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호 대상
보호 대상
그 얼굴은 놀라지 않았다.
카시안이 이 밤 어딘가에
반드시 올 거라고
처음부터 알고 있던 사람처럼.
골목 입구에서 걸어 나온 남자는
기사라기보다
지워지다 만 표식에 가까웠다.
견갑 한쪽은 깨져 있었고,
외투 아래로 드러난 흉갑엔
지금 황실에선 더 쓰지 않는 문양이 남아 있었다.
너무 오래돼
의미가 먼저 사라진 문양.
그런데도 카시안을 아는 얼굴이라는 건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는 아델린을 보지 않았다.
아델린 앞에 쓰러진 기동 기사도,
창 안쪽에서 숨을 죽이는 사람들도,
지금 자기 팔에 남은 상처도 보지 않았다.
그 시선은 처음부터
여기 없는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검은.”
갈라진 목소리가
돌벽 사이를 긁었다.
“왜 아직 안 왔지.”
아델린은 봉인침을 쥔 손을 낮추지 않았다.
“누구죠.”
남자의 눈동자가
그제야 아주 늦게
아델린 쪽으로 돌아왔다.
정확히 본다기보다
현재와 과거를 겹쳐 보는 눈.
“인사원…”
그는 아델린 소매 끝 문양을 본 뒤
이상하게도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그 검을
이리 보내지 마.”
아델린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 말,
누가 시켰죠.”
남자의 숨이
부서진 종소리처럼 떨렸다.
“찾는 선이 돌아.
오면…
여기 붙은 것들이
전부 그쪽으로 선다.”
카시안을 찾는 선.
아델린은 질문을 하나 더 던지려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골목 끝 숙소 건물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터졌다.
비명도 함께였다.
위층 창 하나가
안쪽에서 바깥으로 밀려 깨졌고,
검은 문장선이
불길처럼 난간 아래로 번졌다.
창문 틈에
어린아이 손이 잠깐 보였다.
질문은 거기서 끝났다.
아델린은 즉시 몸을 돌렸다.
“창가 쪽 사람부터 뺍니다.”
골목 양옆 문이
아직 반쯤만 열려 있었다.
사람들은 나오지도 못하고,
숨지도 못한 채
안쪽에서 상황만 보고 있었다.
아델린은 곧장 외쳤다.
“모두 안으로 물러서세요.
문 잠그고,
아이부터 바닥 쪽으로 붙이십시오.
창 앞에 서 있지 마세요.”
그 목소리는
황궁 안보다
이런 골목에서 더 잘 먹혔다.
대답보다 움직임이 먼저 나왔다.
그 사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기동 기사가
다시 몸을 일으키려 했다.
아델린은 뒤도 보지 않고
봉인침 하나를 발목 아래에 던졌다.
청빛 선이
짧게 걸리며
기사의 무릎을 한 박자 늦췄다.
완전 제압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감시관.”
아델린은 통신 수정편을 잡았다.
응답은 두 번 늦게 들어왔다.
뒤편에서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섞였다.
카시안의 숨은
평소보다 거칠었다.
“듣고 있습니다.”
“이쪽 오지 마세요.”
짧은 정적.
“그 말은
항상 설득력이 약합니다.”
“지금은 표적 고정형입니다.
당신을 찾는 선이 돌아요.”
카시안 쪽에서도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그는 아주 짧게 욕을 삼켰다.
“이쪽도 비슷합니다.”
“민간인만 빼고,
깊게 들어가지 마세요.”
“팀장님도 같은 지시를
받아들일 생각이 있으십니까.”
“지금은 제가 묻는 쪽입니다.”
카시안이 낮게 웃는 숨을 흘렸다.
이런 때에도.
그게 마음에 안 들면서도
이상하게 숨을 붙들어 줬다.
“숙소 세 채 중 둘은 정리했습니다.
마지막 한 곳만 비우고 움직이죠.”
“움직이지 말고.”
아델린은 바로 잘랐다.
“그쪽에서 끝내요.”
그러나 수정편 너머에선
대답 대신 거친 숨만 들렸다.
아델린은 그 침묵을 기억 속에 눌러 두고
숙소 건물 앞으로 달렸다.
문은 안쪽에서 반쯤 틀어진 채
걸려 있었다.
1층 복도엔 이미
옅은 연기와
문장 반동 냄새가 섞여 있었다.
불 자체는 크지 않았다.
대신 오래된 명령선이
벽 안쪽을 타고 기어 다니듯 살아 움직였다.
이런 반응은
대개 사람보다 구조물을 먼저 무너뜨린다.
기디온 마르체가 나타난 건
딱 그때였다.
감찰조정팀 짙은 외투 위에
급히 둘러 걸친 현장용 망토.
뒤엔 소수 인원 둘.
도와주러 왔다기보다
기록하러 온 얼굴이었다.
“팀장님이 여기까지 직접.”
기디온의 시선이
숙소보다 먼저
골목 상황 전체를 훑었다.
“오늘 밤은
정말 보고서가 풍성하겠군요.”
아델린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풍성함은 나중에 즐기세요.
창가에 아이가 있습니다.”
“기동자도 보이는데요.”
“둘 다 빼죠.”
기디온은 한 박자 늦게 웃었다.
“민간인 먼저가 상식 아닙니까.”
“저 사람들도 피해자입니다.”
아델린은 숙소 문을 밀어 젖히며 말했다.
“죽이러 온 게 아니라
살리러 왔습니다.”
기디온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그녀와 다투는 쪽이
더 불리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뒤 인원에게 턱짓했다.
“창문 아래 받침부터.”
그 정도는 쓸 수 있었다.
아델린은 1층 안으로 들어섰다.
복도 끝 방 하나가
완전히 잠겨 있었고,
그 문 앞을
또 다른 기동 계약자가 서성였다.
기사단 제복은 아니었다.
그러나 손목과 목 아래에 걸린 문장선이
일반인과는 분명히 달랐다.
누군가 오래전
보조 계약 축에 묶어 둔 사람.
노기사도 아니고,
완전한 기사도 아니고,
아직은 젊은 서기쯤으로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는 문을 열려는 것도,
방 안 사람을 죽이려는 것도 아니었다.
문 앞을 지키듯 서서
계속 같은 방향만 보고 있었다.
바깥.
정확히는 카시안이 올 법한 방향.
아델린은 이를 악물었다.
여기저기 사람을 묶어 두고,
그 검이 어디로 먼저 움직이는지 본다.
비열한 방식이었다.
기디온이 뒤에서 낮게 말했다.
“저건 묶고 지나가죠.”
아델린은 봉인 인장을 손에 쥐었다.
“묶을 겁니다.
지나가진 않고.”
그녀는 문장선 흐름을 먼저 읽었다.
직접 공격형이 아니다.
경계선 고정.
표적이 오면 반응이 커지는 식.
즉,
지금 이 사람을 무리하게 건드리면
방 안 민간인 쪽으로 반동이 튈 수 있다.
아델린은 숙소 바닥에
작은 인장 셋을 연달아 눌렀다.
첫 번째는 문.
두 번째는 복도 중간.
세 번째는 계단 난간.
얕은 삼각 봉쇄.
완전한 결계는 아니지만,
반동 방향만 바꾸기엔 충분했다.
문장선이 한 번 꺾이며
기동 계약자의 어깨가 크게 흔들렸다.
아델린은 그 틈에
앞으로 붙었다.
손목을 잡는 대신
팔꿈치 안쪽을 눌러
움직임을 안으로 접게 했다.
상대는 곧바로 반항하지 못했다.
오래된 명령은
새로운 고통보다
방향 상실에 더 약했다.
“지금입니다.”
기디온이 뒤 인원에게 소리쳤다.
그들이 문을 열자
안쪽에서 여인 하나와
아이 둘이 쏟아져 나왔다.
아이 하나는 울지도 못했다.
놀람이 먼저 꽉 차
소리까지 막힌 얼굴이었다.
아델린은 짧게 말했다.
“계단 말고 창 쪽.
밖에서 받습니다.”
기디온이 반문했다.
“왜 굳이.”
“계단 아래 문장선이 더 짙어요.”
그제야 그도 보였다.
불꽃이 아니라
숨은 선이었다.
한 번만 더 자극되면
아래층 전체가
직명 반동으로 터질 수 있는 선.
기디온은 얼굴을 굳히고
즉시 방향을 틀었다.
똑똑해서 더 성가신 종류였다.
상황을 이해하면 협조한다.
대신 그 모든 판단을
나중에 자기 기록으로 남긴다.
여인과 아이들이 빠져나간 직후,
복도 끝에서
낡은 금속 울림이 한 번 더 났다.
골목에서 보았던 그 남자였다.
언제 들어왔는지,
그는 이미 안쪽 벽을 짚고 서 있었다.
아까보다 더 창백했고,
숨은 더 불안정했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눈이 또렷했다.
그는 아델린보다
복도 바닥 문장선을 먼저 보았다.
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
“묶는 선이 아니다.
부르는 선이야.”
아델린이 즉시 물었다.
“누굴.”
남자는 마른 입술을 핥았다.
“왕좌의 검.
오면…
남은 것들이 전부 고개를 든다.”
“왜.”
그는 대답 대신
자기 가슴 쪽 낡은 견갑을 만졌다.
거기엔 깨진 문장이 반쯤 남아 있었다.
부관대.
정확한 글자는 지워졌지만
의미만은 읽혔다.
아델린이 그 문양을 보는 순간,
남자의 얼굴이 잠깐 일그러졌다.
기억이 아니라 고통에 가까운 표정.
“살아 있는 자가 아니라…
지휘선으로 묶어 둔 거야.”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숙소 바닥 전체가
갑자기 크게 떨렸다.
벽 안쪽을 타고 돌던 문장선이
한꺼번에 위층으로 치솟았다.
아델린은 곧장 고개를 들었다.
2층.
아직 안에 사람이 더 있다.
기디온이 거의 동시에 외쳤다.
“위층 붕괴!”
천장 먼지가 쏟아졌다.
아델린은 망설이지 않았다.
“창밖 인원 둘은 아래서 받치고,
나머지 한 명은 저 기동자와
저 남자 둘 다 묶어 끌고 나가세요.”
기디온의 눈썹이 올라갔다.
“둘 다?”
“둘 다.”
“팀장님.”
“피해자는 숫자로 나누지 않습니다.”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아델린은 이미 계단을 밟고 있었다.
2층 복도는 1층보다 더 나빴다.
문장선이 천장 목재를 타고 돌며
작은 번개처럼 튀었다.
방 두 개 문이 열려 있었고,
안쪽에서
노부부와 어린 시동 하나가
서로를 붙든 채 떨고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 방엔
기동이 절반쯤만 걸린 기사 하나가
무너진 침대 다리에 깔려 있었다.
민간인 셋.
계약자 하나.
셋이 아니라 넷이었다.
아델린은 곧장 판단했다.
“창가 방 먼저.
침대 판자를 떼서 들것으로 씁니다.”
노인은 겁에 질린 얼굴로
기사 쪽을 가리켰다.
“저 사람은…”
“살립니다.”
아델린이 잘랐다.
“다 같이 나갑니다.”
그 짧은 한마디가
오히려 사람을 움직이게 했다.
망설임은
대개 선택을 못 하는 사람 얼굴에서 커진다.
지금 아델린은
선택을 마친 사람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바깥에서
수정편이 다시 떨렸다.
이번엔 카시안이었다.
“어디십니까.”
아델린은 짧게 답했다.
“구시가지 동편 숙소.
오지 말라고 했죠.”
수정편 너머로
카시안이 거칠게 숨을 쉬었다.
“그 말 들으면
왜 더 와야 할 것 같습니까.”
“농담할 때 아닙니다.”
“그래서 농담이 아닙니다.”
뒤에서 사람 목소리와
금속 마찰음이 겹쳤다.
그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아델린의 턱이 굳었다.
“카시안.”
이름이 먼저 나왔다.
그 사실을
본인만 가장 늦게 알았다.
수정편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는 곧
더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 선이 저를 찾으면,
제가 가야 끊깁니다.”
“그 말은
당신이 미끼라는 뜻이기도 하죠.”
“네.”
너무 쉽게 인정했다.
아델린은 그 짧은 긍정이
오늘 밤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니 오지 마세요.”
“그쪽에 팀장님이 있잖습니까.”
그 한마디는
논쟁보다 빨리 아델린 숨을 막았다.
아델린은 대꾸하지 못했다.
그 사이
위층 바닥이 다시 꺼졌다.
창틀 하나가
바깥으로 튀며
노부부 쪽으로 기울었다.
아델린은 곧장 몸을 던져
창틀을 옆으로 밀어냈다.
팔 안쪽이 찢어지는 통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아직 버틸 만했다.
문제는 기사 쪽이었다.
침대 다리에 깔린 채
반쯤 의식을 잃고 있던 그가
갑자기 눈을 떴다.
시선은 아델린이 아니라
창밖 골목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른 입술 사이로
거의 반사처럼 단어가 흘렀다.
“대장…”
왔다.
그걸 알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음 순간,
골목 아래에서
칼날이 벽을 스치듯 울렸다.
아델린은 창밖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카시안이었다.
오지 말랬는데도.
기동선은 그 즉시 반응했다.
위층 목재 전체에 걸린 문장선이
한 번에 살아났다.
아델린은 이를 악물었다.
“다들 엎드리세요!”
늦었다.
천장 한가운데가
검은 금으로 갈라지며
무너져 내렸다.
아델린은 아이 쪽으로 먼저 움직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빨랐던 건
창문을 깨고 들어온 검은 그림자였다.
카시안은 유리 파편을 그대로 뚫고 들어와
아이와 노인을 한꺼번에 안쪽으로 밀어냈다.
동시에 다른 손으로
아델린 어깨를 잡아
무너지는 보 기둥 아래에서 끌어냈다.
정말 간발이었다.
아델린이 방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순간,
그가 있던 자리에
검은 쇠사슬 같은 문장선이
허공을 가르며 떨어졌다.
카시안은 피하지 못했다.
쇠사슬은 그의 왼쪽 어깨를 비껴 감아
뒤 벽까지 눌러 박았다.
금속이 아니라 명령선이었다.
찢기는 소리도,
숨 막히는 신음도
한 박자 늦게 왔다.
아델린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아주 잠깐.
그 짧은 공백이 오히려
무서웠다.
그녀는 거의 즉시
다시 움직였다.
“카시안.”
이번엔 더 낮고
더 분명했다.
카시안은 벽에 어깨를 찍힌 채
이를 악물고 웃으려 했다.
“살아 있습니다.”
“입 다물어요.”
그 말이
거칠게 튀어나왔다.
아델린은 바로 봉인침 셋을 꺼내
쇠사슬 형태 문장선 주위에 꽂았다.
그러나 선은 단순히 묶인 게 아니라
카시안을 기준으로
건물 전체를 다시 세우려는 축처럼 버티고 있었다.
즉,
억지로 뜯으면
위층 나머지가 먼저 무너진다.
기디온이 뒤늦게 2층으로 올라왔다.
그는 상황을 보자마자
얼굴이 싸늘해졌다.
“민간인부터 내립니다.”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기디온은 카시안을 보며
거의 반사처럼 덧붙였다.
“0001은 버틸 수 있겠죠.”
그 순간,
아델린은 생각보다 빨리 돌아봤다.
목소리는 차갑지도 않았다.
오히려 너무 또렷해서
더 위험했다.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세요.”
기디온의 눈이
짧게 좁아졌다.
아델린은 그 시선을 그대로 받으며 말했다.
“카시안부터 뺍니다.”
방 안 공기가
잠깐 멈춘 것 같았다.
기디온이 천천히 되물었다.
“민간인 셋이 아직…”
“민간인은 이미 아래에서 받습니다.
지금 저 선이 끊기면
건물도 같이 내려앉아요.”
아델린은 한 번 더,
이번엔 더 분명하게 말했다.
“그래서 지금은
카시안이 먼저입니다.”
아델린은 손을 떼지 않은 채
카시안 어깨에 걸린 명령선을 읽었다.
“그리고 저 사람도
피를 흘립니다.
불멸이라는 말로
이걸 방치하지 않습니다.”
그건 명령이면서
선언이었다.
기디온은 그 말보다
그녀가 망설임 없이
`카시안이 먼저`라고 말한 순간을
더 먼저 기록하는 얼굴을 했다.
그래도 몸은 움직였다.
현장에선
맞는 판단을 무시하기 어렵다.
그는 뒤 인원에게 외쳤다.
“창 쪽 먼저 정리!
어깨 선 풀리면 바로 아래로 넘긴다.”
아델린은 짧게 숨을 고른 뒤
카시안 눈을 봤다.
그가 버티는 얼굴은 익숙했다.
바로 그래서 더 싫었다.
늘 버티는 얼굴이라서.
늘 괜찮다고 말하는 얼굴이라서.
그녀는 낮게 물었다.
“손 감각.”
“아직 있습니다.”
“거짓말하면 잘라 냅니다.”
카시안이 아주 작게 웃었다.
“그건 원래 팀장님 전문 아닙니까.”
그 농담이
오히려 아델린을 더 빨리 움직이게 했다.
그녀는 두 번째 인장을
벽이 아니라
카시안 발아래에 눌렀다.
명령선은 사람을 축으로 삼아 버티고 있다.
그럼 축을 바꾸면 된다.
사람이 아니라 인장 쪽으로.
문장선이 한 번 흔들렸다.
카시안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아델린은 멈추지 않았다.
세 번째 봉인침을
쇠사슬 꺾이는 지점에 꽂았다.
청빛이 터졌다.
벽을 잡고 있던 검은 선이
아주 짧게 풀렸다.
“지금!”
기디온 쪽 인원이
카시안을 받쳐 끌어냈다.
그러나 선은 완전히 죽지 않았다.
풀린 반동이
이번엔 바닥을 향해 내려갔다.
아델린은 즉시 돌아서
아직 못 움직인 기사 쪽으로 몸을 던졌다.
카시안이 이를 악물고 외쳤다.
“팀장님, 오른쪽!”
그 목소리에
아델린은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무너진 서까래 하나가
방금 전까지 그녀가 있던 자리를 찍고 지나갔다.
그 짧은 틈에
기동 기사도,
시동도,
노부부도 모두 창 쪽으로 밀려났다.
결국 방 안에 남은 건
아델린과 카시안 둘뿐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둘과
골목에서 들어온 그 옛 기사 하나.
그는 방 문턱에 기대선 채
방금 전부터 계속 카시안만 보고 있었다.
명령선이 조금 잦아든 지금,
그 얼굴은 오히려 더 또렷했다.
그는 카시안에게 손을 뻗다 말고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부관…”
카시안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었다.
농담도,
비꼼도,
숨 돌릴 틈도 없는 얼굴.
“누구지.”
그 남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자기 견갑 안쪽을 뜯어
반쯤 타 버린 금속 표식을 건넸다.
이름 부분은 긁혀 나가 있었다.
남은 건 계급 표식 한 조각과,
부관대 문양 절반.
카시안은 그걸 보는 순간
손끝이 아주 잠깐 멈췄다.
아델린은 그 짧은 멈춤을 놓치지 않았다.
이건 단순한 옛 기사 하나가 아니다.
다음에 봐야 할 선이다.
그러나 지금은
묻는 순간이 아니었다.
숙소 전체가 마지막으로 크게 기울었다.
기디온이 창밖에서 소리쳤다.
“둘 다 지금!”
카시안은 상처 난 어깨를 감싼 채
먼저 아델린 쪽을 봤다.
아델린은 그 시선을 미리 잘랐다.
“이번엔 제가 먼저 갑니다.
당신은 그 기사 데리고 뒤따라요.”
“좋습니다.”
대답은 의외로 빨랐다.
그녀가 창틀을 넘는 순간,
뒤에서 카시안이
그 옛 기사의 허리를 받쳐 드는 기척이 들렸다.
결국 셋 다 살아서 나왔다.
골목 바깥 공기는
안보다 차가웠고,
그래서 더 또렷했다.
민간인은 이미 아래쪽으로 빠져 있었고,
기동 계약자 둘도
임시 결계 안에 눕혀져 있었다.
구조는 끝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은 끊었다.
사람과 계약자를
같은 밤 안에서
같이 살려 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카시안의 어깨에서
피가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검은 명령선이 스친 자리라
상처는 단순 절상이 아니었다.
세린 베일이
어디선가 급히 달려와
그 자리를 보자마자 욕을 삼켰다.
“이건 결계국 인력이 봐야 해요.”
기디온이 옆에서 말했다.
“민간인 쪽도 아직…”
아델린은 이번엔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민간인은 도로시와 세린이 나눠 잡아요.”
그녀는 카시안 곁으로 바로 내려앉았다.
“기디온 부팀장.
지금부터 0001 관련 보고는
감찰식 표현으로 줄이지 마세요.”
기디온이 무표정하게 물었다.
“그럼 어떤 표현으로 적죠.”
아델린은 상처 부위를 누르며 대답했다.
“`현장 구조 중 부상`.
그대로요.”
카시안이 낮게 말했다.
“팀장님.”
“조용히 해요.”
“민간인 쪽부터 보셔도 됩니다.”
아델린은 손에 힘을 더 줬다.
“당신은 오늘 밤 계속
그 말을 너무 쉽게 했습니다.”
카시안이 잠깐 말을 멈췄다.
그녀는 그 틈에
붕대를 넘겨받아 어깨를 단단히 감았다.
손끝에 피가 묻었다.
차갑게 식기 전의 피였다.
살아 있다는 증거라서 더 싫었다.
이 사람은 늘 살아남는데도,
이런 식으로 다치는 건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세린이 무릎을 꿇고
상처 가까이를 살폈다.
“반동선 일부가 박혔어요.
지금 바로 결계국 임시실로 옮겨야 합니다.”
기디온이 그 말을 듣고도
시선은 다른 데 있었다.
아델린 손.
카시안 이름.
현장 지시 순서.
그는 이미
이 밤을 구조 현장이 아니라
정치 문장으로 읽고 있었다.
아델린은 그 사실을
모를 정도로 무르지 않았다.
알면서도 손을 떼지 않았다.
그게 더 문제라는 것도.
세린과 도로시가
뒤쪽 상황을 정리하는 동안,
골목 끝에선
동이 트기 전 특유의 옅은 회색이 번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아직 놀란 얼굴이었고,
구조된 계약자들은
임시 봉쇄 안에서 신음하고 있었고,
아까 그 옛 기사는
카시안 손에 금속 표식을 쥐여 준 채
다시 의식을 잃었다.
그 조각은 분명
다음 질문으로 이어질 물건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밤의 첫 보고서는
그 물건보다 먼저 움직일 것이다.
기디온 마르체는
젖은 장갑을 벗지도 않은 채
현장 기록판을 꺼냈다.
그는 일부러
사실보다 문제 되기 쉬운 순서로 적었다.
`황실 인사팀장 아델린 케스트,
민간인 구조 현장에서
직원번호 0001을
공개적으로 우선 보호 지시.`
그 문장은 구조 보고가 아니었다.
황궁으로 돌아가는 순간
청문 안건으로 부풀려질
정치 문제의 첫 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