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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신입 사원 연수 (6)

"전멸이라." 생활관으로 돌아온 S반의 분위기는 초상집이었다. 지하 생활관 특유의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오늘따라 더 역하게 느껴졌다. 형광등 하나가 껌뻑거리며 우리의 우울한 기분을 대변하고 있었다. 강철인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녹슨 철제 관물대를 주먹으로 쳤다. 쾅! 관물대 문짝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120kg의 거구를 지탱하는 그의 승모근이 파들파들 떨렸고, 목에 선 굵은 핏대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 팽창해 있었다. 까진 주먹 마디에서 피가 배어 나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지만, 그는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창가에 앉은 이하은은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물며 어둠만 응시하고 있었다. 평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단정하게 빗어 넘겼던 포니테일 머리가 땀에 젖어 헝클어져 있었고, 창백한 얼굴 위로 흐트러진 잔머리가 그녀의 참담한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박동구는 바닥에 주저앉아 군번줄만 만지작거렸다. 짤그락, 짤그락. 그 소리가 신경을 긁었다. "쪽팔려... 고작 2명한테 4명이 털리다니. 그것도 3분 만에." 자존심 쎈 그들에게 오늘의 패배는 단순한 패배가 아니었다. 굴욕이었다. 각 분야의 전문가, '선택받은 자'라고 자부하던 그들이, 교관들(헌터)의 손바닥 위에서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아졌으니까. "그나마 박사님이 한 건 했네. 교관 하나 눕혔잖아." 강철인이 나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페인트 통이라니. 대체 그런 건 언제 준비했어요? 영화 찍는 줄 알았네." "그냥... 도망치다가 페인트 통이 보이길래. 운이 좋았죠."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박동구의 눈빛은 달랐다. 그는 더 이상 나를 '운 좋은 놈'으로 보지 않고 있었다. 의심과 경외, 그리고 어떤 기대감이 섞인 눈빛. "운? 웃기지 마쇼." 박동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땀에 젖은 러닝셔츠 너머로 다부진 근육이 꿈틀거렸다. "그 밧줄 매듭, '보우라인'이었어. 그것도 한 손으로 묶는 야전 방식. 일반인이 캠핑 가서 배우는 매듭이 아니라고. PMC에서도 고참급이나 쓰는 기술인데." 오, 예리한데? PMC 인턴이라더니 눈썰미는 있네. "형님. 정체가 뭡니까?" 박동구의 호칭이 '박사님'에서 '형님'으로 바뀌었다. 나는 뿔테 안경을 치켜올리며 짐짓 모르는 척했다. "말했잖아요. 연구원이라고. 단지... 생존왕 레어 그릴스를 좀 좋아해서 유튜브를 많이 봤을 뿐입니다." "하! 레어 그릴스라. 그 양반이 부비트랩 설치하는 법도 가르쳐주던가요?" 박동구는 헛웃음을 지었지만,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대신 진지한 표정으로, 절박한 눈빛으로 물었다. "사연이 있으실 테지만 저희는 아무것도 모르는 겁니다. 비밀 지켜드리죠. 다만... 저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이대로는 분해서 잠도 못 자겠습니다." 박동구는 이하은과 강철인을 번갈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동의한다는 듯,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들은 지금 배움에 굶주려 있다. 승리에 목마르다. 창틀에 걸터앉아 있던 이하은이 소리 없이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내 앞으로 다가왔는데, 걸음걸이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상체를 살짝 앞으로 숙인 공격적인 자세. 언제든 튀어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맹수 같았다. 그녀가 고개를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옥타브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럼 그 베어 그릴스 애청자로서 조언 좀 해주시죠. 우리, 이대로 가면 내일도 털립니다. 자존심 상해서 잠도 안 와요. 어떻게 해야 이깁니까?" 세 사람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이제야 좀 대화가 통하겠군. 팀이 만들어질 타이밍이다. "이기고 싶습니까?" "당연하죠. 이대로 지고는 못 잡니다." 이하은이 쏘아붙였다. "좋아요. 그럼 내일 훈련은 '정공법' 버리세요. 신사협정 같은 거 다 갖다 버리십시오." 나는 강의실 한쪽에 있는 화이트보드 앞으로 걸어갔다. 보드마카 뚜껑을 여는 소리가 뽁 하고 경쾌하게 울렸다. "오늘 여러분이 진 이유는 간단합니다. 너무 정직해서예요." "정직?" "강철인 씨는 힘으로 정문을 뚫으려 했고, 이하은 씨는 스피드로 측면을 돌파하려 했고, 박동구 씨는 화력으로 제압하려 했죠. 교관들은 그걸 다 예상했습니다. 뻔하니까요. 교과서에 나오는 전술이니까." 나는 보드마카로 큰 사각형 건물을 그렸다. "상대는 우리보다 강합니다. 피지컬, 경험, 기술 모든 면에서 우위입니다. 정면 승부로는 절대 못 이겨요. 사자가 토끼를 잡을 때 전력을 다하는데, 토끼가 사자를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그들이 싫어하는 짓을 해야죠. 아주 더럽고, 치사하고, 기분 나쁜 짓." 나는 웃으며 보드마카로 건물 내부에 X자를 마구 그렸다. 붉은색 잉크가 건물 내부를 피처럼 뒤덮었다. "내일 훈련 장소는 복합 쇼핑몰 폐허라고 했죠? 거긴 숨을 곳도 많지만, 반대로 갇힐 곳도 많습니다." "설마... 또 함정입니까?" "네. 하지만 오늘 같은 장난감 수준은 아닙니다." 나는 본격적으로 전술 강의를 시작했다. "심리전. 내일 우리가 쓸 무기입니다." "첫째, 소음 통제. 교관들의 청각을 교란시킵니다. 빈 깡통, 유리 조각, 동전을 예상 이동 경로에 깔아두고, 낚싯줄로 연결해서 원격으로 소리를 냅니다. 신경을 긁는 거죠." "둘째, 시야 차단. 소화기 분말이나 밀가루를 이용해서 시야를 가립니다. 사람은 보이지 않으면 본능적으로 위축됩니다." "셋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나는 건물의 벽 하나에 붉은색 동그라미를 쳤다. "마우스 홀링." "마우스 홀링? 쥐 구멍?" 박동구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벽 뚫기입니다. 문으로 다니지 마세요. 문은 적이 가장 경계하는 곳입니다. '페이탈 퍼널'이라고 하죠. 들어가자마자 벌집 되기 딱 좋은 죽음의 깔때기." "하지만 도구도 없이 벽을 어떻게 뚫어요?" "강철인 씨가 있잖아요." 나는 강철인의 허벅지를 가리켰다. 검은색 전술 바지가 터질 듯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스쿼트로 다져진, 말 그대로 '인간 기둥' 같은 다리였다. "쇼핑몰 가벽 정도는 철인 씨 태클이면 종잇장처럼 뚫립니다. 적은 문을 조준하고 있을 때, 우리는 벽을 뚫고 튀어나와 옆구리를 치는 겁니다." 세 사람의 입이 딱 벌어졌다. 연구원의 입에서 나올 단어들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하나 더." 나는 주머니에서 훔쳐온 콩기름 병과 창고에서 주운 낚싯줄을 꺼냈다. 누런 기름이 병 안에서 찰랑거렸다. "이걸로 '유도'를 할 겁니다. 적이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만 다니게 만드는 거죠. 길이 미끄럽거나, 장애물이 있으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안전해 보이는 길을 택합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우리가 매복하고 있겠군요." 이하은이 내 말을 받았다. 그녀의 차가운 눈매가 가늘어졌다. 마치 사냥감을 앞에 둔 고양이처럼, 그녀의 검은 눈동자 속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정답." 나는 씨익 웃었다. "더럽게 싸우세요. 치사하게. 눈에 흙을 뿌리고, 낭심을 차고, 뒤통수를 후려치세요. 우리는 생존이 목적이지, 올림픽 스포츠를 하는 게 아니니까요." 강의실에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아까의 패배감 젖은 정적이 아니었다. 전의. 그들의 눈이 다시 타오르고 있었다. "와... 형님 진짜..." 박동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이거 완전 게릴라 전술인데? PMC에서도 이렇게는 안 가르쳐 줬어요." "말했잖아요. TV에서 봤다고. 요즘 넛플릭스 전쟁 영화 고증이 쩔던데요." 나는 또 거짓말을 했다. 사실 이건 TV가 아니라, 10년 전 대붕괴 시절, 폐허가 된 서울에서 괴수들을 상대로 살아남기 위해 썼던 처절한 생존 기술들이었다. #2. 리매치: 쇼핑몰의 악몽 다음 날. 복합 쇼핑몰 훈련장. 이곳은 과거 화려했던 대형 쇼핑몰이었으나, 지금은 유리창이 모조리 깨지고 간판이 떨어져 나간 흉물스러운 폐허였다. 바닥에는 깨진 유리 조각과 마네킹의 팔다리가 나뒹굴고 있었고, 멈춰버린 에스컬레이터는 먼지에 뒤덮여 거대한 짐승의 뼈처럼 보였다. 조현태 교관과 김 교관이 진입했다. 그들은 검은색 풀 기어 차림이었다. 헬멧, 방탄조끼, 무릎 보호대까지 완벽하게 갖춘 그들의 모습은 로보캅 같았다. 그들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어제처럼 쉽게 끝날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진입 1분 만에 그들의 여유는 당혹감으로 바뀌었다. 챙강! 1층 로비 화장품 코너에서 깡통 구르는 소리가 났다. 교관들이 총구를 돌리는 순간, 반대편 2층 난간에서 후두둑 하고 돌가루가 떨어졌다. 시선 분산. "뭐야? 어디야?" 그들이 당황해서 주춤하는 사이. 3층 에스컬레이터 위. 이하은은 마네킹의 팔과 자신의 팔을 교차시키며 완벽한 사각지대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물 흐르듯 유연했다. 뼈가 없는 연체동물처럼 마네킹 사이를 미끄러지듯 이동한 그녀는, 소화기를 들어 올리는 동작조차 최소한의 근육만을 사용하여 기척을 지웠다. 검지가 안전핀 고리에 걸렸다. 찰칵. 소수점 단위의 오차도 없는, 소름 끼칠 정도로 절제된 동작이었다. 먼지를 뒤집어쓴 마네킹들 사이에서, 그녀의 창백한 피부와 검은색 전술복은 완벽한 위장이었다. 그녀는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유령처럼 움직였다. "지금!" 푸슈슈슈슉! 하얀 분말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연막탄 저리가라 할 정도의 짙은 분말이 1층 로비를 순식간에 화이트아웃 상태로 만들었다. 시야 차단. 매캐한 소화기 가루 냄새가 코를 찔렀다. "쿨럭! 젠장! 안 보여!" 김 교관이 헛기침을 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가 밟은 바닥은 대리석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내가 어젯밤 정성스럽게 칠해둔 콩기름이 흥건했다. 쿠당탕! 김 교관이 우스꽝스럽게 미끄러지며 나자빠졌다. 그 순간, 그의 바로 옆, '폐업 정리' 포스터가 붙은 가벽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콰아앙! 뿌연 석고보드 먼지를 뚫고, '인간 전차' 강철인이 튀어나왔다. 온몸에 하얀 가루를 뒤집어쓴 모습은 마치 전설 속의 골렘 같았다. 헬멧 위로 드러난 그의 눈은 광기로 번들거렸다. 마우스 홀링. 그의 어깨가 김 교관의 명치를 들이받았다. "잡았다!" 강철인의 태클이 김 교관을 덮쳤다. 100kg이 넘는 거구의 육중한 충돌. 김 교관은 비명도 못 지르고 벽에 처박혔다. 헬멧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처절하게 울렸다. "김 교관 사망(기절)." 이제 조현태 혼자다. 조현태는 재빨리 2층으로 몸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안전해 보이는 비상 계단'에는 박동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마네킹의 옷을 입고 마네킹 인 척 서 있었다. 타다다당! "크윽!" 조현태의 어깨와 다리에 노란색 페인트탄이 작렬했다. 그는 비틀거리면서도 반격을 시도했지만, 이미 포위망은 완성되었다. 강철인이 아래에서, 박동구가 위에서, 이하은이 측면에서 총구를 겨눴다. 특히 이하은은 3층 난간을 지지대 삼아 상체를 숙이고, 양손으로 권총을 완벽하게 파지한 채 조현태의 미간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 총구. 그녀의 검지는 이미 방아쇠의 압력을 반쯤 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가장 안전한 3층 난간에서 팝콘 먹듯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총구는 겨누고 있었다.) "체크메이트입니다, 교관님." 내가 무전기로 말했다. 조현태가 허탈한 듯 총을 내렸다. 그의 얼굴은 소화기 분말 떡칠이 되어 가부키 화장을 한 것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다. 검은 전술복도 밀가루를 뒤집어쓴 꼴이었다. "......항복." #3. 졸업, 그리고 시작 "이 미친놈들..." 훈련이 끝나고 집합한 자리. 조현태 교관이 하얗게 샌 머리(밀가루)를 털며 웃었다. 어이없다는 듯, 하지만 기특하다는 듯. 그의 어깨에 묻은 노란색 페인트 자국이 우리의 승리를 증명하고 있었다. "누가 가르쳤냐? 벽 뚫고 기름 칠하는 건? 군대에서도 안 가르치는 짓을." 동기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나는 딴청을 피우며 하늘을 봤다.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었지만 참았다. "뭐, 좋다. 과정이 어떻든 결과는 승리다. 너희는 오늘, 적어도 '생존'하는 법은 배웠다." 조현태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이것으로 기초 전술 훈련을 마친다. 내일부터는 심화 과정이다. 하지만..."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무전기 이어폰에 손을 대고 무언가 지시를 듣는 듯했다.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심화 과정은 훈련장이 아니라 현장에서 진행한다." "네? 현장이라니요?" 강철인이 땀을 닦으며 물었다. "실전이다. 진짜 피 냄새를 맡으러 간다." 조현태의 선언에 찬물을 끼얹은 듯 정적이 흘렀다. 실전. 훈련용 고무칼이나 페인트탄이 아닌, 진짜 몬스터와의 싸움. "강원도 인제군 B지구. 사흘 전부터 미세한 진동과 함께 실종 사고가 발생했다. 정찰 결과 [B급 하이브] 징후 포착." 그가 우리를 둘러봤다. "S반, 너희가 선발대다. 짐 싸라. 1시간 뒤 출발한다." 나의 꿀 같은 연수원 생활은, 이렇게 예고도 없이 막을 내렸다. 이제 진짜 지옥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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