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신입 사원 연수 (7)
두두두두두-
강원도 인제군 B지구. 명목상으로는 자연 생태 보존 구역이었으나, 지금은 죽음의 땅이었다. 검은색 UH-60 블랙호크 헬기가 산 중턱, 나무들이 하얗게 말라비틀어진 공터에 내렸다. 로터가 일으키는 강풍에 회색 낙엽들이 뼈가루처럼 소용돌이쳤다. 하늘은 대낮인데도 핏빛 먼지로 뒤덮여 붉으스름했고, 흙먼지가 시야를 가렸지만 코를 찌르는 악취는 막을 수 없었다. 유황 가스 냄새, 그리고 썩은 달걀 냄새와 비슷한... 고농도 페로몬의 악취. 그것은 죽음의 냄새이자, 동시에 번식의 냄새였다.
"전원 하차! 신속하게!"
조현태 팀장(이제는 교관이 아닌 팀장이다)의 수신호와 함께 우리는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나는 군화 밑창을 통해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을 느꼈다. 웅- 웅- 웅- 지진이 아니다. 땅속 깊은 곳에서 수천, 수만 마리의 생명체가 움직이는 '고동'이었다. 마치 거대한 심장이 발밑에서 뛰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가... B급 하이브입니까?"
강철인이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그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거대한 동굴 입구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원래는 폐광이었던 곳. 하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입구 주변 반경 50m가 끈적거리는 보라색 점액질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곰팡이가 핀 고기처럼, 나무와 바위가 그 점액에 녹아내려 기괴한 형상으로 뒤틀려 있었다. 점액질 표면은 살아있는 내장 기관처럼 규칙적으로 꿀렁거리며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지구의 풍경이 아니었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그래. 놈들의 앞마당이지. 여기서부터는 방독면 착용한다. 공기 중에 독성 포자가 섞여 있다."
우리는 [비틀 슈트 MK-II]의 헬멧 바이저를 내렸다. 이 슈트는 파브르 연구소의 기술력이 집약된 최신형 강화복이었다. 가볍지만 강철보다 단단한 '키틴-세라믹 합금' 플레이트가 가슴과 어깨를 보호하고 있었고, 관절 부위에는 인공 근육이 내장되어 착용자의 근력을 보조했다. 검은색 무광 도색된 슈트는 흡사 거대한 딱정벌레의 갑각처럼 보였다. 바이저가 내려오자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외부 공기가 차단되고, 정화된 산소가 공급되었다. HUD에 녹색 불이 들어왔다.
[SYSTEM: 생명 유지 장치 가동] [외부 오염도: 경고 수주] [산소 농도: 98%]
"진입 순서는 훈련 때와 같다. 박동구 포인트맨, 강철인 탱커, 이하은 리어. 서준혁은 중앙에서 정찰 및 분석."
"라져."
우리는 대형을 갖추고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둠. 동굴 안은 빛 한 점 없는 완벽한 암흑이었다. 야간 투시경을 켰다. 시야가 녹색으로 변하며 동굴 내부의 디테일이 드러났다.
천장에는 박쥐 대신 거대한 고치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어떤 것은 사람만 했고, 어떤 것은 소형차만 했다. 고치 표면에서는 희미한 형광빛이 뿜어져 나와 어둠 속에서 유령 불처럼 일렁였다. 벽면은 놈들이 뱉어낸 분비물로 만든 육각형의 구조물로 빈틈없이 메워져 있었다. 기계로 깎은 듯 정교한 육각형 타일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어, 마치 거대한 벌통 속에 들어온 듯한 현기증을 일으켰다. 그 틈새로 끈적한 액체가 뚝, 뚝 떨어졌다. 액체가 바닥에 닿을 때마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바위가 녹아내리고, 희미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강산성 용액이다.
"기분이 더럽네요. 꼭 몬스터 뱃속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이하은이 중얼거렸다. 무전기를 타고 들려오는 그녀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그녀는 K5 권총을 양손으로 꽉 쥐고 있었다.
"조심해. 바닥이 미끄러워."
내가 경고했다. 바닥에는 질척한 슬라임이 깔려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점액이 아니다. 이동 속도를 늦추고 사냥감의 발을 묶는 끈끈이 덫이다. 밟을 때마다 쩍, 쩍 하고 달라붙는 느낌이 불쾌했다.
사각... 사각...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벽을 긁는 소리. 수십 개의 다리가 바위를 스치는 소리. 그리고 딱, 딱, 딱 하는 이빨 부딪치는 소리.
"전방 12시! 컨택!"
박동구가 소리치며 라이트를 비췄다. 강력한 서치라이트 불빛 속에 놈들이 드러났다.
[솔져 앤트 - 변종] 크기는 중형견 정도. 하지만 놈들의 위압감은 호랑이 이상이었다. 온몸이 강철처럼 단단한 흑갈색 갑각으로 덮여 있었고, 턱에는 사람 허벅도 단번에 절단할 수 있는 거대한 톱날 같은 큰턱이 달려 있었다. 여섯 개의 다리에는 갈고리 발톱이 있어 벽과 천장을 자유자재로 다닐 수 있었고, 꼬리 끝에는 맹독이 든 독침이 번들거렸다. 붉은색 겹눈 수백 개가 라이트 불빛을 받아 섬뜩하게 빛났다. 세 마리. 정찰병이다.
"키에에엑!"
놈들이 금속성을 찢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속도가 빨랐다. 벽을 타고, 천장을 타고, 전방위에서 쇄도했다.
"사격 개시!"
타타탕! 타탕!
박동구의 K2C1 소총이 불을 뿜었다. 좁은 동굴 안에 총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포인트맨답게 침착한 사격이었다. 선두에 있던 놈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녹색 체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우측! 벽 타고 온다!"
강철인이 소리치며 달려드는 놈을 방패로 쳐냈다. 그의 방패는 특수 합금으로 제작된 30kg짜리 타워 실드였다. 쾅! 놈이 나가떨어지자마자, 이하은이 권총으로 놈의 미간을 정확히 꿰뚫었다. 그녀의 사격 솜씨는 백발백중이었다.
"나이스 샷."
순식간에 두 마리가 정리됐다. 하지만 마지막 한 마리가 천장 사각지대에서 박동구의 등 뒤로 떨어졌다. 놈은 아주 교활하게도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다.
"동구야! 위!"
강철인이 외쳤지만 놈이 더 빨랐다. 놈의 독침이 박동구의 목덜미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피슝-
작은 파열음. 놈의 머리통이 갑자기 옆으로 획 돌아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망치에 맞은 것처럼. 덕분에 독침은 빗나가 박동구의 어깨 장갑을 스치고 지나갔다. 카앙! 하고 불꽃이 튀었다.
"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박동구가 몸을 돌려 놈의 배에 소총을 박아 넣고 난사했다. 두두두둑! 놈은 걸레짝이 되어 바닥에 처박혔다. 놈의 다리가 경련하듯 몇 번 파닥거리다 멈췄다.
"하아... 하아... 살았다."
박동구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식은땀이 헬멧 안으로 흐르는 게 보였다.
"방금 뭐야? 놈이 왜 갑자기 빗나갔지?"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놈의 시체를 살폈다. 머리 측면, 갑각이 얇은 관자놀이 부근에 펜촉만 한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총알 자국이 아니었다. 아주 매끄러운 관통상.
나는 슬그머니 손에 쥐고 있던 '비비탄' 만한 쇠구슬을 주머니에 넣었다. 새총. 내장형 손목 발사기. 소음도 없고 흔적도 남지 않는, 내가 애용하는 암기였다.
"운이 좋았네요. 놈이 착지 실수로 미끄러졌나 봅니다. 이 바닥, 엄청 미끄럽잖아요."
내가 태연하게 점액질 바닥을 발로 문지르며 말했다.
"그런가...? 진짜 식겁했네."
박동구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놈들의 점액질 때문에 미끄러웠다는 내 설명이 꽤 그럴듯하게 들렸나 보다. 조현태 팀장만이 말없이 나를 쳐다봤다. 헬멧 HUD 불빛 때문에 그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의심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상황 종료. 전진한다. 긴장 풀지 마라. 이건 겨우 정찰병이다."
우리는 다시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공기는 점점 더 탁해졌고, 악취는 심해졌다. 방독면 필터가 걸러내지 못한 미세한 비린내가 목구멍을 자극했다.
그리고 10분 뒤. 우리는 넓은 지하 공동에 도착했다. 축구장만 한 크기의 거대한 지하 공동. 천장은 족히 30미터는 되어 보였고, 수천 개의 천연 종유석들이 거꾸로 솟은 빌딩 숲처럼 매달려 있었다. 그곳은 빛의 향연장이었다. 벽면에 붙은 온갖 이끼와 균류들이 파랗고 붉은 생체 발광을 내뿜고 있어, 야간 투시경을 꺼도 될 만큼 몽환적이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 아래에는 지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건..."
누군가 신음처럼 내뱉었다. 천장에 매달린 수십 개의 고치들. 그 반투명한 막 너머로 보이는 것은, 곤충의 유충이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실종된 등산객들. 마을 주민들. 그들은 등산복이나 작업복을 입은 채로 갇혀 있었다. 그들은 산 채로 고치에 갇혀, 서서히 녹아가고 있었다. 놈들의 유충에게 줄 '신선한 먹이'로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살아있어."
이하은이 고치 하나에 손을 댔다. 미세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때, 고치 안의 사람이 눈을 떴다. 백탁이 낀 눈동자. 공포와 고통으로 얼룩진 눈동자가 우리를, 아니 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살려달라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입. 입안에는 이미 유충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우웅-
동굴 깊은 곳에서 거대한 울림이 들려왔다. 땅이 흔들리며 천장의 고치들이 춤을 추듯 흔들렸다. 여왕의 부름. 침입자를 감지한 여왕이 경보를 울린 것이다.
키에에에엑-! 샤아아악-!
그리고 수백 마리의 발소리가 화답하듯 몰려오기 시작했다. 사방에 뚫린 구멍에서, 놈들이 쏟아져 나왔다. 검은 홍수처럼.
"준비해. 본대가 온다."
조현태가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단검에서 푸른색 마나의 일렁임이 피어올랐다. 나는 안경을 고쳐 쓰며, 헬멧 HUD에 나타난 적들의 붉은 점들을 셌다. 백... 이백... 삼백... 계측 한계 초과.
'많네.'
하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피가 끓었다. 이 더럽고 끔찍한 곳이, 나에게는 집처럼 편안했으니까.
"한 놈도 남기지 마."
나의 조용한 중얼거림과 함께, 진짜 전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