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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신입 사원 연수 (5)

"오늘 훈련은 시가전이다." S반 2일 차 새벽 4시. 산 중턱에 걸린 안개가 축축하게 살갗을 파고드는 시간. 우리는 연수원 뒷산 깊숙한 곳에 조성된 '제3 전술 훈련장'에 서 있었다. 누가 봐도 으스스한 폐공장 세트장이었다. 붉게 녹슨 철골 구조물들이 거대한 짐승의 뼈대처럼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깨진 유리창 너머로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들락거리며 귀신 곡소리 같은 윙윙 소리를 냈다. 바닥에는 정체모를 검은 기름때와 시멘트 가루가 엉겨 붙어, 걸을 때마다 군화 밑창에 쩍쩍 달라붙었다. 페인트 냄새보다는 곰팡이와 쇠비린내가 진동하는, 완벽한 디스토피아의 재현이었다. "상대는 교관 팀이다." 조현태 교관의 선언에 S반 멤버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조현태는 검은색 전술 베스트에 허벅지 홀스터를 차고 있었다. 그의 탄탄한 상체 근육은 두꺼운 전술복 위로도 선명하게 드러났고, 짧게 친 스포츠머리는 새벽 이슬에 젖어 번들거렸다. 그의 눈빛은 훈련병을 보는 게 아니라, 사냥감을 보는 맹수의 그것이었다. 강철인이 목을 두둑, 꺾으며 물었다. 188cm의 거구. 유도로 단련된 그의 목은 마치 아름드리나무 기둥처럼 두꺼웠고, 짓이겨진 귀(만두귀)는 그가 얼마나 치열한 그래플러였는지를 증명했다. 그는 사이즈가 맞는 헬멧이 없어 턱끈을 최대로 늘려 쓰고 있었는데, 터질 듯한 승모근 때문에 지급받은 전술 조끼가 마치 어린이용 구명조끼처럼 우스꽝스럽게 꽉 끼었다. 바위 같은 얼굴에 난 흉터가 꿈틀거렸다. "교관 팀이라면... 조 교관님도 포함입니까?" "걱정 마라. 우린 2명만 들어간다. 나, 그리고 김 교관." 조현태가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숫자 2를 펴 보였다. 우리는 4명, 저쪽은 2명. 4대 2. 숫자로는 두 배다. 게다가 우리 팀의 스펙을 보라. 인간 흉기 강철인, PMC의 늑대 박동구. 그리고 대통령 경호실도 탐냈다는 재원, 이하은. 그녀는 우리 중 가장 체격이 작았지만, 존재감은 가장 날카로웠다. 창백하리만큼 하얀 피부는 검은색 전술복과 극명한 대비를 이뤘고, 고양이처럼 올라간 눈매는 감정 없이 차가웠다. 질끈 묶어 올린 포니테일 머리칼 아래로 드러난 가늘고 긴 목선, 하지만 권총 그립을 쥔 그녀의 손가락에는 굳은살이 단단히 박혀 있었다. 겉보기엔 우리가 압도적으로 유리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상대가 전직 헌터니까. '급'이 다르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대신, 너희는 페인트탄 총을 쓰고 우리는 '고무칼'만 쓴다. 너희가 전멸하거나 제한 시간 내에 목표 지점(공장장실)을 점령하지 못하면 패배다." "총 대 칼이라고요? 그것도 4대 2로?" 박동구가 콧방귀를 꼈다. 자존심이 상한 표정이었다. 그는 지급받은 MP5 모형 페인트건의 노리쇠를 철컥 당겨 확인하며 비웃음을 흘렸다. 헐렁하게 멘 소총 멜빵과 삐딱하게 쓴 베레모가 그의 반항기를 보여주었다. "이건 너무 쉬운 거 아닙니까? 거리 벌리고 화망 구성해서 쏘면 접근도 못 할 텐데." "해 보면 알겠지. 입 산 놈치고 끝까지 살아남는 놈 못 봤다." 조현태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검은 그림자가 폐공장의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작전부터 짜죠." 나는 헬멧 끈을 조이며 건넸다. 지급받은 고글이 자꾸 안경 위에서 겉돌아 불편했다. 하지만 내 말은 공허하게 허공으로 흩어졌다. "박사님은 그냥 뒤에서 엄호나 하세요. 아니, 엄호도 하지 마요. 오발 사고 나니까. 그냥 구석에 짱박혀 계쇼." 박동구가 총을 찰칵거리며(장전 확인) 앞장섰다. 그는 나를 완전히 무시하고 강철인, 이하은과 눈빛을 교환했다. "내가 선두 선다. 철인이는 우측 플랭크, 하은 씨는 좌측 체크해. 박사님은... 알아서 살아남으시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나를 배제했다. 뭐, 예상했던 바다. 흙먼지 묻은 전술화와 말끔한 내 운동화의 차이만큼이나, 우리는 섞이기 힘든 존재들이니까. 전장의 늑대들이 연구소 샌님의 지시를 따를 리가 없지. "진입!" 박동구의 수신호와 함께 세 명이 공장 안으로 진입했다. 움직임은 빠르고 은밀했다. 발소리를 죽이는 법을 알고 있었다. 확실히 일반인 수준은 아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폐공장 내부는 외부보다 더 어두웠다. 천장 곳곳이 뚫려 있어 달빛이 기둥처럼 내려꽂혔지만, 그 빛이 닿지 않는 곳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이래선 전멸인데.' CQB의 핵심은 개인기가 아니다. 사각 체크와 팀워크다. 좁은 복도, 수많은 문, 어두운 코너, 2층 난간. 혼자서 360도를 커버할 수는 없다. 서로의 등을 지켜주는 '신뢰'가 없으면, 이곳은 사냥터가 아니라 무덤이 된다. 저들은 지금 서로를 믿는 게 아니라, 자기 실력만 믿고 있다. 오만이다. 타당! 타당! 진입 3분 만에 첫 총성이 울렸다. 건조한 공기를 찢는 파열음. "뭐야! 어디야!" 박동구의 다급한 외침. 어둠 속, 녹슨 배관 위에서 불쑥 튀어나온 검은 그림자가 선두가 아닌 우측의 강철인을 덮쳤다. 강철인이 반사적으로 총을 휘둘렀지만, 그림자는 이미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 목덜미를 낚아챈 뒤였다. 탄력 있는 검은색 타이즈를 입은 김 교관이었다. 퍽! 교관의 고무칼이 강철인의 경동맥을 그었다. "강철인, 사망." 방송이 울렸다. 시작하자마자 팀의 탱커가 날아갔다. 강철인은 억울한 표정으로 목에 그어진 붉은 립스틱 자국(판정용)을 만지작거렸다. 땀에 젖은 그의 목덜미 위로 붉은 선이 선명했다. "젠장! 위에서 덮칠 줄은 몰랐네! 너무 빠르잖아!" "산개해! 뭉치면 다 죽어!" 박동구가 소리치며 2층 철제 계단으로 뛰어올랐다. 녹슨 계단이 끼익, 끼익 비명을 질렀다. 이하은은 반대편 기계실 쪽으로 몸을 날려 숨었다. 그녀의 포니테일 머리가 허공에서 찰랑였다. 최악의 판단이다. 이런 상황에선 등을 맞대고 원형 방어 진형(Perimeter Defense)을 짜야 하는데, 각개전투라니. 저러면 교관들의 먹잇감이 될 뿐이다. 밥상을 차려주는 꼴이다. 나는 조용히 구석에 있는 낡은 청소 도구함 뒤로 몸을 숨겼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빗자루와 대걸레 사이. 좁고 더러웠지만, 시야는 확보되는 명당이었다. '기다리자.' 나는 숨을 죽이고, 어둠 속에 녹아들어 전장을 관조했다. 2층에서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총성이 들렸다. 박동구다. 녀석은 공포를 화력으로 덮으려는 듯 난사하고 있었다. 총구 화염이 어둠을 밝혔다. 탄창 낭비다. "크악!" 얼마 안 가 2층 난간에서 박동구의 비명이 들렸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그가 1층 매트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박동구, 사망." 이제 남은 건 이하은과 나. 이하은은 기계실 쪽 배전반 뒤에서 숨을 죽이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경호원 출신답게 방어적이고 신중하다. 먼저 움직이지 않을 거다. 검은색 전술복이 그녀의 몸을 어둠 속에 잘 숨겨주고 있었다. 하지만 교관들은 이미 냄새를 맡았다. 끼익... 기계실 철문이 열리는 소리. 그리고 짧은 단말마. "이하은, 사망. 생존자 1명." 이제 나 혼자 남았다. 2명의 교관, 아니 두 마리의 맹수가 나를 찾기 시작할 것이다. '도망칠까?' 아니, 도망쳐도 끝은 있다. 제한 시간 종료는 패배다. 싸울까? 정면 승부는 불가능하다. 헌터 조현태를 상대로, 내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이길 확률은 제로다. 하지만... 저들에게 한 방은 먹여야 한다. 그래야 이 지옥 같은 훈련이 단순히 엘리트 괴롭히기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처절한 수업이라는 걸, 그리고 팀워크가 왜 필요한지를 저 바보 같은 천재 동기들이 깨달을 테니까. 교육을 위해서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주변을 스캔했다. 다행히 여기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환경이다. 잡동사니가 가득한 창고. 홈그라운드다. 주변에는 공사하다 남은 자재들이 널려 있었다. 누군가 쓰다 버린 4L짜리 페인트 통, 기름때에 절은 굵은 마닐라 삼 밧줄, 그리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쇠구슬(베어링)들. [경로 예측] [함정 설계] [타이밍 계산] 나는 밧줄을 기둥과 기둥 사이에 팽팽하게 묶었다. 높이는 무릎 아래 30cm. 공장 바닥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 숨기면 절대 보이지 않는다. 일명 '트립 와이어'. 그리고 그 위쪽 천장 H빔에 4L짜리 굳은 페인트 통을 밧줄로 묶어 아슬아슬하게 걸쳐두고, 아래의 트립 와이어와 연결했다. 일종의 연동형 부비트랩. 아래를 건드리면 위가 쏟아진다. 저벅, 저벅. 발소리가 다가왔다. 교관 1명이다. 김 교관. 그는 여유롭게 허밍을 하며 캐비닛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검은색 헬멧 위의 고글이 희미한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3... 2... 1...' 교관이 코너를 도는 순간. "히익! 오, 오지 마세요!" 나는 짐짓 비명을 지르며 총을 난사했다. 물론 교관을 맞추지 않도록 허공에다가, 하지만 아주 위협적으로. "으아악! 오지 마세요!" "진정해, 진정해. 안 아프게 끝내줄게." 교관이 내 연기에 속아(혹은 방심해서) 웃으며 손을 뻗었다. 내가 뒷걸음질 치며 유인한 그곳. 그곳에는 밧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 이런 것도 설치해두셨네? 모르시나 본데 프로들에게는 안 통해요. 이런 건." 그는 바닥의 줄을 발견하고 비웃으며 가볍게 발을 들어 넘으려 했다. 하지만 그건 페이크다. 진짜 함정은 줄을 '건드리는' 게 아니라, 줄을 '넘는' 순간 내가 당기는 방식이었다. 수동 격발. 나는 기둥 뒤에 숨겨둔 보조 줄을 힘껏 당겼다. 끼익- "어?" 천장에서 쇳소리가 났다. 김 교관이 고개를 드는 순간, 공중에 매달려 있던 4L짜리 페인트 통과 함께, 통을 받치고 있던 널빤지가 중력을 타고 자유 낙하했다. 콰앙! "크헉!" 정확히 김 교관의 헬멧 측면을 강타했다. 페인트 통 안에는 굳어가는 페인트 덩어리와 잡동사니들이 들어있어 무게가 족히 5kg은 넘었다. 김 교관이 눈을 까뒤집으며 뒤로 벌러덩 나자빠졌다. 철퍽- 하고 엉덩방아를 찧는 소리가 처량하게 울렸다. "......" 잠시 정적. 교관은 코피를 흘리며 일어나지 못했다. "뭐야?" 뒤따라오던 조현태가 놀라서 뛰어왔다. 그는 전술 라이트를 켜고 쓰러진 동료와, 천장에 매달린 밧줄 그네, 그리고 구석에서 총을 껴안고 벌벌 떨고 있는 나를 번갈아 비췄다. 강렬한 빛 때문에 눈이 부셨다. "이거... 네가 한 거냐?" 조현태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나는 안경을 고쳐 쓰며, 세상에서 제일 억울하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죄, 죄송해요! 그냥... 너무 무서워서... 영화에서 본 대로 뭐라도 막아보려고..." 조현태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쓰러진 김 교관의 맥박을 확인하고, 헬멧이 깨진 것을 보며 혀를 찼다. "교관 1명 사망(기절). 서준혁 훈련병, 생존." 그는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그리고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재미있는 놈이네. 진짜... 넌 도대체 정체가 뭐냐? 그 매듭법, 일반인이 할 줄 아는 게 아닌데." 비록 나는 직후 조현태에게 가볍게(하지만 꽤 아프게) 제압당해 '사망' 처리되었지만, 이날의 훈련은 S반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국대, 용병, 경호원이 3분 컷이었는데. 책상물림 박사가 혼자서 교관 하나를 기절시켰으니까. 훈련이 끝나고 집합한 자리. 강철인과 박동구, 이하은은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된 그들의 얼굴에 경외심이 피어올랐다. "너... 정체가 뭐야?" 박동구가 물었다. 이번엔 비웃음이 없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너 홀로 집에' 3번 정주행하면 이 정도는 한다고." 영화 핑계는 언제나 통한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이제 나는 '운 좋은 놈'이 아니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미친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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