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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투의 형식 일러스트

# 질투의 형식

질투의 형식

정원으로 나가는 문은

생각보다 좁았다.

홀 안의 음악은

문턱 하나를 넘자

곧장 멀어졌다.

대신 차가운 밤공기와

젖은 흙 냄새가 밀려왔다.

휴면 계약자는

이미 정원 가장자리 분수 쪽으로

비틀거리며 이동하고 있었다.

하인 복장,

무릎까지 흙이 묻은 바지,

목깃 안쪽에

보통 사람은 못 보는 검은 문장선.

카시안이 먼저 속도를 올렸다.

그러나 이번엔

아델린도 뒤로 남지 않았다.

둘은 거의 동시에

그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멈추세요.”

아델린의 목소리가

정원 공기를 가르자,

계약자의 몸이

이상하게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멈추는 대신

고개만 돌아왔다.

눈동자는 흐렸다.

그런데 시선은 정확했다.

사람이 아니라

지시된 표적을 보는 눈.

카시안이 낮게 말했다.

“직접 명령선은 아닙니다.

약식 기동이에요.”

“풀 수 있습니까.”

“조건부로.”

그가 한 걸음 더 다가가자

계약자는 갑자기 손을 들었다.

무기를 꺼낸 건 아니었다.

대신 하인용 장갑 아래에서

짧은 은침이 드러났다.

눈에 띄지 않는 길이.

독살보다는

교란에 가까운 도구.

아델린은 즉시 이해했다.

이건 살인을 노린 투입이 아니다.

연회장 귀빈들 앞에서

카시안이 위험한 반응을 보이게 만들거나,

아델린이 그를 막는 모습을

보이게 하려는 종류의 장치.

즉,

오늘 밤 전체가 그렇듯

정치적 그림이 먼저인 공격이었다.

“왼쪽.”

카시안이 짧게 말하자

아델린은 바로 움직였다.

분수대 쪽 반원을 돌아

계약자의 퇴로를 막았다.

그 사이 카시안은

정면에서 속도를 줄이며 접근했다.

흥분시키지 않고,

그러나 도망칠 틈은 안 주는 거리.

정원 등불 아래서 보니

계약자의 얼굴은

생각보다 훨씬 젊었다.

스무 살 남짓.

황궁 하인보다도

막 들어온 견습에 가까운 나이였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은침을 들고 있었지만,

시선은 여전히 카시안에게 고정돼 있었다.

“누가 보냈죠.”

아델린이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대신 입술이

아주 느리게 달싹였다.

카시안이 미간을 좁혔다.

“말하는 게 아닙니다.

반복 명령을 되새기는 겁니다.”

“들립니까.”

“조금.”

카시안은 남자의 바로 앞까지 가지 않았다.

세 걸음 정도 거리를 둔 채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긴 전장 아닙니다.

칼을 들 이유도 없어요.

손 내리세요.”

그 말에

계약자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명령선이 흔들리는 반응.

아델린은 그것도 놓치지 않았다.

“당신 목소리에

반응하는군요.”

카시안은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답했다.

“완전히는 아닙니다.

기존 명령 위에

익숙한 계열이 겹치면

잠깐 빈틈이 생기는 정도죠.”

익숙한 계열.

아델린은 그 표현을 머릿속에 남겨 두었다.

지금은 캐물을 시간이 없다.

계약자는 다시 한 번

은침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এবার은

카시안을 겨누지 못했다.

팔이 중간에서 멈췄다.

카시안이 한 걸음 더 다가가

낮게 말했다.

“지금 듣고 있는 명령어를 버려요.”

그건 이상한 문장이었다.

보통 사람에겐

명령처럼도,

위로처럼도 들릴 수 있는 말.

계약자는 숨을 헐떡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정말 아주 짧게

팔 힘이 풀렸다.

아델린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즉시 앞으로 붙어

손목을 꺾고 은침을 빼냈다.

카시안은 동시에

남자의 어깨를 잡아

넘어지지 않게 지탱했다.

둘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자연스러웠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미 여러 번 맞춰 본 합처럼.

계약자는 바닥에 주저앉으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검은 문장선이

목깃 아래에서

잠깐 더 짙어졌다가

서서히 흐려졌다.

완전히 꺼지진 않았다.

급히 걸린 기동은

쉽게 흔들리지만,

몸 안을 한 번 지난 명령은

희미한 자국을 남긴다.

카시안은 무릎을 굽혀

남자의 눈높이에 맞췄다.

“이름.”

남자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겨우 소리를 냈다.

“레온…”

“누가 깨웠죠.”

레온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가면…

은색 종…

정원 문…”

아델린이 곧장 물었다.

“얼굴은 봤습니까.”

“안 보여…

빚 없애 준다고…”

짧고 부서진 문장들.

하지만 충분했다.

누군가는 빚을 미끼로

황궁 하인을 건드렸고,

가면과 은색 봉투를 써서

기억을 최대한 흐리게 남겼다.

카시안은 더 캐지 않았다.

대신 레온의 손목 안쪽을 뒤집어

잠깐 살폈다.

“봉침 자국이 두 개입니다.”

“의미는.”

“하나는 기동.

하나는 표적 고정.”

아델린은 그 말을 듣고

시선을 들었다.

표적이 누구인지는

굳이 물을 필요도 없었다.

“살아 있습니까.”

아델린이 물었다.

카시안은 손목 맥을 짚고

짧게 답했다.

“네.

기동만 걸린 겁니다.

완전 각성은 아니에요.”

“기억은.”

“불분명할 겁니다.”

그 남자는 멍한 눈으로

둘을 번갈아 봤다.

방금 전의 표적성은 사라졌지만,

대신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아델린은 곧장

주변을 살폈다.

정원은 겉보기에 한산했지만,

창 너머 홀 안에는

분명 누군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커튼 틈,

발코니 난간,

정원 출입문 그림자.

완전히 감춘 시선은 아니었다.

적당히 볼 사람이

볼 정도로만 숨긴 시선.

오늘 밤 내내

계속 반복되는 방식이었다.

“도로시가 필요하겠군요.”

아델린이 말하자

카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원 관리 명목으로

이 사람을 빼낼 수 있을 겁니다.”

아델린은 곧바로

장갑 안쪽에 숨겨 둔 작은 호루라기를 꺼내

아주 낮게 한 번 불었다.

인사팀 현장 호출용.

연회용 음악에 묻히지만,

미리 약속한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높이.

잠시 후

담장 옆 통로에서

도로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 갈아입었는지

정원 시종 복장을 하고 있었다.

“와.

저 아직 본행사도 안 봤는데

벌써 사고예요?”

“말은 나중입니다.”

아델린이 짧게 잘랐다.

“이 사람을

정원 관리실 쪽으로 빼세요.

기록은 취객 실신으로 남기고,

옷 안쪽 문장선은

아무도 못 보게 처리합니다.”

도로시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자

표정이 바로 굳었다.

“황궁 하인 조달 명부에서 본 얼굴이에요.

지난달에 새로 들어온 애예요.”

“기억할 만한 연줄은.”

“지금은 모르겠어요.

근데 이름 찾는 건 금방 됩니다.”

카시안이 덧붙였다.

“귀 뒤쪽 확인해 보세요.

임시 기동자들은

대개 거기 봉침 자국이 남습니다.”

도로시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녀는 하인을 부축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연회장 안에선 춤추고,

밖에선 사람 깨우고.

아주 수준 높은 밤이네.”

도로시가 남자를 데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정원엔 다시 둘만 남았다.

멀리서 음악이 들렸다.

유리잔 부딪히는 소리,

웃음,

그리고 물소리.

연회는 계속 흘러가는데,

정원 안쪽 시간만

따로 느려진 것 같았다.

아델린은 그런 밤이 싫었다.

정리해야 할 사건은 많은데,

머릿속에 가장 먼저 남는 장면이

연회장 한가운데서

카시안이 자기 쪽으로 걸어왔던 순간인 밤.

발걸음.

모든 게 여전히 연회처럼 들렸지만,

실제론 전혀 아니었다.

아델린은 은침을

손수건에 감싸며 말했다.

“이제 확실해졌군요.”

“무엇이요.”

카시안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더 가라앉아 있었다.

“혼담 카드도,

계약자 기동도,

따로 노는 선이 아닙니다.

둘 다 같은 목적이에요.”

“저를 흔들거나.”

“저와 떼어 놓거나.”

두 문장이 거의 동시에 나왔다.

잠깐의 정적.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같은 결론에 닿았다는 사실만

남았다.

아델린은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럴수록 더 분명해졌다.

지금 누군가는

카시안을 위험 자산으로 보이게 하거나,

사교 시장에 올려 다른 선으로 옮기거나,

둘 중 하나를 반드시 이루려 든다.

그리고 그 어느 경우든

아델린은 방해물이다.

카시안이 벤치 난간에

짧게 기대며 물었다.

“아까 후작부인 일.”

아델린은 그 말이 나올 줄 알고 있었다.

“네.”

“정말 그 사람 말이

거슬렸습니까.”

“그 질문은

이미 답을 들은 것 같은데요.”

카시안은 웃지 않았다.

“그래도 직접 듣고 싶었습니다.”

아델린은 손수건에 감싼 은침을

조금 더 세게 쥐었다.

도망칠 수도 있었다.

업무 얘기로 돌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거슬렸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을

거래용 카드처럼 말한 것도,

당신이 어느 선에 설지

자기들이 정할 수 있다고

당연하게 여긴 것도.”

카시안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아델린은 잠깐 숨을 고르고

더 낮게 덧붙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불쾌하게 반응했다는 것도요.”

카시안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 짧은 침묵이

이상하게 더 압박처럼 느껴졌다.

그는 농담으로 넘길 수도 있었다.

업무 얘기로 덮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카시안의 시선이

아주 천천히 그녀 얼굴로 올라왔다.

“불쾌하게.”

“네.”

“업무적으로요.”

그 말에

아델린은 거의 웃을 뻔했다.

웃음이 아니라

기막힘에 가까운 호흡이었다.

“지금 그 질문은

조사보고서 형식입니까.”

카시안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가능하면요.”

“그럼 답도 보고서 형식으로 하죠.”

아델린은 일부러

차갑고 정돈된 어조를 골랐다.

“해당 상황은

비효율적 자산 재배치 시도로 판단됩니다.

대상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외부 협상 카드로 전환하려는 정황이 있고,

본 팀장은 그 방식에

현저한 불쾌감을 느꼈습니다.”

“대상자가

협조적이지 않게

다른 선으로 이동하려 들었을 경우도

포함됩니까.”

아델린이 눈을 좁혔다.

“감시관.”

“네.”

“지금 그건

반문입니까,

확인입니까.”

카시안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둘 다일 수 있겠군요.”

카시안은 몇 초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물었다.

“현저한.”

“네.”

“그 정도면

꽤 심각하군요.”

“심각합니다.”

아델린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특히 대상자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생각이 없고,

제 쪽으로 걸어오는 습관까지 있다면

더 그렇겠죠.”

“그건 꽤

구체적인 분석이군요.”

“감시관도

상당히 정확하게

반문하고 있군요.”

이번엔 카시안이

정말로 웃었다.

짧고 낮은 웃음.

“그건 보고서치곤

개인 의견이 많이 섞였군요.”

“감시관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아델린이 즉시 받아쳤다.

“오늘 밤은 동행 쪽입니다.

이미 선 쪽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한 건

순수한 현장 판단이었습니까.”

카시안의 웃음이

이번엔 조금 늦게 잦아들었다.

그는 분수대 물결을 보며

낮게 말했다.

“절반은.”

“나머지 절반은.”

“그걸 지금 말하면

다음 회의에서 불리할 것 같습니다.”

아델린은 눈썹을 올렸다.

“그럼 회의록 비공개로 넘기죠.”

카시안은 아주 짧게

숨을 웃음처럼 흘렸다.

“팀장님은 가끔

위험할 정도로 협상적입니다.”

“감시관은 가끔

위험할 정도로 늦고요.”

그 말이 떨어진 뒤,

둘 다 잠깐 말을 멈췄다.

누가 늦었는지,

무엇을 말하지 않았는지

둘 다 너무 잘 알고 있어서였다.

아델린은 숨을 한번 고르며

고개를 저었다.

“비겁하군요.”

“업무적 신중함입니다.”

“그 표현이 오늘따라

유독 많네요.”

그들은 잠시

서로를 마주 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원 바깥 음악은

여전히 흐르고 있는데,

이곳의 정적은

그보다 훨씬 짙었다.

아델린은 문득 깨달았다.

둘은 지금

질투를 질투라고 말하지 않고,

선택을 선택이라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거의 같은 곳까지 와 있었다.

이건 다툼이라기보다

에둘러 확인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누가 더 먼저 인정하느냐의 문제.

결국 먼저 시선을 거둔 건

아델린이었다.

“정리하죠.”

“네.”

“하나 더 있습니다.”

아델린이 덧붙였다.

“빚을 진 하인을 골라

약식 기동을 걸었다는 건,

상대가 황궁 하부 인력 명부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선이라는 뜻입니다.”

카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교국 단독으론 어렵겠군요.”

“네.

친위든,

조달이든,

인사 기록이든

적어도 한 군데는 더 얽혀 있습니다.”

“첫째,

연회장엔 둘을 떼어 놓으려는 선이 있습니다.

둘째,

그 선은 휴면 계약자 기동까지

같이 쓰고 있습니다.

셋째,

당신을 사교 카드로 올리려는 시도는

단발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카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넷째도 있군요.”

“뭡니까.”

“팀장님은 생각보다

후작부인을 싫어하십니다.”

아델린은 이번엔 정말

웃음을 참지 못했다.

짧고 마른 숨이

웃음처럼 새어 나왔다.

“싫어합니다.”

그녀가 인정했다.

“아주 많이.”

카시안은 그 대답을 듣고

이상할 정도로 편안해진 얼굴을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정원 출입문 안쪽에서

쪽지 하나가 미끄러지듯 날아와

대리석 바닥에 떨어졌다.

둘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문밖엔 아무도 없었다.

카시안이 먼저 다가가

쪽지를 주워 펼쳤다.

아델린도 곧 옆에 섰다.

짧은 문장이었다.

`가면 뒤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두 이름을 축하합니다.`

그 아래,

필체를 일부러 흐트러뜨렸지만

분명히 두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아델린 케스트.

카시안 렘브란트.

익명 투서였다.

그리고 그건

이미 황궁 안을 돌기 시작한 뒤에야

둘 손에 들어온 종류의 쪽지였다.

늦게 손에 들어온 소문은

대개 정정할 기회보다

확산 속도가 더 빠르다.

누군가는 이미

둘의 이름을 한 줄에 묶었고,

이제 황궁은 그 문장을

사실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어떻게 이용할지의 문제로 다루기 시작할 것이다.

그건 단순한 험담보다

훨씬 성가신 종류의 공격이었다.

부정하면 변명처럼 남고,

침묵하면 인정처럼 남는다.

무엇보다

당사자보다 먼저

관계를 정의해 버린다는 점에서

가장 비열했다.

그런 소문은

대개 진실보다 오래 남는다.

그리고 진실보다 먼저 사람을 다치게 한다.

황궁은 그런 방식에 유난히 능숙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늘 그랬다.

결국.

둘의 이름이

함께 적힌 익명 투서가

황궁에 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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