출입 명부와

결계 점검 이력,

야간 개방 승인서를

모두 가져오세요.”

위병은 고개를 끄덕이려다

카시안 쪽을 다시 봤다.

“그분도 같이 들어가십니까?”

“문제가 있습니까?”

위병의 대답보다

카시안의 반응이 먼저였다.

“저도 가는 편이 낫습니다.”

그는 거의 본능처럼 말하고 있었다.

평소의 느슨한 말투가 아니라,

오래전에 체화된 근무 언어에 가까웠다.

아델린은 그 차이를 바로 들었다.

“좋습니다.

같이 들어가죠.”

북문 안쪽 통로는

예상보다 좁고 길었다.

양옆 벽면에 봉인용 못자국과

옛 명령문 걸쇠가

연속해서 남아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비어 있었지만,

카시안은 그 빈 자리들을 지날 때마다

시선을 살짝씩 주었다.

아델린은 그가 무의식적으로

빈 공간을 셀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여기 와 본 적 있습니까?”

그녀가 물었다.

“황궁에 육백 년 있었는데

한 번도 안 와 봤겠습니까.”

말은 가볍지만,

손끝이 굳어 있었다.

도로시가 통로 바닥 문양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여기 싫어요.

결계 냄새가 이상해요.”

“또 냄새군요.”

아델린이 말했다.

“네.

종각은 오래 묵은 서랍 냄새였는데,

여긴…….”

도로시는 잠깐 얼굴을 찌푸렸다.

“불탄 쇠를 물에 담갔다가

다시 꺼낸 냄새?”

그 순간 카시안의 걸음이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

정말 미세해서

도로시는 놓쳤을지 몰라도,

아델린은 놓치지 않았다.

그는 곧 다시 움직였지만,

이전보다 한 걸음 느려져 있었다.

북문 봉인실 입구에 도착했을 때,

세린 베일이 이미 그곳에 서 있었다.

결계국 수석 실무관은

두꺼운 기록판과

측정용 수정봉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아델린 일행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올 줄 알았습니다.”

“왜죠.”

아델린이 묻자

세린은 북문 룬을 가리켰다.

“밤새 흔들렸으니까요.

종각 쪽을 건드렸으면

다음은 북문입니다.”

도로시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 사람은 말할 때마다

불길한 게 너무 정확해.”

세린은 못 들은 척하고

수정봉을 세웠다.

푸른빛이 룬 위를 훑더니,

특정 구간에서 갑자기 붉게 물들었다.

“여기.”

그녀가 짚은 건 문 아래 하단부,

현행 황궁 결계 문양 아래에

숨듯 겹쳐 있는 옛 봉인선이었다.

“최근 누군가 접근권을 사용했습니다.

정식 북문 수문장 권한이 아니라,

더 오래된 임시 봉인계열 권한입니다.”

아델린이 바로 물었다.

“황궁 북문 임시 봉인기사?”

세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이 높습니다.”

카시안이 그 문양을 보는 순간,

아델린은 분명히 느꼈다.

공기가 한 번 꺼졌다.

그의 얼굴에서 늘 붙어 있던

느슨한 냉소가 사라졌다.

금빛 눈동자가 룬에 붙들리듯 멈췄고,

시선 초점이 현재가 아니라

더 먼 시간 쪽으로 밀려나는 것 같았다.

세린은 아직 그를 보지 못했다.

도로시는 장부를 펴느라 바빴다.

아델린만 그 변화를

정면으로 보고 있었다.

“감시관.”

그녀가 불렀다.

대답이 한 박자 늦었다.

“……예.”

카시안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아델린은 즉시 질문을 줄였다.

“문양을 압니까?”

그는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북문 하단부 옛 봉인선 위에

손을 뻗었다.

손끝이 룬에 닿는 순간,

붉은빛이 짧게 튀었다.

세린이 날카롭게 말했다.

“손 떼세요.

반동 옵니다.”

하지만 카시안은 이미

문양 한가운데를 짚고 있었다.

“이건 북문 방호선이 아닙니다.”

그의 말이 이상할 만큼 또렷했다.

“후퇴선입니다.”

도로시가 눈을 크게 떴다.

“후퇴선?”

카시안은 룬 가장자리 갈라진 홈을 따라

손가락을 옮겼다.

“안에서 밖으로 막는 게 아니라,

밖에서 안으로 쫓겨 들어오는 걸

한 번 더 걸러내는 선.

봉인기사가 마지막으로 닫는 문장입니다.”

세린이 그제야 그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압니까?”

카시안이 입을 다문 채

손을 거두려는 순간,

북문 룬이 갑자기 짧게 번쩍였다.

철 냄새가 확 퍼졌다.

아델린은 거의 동시에 보았다.

카시안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눈을 뜨고 있는데도

다른 장면을 보고 있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무너진 성벽,

불탄 쇠,

피에 젖은 눈.

말하지 않아도

그런 기억이 밀려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표정이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시관.”

아델린이 이번엔 더 낮게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세린이 수정봉을 들어

룬을 차단하려 했지만,

아델린이 손으로 막았다.

“잠깐.”

그녀는 카시안 바로 앞에 섰다.

감정적인 위로나

불필요한 접촉 대신,

그의 시야를 현재로 끌어올

가장 간단한 문장을 골랐다.

“직원번호 0001.”

금빛 눈동자가 아주 천천히

그녀 쪽으로 돌아왔다.

“보고하십시오.”

카시안의 호흡이 한 번 헝클어졌다가,

조금씩 고르게 돌아왔다.

아델린은 그 변화가 너무 미세해서

본인 말고는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다.

그는 이를 다물고

몇 초를 버티더니,

낮고 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문양이 창건 전쟁기 방식입니다.”

아델린은 그대로 받아 적듯 물었다.

“계속.”

“북문을 마지막 방어선으로 쓸 때만

쓰는 봉인선이고,

임시 봉인기사는

정규 수문장이 아니라…….”

그가 한 번 말을 끊었다.

“무너진 선을 붙잡으라고

던져 넣는 기사였습니다.”

통로 안이 완전히 조용해졌다.

세린의 눈빛이 달라졌다.

실무자의 호기심에서,

구조를 이해하는 사람의 경계로.

도로시는 장부를 내린 채

숨도 크게 못 쉬었다.

아델린은 그 짧은 설명 안에

너무 많은 것이 들어 있다는 걸 알았다.

임시.

봉인.

기사.

이름은 행정적이지만,

실제론 소모품에 가까운 자리.

그리고 카시안은

그걸 문양 한 번 보고 알아봤다.

“과거 기록에 북문 임시 봉인기사가

실재했다는 뜻입니까?”

아델린이 묻자

카시안은 그녀를 보지 않았다.

대신 다시 문양 쪽을 내려다봤다.

“실재했죠.”

“언제.”

“가장 많이 필요했던 때는

전쟁 말기.”

그의 목소리는 다시 평평해졌지만,

아까의 미세한 흔들림은

아직 남아 있었다.

“성이 무너지거나,

결계선이 한 겹씩 뜯겨 나갈 때.”

세린이 조용히 물었다.

“그 직위와 당신은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카시안은 이번엔 즉답하지 않았다.

대신 벽면 빈 걸쇠 하나를

오래 바라보다가 손을 내려놓았다.

“관련이 없는 건 아닙니다.”

회피였다.

그러나 아까와는 달랐다.

부정하지 않는 회피였다.

아델린은 더 밀지 않았다.

지금은 캐내는 것보다

현장 증거를 정리하는 쪽이 먼저였다.

“좋습니다.”

그녀는 북문 봉인실 전체를 훑었다.

“현재 사실만 정리하죠.

첫째,

북문에는 현행 수문장 권한과 별개의

고대 봉인 접근권이 남아 있습니다.

둘째,

그 접근권은 유령직위

황궁 북문 임시 봉인기사와

일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셋째,

최근 누군가 그 권한을

실제로 사용했습니다.”

도로시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넷째도 있어요.”

“말하세요.”

“어젯밤 장부 대조하다 찾은 건데,

북문 보수비 한 건이

종각 유지 예산이랑 같은 날,

같은 선으로 재승인됐어요.

그러니까 GP-001이랑 GP-002가

완전히 따로가 아니라,

누가 같은 손으로 묶어서 만졌을

가능성이 커요.”

세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북문 개방 기록도

조작됐을 겁니다.”

아델린은 바로 위병에게 명령했다.

“최근 세 달 야간 통행 기록 원본,

봉인실 점검 보고서,

수문장 교대명부 전부 봉인합니다.

결계국은 북문 하단부 옛 봉인선을

당분간 건드리지 말고 현상 유지.

도로시는 종각 예산선과

북문 보수비를 한 표로 묶으세요.”

도로시는 이미 받아 적고 있었다.

“네.”

아델린은 마지막으로 카시안을 봤다.

“감시관은.”

그가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예.”

“이 문양을 본 뒤 떠오른 것들을

정리해서 보고하세요.

추정과 기억을 구분해서.”

카시안이 짧게 웃었다.

평소보다 훨씬 옅은 웃음이었다.

“그건 꽤 잔인한 지시군요.”

“효율적인 지시입니다.”

“팀장님은 늘 둘을

같은 뜻처럼 쓰시네요.”

“대체로 맞으니까요.”

북문을 나설 때

바람이 더 세게 불었다.

도로시는 장부를 품에 안고

앞서 걸어가며 연신 투덜거렸고,

세린은 별다른 인사 없이

곧장 결계국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잠시 둘만 남은 회랑에서,

아델린은 멈춰 서지 않은 채 말했다.

“아까.”

카시안이 옆을 보았다.

“무슨 말씀이시죠.”

“문양을 봤을 때.”

아델린의 목소리는 여전히 건조했지만,

질문은 이전보다 조금 더 직접적이었다.

“전장 기억이 올라왔습니까?”

카시안은 몇 걸음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바람만 성벽을 타고 울었다.

“예.”

결국 그가 답했다.

“오랜만에.”

짧은 인정이었다.

카시안이 자기 상태를

저 정도로 직접 말하는 건 처음이었다.

아델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걸 위로나 동정으로

연결하지는 않았다.

“다음 현장에선

사전 경고를 하세요.”

카시안이 헛웃음을 흘렸다.

“정말 그 말부터 나옵니까?”

“네.

당신이 쓰러지면

조사 효율이 떨어지니까.”

그는 한동안 말이 없더니,

결국 웃었다.

이번엔 조금 진짜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알겠습니다, 팀장님.”

사무실로 돌아온 뒤에도

북문의 찬 기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도로시는 종각과 북문 예산선을

한 장에 묶어 재정리했고,

아델린은 GP-001과 GP-002 사이

공통 승인자를 추리기 시작했다.

카시안은 자기 책상 앞에 앉아

아무 말 없이 북문 문양을 계속 그렸다.

하나, 둘, 셋.

같은 선을 세 번쯤 반복해서 그린 뒤에야

손이 멈췄다.

아델린은 그가

세 번째 선에서야

비로소 손목 힘을 풀었다는 걸 봤다.

아직 북문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의 손이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책상 한쪽으로 물잔을 밀어 놓았다.

업무 지시처럼

조용한 동작이었다.

카시안은 물잔을 보고

잠깐 눈을 깜빡였다.

그 뒤 별말 없이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도로시는 그 광경을 보고도

이번엔 농담을 하지 않았다.

대신 장부를 넘기던 손만

조금 천천히 움직였다.

아델린은 그 종이를 집어 들었다.

문양 옆에

아주 짧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북문 임시 봉인기사

- 후퇴선 최종 폐쇄 담당

그녀는 종이를 내려다보다가

조용히 물었다.

“감시관.”

카시안이 눈을 들었다.

“왜죠.”

“당신은 이 직위를 알고 있군요.”

사무실 안이 순간 멎었다.

도로시도 펜을 든 채 굳었다.

카시안은 부정하지 않았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대답했다.

“예.”

그리고 덧붙였다.

“제가 그 직위를

실제로 본 적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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