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신입 사원 연수 (4)
"호명하는 인원은 짐을 싸서 즉시 별관 3동으로 이동한다."
1주차 훈련이 끝난 월요일 아침. 연병장에 모인 30명의 신입 사원들 앞에서 교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안개 낀 새벽 공기가 무거웠다.
"자원관리팀 김석훈, 홍보팀 최유리, 바이오솔루션팀 정민재..."
익숙한 이름들이 불렸다. 다행이다. 우리 조원들은 다들 평범한 보충 교육대로 가는 모양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 이름이 불리지 않기를, 혹은 기껏해야 'C반(기초 체력 미달자 보충반)' 정도로 불리기를 기대했다. 몸개그를 그렇게 열심히 했으니까.
"그리고... 바이오솔루션팀 서준혁."
"네!"
나는 힘차게 대답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C반이겠지? 운동 좀 못하는 척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민재랑 같이 꿀 빨면서 쉬면 되겠다.
"이상 4명. 너희는 'S반'이다."
"......네?"
S반? Super? Special? Suicide? 순간 불길한 예감이 척추를 타고 차갑게 흘렀다. 주변의 공기가 싸늘해진 것 같았다. 교관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축하한다. 너희는 우리 연구소의 '특별 관리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최고의 엘리트... 혹은 최고의 돌아이들만 모아놓은 곳이지. 지금 즉시 이동!"
별관 3동. 그곳은 연수원 구석, 인적이 드문 산비탈에 홀로 서 있는 붉은 벽돌 건물이었다. 다른 교육생들이 머무는 신식 생활관과는 딴판인, 마치 70년대 남산의 그곳을 연상케 하는 음산한 폐건물. 철조망이 쳐진 담벼락, 칠이 벗겨진 철문, 그리고 창문마다 쇠창살이 박혀 있었다. 입구부터 '여기는 들어오면 살아서는 못 나간다'는 오라(Aura)를 뿜어내고 있었다.
'망했다.'
나는 직감했다. 내가 너무 튀었다. 은밀하게 묻어가려 했던 '평범한 회사원' 계획은, '몬스터 습격 사건'과 '헤드샷 사건'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뽑힌 거지? 그저 운이 좋았다고 둘러댔는데 안 통했나?
끼이익- 녹슨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곰팡이 냄새와 쇠 냄새가 섞인 찬 공기가 훅 끼쳐왔다. 강당 한가운데에 이미 도착해 있는 세 명의 남녀가 보였다. 그들을 본 순간, 나는 내 예상이 완벽하게 틀렸음을 깨달았다. 여기는 '체력 미달자'를 위한 곳이 아니다.
"......"
검은색 전술 훈련 복장 차림. 가슴에는 노란색 이름표. 그들의 눈빛은 일반 신입 사원의 것이 아니었다. 야수의 눈이었다.
188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구의 사내. 터질 듯한 허벅지와 두꺼운 목, 그리고 뭉개진 귀(만두귀). 유도나 레슬링 국가대표급 선수 출신이 분명하다. (강철인) 그 옆에는 날카로운 눈매의 남자가 군번줄을 손가락에 감고 돌리고 있었다. 손등에 난 칼자국 흉터와, 끊임없이 주변을 경계하는 눈동자. 실전 경험이 풍부한 용병의 냄새가 난다. (박동구) 창가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선 여자는... 차갑다. 하지만 무게 중심이 완벽하게 잡힌 저 자세, 언제든 튀어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경호원 특유의 스탠스다. (이하은)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연구직?"
군번줄을 돌리던 남자, 박동구가 대놓고 비웃음을 흘렸다.
"교관이 명단을 착각했나 보네. 샌님이 올 곳이 아닌데. 길 잃으셨수?"
거구의 사내, 강철인도 코웃음을 쳤다. 이하은은 아예 나를 투명 인간 취급하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려버렸다.
'재미있네.'
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들의 눈빛은 명확했다. '우리는 선택받은 프로고, 너는 길 잃은 아마추어다.' '여긴 네가 낄 자리가 아니다.'
이질감. 그들은 '연구소 직원'이라기엔 너무 날이 서 있었다. 아마 연구소 보안팀이나 특수 임무(회장 경호라든지)를 위해 비밀리에 채용된 인력들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왜 여기에 끼게 된 거지?
쾅! 육중한 철문이 닫히고, 중앙 단상으로 누군가 걸어 나왔다. 헌터이자 이번 훈련의 총괄 책임자, 조현태였다.
"반갑다. S반에 온 걸 환영한다."
그는 우리 넷을 천천히 훑어봤다. 그의 시선이 내게서 잠시 머물렀다. 먹잇감을 앞에 둔 포식자의 흥미로운 눈빛.
"너희는 선발된 인원이다."
조현태가 입을 열었다.
"강철인. 유도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부상으로 은퇴했지만 피지컬은 탈인간급이지." "박동구. 중동 지역 PMC(민간군사기업) 인턴 2년. 실전 경험 유." "이하은. 경호학과 수석 졸업. 칼리 아르니스 및 크라브마가 유단자."
역시. 내 예상대로였다. 이들은 단순한 신입 사원이 아니다. 파브르 연구소가 키우는 '전투 요원', 일명 '사냥개'들이다.
"그리고... 서준혁."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꽂혔다. 그 속에는 '넌 대체 뭐냐'는 질문이 담겨 있었다.
"파브르 곤충기술연구소 바이오솔루션팀 신입 박사. 펜대 굴리는 재주가 비상하다고 들었다. 그리고... 운이 아주 억세게 좋은 친구지."
조현태의 소개에 박동구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강철인도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대놓고 무시하는군. 운빨로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근데 왜 이 연구벌레가 여기 있습니까? 저희랑 수준 안 맞게."
박동구가 손을 들고 불만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조현태가 씨익 웃었다.
"글쎄. 나도 그게 궁금해서 불렀다.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숨겨져 있는지. 껍질을 까봐야 알겠지."
그 말이 신호였다. 박동구의 눈빛이 변했다. 장난기가 사라지고,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으로 바뀌었다. 그는 나를 '검증'해보고 싶은 거다. 밟아봐서 비명을 지르면 가짜고, 버티면 진짜겠지.
"앞으로 7주간, 너희는 일반 사원들과 격리된다. 너희가 받을 훈련은 '생존'이 아니라 '전투'다. 몬스터와 마주쳤을 때 도망치는 게 아니라, 맞서 싸우거나, 죽이거나, 최소한 시간을 벌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
조현태는 말을 이었다.
"첫 시간은 가볍게 서로 통성명이나 하지. 말로 하는 건 재미없으니까, 몸으로 대화해라."
그는 강당 한쪽에 마련된 링 형태의 매트를 가리켰다.
"박동구, 서준혁. 올라와."
올 것이 왔다. 박동구가 기다렸다는 듯 매트 위로 껑충 뛰어올라갔다. 그는 목을 좌우로 꺾으며 우두둑, 뼈 소리를 냈다.
"박사님, 너무 걱정 마쇼. 뼈는 안 부러뜨릴 테니까. 그냥 '아, 여긴 내가 올 곳이 아니구나' 하고 울면서 집에 가시면 됩니다. 앰뷸런스는 불러드릴게."
나는 한숨을 쉬며 츄리닝 지퍼를 느슨하게 내렸다. 터벅터벅, 힘없는 발걸음으로 매트 위로 올라갔다.
"살살 부탁드립니다. 저는 진짜 운동 같은 거 담쌓고 살아서요. 관절염도 있고..."
나는 최대한 불쌍하고 약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시작!"
조현태의 구령이 떨어지자마자, 박동구가 바람처럼 파고들었다. 빨랐다. PMC 출신이라더니, 겉멋만 든 건 아니었군. 스텝이 가볍다. 그가 뻗은 오른손 스트레이트가 내 턱을 노리고 날아왔다.
'직선적이야.'
내 눈에는 그의 주먹이 슬로비디오처럼 보였다. 어깨가 먼저 움직이고, 허리가 돌고, 마지막에 주먹이 나온다. 교과서적이지만 너무 뻔하다. 나는 몸을 살짝, 아주 살짝 왼쪽으로 비틀었다.
획-
주먹이 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바람 소리가 윙 하고 들렸다.
"어?"
박동구의 눈이 커졌다. 그는 멈추지 않고 연타를 날렸다. 원, 투, 훅, 어퍼컷. 콤비네이션 공격. 하지만 나는 종이 한 장 차이로 그것들을 피해냈다. 마치 갈대밭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허수아비처럼. 비틀거리는 척, 넘어질 뻔한 척하면서 절묘하게 급소를 비켜나갔다. 이것은 춤이다. 죽음의 무도.
"으악! 어어! 엄마야!"
나는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발이 꼬인 척하며 바닥을 구르고, 박동구의 로우킥을 엉덩방아 찧으면서(사실은 무게 중심을 낮추면서) 피했다. 겉보기엔 처절하고 우스꽝스러운 도주극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박동구의 주먹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그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중심이 아주 미세하게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이 쥐새끼 같은 게! 도망만 다닐 거냐!"
약이 오른 박동구가 체중을 실어 크게 휘둘렀다. 오버핸드 훅. 빈틈이 생겼다. 명치, 턱, 관자놀이, 그리고 간장. 네 군데의 급소가 붉은 점처럼 내 시야에 들어왔다. 지금 주먹을 뻗으면 녀석은 기절 나온다. 입원비가 꽤 나오겠지.
'아니지, 참아. 여기서 실력 보이면 끝장이야.'
나는 킬러 본능을 억누르고, 빙빙 돌면서 강당 구석, 천장에 매달려 있던 샌드백 쪽으로 유인했다. 그리고 샌드백 옆을 스치면서 발로 툭, 찼다.
부웅-
무거운 샌드백이 진자운동을 하며 흔들렸다. 달려들던 박동구는 시야가 좁아져 있었다. 흔들리는 샌드백을 보지 못했다. 아니, 내가 샌드백 뒤로 숨었기에 나를 잡으려다가 샌드백과 정면충돌 코스가 되었다.
"억!"
퍽!
박동구의 얼굴이 돌아오는 샌드백에 정통으로 꽂혔다. 육중한 가죽 주머니에 얻어맞은 그는 비틀거렸고, 그 반동으로 제 풀에 꼬꾸라져 바닥에 처박혔다.
"......"
정적이 흘렀다. 박동구는 바닥에 대자로 뻗은 채, 별이 보이는 듯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었다. 코피가 주륵 흘렀다. 나는 짐짓 놀란 척, 호들갑을 떨며 달려가 그를 일으켰다.
"아이고! 괜찮으세요? 샌드백이 왜 저기 있어 가지고... 조심하시지!"
"너... 너 뭐야?"
박동구가 나를 뿌리치며 비틀비틀 일어났다. 얼굴이 홍시처럼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쪽팔림과 분노, 그리고 아주 약간의 의구심. '분명 내가 맞출 수 있었는데? 왜 안 맞았지? 그리고 샌드백은 왜 갑자기 움직인 거야?'
"운이 좋으시네요, 서 박사님. 샌드백이 살렸네."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이하은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녀의 눈은 나를 스캔하고 있었다. 강철인은 흥미롭다는 듯 턱을 쓰다듬으며 씩 웃었다. "맷집은 좋네."
조현태 교관만이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봤을까? 내가 샌드백을 찬 타이밍이 우연이 아니라, 박동구의 돌진 속도와 샌드백의 진자 주기를 완벽하게 계산한 결과였다는 것을.
"승자 없음. 무승부."
조현태가 선언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부터는 진짜 지옥이 시작될 거다. 위액 냄새와 피 냄새에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다."
우리는 각자 배정된 낡은 철제 침대로 돌아갔다. S반. 이 이질적이고 위험한 조합. 앞으로 7주간, 나는 이 감각 좋은 괴물들 틈에서 '운 좋은 평범한 서 과장'을 연기해야 한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나는 침대에 누워 손목을 살살 돌리며 박동구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녀석, 꽤 튼튼하던데. 샌드백 맞고도 바로 일어나는 걸 보니 맷집은 합격이다. 나중에... 내 짐꾼이나 방패막이로 써먹을 데가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