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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어나는 기사들 일러스트

# 깨어나는 기사들

깨어나는 기사들

연회는 끝나지 않았지만

아델린은 더 남지 않았다.

남을 이유보다

나가야 할 이유가

훨씬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가면궁 정문을 나설 때,

음악은 여전히

등 뒤에서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제 그 소리는

사교가 아니라 지연으로 들렸다.

황궁이 사람들을

안쪽에 붙들어 두는 동안,

바깥에선 다른 종류의 밤이

깨어나고 있었다.

마차에 오르자마자

아델린은 가면을 벗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이마를 스쳤다.

도로시는 이미

외곽 보고를 정리한 쪽지를

무릎 위에 펼쳐 두고 있었다.

남동 외곽 숙소.

하부 창고 구역.

구시가지 경계.

그리고 세 지점 모두

비슷한 봉침 흔적,

비슷한 발작 전조,

비슷한 보고 지연.

카시안은 그 목록을 보며

짧게 말했다.

“한 곳은 미끼입니다.”

“어디죠.”

“하부 창고.”

아델린이 눈을 들었다.

“이유는.”

“황궁에서 가장 가까워서

당연히 먼저 인력이 붙습니다.

너무 쉽게 찾히는 지점이에요.”

도로시가 쪽지를 뒤적였다.

“실제로도 그래요.

하부 창고는

이미 친위 소대가 움직였대요.”

아델린은 곧장 계산했다.

친위가 붙은 곳은

오히려 지금 당장은

가장 덜 급할 수 있다.

문제는 친위가 늦게 갈 곳,

혹은 가더라도

무엇을 봐야 하는지 모르는 곳.

“남동 외곽 숙소와

구시가지 경계.”

카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둘이 진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차가 황궁 외곽 돌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창밖의 등불은

중심가를 벗어날수록 빨리 줄어들었다.

황궁 안쪽의 금빛이 사라지고 나자,

도시는 생각보다

훨씬 더 어두웠다.

아델린은 지도판을 펼쳤다.

“갈라집니다.”

도로시가 바로 고개를 들었다.

카시안도 동시에 말했다.

“안 됩니다.”

아델린은 시선을 들었다.

“이유를 말해 보죠.”

“지금은 누가 어디를

표적으로 잡는지 확실치 않습니다.”

카시안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둘을 떼어 놓으려는 선이

연회장 안에서 이미 드러났습니다.

외곽까지 나와서

굳이 그 의도에 맞춰 줄 필요는 없습니다.”

아델린은 바로 반박했다.

“그렇다고 한 곳만 보면

나머지 한 곳은 비게 됩니다.”

“도로시가 움직일 수 있습니다.”

“도로시는 현장 제압보다

연결선 확인에 더 강합니다.”

도로시는 둘 사이를 보고

손을 들었다.

“참고로 저는

지금 되게 싫은 타이밍에

정확한 말을 해야 하는 입장이에요.”

아델린이 턱짓했다.

“말하세요.”

“갈라져야 하는 건 맞아요.

근데 둘이 갈라지면

제가 그 중간을 메워도

순간 대응이 안 될 수도 있어요.”

짧은 정적.

문제는 명확했다.

한쪽을 택하면

다른 쪽이 빈다.

둘이 나뉘면

적이 원하는 그림에 가까워질 수 있다.

카시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남동 외곽은 제가 갑니다.”

아델린은 즉시 고개를 저었다.

“구시가지 경계가 더 위험합니다.”

“그래서 팀장님이 가면 안 됩니다.”

그 문장은

너무 빨라서

거의 본심처럼 튀어나왔다.

마차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아델린은 느리게 되물었다.

“제가 가면 안 된다고요.”

카시안은 이번엔

물러서지 않았다.

“네.”

“감시관.”

“구시가지 경계는

한 번 틀어지면 민간인 밀집 지역으로 번집니다.

약식 기동이 아니라

실제 충돌이 날 가능성이 높아요.”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으면서

굳이 가시겠다는 게 문제죠.”

도로시는 숨도 크게 못 쉬고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이건 더는 단순한 배치 논의가 아니었다.

아델린은 차갑게 말했다.

“지금 제 안전을 이유로

배치 우선순위를 바꾸자는 겁니까.”

카시안도 차갑게 받았다.

“지금 팀장님을

가장 위험한 지점에 보내는 게

정답이라고 믿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델린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오히려 더 차분해졌다.

감정이 너무 선명해지면

목소리는 식는다.

지금이 딱 그랬다.

“그럼 정답을 고치죠.”

그녀가 낮게 말했다.

“지금 중요한 건

누가 더 위험하냐가 아니라,

누가 어느 위험을 더 빨리 끊을 수 있느냐입니다.”

“믿음은 배치 기준이 아닙니다.”

“그럼 효율로 말하죠.”

그는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였다.

“구시가지 경계 쪽 기동은

표적 반응이 빠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럴 때 저 같은 계열이

더 빨리 눌러집니다.”

아델린은 입을 다물었다.

그 주장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늘 그가

가장 위험한 쪽이니까.

도로시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전 하부 창고 들러서

친위 보고만 확인하고 바로 빠질게요.

두 분은 남동 외곽이랑 구시가지 경계로 갈라져요.

대신 연락 간격을 아주 짧게.”

아델린은 지도판 위에 손을 올렸다.

카시안은 여전히

그녀 대답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 눈빛이

더 짜증났다.

자기 대신 더 위험한 곳을 택하려는 사람의

익숙한 눈빛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델린이 먼저 말했다.

“좋습니다.

전 구시가지 경계로 갑니다.”

카시안이 거의 동시에 받아쳤다.

“안 됩니다.

제가 그쪽으로 갑니다.”

“이유는 방금 들었습니다.”

“그럼 받아들이셔야죠.”

“감시관.”

아델린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지금은 지시가 필요합니까.”

카시안은 한 박자 늦게 답했다.

“아뇨.

그런데 이번엔

받아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마차 안 공기가

단단하게 굳었다.

도로시는 아예

창밖만 보고 있었다.

아델린은 처음으로

그가 자신 말에

정면으로 버티는 걸 느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화나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웠다.

그가 이렇게까지 버티는 이유가

너무 명확해서.

“제가 구시가지로 갑니다.”

아델린이 다시 말했다.

“그리고 당신은 남동 외곽.”

카시안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팀장님.”

“말로 안 되면

업무로 정리하죠.

구시가지는 현장 판단과 군중 통제가 중요합니다.

남동 외곽은

표적 고정이 걸린 계약자를

빠르게 눌러야 할 가능성이 높고요.”

그녀는 일부러

더 사무적인 어조를 골랐다.

“각자 강한 쪽이 다릅니다.”

카시안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 말도 틀리진 않았다.

짧은 침묵 끝에

그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전혀 안심한 얼굴은 아니었다.

아델린도 그걸 알았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났다.

자기가 보내 놓고,

자기가 화가 나는 식의 감정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아마 이것이

브리프에 적혀 있던

`견디지 못한다`는 상태의 시작일지도 몰랐다.

마차는 남동 외곽 갈림길에서 멈췄다.

도로시가 먼저 내려

다른 통로로 방향을 틀었다.

“하부 창고 확인하고

바로 보고 넣을게요.”

카시안도 문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아델린은 그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마음에 안 드는 방식으로

이 밤이 갈라질 것 같았다.

“감시관.”

그가 돌아봤다.

아델린은 아주 짧게 말했다.

“무리하지 마세요.”

카시안의 시선이

잠깐 흔들렸다.

“그 말은

제가 하려 했습니다.”

“먼저 한 쪽이 이기는 겁니다.”

그는 정말 아주 짧게 웃었다.

“그럼 이번엔

팀장님이 이긴 걸로 하죠.”

그리고는 더 말하지 않고

밤 안으로 사라졌다.

남동 외곽 쪽으로 사라지는

그 뒷모습이 어둠에 먹히는 순간,

아델린은 자기 선택이

논리적으로는 맞아도

감정적으로는 전혀 납득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되돌릴 순 없었다.

지금 필요한 건

불안이 아니라 속도였다.

갈림길을 돈 직후,

수정편이 짧게 떨렸다.

카시안이었다.

“이쪽은 숙소 세 채 반응입니다.

표적선이 얕게 걸려 있어요.

완전 기동 전이지만

묶인 사람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뒤쪽에서

창문 깨지는 소리와

대피를 유도하는 고함이

희미하게 섞여 들렸다.

아델린은 곧장 물었다.

“혼자입니까.”

짧은 정적.

“지금은.”

그 두 글자가

오늘 밤 가장 마음에 안 드는 보고였다.

“민간인부터 빼세요.”

카시안이 먼저 말했다.

“팀장님 쪽은 좁을 겁니다.

골목에서 한 번 틀어지면

수습이 더 어려워요.”

연결은 금방 끊겼다.

아델린은 수정편을 쥔 채

이를 악물었다.

구시가지 경계는

예상대로 혼란스러웠다.

정식 기사단이 붙기엔

좁고,

민간인이 빠지기엔 늦은 시간이었다.

낡은 숙소들 사이로

등불이 몇 개 흔들리고 있었고,

구석마다 문을 잠그는 소리와

불안한 속삭임이 겹쳐 들렸다.

아델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작은 소동 하나가 터져 있었다.

빵집 앞에서

청년 둘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그들 위로 낡은 갑옷 조각을 걸친 남자가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골목 양옆 창문마다

누군가 커튼을 아주 조금씩만 걷고

밖을 보고 있었다.

도와주러 나오진 못하지만,

누가 자기 집 문 앞에서

쓰러질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눈.

연회장에서 받던 시선과는

전혀 다른 무게였다.

기사였다.

아니,

적어도 한때는 기사였던 몸이었다.

흉갑 일부에 남은 문장,

형태만 남은 견장,

그리고 눈동자보다 먼저 반응하는 손.

그 남자는 살아 있는 적을 찾는 게 아니라

오래전 명령을 다시 듣고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뒤로.”

아델린이 주변 사람들에게 외쳤다.

“모두 건물 안으로 들어가세요.

문 잠그고,

창에서 고개 내밀지 마십시오.”

그 목소리는

이런 현장에서 이상하리만치 잘 먹혔다.

사람들이 머뭇거리다가도

결국은 움직였다.

아델린은 곧장

길목 하나를 더 짚었다.

“아이 있는 집부터 먼저.

등잔은 바닥에 내려두고,

불빛은 창 쪽으로 두지 마세요.”

완전한 질서는 아니었지만

최소한 패닉은 막혔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컸다.

문제는 기사 쪽이었다.

그는 아델린을 보자

고개를 아주 조금 틀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입에서

거의 깨진 금속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검…”

아델린의 심장이

한 박자 세게 뛰었다.

그건 자신을 향한 말이 아니었다.

누군가 다른 표적을 찾는 반응.

아직 이 기사 역시

카시안 계열 명령선에

묶여 있을 가능성이 컸다.

즉,

남동 외곽도 지금쯤

같은 방식의 표적 기동이

터지고 있을 수 있다.

아델린은 이를 악물었다.

이게 싫었다.

누가 더 위험한 곳에 있느냐가

머릿속을 먼저 점유하는 이 상태가.

그녀는 곧장

소지한 억제 인장을 꺼냈다.

금속 인장을 바닥에 눌러

임시 봉쇄 원을 펼친 뒤,

기사의 동선을 좁혔다.

완전 제압은 못 한다.

하지만 최소한

민간인 쪽으로 번지는 것만은 막을 수 있다.

기사는 봉쇄 원을 밟는 순간

분노한 짐승처럼 몸을 틀었다.

낡은 검이 허공을 갈랐다.

아델린은 바로 뒤로 물러서며

각도를 바꿨다.

정면 대결은 불리하다.

이럴 땐 시간이 필요하다.

기사는 다시 검을 들었다.

낡은 칼날인데도

움직임은 무뎠다기보다

이상하게 예측이 어려웠다.

현재의 검술이 아니라

오래전 전장 감각이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식이었다.

무게 중심이 무너진 것 같다가도,

순간적으로만

가장 위험한 각도로 검끝이 살아났다.

아델린은 두 번째 인장을

바닥 대신 벽 쪽에 눌렀다.

골목 한쪽에

짧은 충격막이 생기며

검의 궤적을 살짝 틀었다.

완전 방어는 아니지만

민가 쪽 창문으로

검기가 튀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다.

기사의 몸이

그 작은 저항에도 과하게 반응했다.

누군가에게서

방해를 받으면

더 거칠게 되받아치도록

세팅된 기동이었다.

아델린은 그제야 확신했다.

이건 단순 시험이 아니다.

반응 속도뿐 아니라

어디까지 민간 피해를 감수하는지까지

재고 있다.

“비열하군.”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기사는 대답 대신

부서진 호흡을 흘렸다.

그리고 다시,

아주 느리게

그 깨진 금속 같은 소리로 말했다.

“검…

어디…”

카시안을 찾고 있다.

그 사실이

이 골목의 위험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만약 이 기동이

표적 탐색형이라면,

이곳에서 시간을 끄는 것 자체가

남동 외곽의 다른 기동과

보조를 맞추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아델린은 바로 판단을 바꿨다.

제압보다 먼저

기동의 리듬을 끊어야 한다.

그녀는 억제 인장 대신

인사팀 봉인침 두 개를 꺼내

기사 발 앞 바닥에 던졌다.

짧은 청빛 선이

바닥에 교차로 그어졌다.

기사의 발이

그 선을 밟는 순간

무릎이 아주 미세하게 꺾였다.

완전 정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한 박자면 충분했다.

아델린은 곧장 앞으로 붙어

검 손잡이를 비틀 듯 쳐 냈다.

칼이 돌바닥을 긁으며

옆으로 미끄러졌다.

기사의 빈손이

반사적으로 그녀 목 쪽을 향해 날아들었다.

아델린은 몸을 틀어 피했지만

소매 끝이 찢겼다.

가까웠다.

정말 간발의 차이였다.

창문 안쪽에서

누군가 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짧은 기척이

오히려 아델린을 더 냉정하게 만들었다.

지금 여기서 밀리면

공포가 먼저 퍼진다.

그녀는 한 손으로

두 번째 인장을 준비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

통신 수정편을 꺼냈다.

“도로시.”

수정편이 한 번 깜빡였다.

잡히지 않는다.

아델린의 턱이 굳었다.

그 순간,

기사의 몸이

갑자기 멈췄다.

아니,

멈춘 게 아니라

무언가를 본 사람처럼

천천히 돌아섰다.

골목 입구 쪽.

어둠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긴 외투,

한쪽 어깨만 무너진 견갑,

그리고 이상하게 익숙한 보행.

그 사람은 완전히 가까워지기 전에도

이미 카시안을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아델린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직접 본 적은 없다.

이름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 얼굴엔

누군가를 오래 기다린 사람만이 갖는

기묘한 확신이 있었다.

놀라지도,

머뭇거리지도 않고

마치 결국 여기 닿을 줄 알았다는 듯

곧게 걸어오는 얼굴.

그 확신이

골목의 공기까지 바꿔 놓았다.

이건 우연히 마주친 얼굴이 아니었다.

누군가 이 밤의 다음 수를 직접 들고 나온 얼굴이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너무 분명해서.

피할 수 없었다.

이번엔.

결국.

깨어난 계약자 중

카시안을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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