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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인석 0001 일러스트

# 증인석 0001

증인석 0001

청문장 중앙의 의자는

다른 의자보다 조금 높았다.

높아서 불편해 보였다.

등받이는 곧았고,

팔걸이는 없었고,

앞쪽 난간엔

이름 대신 번호만 새겨져 있었다.

`0001`

아델린은

그 숫자를 보자마자

장갑 끝을 한 번 정리했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손이 먼저 아는 버릇이었다.

정오종이 울리기 전,

황궁은 이미

소문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청문장 바깥 복도엔

실무관,

기록관,

기사단 보조원,

심지어 귀족 쪽 시종까지

이상할 만큼 많이 몰려 있었다.

모두가 불안을 구경하러 온 얼굴이었다.

누군가는

황궁이 얼마나 흔들리는지 보러 왔고,

누군가는

누가 먼저 밀려나는지 확인하러 왔다.

그리고 대부분은

직원번호 0001이

사람으로 들어올지

장치로 호출될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아델린은

그 시선들에 익숙해질 생각이 없었다.

정오 직전,

에드윈 벨노아는

청문장 옆 준비실에

아주 짧게 들렀다.

황제라는 자리답게

호위와 의전은 많았는데,

정작 그 자신은

밤을 제대로 못 잔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아델린이 내민

`산 자의 규정` 사본을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문서를 덮은 뒤

곧바로 사실을 말했다.

“지금 이걸

황명으로 먼저 승인하면,

라우렌스는 제가

청문 전에 결론을 정했다고 주장할 겁니다.”

아델린은

예상한 대답이라는 얼굴로 물었다.

“그럼 폐하는

아무것도 안 하실 겁니까.”

에드윈은

그 말에 쉽게 상처받지 않았다.

상처받을 여유가 없는 쪽이었다.

“할 수 있는 건 있습니다.

당신이 이 문서를

공식 반대안으로 올리는 건 허락하겠습니다.

발언권도 보장하죠.

하지만 청문 자체를 막진 못합니다.”

그는 한 박자 쉬고

아델린을 똑바로 봤다.

“오늘 당신이 지키려는 게

공적 기준인지,

아니면 특정 개인인지,

모두가 그걸 묻겠습니다.”

아델린은

잠깐도 망설이지 않았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자는 기준입니다.”

에드윈의 시선이

문서 위 제목으로 내려갔다.

`산 자의 규정`

그는 그 다섯 글자를 읽고

아주 작게 숨을 뱉었다.

“옳은 문장입니다.”

좋은 말이었지만

보호 약속은 아니었다.

그는 젊었고,

그 젊음만으로는

오늘 방패가 되기 부족했다.

“옳은 문장이

항상 이기진 않습니다.”

그가 말했다.

아델린은 대답했다.

“져도 남겨야 합니다.”

에드윈은

그 말에 더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문서 아래쪽에

짧은 허가 부호만 남겼다.

`반대안 상정 허가`

완전한 승인도,

완전한 거부도 아닌

딱 황제가 지금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선.

아델린은 그걸 받아 들고

고개를 숙였다.

감사의 인사는 하지 않았다.

오늘 필요한 건

예의보다 시간이었으니까.

황제가 나간 뒤

준비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조용했지만

완전히 비어 있진 않았다.

카시안이 창가 쪽 의자에 앉아 있었다.

청문용으로 급히 갈아입힌 검은 제복은

핏자국만 가렸지

부상까지 없애 주진 못했다.

왼쪽 어깨선은

옷 위로 봐도

아직 약간 높게 들려 있었다.

그는 문 쪽 인기척을 듣고도

바로 돌아보지 않았다.

먼저 본 건

아델린 손에 들린 문서였다.

“살렸습니까.”

낮은 목소리였다.

문장을 살렸냐,

청문을 살렸냐,

아니면 나를 살렸냐.

일부러 구분하지 않은 질문 같았다.

아델린은 문을 닫고 답했다.

“청문은 못 막았습니다.

반대안 상정까진 받아냈습니다.”

카시안이

이제야 고개를 돌렸다.

놀라지도 않았다.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다는 얼굴이었다.

“폐하답군요.

도망가진 않되,

앞줄에도 서진 않는 선택.”

“폐하를 비웃으셔도

상황이 나아지진 않습니다.”

“나아질 거라 생각해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답게

한 번은 비틀어서 받아쳤다.

그런데 목소리 끝이

평소보다 약했다.

아델린은

그 약함을 들은 척하지 않았다.

들었다는 표시를 하면

그가 더 멀어질 것 같아서.

대신

문서를 탁자 위에 놓고 말했다.

“오늘 전

당신에게 대답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카시안의 눈이

아주 천천히 올라왔다.

“어제는 정오까지만이라고 하시더니,

오늘은 자유 의지입니까.”

가볍게 말한 척했지만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아델린은

그 말에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어제 했던 말,

어떻게 들릴지 알면서도 했습니다.”

카시안이

짧게 웃었다.

“그건 꽤 나쁜 고백이군요.”

“네.”

아델린은 쉽게 인정했다.

“그래도 다시 말하겠습니다.

전 오늘

당신 대신 결론 내리지 않겠습니다.”

준비실엔

복도 소음이 멀게 섞여 들어왔다.

곧 청문이 시작될 텐데도

둘 사이엔

이상하게 조용한 틈이 생겼다.

아델린이 먼저 이어 말했다.

“침묵하셔도 됩니다.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침묵을 동의로 적게 두진 않겠습니다.”

카시안은

그 말을 금방 받지 못했다.

받지 못했다기보다

받는 법을 잠깐 잊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건 꽤 번거로운 변호인데요.”

“원래 잘하는 일입니다.”

아델린이 답했다.

짧은 문장.

평소 같은 톤.

그런데 오늘은

그 짧음 안에

이상할 만큼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카시안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시선이

탁자 위 문서,

아델린 장갑 끝의 잉크,

그리고 문밖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0001` 번호판 사이를 천천히 옮겨 갔다.

“날 변호하러 오신 겁니까.

아니면 규정을 통과시키러 오신 겁니까.”

“문장만 남기진 않겠습니다.”

이번에도 아델린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둘 중 하나만 남겨야 한다면?”

카시안의 질문은

농담처럼 시작됐지만

끝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델린은

그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

“이번엔

당신까지 포함해서 남기겠습니다.”

카시안이

숨을 뱉었다.

비웃을 기색은 없었다.

믿겠다는 말도 아니었다.

다만

아델린이 정말 그렇게 하려 한다는 건

알겠다는 얼굴이었다.

“정말 번거로운 분이군요.”

그가 낮게 말했다.

준비실 문밖에서

청문 개시 전 호출음이 울렸다.

세린이 먼저 들어와

짧게 상황을 전했다.

“결계국 로그 사본,

상대 쪽도 다 들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은 하나 있어요.

강제 기동이 외부 잔류선 유발이었다는

기술 확인서,

제 이름으로 냈습니다.”

도로시가 바로 뒤에서

두꺼운 장부철을 안고 나타났다.

“저도 좋은 소식 하나요.

가족 연동 코드 묶음,

숫자 틀린 데 없이 다 복사했어요.

나쁜 소식은

저쪽도 분명 뭔가 더 꺼낼 거라는 거고.”

그건 이미

좋은 소식 취급이 아니었다.

아델린은 서류를 정리했다.

세린은 카시안 쪽을 보고

일답게 말했다.

“쓰러지면 안 됩니다.”

카시안은

한쪽 입꼬리만 올렸다.

“격려가 참 고급스럽군요.”

“의학적 지시입니다.”

세린은 단호했고,

도로시는 그 사이에 끼어

작게 중얼거렸다.

“오늘 청문장엔

의학도 없고 행정도 없고

구경꾼만 많겠지.”

아델린은

그 말이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청문장 문이 열렸을 때,

사람들은 이미

자기 판단을 어느 정도 끝낸 얼굴이었다.

누군가는 카시안을

제국을 떠받치는 마지막 기둥으로 봤고,

누군가는 오래된 재난으로 봤고,

누군가는 아델린이 숨기고 있는

정치적 약점으로 봤다.

아무도

그를 그냥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아델린은

자기 지정석으로 바로 가지 않았다.

증인석으로 향하는 계단 앞,

딱 그 옆에 섰다.

너무 가까워서

편파로 보일 수 있는 자리.

그래서 더 일부러 고른 자리였다.

청문장 상단엔

황제의 자리가 있었지만

오늘 에드윈은 침묵하는 입회자처럼 앉아 있었다.

개입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 개입하면

모든 게 무너질 수 있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처럼.

반대편 가장 높은 단상엔

라우렌스 헤일이 섰다.

정중한 미소.

정확한 자세.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는 사람의 태도.

그는 청문 시작 선언도

거의 예의범절처럼 말했다.

“금일 정오부,

황궁 공안 및 직위 유지 관련 공개 청문을 개시합니다.”

그 한 문장만으로도

사람은 안건이 될 수 있었다.

기록관들이

일제히 펜을 들었다.

기디온 마르체는

공식 기록석에서

이미 첫 줄을 적고 있었다.

라우렌스의 시선이

증인석에 앉은 카시안에게 향했다.

아니,

카시안이 아니라

그 앞 번호판에 먼저 닿았다.

`0001`

“안건은 명확합니다.”

라우렌스가 말했다.

“금일 새벽,

직원번호 0001은

기동 잔류자 다수를 안정화했고,

황궁 중심결계와의 고동조가

실시간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오래된 우려와 동일한 질문을

다시 불러옵니다.”

그는 일부러 한 박자 쉬었다.

모든 사람이

다음 문장을 스스로 예상하게 만들기 위해.

“직원번호 0001을

다시 봉인축으로 복귀시켜야 하는가.”

청문장 안이

낮게 술렁였다.

아델린은

그 술렁임 안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다시`라는 단어를 받아들이는지 느꼈다.

한 번도 자기 일이 아니었던 것처럼.

라우렌스는

기디온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감찰조정팀은

현장 기록을 낭독하십시오.”

기디온이 일어섰다.

그는 늘 야심이 앞서는 사람이었지만

기록을 읽을 때만큼은

이상하리만치 정확했다.

“새벽 4시 17분,

황실 인사팀장 아델린 케스트는

민간인 및 기동 잔류자 구조 현장에서

직원번호 0001에 대한 우선 보호 지시를 공표함.

새벽 8시 52분,

직원번호 0001이 부관대 호출 표식을 소거하는 과정에서

복수 잔류선 안정화 확인.

동시각,

황궁 중심결계와의 동조율 상승 확인.”

문장만 들으면

카시안은 거의

작동에 성공한 장치였다.

라우렌스가 물었다.

“위 기록에 허위가 있습니까.”

기디온은 잠깐 멈추더니

답했다.

“기록 자체엔 없습니다.”

아델린은

그 대답이 오히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확한 사실이

정확한 맥락을 보장하진 않으니까.

라우렌스는 곧장 말했다.

“그렇다면 공익을 위해

임시 복귀라도 검토해야 합니다.

어젯밤의 사태만 보아도

황궁은 아직 그를 필요로 합니다.”

아델린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정정합니다.”

청문장 안 시선이

한꺼번에 그녀에게 쏠렸다.

아델린은

지정된 반론석으로 가지 않은 채

증인석 옆에서 말했다.

“황궁이 필요한 건

강제 기동 피해자 보호 기준입니다.

사람 하나를 다시 장치로 만드는 방식이 아닙니다.”

라우렌스가

정중한 얼굴로 물었다.

“케스트 팀장.

지금은 감상문이 아니라

공안 논의를 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더 정확히 말하겠습니다.”

아델린은 들고 있던 문서를 펼쳤다.

“금일 새벽 구조 대상은

자발적 봉기 세력이 아닙니다.

외부 잔류선에 강제로 끌려 나온

계약 피해자들입니다.

결계국 기술 확인서와

회계국 가족 연동 코드 추적표를

동시에 제출합니다.”

세린이 바로 일어섰다.

“기동 재발은

개인 의지보다 외부 호출점과 연동됐습니다.

자발적 재무장이 아닙니다.”

도로시도 곧바로 장부철을 들었다.

“가족 보상,

주거 배정,

장례 허가,

배급 표까지

모두 연동된 코드입니다.

충성 서약의 대가가 아니라

도망 못 가게 묶는 장부였어요.”

청문장 안쪽이

이번엔 아까와 다른 종류로 흔들렸다.

숫자보다 가족이 들어간 순간

사람들 표정이 달라졌다.

다들 아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라우렌스는

그 흔들림마저 예상했다는 얼굴이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묻겠습니다.”

그는 아델린 쪽이 아니라

증인석을 봤다.

“직원번호 0001.

그대는 어젯밤

복수 잔류선을 안정화했습니까.”

카시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청문장엔

짧지만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라우렌스는

그 침묵 위에

자기 문장을 얹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그대가 원하기만 하면

황궁 본결계를 더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까.”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몇몇 귀족석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번졌다.

아델린은

그 웅성거림이

곧 `침묵은 인정`으로 번역될 걸 알았다.

라우렌스가

정말로 그 말을 꺼내기 직전,

아델린이 먼저 끊었다.

“이의 있습니다.”

“근거는.”

“질문 자체가

영구 복귀를 전제로 설계돼 있습니다.

증인의 현재 상태와

강제 계약 이력을 무시한 문장입니다.”

라우렌스는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증인은 선택해서 답하면 됩니다.”

그 말은

겉으론 공정했지만

실제로는 아니었다.

선택하지 않아도

선택한 것처럼 기록될 판이었으니까.

아델린은

그 사실을 너무 잘 알았다.

그래서 이번엔

라우렌스가 아니라

카시안을 봤다.

청문장 전체가

그 시선 이동을 따라 조용해졌다.

아델린은

평소보다도 더 짧게 말했다.

“카시안 렘브란트.”

숫자가 아니라

이름.

그 한 번만으로도

청문장 안 공기가 미세하게 바뀌었다.

“발언하시겠습니까.”

아델린은 한 박자 쉬었다.

그리고 분명하게 덧붙였다.

“원하지 않으시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카시안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앞 난간 번호판에 닿았다.

`0001`

그리고 천천히 올라와

아델린 손에 닿았다.

장갑 끝엔

아직 마르지 않은 잉크가 남아 있었다.

`산 자의 규정`

조금 늦게 쓰였지만

그래도 써 낸 사람의 손.

아델린은

더 말하지 않았다.

설득도,

명령도,

도움 되는 눈빛조차

억지로 만들지 않았다.

그냥 기다렸다.

카시안에게는

그 기다림이 낯설었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누군가는 늘

대답을 재촉했고,

침묵을 복종으로 읽었고,

선택이 없는 선택지를

충성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지금,

증인석 옆에 선 사람은

정말로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오히려

대답하고 싶어졌다.

카시안이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할 말은 있습니다.”

청문장 전체가

한 번에 조용해졌다.

기록관들 펜이

동시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라우렌스조차

이번엔 끼어들지 않았다.

카시안은

먼저 라우렌스를 보지 않았다.

아델린을 한 번 보고,

그다음에야

청문장 전체를 봤다.

“질문이 틀렸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멀리 갔다.

“제가 결계를 안정화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습니다.

어젯밤에도 했고,

예전에도 여러 번 했습니다.”

술렁임이 다시 일었다.

그러나 카시안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문제는 그래서

다시 봉인축으로 돌려도 되느냐겠죠.

그건 다릅니다.”

그가 손끝으로

증인석 난간의 번호판을 한 번 두드렸다.

금속이 차갑게 울렸다.

`0001`

“이 번호가

사람을 살린 적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늘 그 다음엔

장부가 왔습니다.”

“어젯밤 살아남은 사람들은

가족 이름 때문에 끌려 나온 겁니다.”

청문장 뒤쪽에서

누군가 숨을 삼켰다.

카시안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전쟁터에선

명령이 칼보다 빨랐습니다.

그런데 나중엔

장부가 더 잘 먹혔습니다.

유족 지원,

배급,

장례,

아이들 이름.

그걸로 묶으면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따라옵니다.”

그는 아주 잠깐 멈췄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 되찾은 이름을

처음으로 공개석에서 말했다.

“마티아스 렌은

그걸 보고

충성이 아니라 목줄이라고 했습니다.”

청문장 좌우 기록석이

한꺼번에 흔들렸다.

귀족석 둘째 줄에선

접혀 있던 부채가 멈췄고,

기록석 한쪽에선

`위험군`이라 적던 붓끝이

허공에서 멎었다.

실무석 맨 끝의 중년 실무관 하나는

처음으로 라우렌스가 아니라

카시안을 보고 있었다.

카시안은 계속 말했다.

“오늘 저 사람들을

위험물로 분류하면 편하겠죠.

그리고 저를 다시 축에 세우면

황궁은 잠깐 조용해질 겁니다.

늘 그랬으니까.”

그는 এবার

라우렌스를 똑바로 봤다.

“하지만 조용한 건

안정이 아니라

입 막힌 사람 수가 늘었다는 뜻일 때가 많습니다.”

청문장 한쪽에서

누군가 아주 작게

기침하는 소리가 났다.

라우렌스는

그 변화를 그냥 두지 않았다.

그는 예의 바른 미소를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물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증인은

가족이 약점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군요.”

카시안이

차갑게 대답했다.

“약점이 아니라

인질이었습니다.”

이번엔 술렁임이

아까보다 더 컸다.

라우렌스는

그 반응마저 받아 적듯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그 점이야말로

공안상 더 중요하지요.”

아델린이 즉시 끊었다.

“대시종장.”

“왜요, 케스트 팀장.”

“지금 증언을

피해 입증이 아니라

재통제 필요성으로 돌리려는 겁니다.”

“아닙니다.”

라우렌스는 너무 부드럽게 말했다.

“전 단지

청문장이 충분한 자료를 보길 원할 뿐입니다.”

그는 손가락 하나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 신호 하나로

청문장 옆문이 열렸다.

아델린은

그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저 사람은

처음부터 이 장면까지 준비해 왔다.

안으로 들어온 건

무장 기사도,

비상 봉인구도 아니었다.

회색 보관함 여러 개를 실은

작은 운반대들이었다.

바퀴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이상하리만치 크게 울렸다.

운반대 맨 위 상자엔

검은 먹글씨가 선명했다.

`제7선봉대 유족 보상 심의부`

그 아래 상자엔

`하센 가계 연동 기록`

그 아래엔

이름이 더 많았다.

한 사람,

두 사람,

열 사람,

가족 단위로 묶인

살아 있는 약점들.

도로시가

옆에서 욕을 삼켰다.

세린의 얼굴도 굳었다.

기디온조차

기록판에서 눈을 한 번 뗐다.

라우렌스는

운반대가 청문장 한가운데 멈춘 뒤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강제 기동 피해와 가족 연동을

그토록 강조하셨으니,

당연히 이 기록도

공개석에서 함께 검토해야겠지요.”

아델린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저건 피해자 가족 자료입니다.

이 자리에서 함부로 열람할 성격이 아닙니다.”

“함부로가 아닙니다.”

라우렌스의 목소리는

끝까지 낮았다.

그래서 더 잔인했다.

“오늘의 안건이

사람 하나의 봉인축 복귀 여부에 그치지 않는다면,

가족 기록까지 포함해

어디까지 위험이 이어지는지 보아야죠.”

그 말이 끝나는 순간,

가장 뒤쪽 운반대에서

작은 서류철 하나가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왔다.

다른 상자보다 얇고,

훨씬 낡고,

그래서 더 눈에 띄는 철이었다.

아델린의 시선이

거기에 꽂혔다.

먹글씨 두 줄.

`케스트 가계 좌천 및 발령 조정 기록`

숨이

아주 짧게 멎었다.

라우렌스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굳이 바로 건드리진 않았다.

더 끔찍한 사람답게,

다음 화살이 어디로 갈지

모두가 미리 보게만 만들었다.

청문장은 이제

카시안 하나의 문제가 아니었다.

살아남은 자들의 가족,

그 가족을 장부로 묶어 온 궁정,

그리고 그 장부에

아델린의 집안 이름까지 얽혀 들어가기 시작했다.

라우렌스는 결국

증인석 0001만이 아니라,

가족 기록들까지

청문장 한복판으로 끌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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