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치료와 이중생활
띠링-
오전 9시. 출근 후 첫 화장실 타임. 스마트폰 알림음이 고요한 화장실의 적막을 깼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영롱하고, 가장 아름답고, 사람의 심장을 카페인 샷 10잔을 마신 것보다 더 강하게 뛰게 만드는 소리였다.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KC대한은행] 서준혁 님. 01/25 09:00 입금. 87,500,000원 (급여 및 성과급) [잔액: 92,340,000원]
"......허."
나는 화장실 가장 구석진 칸 변기에 앉아, 떨리는 손으로 메시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화면의 밝기를 최대로 높여 다시 봐도 숫자는 그대로였다. 0의 개수가 하나, 둘, 셋... 기본 급여 외에 '생명 수당(위험 등급 S)', '특수 임무 성공 보수', '하이브 퀸 처치 포상금(비공식)'까지 포함된 금액이었다. 군대에서 목숨 걸고 최전방 작전을 뛸 때 받던 3년 치 연봉이, 단 한 달 만에 내 통장에 꽂혀 있었다.
"이게... 대기업인가."
눈물이 핑 돌았다. 7주간의 지옥. 진흙탕에서 구르고, 고무칼에 찔리고, 4L짜리 페인트 통으로 사람을 기절시키고, 심지어 개미 떼와 맞짱을 떴던 그 모든 고통이. 이 숫자 하나로 마법처럼 씻은 듯이 사라졌다. 금융 치료. 이보다 더 확실한 해독제는 없다.
"심지어 세금도 회사 대납이라니... 복지 미쳤네."
나는 휴대폰 화면에 대고 경건하게 경례를 붙였다. 리스펙!!!! 충성. 파브르연구소에 뼈를 묻겠습니다. 회장님 만수무강하십시오. 괴수? 잡겠습니다. 여왕? 목 따오겠습니다. 아니, 알까지 모조리 수거해 오겠습니다. 돈만 주시면 지옥의 불구덩이라도, 악마의 아가리 속이라도 기꺼이 뛰어들겠습니다.
#2. 회식의 제왕
"자, 건배!"
"건배!!"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고소한 돼지 기름 냄새와 알싸한 파무침 냄새가 어우러져 식욕을 폭발시켰다. 오늘의 회식 장소는 회사 앞 명물 '솥뚜껑 김치 삼겹살'. 가게 안은 퇴근한 직장인들로 북적였다. 시끌시끌한 대화 소리, 쨍그랑거리는 소주잔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자욱한 고기 연기가 '사람 사는 냄새'를 풍겼다. 주인공은 당연히, 지옥의 신입 연수에서 살아 돌아온 나, 서준혁이었다.
"우리 막내 박사님, 고생 많았어! 얼굴이 반쪽이 됐네, 반쪽이!"
한승우 팀장이 내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그는 평소의 연구복을 벗고 편안한 등산복 차림이었다. 술이 약한 그는 이미 소주 반 병에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있었다. 내 어깨가 탈골될 것 같았지만, 통장 잔고를 떠올리며 미소를 유지했다.
"아닙니다.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숲 공기도 좋고, 운동도 되고 좋더군요."
나는 능숙하게 고기를 집게로 뒤집으며 대답했다. 고기 굽기. 이것도 내 숨겨진 전공이다. 야전 취사 11년 경력은 장식품이 아니다. 검은색 무광 코팅된 솥뚜껑 불판 위에서 삼겹살이 춤을 췄다. 지방층이 황금빛 크리스피하게 변하는 타이밍, 붉은 김치가 돼지 기름을 머금어 투명하게 변하는 순간, 마늘을 타지 않게 참기름 장으로 옮기는 센스. 내 집게질 한 번에 불판 위의 오케스트라가 연주되었다.
"어머, 서 과장님 고기 굽는 솜씨가 예술인데요? 어디서 배웠어요? 고기집 알바 했어요?"
이소연 과장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갓 구운 고기 한 점을 상추에 싸서 입에 넣었다. 그녀는 오늘따라 화사한 파스텔 톤의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웨이브 진 갈색 머리카락이 어깨 위에서 찰랑거렸고, 술기운이 올라 발그레해진 볼은 마치 복숭아 같았다. 평소 연구실에서는 흰 가운에 가려져 있던 그녀의 볼륨감 있는 몸매가 드러나, 회식 자리의 분위기를 한층 더 부드럽게 만들고 있었다. 볼이 빵빵하게 차서 오물거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다람쥐였다.
"아, 군대에서... 회식을 자주 했습니다."
또 군대 핑계. 하지만 사실이다. 다만 그 회식이란 게 드럼통에 장작 넣고 멧돼지를 통째로 굽거나, 유통기한 임박한 레이션(전투식량) 깡통에 쥐고기를 튀겨 먹는 야생의 식사였지만.
"근데 서 과장님,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맞은편에 앉은 정민재 대리가 입가에 주황색 쌈장을 잔뜩 묻힌 채, 비밀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뿔테 안경에 체크무늬 셔츠, 전형적인 공대생 스타일이었다. 그는 S반 탈락자, 즉 C반 출신이라 나의 '영웅담'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다.
"연수 때 대체 어디 가셨던 거예요? 저희는 연병장에서 체조만 했는데, S반은 구경도 못 했거든요. 혹시 거기서 막 비밀 실험 같은 거 했습니까? 슈퍼 솔져 프로젝트라던가?"
순간, 식탁 분위기가 묘하게 조용해졌다. 나는 쌈을 싸던 손을 멈췄다. 뭐라고 둘러대지? '조현태랑 맞짱 뜨고 여왕 개미 뚝배기 깨고 왔다'고 하면 당장 정신병원에 신고당하거나, 아니면 허언증 환자 취급을 받겠지.
"민재 씨."
그때, 윤채린 대리의 차가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순간 시끌벅적하던 고기집의 소음이 멈춘 것 같았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그녀는 회식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흐트러짐 없는 블랙 정장 차림이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긴 생머리는 비단결처럼 윤기가 흘렀고, 창백할 정도로 투명한 피부는 조명 아래서 자체 발광하는 듯했다. 그녀는 '연구소의 걸어 다니는 예술품'이라 불리는, 연예인 뺨치는 압도적인 미녀였다. 하지만 그녀의 깊고 검은 눈동자에는 언제나 서늘한 우울이 감돌고 있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겼다. 그녀는 술 대신 투명한 사이다를 우아하게 마시고 있었다. 마치 최고급 샴페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네? 네?"
"연수 세부 내용은 2급 기밀인 거 몰라요? 현장에서 있었던 일은 현장에 묻어두는 게 우리 연구소 보안 수칙입니다. 이 자리에는 없지만 혹여 보안팀에 보고가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아... 죄, 죄송합니다."
정민재가 깨갱하며 꼬리를 내렸다. 겁먹은 강아지 같았다. 윤채린은 무표정한 얼굴로 사이다를 들이켰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맙습니다, 윤 대리님. 당신의 그 칼 같은 성격이 이럴 땐 도움이 되네요.
"자자, 분위기 무겁게 왜 그래? 마셔, 마셔!"
한승우 팀장이 분위기를 수습하며 폭탄주를 제조했다. 술잔이 돌고, 취기가 올랐다. 나는 적당히 마시는 척하며, 꺾어 마시거나 물컵에 뱉는 기술(이것 또한 생존 기술이다)을 시전했다. 맨정신으로 이들을 관찰하는 건 꽤나 흥미로웠다. 가게 안을 채운 호박색 조명이 뽀얀 고기 연기와 섞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시끌벅적한 소음조차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처럼 아득하고 평화롭게 느껴졌다. 따뜻한 온기, 적당한 소음, 그리고 사람들의 웃음소리. 긴장이 풀린 탓일까, 온몸이 녹은 치즈처럼 의자 등받이로 나른하게 파고들었다.
"형님... 제가요... 사실 롤 다이아거든요... 근데 승급전에서 트롤을 만나가지고..."
취기가 올라 볼이 발그레해진 정민재는 풀린 눈으로 나를 붙잡고 게임 이야기를 시작했다. '협곡의 전령'이 어쩌고, '미드 차이'가 어쩌고. 나는 반쯤 감긴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적당히 맞장구쳐줬다. 나른하다. 그리고 평화롭다. 총알이 날아오지도, 부비트랩이 터지지도 않는, 이 얼마나 달콤하고 나른한 대화인가.
"아, 아이스크림 사 올게요!"
그때, 얼굴이 벌게진 박지호 대리가 벌떡 일어났다.
"술 깰 땐 아이스크림이죠. 제가 쏘겠습니다!"
그는 비틀거리며 편의점으로 뛰어갔다. 10분 뒤.
"자, 여기요 팀장님. 이건 이과장님 거. 이건 민재 거..."
박지호가 검은 비닐봉지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돌렸다. 국민 아이스크림, '메론나다'였다.
"오, 센스 있는데?"
팀원들이 하나씩 메로나를 입에 물었다. 나도 하나 받았다. 그런데.
"윤 대리님은... 이거요."
박지호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작고 동그란 통. '하겐다즈' 미니컵. 그것도 딸기맛.
"......?"
순간 정적. 이소연 과장이 메론나다를 문 채 멍하니 박지호를 쳐다봤다. 한승우 팀장은 헛기침을 했다. 정민재는 눈치 없이 "와! 하겐다즈! 나도 저거 먹고 싶은데!"라고 소리쳤다.
윤채린은 자신의 앞에 놓인 하겐다즈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박지호를 올려다보았다.
"박 대리님."
"네, 네?"
박지호의 얼굴이 기대감으로 빛났다.
"저 유당불내증 있어서 우유 들어간 거 못 먹습니다."
"아......"
박지호의 표정이 와장창 무너졌다.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다. 저 짝사랑, 갈 길이 멀다. 아주 멀다.
하지만 나는 이 어설프고 엉뚱한 동료들이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이 소소한 소동들. 유치한 감정싸움들. 달큰한 술 냄새와 고소한 고기 냄새가 섞인 이 공기. 조명 아래 반짝이는 동료들의 웃는 얼굴이 슬로모션처럼 보였다. 마치 따뜻한 봄햇살 아래 누워있는 것처럼, 기분 좋은 나른함이 전신을 감쌌다. 이것이 내가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눈부시게 평범한 '일상'이니까.
"서 과장님, 왜 혼자 웃으세요? 취하셨네~"
이소연 과장이 나를 놀렸다.
"아, 네... 취하네요. 너무 좋아서."
나는 건배를 제의했다.
"자, 바이오솔루션팀을 위하여!"
"위하여!!"
그날 밤. 나는 노래방까지 끌려가서, 탬버린을 흔들며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내 통장에 찍힌 7자릿수 숫자를 생각하며. 자본주의 만세. 평범한 삶, 만세.